4월, 모종 사러

 

 

 

 

모종 사러 가는 길

자작나무 심는 장면을 보았다

원래 있던 건요?

죽었어요, 죽어서 다시 심는 거예요,

라고 대답하는 늙수그레한 남자, 당신은 

나무 심는 사람, 살아 있고 건강해서 좋겠다

 

모종 사는 동안

러시아 자작나무처럼 두툼하고 하얀 중년 남자

작게 혼잣말하고 눈은 멍하고 손끝은 떨린다

어른의 몸에 아이의 정신, 당신도 좋겠다

햇살이 투명한 비처럼 내리는 날 모종 산책이라니

 

모종 사서 오는 길

오이 깻잎 상추 모종을 보자마자 아이가 절규한다

엄마, 이건 우리가 심은 게 아니잖아!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모종을 옮겨 심는 심사란

 

역시 4월은 잔인한 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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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나무의 색깔

 

 

 

 

 

개나리 노란, 따라가며 같이 놀고 싶은 색깔

진달래 분홍, 살금 다가가 따먹고 싶은 색깔

백목련 하얀, 멀찍이 올려다 보고 싶은 색깔

조팝나무 흰, 몰래 들어가 숨고 싶은 색깔

 

봄 나무 가지마다 돋아나는 초록 순

살짝 데쳐서 조물조물 무쳐야지, 맛있겠다

신록이 녹음이 되기 전에 부지런히 봄옷을 입자

이러다 곧 여름 오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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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의 사정

 

 

 

 

 

나하나님을만났어

 

겨우내 한 장미의 동태를 살폈어

3월에는 그 녀석의 임종의 지키다가 

목련의 사정을 알게 되었지 

 

하나님 만나러 수원까지, 사당에서 버스 타고

 

목련 나무가 솜털 덮인 겨울눈을 찢고

꽃망울을 터뜨리자 세상이 하얘졌지 뭐야

목련꽃 그늘 아래서, 얼른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자

목련꽃은 빨리 지잖아

 

하나님 만나러 너도 같이 가자,

라고 하면 더 놀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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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보다 낯설고 먼

 

 

 

 

 

그해 겨울은 추웠네

추워도 추워도 너무 추웠다

 

뒤뜰에 개나리, 뒷산에 진달래, 마당에 목련꽃 피는데

허브가 왔다 로즈마리, 라벤더, 페퍼민트 틈에, 아!

웬일로 우주보다 낯설고 먼 책 한 권이 딸려 왔네

 

멋쩍어진 나는 의뭉스럽게 시선을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이런 걸 내다니 참 어이가 없군."

허브보다 먼저 와 있던 유칼립투스가 다정하게 맞받아치는 말

"미안하지만, 자기가 이제 와서 어쩌겠어?"

 

 

 

*

 

 

엊그제 제본소에 넘긴다고 했는데 출간 자체는 다음주로 늦추어질 수도 있겠다. 연이은 '가족참사'에 대한 위안을 책 표지 시안을 보면서 찾아본다. 위안이 되는가? 아니면...

- "이런 걸 내다니 참 어이가 없군." 저 추천사 써준 분과 주고받은 메일에서 보고서 웃었던 문구. 정말이지, 이런 걸 내다니 참 어이가 없군^^;  

비슷한 웃음을 준 어구. "미안하지만 난 할 일이 있어."(?) 결국 시집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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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칼립투스에 기대어 

 

 

 

 

 

 

그날 밤 유칼립투스에 기대어

직립보행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 튼튼하고 발랄하고 관능적인 느낌에 대해,

절묘한 곡선을 품은 두 직선의 몸놀림에 대해

 

우리 집 유칼립투스는 너무 작고 연약해요  

그래도 그날밤 유칼립투스에 기대어 울었네요

내가 울면 유칼립투스도 아파서 울 것 같았지만,

아이의 두 다리도 더 흔들릴 것 같았지만요

울면서, 열 손가락 열 발가락을 놀리며 꼿꼿히 서 있는 나무 몸통에 대해

무릎의 각도와 보폭을 유지하며 걷는 두 다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어요  

 

유칼립투스 섬나라에서 만나요

그곳에는 듬직한 나무와 새끼에게 똥을 먹이는 코알라가 가득하대요 

우리 집 유칼립투스는 내가  기대어 울기에는 너무 작고 연약하거든요 

 

 

 

*

 

 

 

 

 

 

 

 

 

 

 

 

 

 

<희망 대신 욕망>의 목차 중 하나. "직립보행의 섹시함에 대하여". 평소 아이의 비틀거리는 다리를 보며, 특히 지난 겨울(이제 정말 많이 돌아왔다, 넘나 다행이다 ㅠㅠ) 제대로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아이, 아이의 다리를 보면서, 동시에 멀쩡히 잘 걷는 대부분의 아이들, 청년들, 장년들, 심지어 건강한 노년들을 보면서 나 역시 '직립보행의 섹시함-아름다움'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많이 생각한다.  '몸져눕는다'라고 하지 않는가. 걷던 사람이 걷지 못하면..., 흑. 

 

봄맞이 허브도 사고 유카리도 사고 아이비도 사고, 아, 텃밭에 당첨되어 벌써부터 꿈에 부풀어 있다. 아이는 오이를 심자고 하는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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