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과 성북동은 꽤 먼 거리인데 이상하게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이 동네를 찾게 되네요.
새해가 시작된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벌써 성북동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효재와의 만남에 당첨되었거든요.
날씨도 추운데 걷기 싫어서 다음 지도에 나오는 최단 거리를 검색해서 갔는데 결국엔 전에 갔던 길로 다시 돌아서 갔답니다. 길 물어보다가 인터파크에서 당첨되었다는 분을 만나 같이 오르막길을 올랐습니다. 그 덕에 먼 길이 심심하지 않았답니다.
서울이 자주 변하는 도시이긴 하지만 성북동도 올 때마다 공사를 하는 곳이 많은 것 같아요. 갤러리나 찻집이 생기고 있더군요.
겨울의 효재입니다. 날이 추워서 후딱~ 찍고 가자!라는 마음이 강해서...ㅜㅜ
내부는 전과 다름없어요. 작품은 당연히 바뀌었겠죠!
자수를 놓은 방석, 쿠션이에요. 아까워서 못 앉을 듯 해요.
효재와의 만남은 2층에서 진행되었답니다.
계단을 오르면서 설레였어요. 오~2층이라니...
들어갈 때는 몰랐는데 2층은 구석구석 아기자기합니다.
천천히 보여드릴께요.
들어가는 입구에 놓여있는 보자기 작품들이랍니다.
집에 온 손님은 그냥 보낼 수 없다고 하시더니 저희를 위해서 음식을 준비해두셨어요.
감동의 눈물이...ㅠㅠ
뜻밖의 음식에 놀라고, 맛있는 음식에 즐거웠습니다.
저는 양파를 좋아하는데 양파절임 비법을 알고 싶더군요.
저희집은 원래 양파절임을 안 먹었거든요. 이번에 신세계를 만났다죠!^^;
효재쌤은 세상에 제일 아까운 것이 시간과 카드값이라고 하시면서, (격하게 동의합니다~)
(카드를 안 쓰신지 삼십년이 되셨다네요.)
일찍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책에 싸인을 해주셨어요.
"책 읽었냐?, 어느 부분이 좋았냐?" 물어보시더라구요.
진도 홍주 부분이 좋았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 "나도 많이 울었어."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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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의 의미도 설명해주셨는데 한자 '재'의 의미가
지붕 아래 한 상 가득 차려서 잘 먹는 그런 의미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싸인도 한상 가득 차린 것을 형상화하신거라고 하셨어요.
처음엔 사람들이 '재'한자를 보고 사람이 안 쓰는 한자라고 왜 저 글자를 썼냐고 하더니
좀 유명해지니 누가 저렇게 좋은 글자를 이름에 붙여주었냐고 한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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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먼저 먹고 시작합니다.
빈대떡, 양파절임, 고구마, 차까지...정말 대접받는 느낌!이었어요.
먹는 방법도 설명해주셨어요. 젓가락을 손에 끼고 접시 잡고 음식 덜어먹는 것까지...
그릇이 궁금하실 거 같아서 다 먹은(죄송 ㅡ.ㅡ)그릇을 찍어봤어요.
다기 정말 이쁘지 않습니까? 안에 연꽃이 있어요!
선생님께서 사진은 얼마든지 찍어도 되는데 녹음은 하지 말아달라고 하셨어요.
강의가 많으셔서 목소리도 쉬셨다고 하더라구요.
마이크를 쓰지 않으셔서 더 그러신다고...
기억에만 의존해서 쓰는거라 정확하지 않으니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강의는 하시는데 사람을 일대일로 만나면 낯가림이 심하시다고 하셨는데,
강의 들어보면 믿어지지 않습니다. 말씀도 잘 하시고 정말 웃긴 이야기도 잘 하십니다.
요즘 지하철타면 다 스마트 폰을 하고 책은 읽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책이 세상을 살릴거라고 하셨어요. 글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은 인터뷰도 거절하지 않으신다고 하네요.
복나무
작년에 세 번의 충격을 받으셨다고 하더라구요.
언제부터인가 일본인들이 효재에 오기 시작했다고 하시며 (욘사마 영향인가봐요.)
갑자기 많은 일본인들이 와서 고구마에 사과를 급히 준비해서 주었는데,
그 사람들이 가고 또 50명의 일본인들이 왔다고 하시며
더이상 줄 것도 없는데, 다 뒤져봤더니 라면 5개와 미역이 있어서 그걸로 50명 분을 만들어 먹였다고 하셨어요. 추운데 따뜻한 거라도 먹으라고 만들어주셨대요. 일본인들이 감동받아서 갔다고 하시더군요. 다른 분들은 다 돌아가셨는데 한 분이 남아서 설거지를 하시더래요. 선생님이 왜 저 사람은 안 가고 있나 했더니 엄청 아름다운 아사다라는 분이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하더랍니다.
아사다라는 분은 일본에 돌아가셨는데 효재선생님이 나중에 일본에 찾아가겠다고 하셨대요.
그런데 그 일본분이 그 말을 믿고 계속 버티고 살아계셨다고...
나중에 효재쌤과 통역하시는 분이 우여곡절 끝에 아사다라는 분을 찾아갔다고 하더군요.
효재쌤이 다시 한국에 오셔서 바빠서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기차를 타고 지방에 내려가다 그 통역사분께 아사다 잘 있냐고 문자를 보내셨대요.
이틀 뒤에 통역사분이 울면서 전화했다고 합니다.
아사다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며 선생님 무섭다고...
효재쌤이 문자를 보냈을 때 아사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여자의 직감은 무시할게 못 되나봐요.
욘사마 팬이었던 아사다는 욘사마는 못 만났지만 욘사마 생일에 돌아가셨다고 하네요.
두번째 충격은 네팔에서 있었는데 네팔에 태양광 전기를 설치해주러 가셔서 만난 네팔 어린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셨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1월 1일에 TV프로그램에서 괴산 무신사(?)에 동자승을 만나러 가셨다고 합니다. 부모들이 키울 수 없어서 맡기고 간 동자승을 키우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 곳의 동자승을 보면서 슬펐다고 하시며 또 그 곳에 음식들고 가실거라고 하시더군요.
선생님이 50이 넘는 나이에 세상에 드러난 것은 신께서 자신이 좋은 일에 쓰이기를 바라기 때문이아닐까 하신다고 합니다.
효재선생님이 가장 멀리서 온 분께 보자기로 가방을 만들어 선물로 주시는 거에요.
이름이 무척 이뻤던 분이셨어요.
선생님이 입고 계신 조끼도 조각천을 모아서 만드신 건데 이런 옷을 만드는 시간에
다른 옷 6벌은 만드신다고 하시더라구요.
나중에 박물관을 만드실 계획을 가지고 계셔서 모으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한 사람이 일생동안 쓰는 종이가 나무 몇 그루인가요?라는 퀴즈도 내시면서 보자기 선물 받을 사람을 찾으셨답니다. (답은 200그루라네요.)
커플에게도 선물로 만들어주시고, 엄마를 따라온 아이에게도 만들어주셨어요.
보자기가 쓰임새가 정말 많더군요. 가방도 뚝딱 만들어주시고 옷도 만들어 입을 수 있고, 쉽게는 아이가 매고 있는 슈퍼맨 망토도 되고요.
다리가 이쁜 분께도 선물로 보자기 가방을 만들어주셨어요.(디자이너는 이쁜 것을 광적으로 좋아하신다고 하시면서...)
프랑스에 가셔서 이렇게 보자기로 가방을 만들어 다니셨는데 가이드 해주시는 분이 프랑스 사람들이 선생님 가방을 관심있게 보고 있다고 말해주더랍니다. 그래서 "안 그런 것 같은데" 라고 대답을 하셨더니 가이드가 프랑스 사람들이 안 보는 척 다 보고 있다고 하더래요. 효재쌤이 인형 옷에 관심이 있으셔서 인형 옷을 보러 어떤 지역에 가셨는데 그 곳에서 한 프랑스인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그 가방은 무슨 브랜드냐고 물어봤다고 하시며 그 사람이 물어보니까 다른 프랑스인들도 주위에 와서 보자기 가방을 보더랍니다. 그들이 흔히 보는 루이비통같은 명품 가방과는 완전히 다른 가방이니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되어지더군요. 자유자재로 변신이 가능하고 색도 다양하고 디자인도 아름답죠. 저도 이 날 보자기가 이렇게 다양하게 쓰일 수 있구나 하고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인사동에 다녀왔는데 그 전에는 눈에 안 띄었는데
거리 장식장에 효재쌤이 만드셨던 보자기 선물 포장이 많이 있더군요.
저도 좀 배워볼 생각입니다.^^
이 책에 다 있다네요.
길상사 버스타고 내려갈 수 있도록 일찍 끝내고 사진 찍을 시간 충분히 주신다고 하셨는데 이야기 하다보니 시간이 어느새 흘러버려서 버스는 포기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벽장을 열면 수많은 다기가 있습니다. 그 위에 욘사마 인형이...
2층에서 보이는 정원이랍니다.
저희가 앉아있던 곳입니다.
이런 구조랍니다.
다른 분들도 사진을 찍으시느라
여기저기 계셔서
사진을 좀 잘랐더니
이렇게 되었어요.^^;
복도는 이렇습니다.
어느 한 곳도 그냥 두시지 않으셨어요.
곳곳에 보자기 선물이 있답니다.
이불 호청을 뜯어서 만드셨다는 외투~
강의하러 가시면 모두 시꺼먼 색 옷을 입고 있다고 하시며 화사한 게 좋으시대요.
역시 디자이너는 다른가봅니다. 이불 호청이 이렇게 예쁜 외투로 변신할 줄이야...
봉사하러 가신다면서 저희보다 먼저 나가셨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괴산 동자승들 만나러 간다고 하셨던 것 같네요.
참석한 사람들과 얼굴을 옆에 맞대시고 사진 촬영도 해주시고,
소탈하시고 재미있으신 효재선생님이셨어요.
벌써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