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김은주 지음 / 봄알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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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타자와 괴물을 몰아낸 기반에 뿌리 내린 철학에서, 여성은 타자다. 타자로서의 여성은 자신의 입말이 아니라, 자기를 탄압하고 옥죄는 언어로 사유와 철학을 시작한다. 여성을 타자로 규정한 철학 안에서 철학적 사유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얼어붙고 어두운 시기에,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불안정한 공간에서 온 힘을 다해 힘겹게 머무는 일이다.”

“(12) 이 책에서 소개하는 한나 아렌트, 가야트리 스피박, 주디스 버틀러, 도나J헤러웨이, 시몬 베유, 쥘리아 크리스테바 여섯 명의 여성 사상가이자 철학자는 주로 20세기에 활동하면서 근대 주체를 비판하고 근대 이후를 모색했다. 이들은 타자와 소수자의 문제를 철학적 문제로 성찰하고, 타자를 동일성의 범주로 판단해버리지 않고, ‘즉시 이해가능하지 않은’ 겸손한 지평에서 타자와 맞닿았다. 말을 길어 올려 새로운 사유를 끌어낸 그들로부터 알게 된 것은, 동일자로 호명되어온 인간이 실은 이방인이며, 타자라는 사실이다.
이 책은 여성철학자들을 단일한 혈통의 계보로 묶기보다는, 이들이 각각의 위치에서 벌인 치열한 사유와 아직 쓰이지 않은 삶에 대한 전망을 축으로 엮었다. 확실히, 사유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살기 위한, 삶을 계속하기 위한, 함께 존재하기 위한 깊은 열정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오랫동안 홀로 생각해온 여자들과 이제는 같이, 문턱 너머 저편으로 건너가고 싶은 갈망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존재하려는 열정이 그녀의 몸에 아로새겨져 있다. 우리가 서로를 발견할 때까진,우리는 혼자일 수밖에 없다(에이드리언 리치).’”


까지 책정리를 했는 데, 혼술에 취해서 뭔가 더 이상 책을 정리할 수가 없다.


괴물과 잠을 자기에는 너무 쫄보고(생각하기가 싫어요), 그러나 그게 궁금하긴 하니까 괴물이랑 잔다는 소문을 듣고 영화 쉐이프 오브 워터를 보고 실망한....(응?) 나로서는, 제목부터 넘나리 매력적인 책이었지만, 여기에 나오는 그녀들을 다 모르는 거라... 그래서 내가 읽는 책 중에서 나오면 한편 씩 독파해야지! 마음먹고 읽기를 어언 2년(참 길었다)... 2018년 4월부터 읽던 책을 이제야 다 읽었다. 쥘리아 크리스테바와 도나J해러웨이를 도통 어느 텍스트에서도 만나기 힘들었는 데... 다행스럽게도 페미니즘-교차하는 관점들 에서 다들 등장해주셨다.

연휴의 막날이라 안취하기 싫은 데, 한 줄이라도 써야할 것 같아서. 
흩어져가는 정신을 붙잡으며 한줄 쓴다.

나는 언제나 처럼 아마 내일도 후려쳐질거다. 절반은 노동자이기 때문이겠지만 절반은 ‘나이들어가는 여성’ 노동자이기 때문이기도 할거다. 네가 여길 벗어나서, 가봤자 얼마나 좋은 곳이겠어?를 묵음처리한 말들이 펼쳐질 것이고, 때때로 호의를 가장하지만 그래서 더욱 비참해지게 하는 염려의 말들을 들으며, 속에서는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방긋 웃겠지. 씩씩한 척도 할거다, 아마. 매일매일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런 말들을 들으면서, 표정관리와 멘탈관리와 근태관리까지 하면서. 아무리 의식적으로 싹싹 그러모아도 원체 빈약한 내 자존감은 손가락 사이로 줄줄 새어나갈거다.

술을 (적당히)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쓰거나, 대화를 하거나, 운동장 트랙을 달리거나.... . 깎여나가는 것 만큼의 자기애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지친채로 악착같이, 애써하다가, 눈에 실핏줄이 터지고, 위장에 구멍이나고(여기까진 슬픈 실화), 쌍코피가 줄줄 흐를 수도 있다.

*

여성이 자아를 축소하고 겸손해지길 독려하는 사회에서 기실 내가 배워왔고 익숙한 것은- [겉으로] 일은 완벽하고 빈틈없이 쨍쨍 잘하면서도, 공은 티나게 티내지 않고 그래도 은근히 드러내면서도, 와중에 겸손해야 하고 또 그게 너무 내숭떠는 것처럼 보여선 안되는. [속으로] 사심없는 헌신인 양 애쓰면서도 은근히 나를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응큼하고 모순적인 것들. 분열적이고 때로는 징그럽기도 한.

생각해보면 이미 이렇게 만들어진 세계에서 미치지 않고 적응하려면(변혁하는 방법도 있지만 진즉 투항했다), 역시 자기혐오나 자기연민에 빠지는 게 더 수월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자기비하와 자조좀 섞어 투덜거리는 게 그나마 건강하다는 생각이다. 또 그런 모습이 - 적어도 자기애가 막 만땅에 차있는 것보다는 덜 이질적일 수도 있겠다 싶다. 

잘 정제된 자기혐오나 잘 포장된 자기연민을 난 좋아한다. 타인을 미워하는 것보다 나를 미워하는 게 난 익숙한 데, 그거 마저 이쁘게 포장하는 정성스러움이 느껴지면, 기분이 좋크든요. 유머러스한 고오급 자기혐오.

*

오늘 모순에 대한 지적을 희열로 받아들였다는 어느 페미니즘 철학자를 읽으면서. 한발짝 더 내딛기로 했다. 나를 망치지 않겠다(는 소극적 자세)에서 한 걸음 더. 개소리 하지마, 나는 더 건강해질 거고, 아주 아주 잘살아버릴거다. 그리고 이미 충분히, 당신 보다 잘 살고 있다.!!! 감히 너따위가 걱정해줄 나님이 아니시란 말이다!! (아니... 이걸 인제 깨닫다니 ㅠㅠㅠㅠㅠㅠㅠ 오 나여, 가스라이팅에 취약한 쪼렙이여..) 으하하하하! 언젠가 곰곰히 생각해서 적어볼 기회가 있다면 써보고 싶다. 

나는 나를 긍정하고 나를 사랑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신보다 잘 살아버리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어째서
자기혐오나 자기연민보다 더 어려웠는 지.

*


자야겠다. 내일은 여섯시에 일어날거다.
생각하는 (한국) 여자는 고양이와 함께 잠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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