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봄, 놀라서 뒷걸음질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눈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p.14-15쪽
긴 손가락의 詩
시를 쓰는 건
내 손가락을 쓰는 일이 머리를 쓰는 일보다 중요하기
때문. 내 손가락, 내 몸에서 가장 멀리 뻗어나와 있다.
나무를 봐. 몸통에서 가장 멀리 있는 가지처럼, 나는 건
드린다. 고요한 밤의 숨결, 흘러가는 물소리를, 불타는
다른 나무의 뜨거움을.
모두 다른 것을 가리킨다. 방향을 틀어 제 몸에 대는
것은 가지가 아니다. 가장 멀리 있는 가지는 가장 여리
다. 잘 부러진다. 가지는 물을 빨아들이지도 못하고 나
무를 지탱하지도 않는다. 빗방울 떨어진다. 그래도 나는
쓴다. 내게서 제일 멀리 나와 있다. 손가락 끝에서 기간
의 잎들이 피어난다.-p.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