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의 인터넷 응용 버전에 해당하는 책.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꾼 건 사실이고 문제는 얼마나, 어떻게냐이다.

2. 조선 태조는 1395년(태조 4) 큰 종을 만들어 전각을 지어 걸어두고 새벽과 저녁마다 종을 울려 시민들의 활동시한을 정해주었다고 한다. 국가가 종을 울려 시간을 알린 우리나라의 역사는 신라시대 혜공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반면 서양에서는 중세시대 성당에서 기도시간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종을 치곤 했다. 국가가 시간을 통제하기 시작했는지, 종교가 그랬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유의미하겠다.
물론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건 공공 시계 대신 개인 시계의 범용화가 인간에게 어떤 자율적인 변화를 야기시켰는지이다.

3. 아미시는 기계에 대한 도구주의자 보다 결정주의자의 주장을 지지하는 예시다. 기계가 인간의 생각과 종교관을 바꿀 것이 두려워 아미시는 기계를 멀리 하는 것이다.

4. 뇌구조의 변화가 독서와 집필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저자가 이 책을 쓰는 동안 인터넷의 단절을 택했다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대개 독자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인터넷과 단절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책을 읽으며 단상을 책 구석 포스트잍에 끼적이는 대신 북플을 쓰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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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08-27 0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이 책의 논문 중 하나인데 제일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다. 한중일 3국에서 젓가락과 숟가락은 비슷하게 시작했는데, 중국과 일본은 숟가락의 사용이 극히 일부 음식 한정 용도로 퇴화한 반면, 한국의 경우 식사 도구로서 젓가락 이상의 굳건한 위상으로 발전했고, 쇠숟가락으로 고유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그 이유를 크게 식문화의 차이와 숭유사상에서 찾아낸다. 중국음식은 기름기가 많아 젓가락으로 밥알이나 국의 건더기만 건저 먹어야 느끼함을 피할 수 있다. 일본밥은 찰기가 많아 굳이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아도 젓가락으로 식사할 수 있고 국물은 그릇째 마시면 되니 숟가락을 생략해도 됐다는 게 한 이유. 반면 한국은 예서의 지침에 따라 숟가락의 사용을 철두철미 지키었을 뿐 아니라, 일품요리 보다는 밥과 국, 탕, 반찬의 구성으로 발전했기에 자연스레 숟가락과 젓가락의 기능이 세분화되었다는 것.

몹시 수긍이 가는 내용이지만 어린 시절 경험을 덧붙여 하나의 이유를 덧붙이고 싶다. 숟가락이 발달한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숟가락을 많이 사용해야 하니까. 다시 말해 중국이나 일본보다 밥을 많이 먹으니까이다. 고봉밥을 기억하는 세대라면 동감할 거다. 지금보다 2~3배는 컸던 밥공기와 그 위에 공기만큼 솟아올랐던 고봉밥의 위용을. 그게 어디 젓가락으로 깨작깨작 먹을 수 있는 양이었던가. 숟가락으로 푹푹 퍼내도 바닥을 보기 요원했던 고봉밥!!! 1940년대 밥공기 기본 크기가 680ml였던 걸 생각해보라 (지금은 200ml 남짓이다.) 사진 속 조선인에게 숟가락 대신 젓가락으로 밥 먹으라고 해보면 예에 어긋난다 일갈했을까 아니면 누굴 배 골려 죽일 작정이냐 역정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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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란 떠나야만 한다는 걸,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도 떠나야만 한다는 걸...˝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한 남자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네.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만물의 언어를 말하는 사랑, 진정한 사랑이 아니시 때문이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버님이 이 책을 가지고 계신 것을 보고 처음 읽었을 때, 내 취향이 아니군 이라고 생각했다. 무신론자인 딸이 코엘료가 좋다고 했을 때, 그리고 언어교환앱에서 만난 독실한 이슬람 신자인 친구가 인생의 책이라고 이 책을 추천했을 때, 다시 읽어볼 것을 각각 약속했다. 재독을 해도 여전히 취향은 아니고, 구도의 항해를 하는 남자와 오아시스 항구의 파티마 설정은 딱 싫을 지경이다.

무신론자와 기독교신자와 이슬람신자를 모두 매혹시킨 이 책이 나에겐 왜 이리 거리를 두는 건지 참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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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서 누군가를 다섯 사람이나 만날 수 있게 된다면.

돌아가시기 전날의 어머니.
초등학교 때 옆집에 살던 어린 아이.
중1때 전학간 친구.
노수석 열사.
그리고 이*

모두 죄의식으로 사무치는 기억이다. 나는 그들에게 잘못을 빌고 나의 후회를 고백할 것이지만 시간은 다시 돌아가지 않는 법. 그러니 용서를 바라지 않는다. 용서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용서를 바라면 안 된다. 용서는 그렇게 쉬우면 안 되는 것이다.

도로 교통 위반? 전쟁과 살인? 자식 학대? 주취 폭력? 성희롱? 도박? 안전 사고? 이 모든 범죄들을 그냥 술술 쉽게 풀어헤쳐 썼기에 난 순간 순간 욕지기를 느낀다. 차라리 너무 쉬운 천국보다 용서 없는 지옥이 나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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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 촬영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웃긴 건 조영제 배출을 위해 물을 많이 먹으라는 권유에 따라 물을 많이 먹은 결과이다. 알고 보니 카르테 삽입 후 소변 새는 양이 줄었던 게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물을 안 먹고 참았던 거다.
이 뒷얘기를 털어놓았더니 선생님은 결국 요관봉합수술을 하자고 결론내셨다. 일요일에 입원, 다음주 월요일에 수술. 제왕절개 말고 처음으로 하는 개복수술이라 좀 긴장된다. 별 일 없겠지? 설마 또 의료사고가 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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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19-07-18 14:25   좋아요 0 | URL
헉. 큰 일 겪으셨네요. 작은 일로 제가 징징거린 거 같아 부끄럽습니다. 병원에서 의료사고 인정은 모두 했었나요? 전 지금 구체적으로 손해배상청구 고민중입니다.

감은빛 2019-07-19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이번에는 부디 잘 되기를 바랍니다!

조선인 2019-07-19 16:29   좋아요 0 | URL
네. 잘 되기만 기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