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애 어린이집 담임은 재작년에 출산을 하고 지난해 양육휴가를 쓴 뒤 올해 3월부터 출근하신 분이다. 그런데 애엄마 눈은 못 속이는 법. 2월에 첫 인사할 때부터 어째 배에 눈이 간다 싶었는데, 역시나 4월이 되자 더 이상 부른 배를 감추지 못 하고 둘째 임신을 고백하셨다. 

7월부터 출산휴가에 들어간다는 말에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복귀하기 전에 이미 임신을 알고 계셨으면서 굳이 숨겼다는 게 일단 못마땅했고, 선생님 여건으로 몸놀이가 제한될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게다가 온샘반은 겨우 만3살 반인데 도중에 선생님이 바뀌면 아이들이 과연 잘 적응할까 싶기도 했다.

이를 옆지기에게 살짝 투덜댔다가 곱빼기로 혼났는데, 가장 뼈아픈 지적은 '너 역시 작은애 가졌을 때 숨기지 않았냐'는 것이다. 워낙 보수적인 회사를 다니는 터라 나는 애딸린 유부녀가 경력직으로 취직한 첫 사례다. 작은애 가졌을 때는 지레 눈치를 보느라 6개월이 다 될 때까지 임신 사실을 숨겼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본부 직원으로는 최초로 출산휴가를 끝내고 무사히 복귀를 하긴 했는데, 출근 첫인사를 드리던 날 사장님은 농담처럼 '더 이상 애 낳을 생각 하지 마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후 사장님은 송년잔치 때 '셋째 생각 말고 열심히 돈 벌라'는 말을 덕담처럼 하기도 했고, 내가 물꼬를 튼 덕분에 자기들이 맘 놓고 애 낳는다는 감사 인사 비슷한 이야기를 여직원들에게 듣기도 했다. -.-;;

선생님이 휴가 들어가기 전 행복희망꿈님의 도움을 받아 조그만 선물을 드렸다. 선생님이야 그냥 출산 축하의 의미로 아셨겠지만, 내가 가졌던 쪼잔한 마음에 대한 나름의 사과이자 반성이었던 셈.

선생님이 10월에 복직한 후 오며가며 인사 끝에 아이들이 다른 도시의 시댁에 맡겨진 걸 알게 되었다. 주말에만 애들을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속상해하셨는데, 다른 집 아이들을 보기 위해 막상 자기 아이를 볼 수 없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더욱이 이번 달에는 온샘반에 신종플루 확진환자가 줄줄이 나와 어린이집이 휴원하는 소동까지 겪게 되어 선생님 마음고생은 한층 더 심했을 거다.

그런데 오늘 오후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연락하길 결국 온샘밤 담임선생님이 오늘까지만 다니기로 했단다. 시어머님이 편찮으셔서 더 이상 애들을 봐줄 수 없어 퇴직하신단다. 지난주 의논되기는 2월까지만 다니기로 했다는데, 마침 출산휴가 동안 나오셨던 계약직 선생님 여건이 괜찮아 원장 선생님 결단으로 일정을 앞당겼다는 것. 굉장히 갑작스러운 통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올 게 왔다'라는 생각정도밖에 안 들었다. 그동안 선생님이 무리하고 있는 게 빤히 보였기에 무의식적으로 예상 했었나 보다.

퇴근해서 가봤자 못 뵐 거 같아 인사를 드리기 위해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드리는데 수화기 너머로도 선생님이 눈물바람인 게 느껴졌다. 나도 직장다니는 애엄마인데 그 심정 왜 모르겠냐고 위로의 말씀을 전했지만 미안하다는 말씀만 하시며 계속 우셨다. 더 오래 통화하면 오히려 더 울릴 거 같아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큰애 낳았을 때 처음에는 시어머님이 봐주신다 해서 참 좋아라 했더랬다. 하지만 어머님 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자 서둘러 돌봐줄 사람을 찾느라 우여곡절이 많았다. 16개월이 되어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까지 석 달이 멀다 하고 큰애는 이 손 저 손 떠돌아다니며 컸고, 그 때 학을 뗀 터라 작은애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3개월부터 과감히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집 구할 때는 평수니, 인테리어니, 투자가치니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고, 영아 전문 어린이집이 근처에 있는지만 따졌었다. 그렇게 구한 영아전문 어린이집은 딸랑 7시까지밖에 운영하지 않아 저녁에는 따로 애봐주는 사람을 구해야 했고, 그 분이 갑자기 지방으로 이사한 후 지금의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옮길 때까지 야근문제로 옆지기와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다.

내 경험이 그렇다 보니 애당초 선생님에게도 시어머니에게 의존하지 말고 어린이집을 구하라는 조언도 감히 드렸는데, 결국은 이렇게 관두시는구나 싶어 영 마음이 씁쓸하다. 뭐 눈에는 선생님이나 나나 애 셋도 안 낳는 비애국자일텐데, 만5살짜리를 학교 보낼 생각하는 대신 영아전문 어린이집이나 늘려달라고 하면 아예 매국노 소리를 들으려나? 우울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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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11-30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 지금도 이런 이야기 읽으면 눈물이 나올라고 해요...
조선인님도 참 어려움이 많으셨군요.
저도 처음에 수원으로 이사가서 아이 맡길 곳 찾느라 주위의 어린이집, 가정집까지 수소문해서 몇군데나 돌아다녔는지 몰라요. 직장에서 점심 시간마다 그러고 다니느라 점심도 거르기 일쑤였고.
일하면서 아이키우는 엄마들, 정말 대단한 일 하시는 분들이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11-30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마음이 답답해지는 글입니다. 휴..

Mephistopheles 2009-11-30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와중에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5살로 낮춘다..라는 삽질발언이 굉장히 거슬립니다.

비연 2009-11-30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주위에서 많이 듣고 보지만, 직장 다니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말로 다 할 수 없으리만치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도대체 이런 현실을 아는 사람이 정부에 얼마나 될런지.

섬사이 2009-11-30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을 하는 엄마들에게 가장 큰 고민이 육아문제인 것 같아요.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춘다면 방과후 보육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그러는지..
인수위 때부터 생각없이 헛짚어 말하는 건 챔피언 감인 것 같아요.
이번에 신종플루 때문에 휴교했을 때에도 맞벌이 가정에선 비상이 걸렸을 거예요.
정말 마음이 짠합니다.

무스탕 2009-11-30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결국 그만뒀어요. 정성이 뱃속에 있을때..
지성이는 엄마가 키워주셨는데 건강이 안좋아 지셔서 정성이까지 돌봐줄 상황이 못돼서 12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지요.
지금 생각해봐도 버티고 다녔어야 하는지 그만둔게 잘했던건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하여간,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기엄마들이 직장생활을 하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조선인 2009-11-30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그래도 큰애에 비해 작은애는 손쉽게 키우는 편이에요. 하지만 아직도 참 막막할 때가 있어요.
휘모리님, 에휴...
메피스토펠레스님, 작년에 교실 참관 해보고 1학년 선생님이 제일 힘들겠구나 싶었어요. 만5살이 학교 가면 아마 화장실 문제가 더 심각해지겠죠?
비연님, 정부에도 있겠죠. MB가 안 들어서 문제지.
섬사이님, 다행히 해람이 어린이집 휴원 기간과 애들이 신종플루 걸린 기간이 겹쳐 차라리 났어요. 마냐님은 애들 아픈 기간이랑 휴교 기간이 달라서 진짜 애먹었겠더라구요.
무스탕님, 전 후배들에게 절대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에게 의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해요. 차라리 어린이집이 훨씬 더 안정적인 직장생활 병행이 가능하다구요. 그런데 아직도 어린이집에 대한 불신이 많아 그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꽃임이네 2009-11-30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눈물이 나네요 ,참 많이 힘드셨지요 ,보육시절의 질이 좋아지면 좋을것같아요,직장생활을 하시는분들이 마음편히 일 할 수 있는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데 그래서 저도 잠시 제가 함 해봐 했답니다 .

꿈꾸는섬 2009-11-30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바뀌면 아이들 혼란스러우니 부담스러우셨겠어요. 근데 같은 여자고 엄마니까 그 맘이 이해가 되신거죠. 정말 여자들은 아이낳고 직장꾸려가는게 쉬운일이 아니에요. 워킹맘들 정말 대단하다고 박수를 쳐 드리고 싶어요.^^
남의 아이 보느라 정작 자기 아이를 맡겨야하는 이 사회가 정말 눈물납니다.ㅠ.ㅠ

perky 2009-12-01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직장인 엄마로 이 글 정말 많이 와닿아요.
그나마 미국은, 어린이집 수업이 (직장인 부모의 사정을 고려하여) 6am-5pm이고 (선생님은 오전반, 오후반 따로 계세요.) 5pm이후에도 아이를 (학교에) 맡겨야할 경우 extra pay를 내면 방과후 담당 선생님이 8pm까지는 함께 놀아주거든요.
그 밖에도 baby sitter나 nanny제도가 꽤 잘 되있어서 돈만 지불하면(ㅠㅠ)꽤 편리한 시스템이긴해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그래도 어린아이들에게 할 짓이 아니란 생각에 많이 미안하지만요..)
한국도 하루빨리 직장맘들이 맘편히 일할 수 있는 사회로 변함 정말 좋겠어요..

오월의바람 2009-12-01 0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집 상황은 더 안 좋은 것 같아요. 월급도 그렇고 복지도 그렇고... 당장 학부모들이 싫어하잖아요. 아무리 출산휴가다, 육아휴직이다 말을 해도 힘든 상황이예요. 대체교사가 여유가 있고 교원복지가 빨리 개선되어야해요. 태교와 육아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지요. 씁쓸한 현실이네요

미설 2009-12-01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입학연령을 낮출것이 아니라 보육시설의 질을 높이고 확대하는 것이 정말 절실한데... 저도 요즘 다시 뭐라도 일을 해보려면 늘상 애들 돌보는 시간, 문제 때문에 좌절하기 일수지요. 애들이 웬만큼 컸다 싶어도 그런데 그동안 포기 안하시고 이렇게 해오신게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이 대단하십니다. 힘내세요. 그리고 해람이도 화이팅..

조선인 2009-12-01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임이네님, 아, 보육교사 자격증이 있으신가봐요?
꿈꾸는섬님, 다행히 임시교사로 오셨던 분이 참 좋으신 분이었어요. 그나마 그분이 다시 온다니 정말 다행이지요.
차우차우님, 6am!!! 정말 환상입니다. 여긴 빨라야 7시 30분이고, 보통 8시에 열어요. 에고 에고.
오월의 바람님, 같은 애엄마이면서 보육교사의 양육 현실은 그 동안 무시하고 살았아봐요. 정말 미안하더라구요.
미설님, 입학연령을 낮춘다는 발상, 정말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정말 뭐를 드셨는지...

BRINY 2009-12-01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학부모들도 그러세요. 젊은 여자가 담임이 되면, 결혼했는지, 혹시 중간에 임신해서 출산휴가들어가고 임시담임이 오는 건 아닐지가 신경쓰인다구요. 본인들도 이래선 안된다는 거 알지만 솔직하게 그런 생각부터 든다고 얘기하더라구요. 아침7시반까지 출근해서 주2,3일은 밤 10시까지 근무해야하는 인문계 고교에서 임신하기 전부터 육아를 걱정해야하는 젊은 여자선생님들을 보면, 왜 직장내 탁아시설이 안될까, 최소한 이용자 부담이더라도...하는 생각이 듭니다.

순오기 2009-12-01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이기적이라 어떤 경우도 자기 입장부터 생각하니까요.
울 아들 초등때 어떤 아이는 3년내 임산부 선생님만 만났던 경우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 다음해부턴 임신한 선생님은 담임 안하고 교담으로 하게 했었죠.

깐따삐야 2009-12-01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병가 다 쓰고 육아휴직까지 당겨 쓴다고 했을 때 학교에서 탐탁찮아 했지만 그냥 밀고 나갔어요. 다행히 주변의 선배 여선생님들이 힘을 보태주시기도 했구요. 그래도 교직은 쓸 수 있는 권리가 있으니 상황이 좋은 편인데 임신이나 육아 때문에 압박이나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되요. 요즘 정부에서 내놓는 미봉책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봐요. 내 코가 석자인데 무슨 애국심에서...-_-

조선인 2009-12-0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야자가 선생님도 잡는군요. ㅠ.ㅠ
순오기님, 임신한 선생님이 교과 담당하는 건 좋은 아이디어네요. 아무래도 업무 과부하도 상대적으로 덜 할 거 같고.
깐따삐야님, 애 안 낳는다고 매국노 취급받는 거 정말 끔찍해요. >.<

순오기 2009-12-01 18:41   좋아요 0 | URL
임신한 선생님의 교담~ 괜찮은가요?
그거 제가 운영위할 때 건의해서 채택됐거든요.^^
사실 담임이 자주 빠지면 어떤 엄마도 좋아하진 않잖아요.

BRINY 2009-12-01 21:00   좋아요 0 | URL
예전 교감이 어느날 야자시간에 여교사들 근처를 맴돌다가 '아이 많이 낳아야 애국자' 운운했습니다. 그때가 저희 학교에서 최초로 1년 육아휴직을 시도해본 교사가 선례를 만들기 싫다는 이유로 거부당한 지 얼마 안되서였죠.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육아휴직이나 제대로 챙겨주시고 그런 말씀하셔야죠~하고 한마디했더니, 교감은 얼굴 굳어져서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나중에 다른 여교사들이 고맙다고 하더라구요.

조선인 2009-12-02 10:49   좋아요 0 | URL
briny님, 멋져요~~~

antitheme 2009-12-01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나 여자는 어린 애들 있는 집은 애들 봐줄 사람 구하는게 큰일입니다.
저희 부서 후배하나는 초등학교 교사인 부인이 출근하는 동안 아이 어린이집에 데려다 줄 사람이 없어서 방학 때까지 탄력근무제를 적용받아 동료들보다 한시간 늦게 출근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배려를 받을 수 있는 곳도 많지가 않아서...

조선인 2009-12-0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멋져요. 아, 저도 운영위하면 잘할 자신 있는데. 쿨럭.
안티테마님, 우와, 부러워요. 탄력근무제... 저의 로망입니다. ㅠ.ㅠ

같은하늘 2009-12-0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글을 왜 이제사 본건지...
우선 워킹맘 조선인님께 박수를 보내고~~~짝짝짝~~~
저도 큰아이 임신하고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직장을 그만두었지요.
남의 아이를 봐주기 위해 자신의 아이와 헤어져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5살 입학이 아니라 믿고 맡길수 있는 보육시설을 만드는게 급선무 아닐까합니다.

마노아 2009-12-02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읽으면서 저도 막 울컥했어요. 여전히 직장맘들은 슈퍼맘이 되어야 하고 아이들도 가엾고, 현실은 막막하구요. ㅠㅠ

조선인 2009-12-02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하늘님, 님도 그러셨군요... 에고 에고
마노아님, 정말 울컥하는 일이 많은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