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영혼이 아프거든 알래스카로 가라
박준기 글.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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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나그네가 어딘가를 향해 자신이 가보고 싶은 곳을 가기도 하고 그 곳에서 간접 체험을 통하여 부족한 내적 심상을 채우기도 하며 일생일대의 목적지로 삼아 혹한 기후와 사투를 벌이며 극한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도 한다.

 산악인하면 고상돈,엄홍길씨등이 머리 속에 떠오르기도 하며 그들은 남들이 가기 힘든 곳을 혹한과 고소증으로 사투를 벌이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며 정상에 올라 보란듯이 해냈다는 가능성과 자신감으로 무릇 범인들과 어린 새싹들에게 꿈과 희망,용기,도전,열정 의식등을 심어주기도 한다.분명 그들은 자랑스러운 존재요 나약한 이들에겐 일침의 경고라도 하듯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다.

 알래스카,1860년대 척박하고 황량하며 쓸모없는 땅으로 구러시아는 당시 엄청난 빚을 탕감해야 했기에 미국무방관 스워드에게 720만 달러에 매각하면서 이름없고 값어치 없던 툰드라의 땅 알래스카는 황금의 기지로 변모하면서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생존을 이어나가기 위해 알래스카로 이동을 하고 알래스카는 천연 자원의 개척지로 각광을 받게 된다.또한 알래스카는 미국의 49번째 주이며 알래스카인들은 49라는 숫자를 무척이나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길(吉)자로 여기고 있는듯 하다.

 산악인 박준기씨 역시 학창 시절 산악부에 들어간 것이 인연이 되어 학교 공부보다는 산을 그리워 하고 산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거 같다.수년간 국내 명산을 타기도 하며 산악회 강사도 역임하는등 산악인으로서 자신만의 목표와 목적지를 그리며 결국 알래스카라는 혹한 지역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세상의 문명은 가만히 앉아 책이나 읽고 갑론을박해서 혁신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은 없다고 본다.산악인,탐험가들처럼 미개지를 찾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미친놈들이 있었기에 인간이 갖고 있는 잠재력과 한계를 최고치로 높일 수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눈보라의 혹한을 가르며 무거운 베낭과 식량들을 짊어지고 알래스카의 최고봉 매킨리를 오르는 작가는 정작 산이 좋아서 산을 택했다고는 하지만 날씨라는 악조건은 인간의 의지를 꺾어버릴 수가 있고 그도 인간이기에 등반 도중 자신과의 수많은 회의,번민,갈등이 있었겠지만 사나이다운 기개를 져버릴 수 없었기에 그는 죽기 살기로 매킨리 정상에 뚜벅 두 발을 내디딜 수가 있었던 것이다.장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알래스카는 현대 문명의 변화와 발전으로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씨가 마를 정도로 손가락으로 셀 정도라고 하며 원주민들의 토착어는 불행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사어가 되고 말 지경이라고 한다.그가 가장 관심있어 하는 인디언 부족들의 역사와 삶과 감동적인 역사를 지닌 '아이디타로드'인데 개와 여우를 교배시킨 혼혈개들이 이끄는 썰매대회는 한산하고 음산한 알래스카의 거리를 시끌벅적하게 만들며 마치 축제의 한 마당을 방불케 하는데 인디언 부족들의 희망없는 내일과 삶의 모습은 매우 대조적으로 다가왔다.

 사회가 변모하고 문명이 발전해 나감에 따라 인간의 사고가 논리적이며 이성적으로 나아가는 작금,먹고 살기만을 위한 생존 의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알래스카라는 광활한 대지,자연의 모습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 미학적 시각이라는 현상을 알아가게 되고 작가의 감성적인 글과 시각이 인간의 생존에 문화와 예술이 필요한 이유를 이 글을 통하여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특히 그는 아이디타로드(창시자 존 레딩턴) 대회때는 혼자서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며 중요한 기사거리는 손수 마이크를 들고 인터뷰를 하는등 그곳의 행사 내용을 원맨쉽했던 장면은 인상적이어 오래 남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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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즐거움
법정(法頂) 지음 / 샘터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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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살아갈 모든 것이 점지되어 있고 나름대로 뭔가를 하면서 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또한 혼인이라는 이성지합(二姓之合)으로 한 평생을 둥글둥글 살기도 할 것이다.아니면 자신의 운명이라도 하듯 혼자서 일궈 나가는 삶 또한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을 한다.

 어떠한 삶을 살지언정 아프지 않고 걱정 없이 마음의 평안이 쭉 이어진다면 이보다 더 값지고 행복한 삶이 어디 있으랴만 현실은 늘 긴장과 불안,고민과 격무에 시달리며 가족과 개인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는게 대부분의 삶이어서 힘들어 못살겠다 싶어 고귀한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도 못하게 던져 버리고 떠나는 이들도 수없이 많고 사회는 그렇게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사전의 사회 행복장치를 제대로 만들었는가라는 회의심마저도 든다.

 풍정 소리,계곡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산 새들이 이곳 저곳에서 하루의 기상을 펼치는 산사 한 모퉁이에서 법정스님은 그렇게도 홀로 이끌어 사는 삶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물욕을 버리고 자연과 벗을 삼고 하루 하루를 산사에서 보내는 생활의 모습을 자연스럽고도 느릿하면서현실과는 동떨어진 독거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진정으로 전해져 오는 홀로 사는 즐거움은 무릇 '안빈낙도','수분지족','청렴결백'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지치게 하고 힘들어 못살겠다고 하는가,모두가 사회의 의식 구조,사회 구조의 굴레 안에 틀어 박혀 숨도 쉴 공간 하나 없이 이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의 빗나간 의식 구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산은 산이요 물은 물임을 자연 그대로 수용하고 살아갔던 선인들의 모습과 생활이 더욱 그리워지고 삶의 행복 지수가 더욱 갈구되는 시점이다.

 인류는 이기적인 본성을 거느리고 문명 발전을 한답시고 자연과 인성을 파괴하고 힘과 권력으로 한 사회,한 국가,한 지구를 야수의 모습으로 할퀴며 재앙으로 몰아가는 세태에 힘없는 중생들만 천민의식을 지닌 채 말없이 따라가고 찍소리 한 번 못하며 쉼없이 삶을 어렵게 지탱해 나가고 있다고 본다.

 산과 물,그 중에 물은 가장 착한 것이라고 노자는 말했다.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해 있다.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깝다.물은 자기 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인간이 어떻게 하든 그대로 수용하고 따라 준다.얼마나 착한 존재인가!아울러 물은 늘 변화한다.어제의 물은 오늘의 물이 아니고 인간 또한 어제의 거죽과 오늘의 거죽은 동일하지만 실제는 아니듯이 말이다.

 살아 생전 스님은 독서도 많이 하고 저서도 많이 남기셨다.산 속 바위에 걸터 앉아 볕을 쬐며 이를 잡고 옛 생활을 고집하면서도 이를 즐기셨고 물욕을 버리고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 진정한 삶이라고 설파하셨던 스님의 모습에서 자연을 닮은 착하고 어진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또한 속이 깊어지고 투명해지며 진정한 친구,벗들이 있어 홀로 있어도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음도 발견하게 된다.자연과 함께 있으니 심신이 얼마나 향기롭고 든든한지도 알게 된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알 수 없는 무수한 사건,사고와 함께 IT첨단 산업 마냥 시시각각으로 업그레이드 되고 신제품이 출시되는등 무한경쟁이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도 인간은 느리게 살 필요가 있다.그 이유는 '느림'은 개인의 자유를 일컫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빈둥거릴 것,들을 것,권태,꿈을 꿀 것,기다릴 것,마음의 고향이 느리게 사는 지혜일 것이다. 

 궁핍을 모르게 하고 정체성을 확장시켜 주는 소유욕과는 달리 무소유의 정신으로 홀로 사는 즐거움 안에는 분명 흐트러지기 쉽고 나태해지기 쉬우며 사람다운 삶을 일구기 위해 철저한 자기 관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한 살 한 살 더해가는 나이에 비례하여 보다 향기가 피어나고 행복한 홀로의 삶이 되려면 한결같이 가꾸고 관리해 나가는 삶이 요구된다.그러면 홀로 사는 즐거움은 늘 새롭게 피어나고 확장되리라 생각이 든다.나의 삶 또한 여러 사람이 사는 가운데 혼자가 된 기분으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며 규율과 질서 속에서 자유스러우며 조금은 느리게 살아보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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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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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벌고 행복을 누리며 감성과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를 가끔 생각한다.각박하고 물질이 우선시 되는 시대에서 ’시대에 한참 뒤쳐진 생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리산 행복학교>는 물욕과 욕심에 가득찬 인간의 마음을 모두 벗어 던지게 하고 그 모든 때를 벗기게 하는 마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지리산 하면 한국 현대사 공산당(빨치산의 거점)토벌 작전지 및 산세가 수려하고 찌든 마음을 수양하는 데에도 적격인 곳으로 보여진다.지난 해 행사관계로 지리산 둘레 걷기에 가본 적이 있는데,길게 늘어진 산과 산과의 이어짐과 때묻지 않은 청정지역이 무궁하게 산재되어 있는 곳이다.중간 중간 지리산 주위의 산과 구옥,경치들을 보면서 인간이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데 인간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산을 깎고 헐며 개발한다고 하니 제대로 보존되는 산과 강 허리는 과연 몇 개나 남을까 우려도 된다.

 낙장불입 시인,버들치 시인,최도사,스발녀,수경 스님,사진 작가 강병규씨,고알피엠여사등과 꽁지작가(공지영 작가 닉네임)가 펼치는 지리산과 섬진강 이야기는 넉넉한 시골의 인심과 정취,작은 것으로 진정한 행복을 찾아 가는 이야기가 각박한 도회지의 회색 문화와는 사뭇 대조적으로 비춰지고 다가왔다.

 1년 50만원의 월세금으로 근근히 살아가지만 지리산을 등지고 섬진강을 내려다 보며 살아가는 그들은 처음부터 시골 골짜기에 둥지를 틀고 살지는 않았던거 같다.도회지의 생활에서 환멸을 느끼고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기로 마음을 굳히기까지는 많은  고뇌와 번민이 있었으리라.

 섬진강가의 사계의 모습 속에서 자연의 위대함과 경건함도 느꼈다.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봄,여름,가을,겨울이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들의 자태를 자연스레 보여주고 인간에게 진실된 선물을 아낌없이 선사한다.꽁꽁 얼어 붙은 논 흙더미 위에서 파릇파릇 돋아나는 보리 새싹의 생명력과 눈꽃 위에 피어난 매화부터 가을 걷이가 끝나가고 잔설이 붙어 있는 감나무에 까치가 마저 남은 홍시를 쪼아대는 모습까지 지리산과 섬진강의 사계는 뭉클한 감동을 전해 준다.

 돈이 없고 갖은 것이 없어도 산에서 자라는 산채와 약간의 돈을 추렴해서 술파티를 열고 지나가는 행인의 시름을 달래주기 위해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편안하게 대접하는 모습에서 산 속의 인심은 아직은 물질문명보다는 사람 자체가 소중하고 넉넉한 인심이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랑방’같은 존재이리라.

 아름아름 지리산의 매력을 알게 되고 섬진강의 굽이 굽이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그리워 찾아 오는 객인들이 하나 둘 벗이 되고 나아가 교류를 하면서 정모가 탄생되고 동네 밴드가 구성되어 하나의 이벤트가 열리게 될치라면 고즈넉하고 고요하던 산골이 마치 청춘남녀가 혼인의 예를 펼치는 잔칫날과 같다.왁자지껄하면서도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해 보는 멋진 밴드 이벤트가 드넓은 지리산 골을 울려 퍼지게 할 것같다.

 산이 좋고 물이 좋아서 그곳으로 모인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누고 시국토론도 하면서 스스로를 사랑하고 느리면서도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그들만의 생존법 속에서 행복의 열매들이 하나 둘씩 알알이 익어가는 모습을 알게 되었다.

 ’바람도 아닌 것에 흔들리고 뒤척이는’도시의 삶이 역겨워질 때,든든한 어깨로 선 지리산과 버선코처럼 고운 섬진강 물줄기를 떠올렸으면 한다.

 
도시적인 이미지에 수다스러울거 같은 공지영작가가 풀어낸 전라도 사투리도 구수해서 좋았다.물론 내 고향도 그 근처이라 친숙한 탓도 있었으리라.행복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고 발상의 전환을 통해 답답한 도회지보다는 산과 물이 손짓하는 그곳으로 달려 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아마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진정한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찾지 못한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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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사랑에게 말했다 - 브라운아이즈 윤건의 커피에세이
윤건 외 지음 / PageOne(페이지원)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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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윤건의 ’어쩌다’노래를 즐겨 듣고 필링곡으로 사용했던 적이 있다.윤건의 부드러운 외모와 뚝심있는 가창력에 커피와 사랑과의 관계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윤건이 만난 세 여인 모두가 청순하면서 개성 넘치는 관계였다.그녀들과의 만남,달콤한 순간들,헤어짐 속에는 자연스레 그가 예찬하는 커피들이 등장한다.커피는 분명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를 매개해 주는거 같다.커피의 종류도 수 십가지,다양한 커피의 종류,맛과 향기에는 커피가 은은하고도 달콤하며 시크하게 주문하는 당사자의 마음을 형용이라도 할 거처럼 커피는 사랑에게 분명 이름모를 메시지를 던져 주는거 같다.

 현재의 아내와는 눈이 내리던 겨울 날,한적한 소도시 카페에서 만났다.그 당시엔 지금처럼 아메리카노부터 카푸치노등 커피의 종류가 많지 않았던 고전적인 커피였다.창가에 하늘하늘 휘날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면서 분위기에 취하고 아내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하여 내 마음을 휘어 잡았는지 모르겠다.그리고 뚜벅뚜벅 계단을 내려 오면서 목에 두른 스카프가 시선을 잡았는지 두 번,세 번 만날 때마다 스카프가 좋았고 가끔 스카프 선물을 하곤 하는데 그 때 좋았던 스카프의 모습 이야기를 할때면 그랬었나?하고 회심 비슷한 미소를 짓곤 한다.

 연인이 되기 전에 누군가에게 끌리고 설레며 사랑을 만들어가며 빛바랜 추억 속의 사랑의 이야기를 머리 속에 떠올릴 때에는 으례 입을 축여 주고 눈을 맞추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차와 음료인데,저자 윤건은 커피를 그렇게도 애호하고 애찬하며 레시피까지 줄줄 외울 정도록 깨알처럼 만드는 법을 소상하게 들려주고 있다.무려 24가지의 커피 맛,커피와 개성,커피가 누군가에게 들려줄 사랑의 메시지까지...

개인적으로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쌉사래하면서 향기로운 온갖  본연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아메리카노’가 좋다.경우에 따라서는 각설탕을 넣어서 음미하기도 하지만 그냥 마시는 아메리카노가 좋은데 부담이 없고 순수해서 좋아하게 된거 같다.

 사랑은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성숙해 나가며 시들어가는 인생마냥 설레임 속에 사랑이 싹트고 뜻모를 사연을 감추고 사라지는 이슬같은 슬픈 이별마저도 커피는 둘 관계를 잘 알고 있는거 같다.

 달콤하면서도 쌉사레하며 거품 속에 향을 띄우는 한 잔의 커피가 사람의 마음을 읽어 주고 소원했던 관계를 원상태로 복원시켜 주는 마력이 있음을 읽었다.사랑했던 사람과 꼭 마주하고 싶은 존재,커피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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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를 걷다 - 시간도 쉬어 가는 길
최성현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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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이 길을 떠나는 나그네요,육신이 허락하는 한 어디라도 산과 바다,오솔길등을 체험하는 여정이 아닐까 싶다.

 여행이란 패키지로 떠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손수 용기를 내어 험난한 여정을 극복하며 겸허한 자세를 배우러 떠나는 여행도 있다.아직까지 나에겐 험난한 여행을 떠나 보고 체험한 적이 없기에 오지를 걷고 산악을 타며 수천리를 걸어야 하는 여행에세이는 읽으면 읽을 수록 내게 시사하는 점 또한 크고 배울 점도 무수하다.

 일본 불교계의 스승,홍법대사(고호다이시)의 정신과 종교적 가르침을 체험하고 그와 함께 하는 88개의 사찰 순례가 편하기로 말하면 버스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실려 있는 순례길은 육중한 배낭짐(20키로 정도)을 메고 장장 1,200키로를 몇 달을 거쳐 인내력과 겸허함으로자신의 미래를 충전하고 극기하는 모습으로 나아간다고 보여진다.

 일본의 주요 섬 가운데 시코쿠는 제일 작다.지리적,환경적,기후적인 면모는 잘 모르지만 시코쿠의 북부지방은 세토나이가이가 흐르고 있어 온난하고 남부지방은 태평양과 맞이하고 산 정상에서 관망하는 태평양 연안의 모습은 절경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이라면 심정적으로 불교에 가까운 종교관을 갖고 있는데 그 중에 고호다이시를 숭앙하는 분위기이다.그가 정신적 수양과 깨달음을 구현하기 위해 걸었고 그가 세운 사찰등이 오늘날에 이르러 순례자 및 참배객들의 마음의 스승이 되고 있다고 한다.

 88개의 사찰 전구간을 순례하려면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많이 벌어질 것이다.생각지도 않은 폭우를 만난다든지 조난을 당한다든지 배가 고픈데 비상 식량이 떨어져 쫄쫄 굶는다든지 온몸이 쑤시고 특히 발에 물집이 생겨 걷기가 힘들어질때 심신이 나약하고 쉽게 포기하는 사람은 시코쿠의 사찰 순례를 맛보았다고 하기 어렵겠다.

 시코쿠의 88개 사찰은 둥글게 만들다 만 새끼줄 형상과 비슷하다.그곳 주민들은 순례에 대해 어려서부터 보고 배우며 자랐으리라 생각이 든다.땀으로 온몸을 적시고 허기에 지친 순례자들을 보면 누구라 할 것없이 허기를 채워 주고 오두막 같은 잠자리이지만 재워도 주기도 하는등 자애심을 실천하는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그들은 순례객들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아픈 이웃의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착한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대하는 자세가 그들이 말하는 큰스님,고호다이시의 정신을 기리고 그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17세기 일본의 단가(575정형시)인 하이쿠의 가인들도 다녀갔다는 순례길에는 지장보살,가인들의 시비등이 시심을 불러 일으키고 고단함을 달래 주는데,하이쿠의 명인 바쇼의 시구가 인상적이다


  곧은 길은 심심하다

  장마 뒤의 흙탕물

  흘러가며 맑아지네

 길이든 인생이든 직선으로 곧게 난 길은 재미가 적을테고 성스럽고 강물같은 순례길을 통하여 마음을 정화하리라.

 산과 바다,순례객과 주민들,맑게 탁 트인 태평양,오지의 오솔길등을 만나는 시코쿠의 88개 사찰 순례는 목적과 인내가 없으면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든다.누구나 체험할 코스는 아닌거 같다.단지 그 순례길을 통하여 무엇을 보고 배우며 체험하여 또 다른 삶을 보다 활력적으로 보여 주는가가 더 소중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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