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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나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사뭇 높아졌다. 게다가 두 아이가 다 약간의 아토피 증세가 있어 마음고생을 많이 한 나로서는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가는 돌파구의 하나로 여러 건강 관련 서적을 좀 탐독한 경험이 있다.
그 속에서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와 '민족생활의학'을 만난 건 참으로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논조나 의학상식과는 별로 연관이 없는 책들을 거론한 이유는 이 책도 내게 그 책들 만큼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 즉 '환자가 알면 좋은 것들, 음지의 질환들, 바른 생활을 하자'로 나뉘어져 있다.
'환자가 알면 좋은 것들'에서는 대학 병원의 허와 실이라든지 의료소송, 법의학, 응급구조 등 우리가 알아두면 편리한 의학 주변 상식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실용적이면서도 의학 주변의 것들에 대한 작가의 건강한 관점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음지의 질환들'에서는 우울증, 수면장애, 틱, 탈모, 변비, 설사 등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크게 중요시 되지 않고 사회의 편견으로 인하여 쉬쉬하게 되어 해결책을 찾기 힘든 질환들에 대해 유쾌하고 명쾌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우울증에 대해 거론하면서 그는 인도 여행을 권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참으로 공감가는 말이었다. 하지만 정통으로 서구의학을 전공한 이 답지 않은 파격적인 발언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서 작가의 열린 의식이 드러난다.
또한, 교양서적의 틀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의학서적인데도 독자로 하여금 계속하여 웃음 짓게 하는 마력이 이 작가에게는 있었다. 그것은 과감하게 진실에 맞서 보려는 태도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더더욱 웃음의 파장을 폭넓게 만드는 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틱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신도 틱이 있었다는 고백을 하는 작가의 말을 인용해 보자.
고1이 되자 이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없앨 수 없는 거라면 즐기자고. 난 최대한 눈에 안 띄는 틱을 개발했다. 다름 아닌 발가락을 움직이는 틱. 그걸 하니 다른 틱을 안 하게 되고, 발가락은 눈에 잘 안 띄니 좋았다. 그 덕분에 나랑 아주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내가 틱을 갖고 있다는 걸 잘 모른다.(p.134)
아버지에 대한 공포, 공포에 대한 감수성이 많아 틱이 생겼다는 작가. 그 작가의 고심 끝의 해결책을 듣는 순간 나는 정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부분은 이 책에 무수히 많이 나온다. 어떤 화제이든 우리를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 가는 그의 유쾌한 필력이 참 신기했다.
하지만,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세 번째 부분이었다. 아동학대, 암 예방 음식, 포경수술, 정력제, 콘돔, 제왕절개, 헬리코박터, 비타민 등에 대한 그의 의견은 한 마디로 올바르고 건강한 정신으로 사는 것이 암을 예방하고 병에 안 걸리게 하는 가장 좋은 대책이라는 것이다.
그 중 콘돔에 관한 그의 의견만 보아도 그의 생각은 참으로 진보적이고 개방적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콘돔에 대해 어릴 때부터 익숙해지도록 교육해야 하고 콘돔 자판기를 곳곳에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견이 성을 문란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반대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우리 나라의 성문화가 너무 폐쇄적이고 경직된 게 더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의 의견에 박수를 보냈다.
암을 예방하는 음식에 대한 결론에서 그의 가치관, 인생관이 드러난다.
"모든 암을 예방하는 음식은 존재하지 않는 법, 마음을 편안히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는 게 건강의 지름길이 아닐까."(p.212)
그렇다. 의학 상식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를 갖고 즐겁게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아닐까? 채식이니 육식이니 선 긋지 말고 내 몸이 원하는 음식을 먹고, 식욕이 들 정도로 몸을 움직이며 살고, 사회의 편견에 물들지 말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것. 나는 작가가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게 이런 게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어려운 의학 상식에 대해 간결하고 쉬운 문체로 이야기하여 대중성을 확보해 놓은 그의 책. 건강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느긋한 마음으로 좀더 건강하고 즐거운 인생을 사는 데 지침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행간 사이사이마다 유모어가 번득이고, 그보다 더 고귀한, 사람에 대한 깊고 따스한 인간애가 보이는 그의 신간이 나오기를 벌써부터 기대해 보며 이 글을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