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토요일 파주 출판단지에 다녀왔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 입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 중 한 분인데 직접 뵌 적이 한 번도 없었죠.
흔치 않은 기회이어서 정말 가고 싶었는데 돌베개 감사드려요~^^
저는 무슨 일을 할 때 앞장선다거나 나서는 성격이 아닙니다만, 올해는 기회가 될 때마다
강연회 신청을 해서 인생의 길잡이가 될 만한 좋은 말씀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행간과 여백 1층 내부를 보시면 이렇답니다.
강의 시작 전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서화작품들이 보입니다.
선생님께서 한 시간 정도 강연을 하시고 나머지 한 시간 정도는 질답시간을 가졌습니다.
시간이 길기도 하고 주옥같은 이야기들도 많아 다 적을 수 있을지 살짝 걱정스럽기도 합니다만,
최대한 많이 올리겠습니다. ^^
저자와 독자 간의 허심탄회한 질문과 응답을 중심으로 하자고 했는데 돌베개 사장님이 먼저 한 말씀해주시길 부탁했다며 무슨 말을 할까 하시다가 책을 쓴 필자의 입장과 서예가는 아니지만 붓글씨를 쓰는 사람의 입장으로 이야기를 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사전 질문을 받았는데 선생님께서 미리 보시고 강연회의 방향을 정하시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책과 필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선생님은 책을 본격적으로 쓴 적이 없으시다며 출소하고 난 후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하나 쓰자고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나는 책을 쓴 적이 없어요. 편지만 썼지."하셨다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도 감옥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글이었고,
<나무야 나무야>와
<더불어숲>도 고민하시다 서간문의 형식으로
수신자를 한 사람으로 (당신으로 정하고)
우리끼리 한 이야기로 쓰셨다고 합니다.
우리 사이에 한 이야기니 뭐라고 딴소리할 사람도 없고, 수신자를 한 사람, 당신이라고 지명하고 써서 편하고, 독자들도 자신에게 한 이야기로 생각할 수도 있었던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강의>도 강의록이지, 선생님이 쓰신 게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프레시안이 창간한다고 '강의'를 낸다고 하면서 근로장학생 한 명을 선발해서 녹취해서 적도록 했대요. 그런데 선생님이 하신 이야기와 반대되는 내용도 있어서 깜짝 놀라셨다고......그래서 선생님께서 직접 정리하셨다고 하시더군요.
감옥에서의 글은 봉합 엽서 한 장의 공간을 넘치면 안되고, 신문은 지면이 제한이 있고 해서
늘 글 쓰면서 압축하는 게 일이었다고 하셨어요. 사람도 갇혀있고 글도 갇혀있는...
강의는 좀 자유로워서 옆길로 새기도 하고 면전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해서 외롭거나 사색적이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갇히지 않은 글, 편한 글을 쓰고 싶으시다고 하셨습니다. 특정한 독자도 없는, 어쩌면 나에게 쓰는 글일 수도 있다고 하셨죠.
농담으로 출판사에서는 글을 쓰고 있다고 하면 안된다고. 그럼 출판하자고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사람들)은 어디서 가지고 와서 모자이크하는 글, 증거가 있는 글을 쓴다하시면서 우리의 지적 사고가 발목 잡혀 있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또, 서론, 본론, 결론의 논리체계에 갇혀있는 글 말고 자유로운 글을 쓰고 싶으시다고...... 언어나 글은 개념이라는 그릇에 담겨있고 그 개념의 조각 위에 뭔가 도달하고자 하는데 그런 건축적인 것을 깨뜨리자하는 생각을 하신다고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개념적 사고를 하지 않고 이미지적 사고를 하므로 그림도 들어가고, 디지털 시대이니 어디(?)를 누르면 음악도 나오는 그런 자유로운 글 말입니다.
그러면서 <Finding Forrester>영화 이야기를 하셨죠.
줄거리를 말하면 깁니다만, 간단히 줄이자면 위대한 작가, 윌리엄 포레스트는 자신의 마지막 미발표 작품 <sunset>을 남기며 자신이 생전에 writing 수업을 해주었던 흑인 소년, 자말에게 유언(?)으로 서문을 쓰라고 합니다.
이 영화의 내용을 말씀하시며 윌리엄 포레스터같이 출판하지 말고 놓고 가자 그런 생각으로 쓰니 편하다고 하셨습니다.
내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 최대한으로 겸손하자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십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편지는 10분이면 읽을 수 있는 글이지만 한 달만에 쓴 글이라고 하셨습니다.
충격적인 공간에 던져져서 오 만가지 생각이 나는데 그냥 흘려보내면 강물처럼 흘러가고 잊어버릴텐데......기록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필기도 허용이 안 되고 미리 메모하지도 못하고 유일하게 허용되는 것이 한 달에 한 번 쓰는 편지였습니다. 이번 달에 쓸 것을 한 달 내내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교도관의 시선 하에서 조그만 책상에서 봉합엽서 한 장에 조그만한 잉크병과 철필로 써야 한다고 하셨어요.
선생님은 빽빽히 적으시는데 다른 사람도 써야 하므로 비켜주기도 하셨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편지를 금방 쓰길래, 넌 왜 그렇게 빨리 쓰냐?하고 물었더니 세글자만 썼다고 하더랍니다. 형님돈......^^
<엽서>를 본 독자들이 철필로 썼는데 어떻게 교정도 안 했냐고 하는데 그 때는 20대부터 징역살이를 해서 기억력이 좋은 때라 다 암기하고 머릿 속으로 교정까지 다 봐서 적으셨다고......
글은 필자와 독자의 역량의 차이가 아니라 거기 들어간 시간의 차이라고 하시더군요. 누구든지 한 달동안 생각하고 다듬으면 이 정도는 다 쓴다고 하시면서 선생님께서는 이런 점에서는 늘 자기 성찰을 하려고 하신다고 하셨어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는데 독자들이 오히려 창조자라고 하시며 독자들은 새로운 텍스트를 얼마든지 새로운 독법으로 창조한다고 하셨죠.
우리는 갇혀 있는 글쓰기를 하는데 누군가가 어디서 말한 내용, 해박함이나 지적인 유희를 가져와서 글을 쓴다고 하시며 중요한 것은 표현의 화사함 같은 것이 아닌 글 속에 어떤 생각을 담는가가 중요하다시며 어떻게 쓸까가 아니라 뭘 쓸 것인가가 중요하다 남들이 관심가질 만한 글을 쓸 것인가 자신이 진정으로 고민하는 것을 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자신이 감동하지 않는 글을 보고 남들이 감동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하셨어요.
우리가 하는 생각들은 단편적일수 밖에 없는데 길 가면서 수많은 버스를 만나듯이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단편적인 것을 마주치는 것인데 그런 단편적인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이라는 틀, 知圖 생각의 그림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큰 달력의 뒤를 보면 나오는 백지에 쓰고 싶은 주제를 쓰고 거기에는 무엇, 무엇이 담겨야 하고 그 안에는 무엇이 담겨야 한다며 책의 목차를 쓰는 것처럼 연필로 써서 여러 장 가지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시로 이 생각의 구조가 잘 되었는지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지도를 그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 하나의 버스를 들고 다닐 수 없듯이 명멸하는 생각들은 자신의 지적인 성장에는 도움이 안 된다하시며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자신이 부딪히는 생각들을 하나의 체계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화두처럼 걸어놓고 있는, 카렌다가 몇 개 있으면 책 읽을 때마다 마킹을 하는 것이나... 생각을 정리해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시며 독서도 창조로 이어지고 생산적이려면 그런 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글씨는...
붓글씨도 선생님께는 글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라시며 어떻게 쓸것인가보다는 뭘 쓸 것인가가 중요하다시며 어떤 형식의 글씨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형식으로 쓰는 것이 그 글이 지시하는 내용과 일치하는지, 내용과 형식면에서 조화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셨어요. 뭘 쓰고 싶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붓글씨중에서도 서도의 관계론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쓰시고 서예에 관한 이야기도 하신다고...... 탈근대, 자본주의 사회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귀, 자본주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비인간적인 여러가지 구조를 뛰어넘는 고뇌를 이야기하자. 탈근대를 존재론적인 사회 자기 존재성을 강화하려는 존재론적인 패러다임에 철저한 사회로 보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사고와 정서를 관계론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하셨어요. (뭔가 어렵군요 ^^;)
존재론적 사고를 뛰어넘는 것을 핵심적인 과제로 생각하시고 서도에서도 그 일환이라고 하셨어요.
손잡고 더불어에서 ㅂ을 공유하는 것으로 쓰시기도 하고,
북악산과 한강-서울을 주제로 한 작품을 내달라고 했는데 고민을 하시다가 이런 글을 쓰셨다고 합니다.
북악은 왕조, 한수는 민초를 나타냅니다. 이 작품을 보고 한글이 드라이한 기호인데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며 디자이너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글자와 그 글자가 지시하는 대상과의 일체성, 조화인데 더 나아가면 글과 그 글을 쓰는 사람과의 관계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안중근의사 유묵같이 말입니다.
선생님의 아버님은 자작농의 신학을 한 아들이었고 어머님은 더 나은 지주집안의 외동딸이셨는데 선생님의 어머니께서는 시집오실 때 두루마리를 많이 가지고 오셨다고 합니다. 그 안에 적벽부, 춘향전 등 책이 있었다고 해요. 저녁에 둘러앉아 낭랑하게 그 책을 읽었던 기억과 그 글씨들도 기억 나시고......그것을 추억하시고 글씨를 쓰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아마 이것은 저의 질문을 보고 하신 말씀 같아요. 제가 서화를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라고 질문 메일을 보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글씨를 쓰셨다고 하는데 사랑방에서 할아버지께서 천자문 읽히고 붓글씨 쓰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밖에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귀찮으셨다고......^^
붓글씨를 잘 쓰려면 나이가 많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많이 바뀌어서 미학적인 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다고 하셨어요.
글씨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갇히면 안 된다시면서 '有法不可 無法不可'라고 하셨어요. 교조적인 틀에 갇히는 사고는 안된다시며 피카소가 하나 나오면 수많은 피카소가 뒤따라 나온다하셨습니다.
질문과 답변시간도 있었는데 이것까지 정리하려면 더 길어질 듯해서 우선은 이것부터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