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도에 포도밭을

 

 

 

 

 

아무도 시들지 않는

언니의 나라

올리브 동산에서 만나요

 

갑자기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대부도에 포도밭을 일구는 꿈을 

초가집에 큼직한 박을 이고 사는 꿈을    

독의 꽃을 피워 백혈구가 절멸하고

감기만 걸려도 죽고 말 거야 

대부도에는 포도와 박꽃 말고

석탄가루도 날리지, 그럼에도 

몸 속에 독의 꽃씨를 뿌리며

꿈을, 대부도에 포도밭 꿈을

 

언니야

꽃잎 하나도 시들지 말고

올리브 동산에서 만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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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손가락의 시

 

 

 

 

 

 

어젯밤에 뭐 했어?

잤어

특별한 건 없었고?

음, 더웠어, 엄마

 

 

*

 

 

수증기 바람 맞고 새침해진 보라색 가지에

다진마늘 국간장 고춧가루 참기름을 넣어

조물조물 무치고 그렇게 아픈 손가락으로

초록 푸성귀, 빨간 고기, 주황 당근

하얀 양파, 노란 피망, 생블루베리까지  

아픈 손가락으로 밥상을 차리지

 

아이는 간밤의 경련을 모르고

나는 아픈 손가락으로 시를 쓰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대신하여 

아이의 밥상에서는

(역시, 지금 이대로가 좋다)

여름 잔치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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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이름 없는 꽃이라 하지 마라

이름 없는 풀이라 하지 마라

도감 속에는 이름이 다 있다

 

그저 이름 모를 꽃,

이름 모를 풀일 뿐  

 

 

 

*

 

 

너(희)의 이름을 알고 싶다 -

 

 

가까이서 보면 로즈마리 같음, 분홍꽃은 뭔지 모름

 

 

쿠*으로 새로 산 텀블러와 강아지풀

 

 

들꽃, 야생화 / 들풀, 야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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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작약

 

 

 

 

피려고 피었니

지려고 피었니

 

살자고 태어났니

죽자고 태어났니

 

 

6월 7일 아침 8시 11분

아마 어제(그저께?) 사온 진분홍 작약. 많이 폈다가 싼값에 사왔는데 거의 하룻밤 사이에 저리 되어 버린 것을 목격했다. 꽃잎 치우느라 (개) 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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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과 기교

 

 

 

 

 

12월을 태우고 11월을 적시는 마음으로

10월을 닫고 9월을 여는 마음으로

 

구불구불 머리 숱 많은, 큼직한 초식동물처럼 우울한 청년과

키스하고 싶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마구 허우적대며 

서로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몸 속으로 빨려 들고 싶다

 

8월을 버리고 7월을 줍는 마음으로

6월을 보내고 5월을 맞는 마음으로

 

이렇게 곤죽이 되도록 얻어 맞고 있음에도

죽지 않다니, 고문보다 살아 있음이 더 징그러워

미끄럽고 끈적하고 시큼한 것이 에로틱해

 

4월이 지나고 3월이 오는 마음으로

2월이 매장되고 1월이 부활하는 마음으로 

 

상처 딱지에서 상처의 핏물로, 얻어 맞는 순간으로

그렇게 독하게 도치된 시간의 순서로

라면에 달걀을 풀고 유정란 껍질을 톡 까는 거지

 

 

 

*

 

 

 

 

 

 

 

 

 

 

 

 

 

 

 

 

<에이프릴 마치>(4월 3월)은 <<픽션들>> 중 <허버트 퀘인>에 언급되는 소설 제목.  

고문 얘기는 재독, 정독한 조지 오웰 <1984>의 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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