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한 조력자 - 남을 돕는 이타적인 활동의 이면을 들여다보다
볼프강 슈미트바우어 지음, 채기화 옮김 / 궁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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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처럼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삶에 길들여져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지금 와서 더듬거려 찾아봐도 잘 잡히지 않는다.


내 세계 속에서 ‘-을 위해 ~을 해.야.한.다’가 아닌 명제는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억지로 잘참고 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잘 속일수록, 이게 정말로 맞다고 고개를 끄덕일수록 ‘나는 가치 있게 살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거의 완벽하게 합리화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문득 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모래처럼 느껴지지만 않았다면. 


쉬고 있는 데도 쉬고 싶은 날이 많아졌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몽땅 기를 쓰고 집에 와서는 무기력함에 허덕였다. 읽고 싶은 책은 사라졌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일부러 만나지 않았다.(힘들다고 말하는 순간 겉잡을 수 없이 약해질 것만 같았다. 나는 강한 모습이어야 했다)


해야 하는 일들에 열정이 생기지 않았고, 원래 어려운 일이었지 자조하거나 이게 뭐냐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기운이 없었다. 움켜쥐려고 할수록 더 새어나갔다. 필사적으로 손바닥에 남은 모래 몇 알 같은 에너지를 쥐어짜던 일상을 연명하던 날들이었다.



"나는 당신을 도와주지만 나 자신은 도움이 필요없어요!"


여름의 한 가운데서 ‘무력한 조력자’를 읽기 시작했다. 타임라인에 올라온 책소개를 봤고, 제목부터가 내 이야기임을 짐작했다. 


자신의 문제와 대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남을 도와주는 일에 전념하는 '조력자 증후군' 

지속되는 희생적 활동에 합당한 보상이 없어도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의 내적 필연성에 의해 '이상화된 조력자 상'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해칠 지경이 될 때 까지 다른 사람을 돕게된다.


‘-을 위해 ~을 해야한다’는 거대한 합리화의 세계 속에 철저하게 ‘나’라는 존재는 소외되어 있었다는 것. 스스로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채로, 수년을 허덕이고 있었다는 것. 당시 내 상태에 병명을 붙일 수 있다면, 조력자증후군이 확실했다.



[조력자 증후군의 정리]


* 조력자 증후군은 자신의 발달을 희생하여 사회적 조력을 경직된 생활방식으로 삼는 독특한 성격 특성의 결합이다. 조력자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의 근본문제는 높고 경직된 자아이상을 지향하는 사회적 외형이다. 자신의 약점과 결핍이 부정되며, 관계에서는 상호성과 친밀함이 제외된다. 조력자의 자기애적 욕구는 크지만 그 전체 또는 부분이 무의식적이다. 따라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데는 미숙하다. 쌓인 욕망은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어린 시절 자기애적 만족이 거절당하면, 부모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 즉, 초자아와의 경직된 동일시가 아이에게는 유일한 선택지가 된다. 그 아이는 성장하여 자신이 그토록 원하고 그리워 했던 것을 자기 자신에게는 주지 못하고 ‘이타적’으로 다른 사람을 통해 실현하려 한다. 경직된 초자아는 직업적 책임을 강조하는 교육과정을 통해 더욱 강화되어 직업활동을 시작할 때는 이미 조력자증후군이 예비가 된 상태가 된다. 조력자증후군의 예방과 치료의 목표는 초자아 동일시를 통해 이타적 행동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아의 활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p. 24-27)

조력자증후군이 있는 이들의 내면 상태는 화려하고 강한 외형 뒤에 방치된 굶주린 아이의 그림으로 표현 될 수 있다.

“나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X교수님의 집 앞에 있었다. 우리는 이 집에 종을 달아야 했다. 내 앞에 석회암으로 둘러쳐진 높은 담을 올려다보았다. 종을 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장비와 밧줄 등이 더 필요해서 가까운 헛간으로 갔다. 그 때 헛간 안에서 숨죽인 울음소리가 새어나았다. 문을 열자 아주 끔찍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거의 탈진한 깡마른 아이가 오물과 거미줄을 뒤집어 쓴 채 잡동사니 사이에 끼어 있었다.” (30세 의사의 꿈) 

… 조력자로 하여금 자기 내면의 아이를 어둡고 더러운 지하실에 가두도록 한 초기의 결핍이, 이 아이의 욕구를 원시적인 수준으로 보존시켰다. …미숙한 상태로 남아있는 자기애적 욕구에 대한 엄청난 허기는 그 홀로 자신의 외형의 도움으로 극복하고 있는 일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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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이다. 타인의 꿈이지만 직관적으로 내 모습임을 눈치 챘다. 오랫동안 방치된 굶주려 있는 어린아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의사의 꿈이 내 꿈처럼 눈에서 오락가락 거릴 때 마다, 나는 울면서 산책로를 뛰었다.


다른 이를 도와주는 것이 보람 있지만 때때로 너무 힘에 부쳤던 까닭은, 내가 허기져 있었기 때문이구나. 어렴풋이. 나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구나. 

방치된 어린 나에게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살찌워야겠다. 보살펴야겠다. 안아줘야겠다. 사랑해줘야겠다. 부모가 해주지 않은 것이라면, 이제 내가 스스로에게 해주면 된다. 어느 덧 나는 다 자란 어른이다. 되뇌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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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3)[나는 당신을 도와주지만 나 자신은 도움이 필요 없어요] – 자비네

…그녀는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하는 압력을 받을 때에만 자신을 느꼈다. 손님이 오면 그들을 잘 대접했다. 그러나 자신이 손님이 될 경우 그녀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배려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친구들의 불안과 어려움은 자비네의 문제이기도 하여, 그들의 얘기를 참을 성 있게 들으며 관심을 기울여 조언을 하고 돕는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불안과 우울은 고독한 산책을 통해 해소하려고 한다. … 도와줄 준비, 요구 없음, 어린동생에 대한 배려는 자비네가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즉, 그녀는 자신의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서는 안되며, 맏이로서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만 했던 것처럼 환자들에게 온전한 사랑을 나눠주어야만 했다. …조력자에게는 자기애가 공급되는 주요 원천이 욕구 충족이나 상호적 사회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욕구충족을 가시적으로 단념함으로써 얻어진 감사이기 때문에, 그는 자주 클라이언트에게 심하게 의존한다. …자비네가 공격성을 표출하는 방식은 ‘제3자 변호’의 양상을 띤다. 예를 들어 그녀는 집단의 어느 구성원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이 감정을 다른 구성원을 변호하는 데 이용할 수 있을 때 까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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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이로서 사랑받기 위해, 철저히 자기의 욕구를 억압하는 생존방식.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면 동기가 생기지 않는 삶의 방식. 요구가 늘어날수록, 지위가 올라갈수록 나는 더욱더 책임을 다하고자 애썼고,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없는 나날들이 많아지면서 천천히 질식되고 있었던 것 이다.



(p.112) “이웃을 사랑하라.”뒤에오는 “네몸처럼”은 종종 간과된다. 


성경의 사랑하라, 에는 ‘네 몸과 같이’라는 말이 따라 왔구나. 몰랐다. 아니, 알았지만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앞으로의 인생에서는 아니, 앞으로의 사랑에서는 ‘나’를 빠뜨리지 않으리라.



***



두 가지가 어려웠다. 책 자체의 번역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순간순간이 너무 괴로웠다는 것. 빼곡한 예시 속 곳곳에서 발견되는 나와 같은 이야기들. 역할 수록 꼭꼭씹어 삼켰다. 속상하고 속상해서 속상함에 내성이 생길 때 까지. 여름내내, 나는 몇 번 이고 반복해서 이 책을 읽었다.


서른 살, ‘무력한 조력자’를 읽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표현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고민을 앓던 지나간 3년의 일기처럼. 더 바쳐지지 않는 모습을 자책하면서 괴로워하기를 되풀이했을까.


여전히 스스로에게 온기를 주는 것은 서툴지만, 종종 잊혀지곤 하는 ‘나’에 대해 '내'가 독려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삶이 이전처럼 그렇게 어렵게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고. ‘초자아에서 자아가 되라’는 책의 처방을 곱씹으면서-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돈을 벌고, 또 충분히 쉬기로 마음먹었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를 돕는 것이 좋다. 

나의 능력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기쁘고 즐겁다. 그러나 ‘나’를 도외시하면서 살아가지는 않아야겠다. 그건 정말로 그 누구를 돕는 일도 아니며, 돕지 않았을 때 보다 더 서로에게 상처주고 끝난 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무력감’은 나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일상의 권력 관계에서 거대한 한국사회의 구조에서 특히 세월호의 침몰을 보면서. 우리는 너무 무력했고, 그 무력함이 온몸에 젖어들어 숨이 막힐 정도였다. 모두가 그 구조적 무력감에서 헤어 나올 수는 없겠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범위안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식을 택해야한다. 그게 무엇이든 자신의 활동을 통해 조금씩 무력감을 극복한 한명 한명이 늘어 날 때, 사회 총량의 무력함이 – 무력의 구조가 – 타파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타인을 해치지 않는, 타인을 위하기를 꺼리지 않는 많은 선량한 사람들.


그들이 ‘네 몸처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나를 일으켜 남을 세우는 활동들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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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3 조력자 증후군의 결론)

내가 보기에 자신의 조력자증후군에 대한 현실적 접근은, 우선 조력을 초기 아동기에 입은 자기애 적 손상의 비교적 바람직한 해결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 그러면 방어로서의 조력과 자아에 조절된 활동으로서의 조력을 구분하게 된다. … 자아가 강조된 대답은 대략 다과 같을 것이다. “지금까지 제 인생의 기회를 너무 돕는 일에만 쏟아 부었어요. 그걸 넘어서서 이제 기회를 확장시켜볼 수 있어요. 제 문제를 발견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절 도와주세요.” 초자아에서 자아가 되어야 한다. - 프로이트의 언설을 이렇게 변형하는 것이 조력자 증후군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변화 속에서 조력은 폄하되거나 조롱당하지 않으며, 그 자체가 창조적이고 만족감을 주고 자극과 성장의 기회가 풍부한 활동으로서 놓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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