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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 시대 천재 소년 우가
레이먼드 브릭스 글 그림, 미루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2월
평점 :
아스라한 석기시대, '부드러운 바지'를 꿈꾸던 천재소년이 있었다. 모두들 무거운 돌바지를 입고 어둡고 축축한 동굴에서 사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을 때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 이름은 우가. 완고하고 성질 급하고 사나운 성격의 엄마와 소심하지만 다정한 아빠의 외모를 반반 닮은 우가. 하지만 동글동글한 얼굴, 포동포동한 몸매, 바짝 선 굵은 머리카락의 귀여운 우가는 자기를 둘러싼 석기시대의 모든 것에 대해 호기심과 의문을 품고 산다.
모두가 입는 돌바지가 불편하고 무겁다는 것을 느끼며 보들보들한 바지를 꿈꾸고, 죽은 짐승 고기말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의 맛이 좋다는 것을 듣고는 엄마에게 그 새로운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돌을 이용해 하는 축구에서 돌이 튀어오르면 더 재밌을 거라는 상상을 한다.
그런데 이런 우가에 대해 친구와 가족의 평가를 들어보면 보통 사람들의 편견과 선입관의 실체에 대해 느끼게 된다.
"우가, 넌 그게 문제야.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구. 꼭 딴 세상 사람 같아. "(p.7)
"제발 놀아라, 놀아! 생각 좀 하지 말고!"(p.17)
"생각! 생각! 생각! 저 녀석은 일찍 죽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까지 할 거야. 어휴, 속상해."(p.20)
우가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끝까지 의미를 캐려고 노력하고 다른 것과 연관지어 생각하려고 한다. 확산적 사고능력의 우가. 하지만, 엄마나 아빠는 우가의 의견을 묵살하고 삶의 조건을 바꾸려는 시도를 결코 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가가 엄마에게 꽃다발 선물을 하는데 엄마는 그것을 통째로 입에 집어 넣어 버리기까지 한다. 엄마와 우가가 의사소통이 안 되는 슬픈 현실이 느껴졌다.
매일 물을 길어 와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강을 구부리면 안 되냐고 제안하지만, 엄마는 우가의 상상력을 보지 못한다. 매일 짐승을 쫓아다니는 아저씨들의 노력이 소모적으로 보여 울타리를 만들어 짐승을 가두면 어떻겠냐고 아빠에게 건의하지만 아빠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이다.
우격다짐만 하는 엄마에 비해 아빠는 우가의 말을 조금은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장면도 보인다.
우가가 동굴에서 살지 말고 야외 동굴(집의 형태)을 꿈꾸고 그것을 실제로 돌로 만들어 보았을 때 아빠는 그 곳에서 아늑함과 안락함을 느꼈다. 하지만 늘 아내의 반대에 부딪치고 만다.
그래도 날카로운 돌조각을 구해 와서 우가가 가져 온 아기 메머드 가죽을 재단하여 돌바지를 만들려고 하는 아빠의 노력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결과는 실패였지만..
결국 마지막 페이지에 우가는 부모님의 무덤이 있는 동굴에서 벽화를 그리며 사는 청년, 여전히 돌바지를 입고 사는 보통의 석기시대 사람으로 나온다.
천재 소년 우가는 왜 이렇게 보통 사람이 되어 버렸을까?
그의 머릿 속에 꽉 차던 현실인식과 그 선구자 같은 아이디어는 다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참 재미있게 책을 읽고 나서 약간 쓸쓸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부지불식간에 저지르고 있을 우격다짐의 언어들, 아이들의 상상력에 따라 가지 못하고 겉모습만 보며 성급히 판단하고 비판해 버리는 나의 조급함과 얕은 통찰력 등등이 떠올랐다.
이 책은 어린이서점에서 우연히 건진 책인데 참으로 여러 가지를 일깨워 준 만화였다. 여섯 살 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 폭넓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어른들이 한번쯤 일부러 읽어 보아도 좋을 것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