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구판절판


그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가슴 한쪽이 시큰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감정에 일일이 어떤 표식을 부착할 수 있다면 누군가는 그 순간의 그의 감정을 '너무 일찍 도착한 향수(鄕愁)라 명명했을 것이다.-p.51쪽

문득 감상적인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런 값싼 감상에는 언제나 사뭇 달콤한 데가 있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그 달콤함을 음미했다. 건조한 땅에 갑자기 내던져진 달팽이처럼 자신의 축축한 내부로 더 깊이 파고들고만 싶었다.-p.95쪽

대규모 정리해고와 연쇄도산, 백화점과 다리의 붕괴, 지하철 화재가 난무하는 사회에서 잊혀진 스파이로 살아간다는 것이 다른 삶에 비해 크게 위태롭다고는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폴 발레리의 시구처럼, 그는 운명을 잊고 있었지만 운명은 그를 잊지 않고 있었다.-p.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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