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방울새와 최익현
정현기 지음 / 푸른사상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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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듯 긴듯 주저리 주러리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일상의 희노애락을 시와 마추치다 보면 문득 지난 시절의 추억과 시상을 다시 떠올리게도 된다.문득 답답하고 마음이 울적할 때도 오래된 시든 요즘에 나온 시든 읽는 재미도 있지만 마음 속에 막힌 것을 뚫어 주는 신통력 마력도 있어 시를 좋아하게 된다.

 <흰 방울새와 최익현>이라는 제목과 인물에 끌려 이 시를 읽게 된 동기이다.223편의 일상의 편린과 사연,생각,사랑,억울함등을 작가의 심상을 그대로 풀어 놓은거 같아 편하게 다가오고 공감을 자아내게 한다.작가의 서재에서 누워서 쓰기도 하고 사모님 곁에 누워 못다한 사랑이 미안해서 쓰기도 하고 사회의 불공평과 부조리가 싫어서 표출하기도 하는등 사람이 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삶의 과정을 빼곡히 일기마냥 보여주고 있다.또한 문인들과의 못다한 얘기도 들려 주고 있어 이곳에서 또 다른 문인을 조우하는듯 했다.

                 시가 뭐냐고

                     많은 시인들
                     시를 쓰지 

                     나는 쓴다.

                     팍팍한
                     살이

                     서러워

                     설움을 쓴다. P77에서


  이 세상에 태어나 움직이지 않은 몸뚱이는 주검보다도 못낫다고 생각한다.이리 저리 부딪히고 고민하며 굽이치는 홍수를 만나기도 하고 구불구불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생각하기만 하면 무엇에 쓸모가 있단 말인가? 심심풀이로 시를 읊기도 하고 직접 대고 못하는 약자의 설움을 글로 촌철살인해 보는 냉철한 마음의 소유자가 시인이요 시인의 본질일지도 모른다.구한말 일본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그들이 조선에 저지른 죄악을 추상같은 정의론에 입각하여 왜정부에 도도한 웅변조로 고변한 글에서는 최익현공의 강직하고도 칼날같은 선비의 모습에 저절로 숙연해지고 참다운 애국자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시인은 일기마냥 일상의 편린을 담담하게 시라는 문체로 다가 온다.
시인의 사는 마을의 풍경부터 답답한 마음과 못다한 사랑 얘기를 누군가에게 말을 붙이고 싶었던 모양이다.부자든 빈자든 살아가면서 외로움과 즐거움,때론 분노하고 슬퍼하던 일들이 많을 것이다.말도 안되는 미사여구를 나열하면서까지 시로 나타내고 싶지는 않지만 내 마음 속의 사연을 조금씩 흉내내 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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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 되돌아보고 나를 찾다
김용택.박완서.이순원 외 지음 / 더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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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되돌아 보고 새로운 나를 찾아 나서는 진정한 반성이라는 무엇인지 늘 생각을 한다.말처럼 쉽게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고 깊게 깨닫고 살아 가기가 왠지 실천으로 옮겨지지를 않는다.아마도 나의 알량한 자존심과 상처가 쉽게 회복되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살면서 부모,형제,가족,친구들과 오랫동안 우의와 사랑을 나누면서도 무덤덤하기도 하고 마냥 받는 것으로만 착각하다 보니 정작 내가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 주어야 할 정신적,물질적인 보답은 뒷전에 밀릴 때도 수없이 많다.삶이 버겁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 눈 앞에 놓인 이해관계에 매달리다 보니 챙겨야만 할 대상에게 소홀히 함으로써 뒤늦게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구나라는 자책감과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 옴도 느낀다.완벽하지 않은  삶이기에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내 욕심과 자존심을 버리고 진심으로 내 주위를 돌아보고 가까운 이웃,친지,가족에게 혹시 상처는 주지 않았는지 반성하고 또 반성하여 참다운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기도 하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는 내게 많은 기대와 신망을 갖으셨다.물론 아버지의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의식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집안에서 맏이인 내게 거든 기대가 컸던 것이다.시골 농부가 농사 지으며 외지로 나가 장사를 하면서 대가족의 부양하시고 가계를 꾸려 오시면서도 늘 일꾼처럼 부지런하게 이른 아침이면 일어나시고 조반을 드시자마자 출타하는 아버지가 형제자매들에겐 잔 정을 쏟을 시간은 없으셨다.집에 들어 오시면 꼬랑내 나는 발냄새를 씻어 내려고 늘 대야에 물을 담아 발을 씻고 저녁을 드시자마자 노곤했던 탓인지 금세 눈을 감고 피로를 푸시는 모습이 엊그제 같다.

 그나마 내 경우엔 반듯한 학교 생활과 교우 관계,괜찮은 학업을 이루어 가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자부심과 함께 동네 어른들의 칭찬을 받으며 긍정과 희망을 씨앗을 마음 속에 심어 나갔던 것이다.이에 아버지는 내가 필요한 학비,용돈을 덤으로도 주시면서 꼭 좋은 대학,좋은 직장 꾸려 동생들에게 끈나풀이 되어 달라고 갈망하셨던거 같다.사람 일이생각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고교 시절 학업보다는 친구들과 휩쓸려 놀러 다니는 시절이 있었는데 그게 학업 성적이 떨어지는 원인이 되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도 못가고  아버지에게 큰 원망만 듣게 되었던 것이다.돈이 많은 부자도 아닌 평범하게 살아왔던 내게도 서울이라는 사립대학의 등록금과 생활비,자취(할머니와 함께)와 관련하여 힘들었던 때도 있었다.대신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고 책을 펴고 사전을 뒤져가면서 공부를 하려 해도 고교시절 놀았던 탓인지 기초가 부족했던 탓인지 기초 개념과 상황 논리,사고력에서 동료들에게 뒤쳐지는 것을 깨닫고 죽기 살기로 도서관에 쳐박혀 도콕이 되었던 덕에 아버지에게 모처럼 기쁨을 안겨 줬던 적도 있다.

 문제는 그렇게도 서울로 대학을 보내고 뒷바라지를 했으면 앞가림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취직도 못하고 빌빌 거린다며 공부를 제대로 해 놨더라면 남들 다 들어가는 공무원 자리 하나라도 얻어 돈은 크게 벌지 못하지만 평생을 보장할 수가 있는데 시간만 흘러 가고 어쩌려고 그러느냐며 책망을 하시곤 했었다.물론 첫직장이 나의 전공과 무관하고 발등에 떨어진 불똥을 끄기 위해 들어갔는데 늘 매일,매주,매달의 실적과 연관되다 보니 실적이 아닌 가실적까지 올려 놓아야 하는 부담과 자괴감마저 들게 되다 보니 그만 사직을 하고 또 다른 직장을 찾기 위해 고전하던 시간이 꽤 또 흘렀던 것이다.설상가상으로 나이가 드신 아버지께서 아파트 경비를 서시다 늦가을 찬바람을 맞고 그만 중풍으로 쓰러 지셨다.종합병원 중환자실만도 3번 이상이나 다니시고 요양을 했던 것이다.찾아 가서 인사를 하고 병간호를 해드릴 때면 내가 너무도 미웠는지 고개를 외면하시곤 했다."왜 내가 널 그렇게 잘 키우고 좋은 사람 되라고 기대하고 뒷바라지 했는데 지금 모양이 우습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인사을 찌푸리면서 동생들은 너보다 좋은 대학을 못나왔어도 앞가림 잘하고 당당하게 사는데 남 부끄러워 못살겠다던 말씀이 귓전에 맴돈다.

 병생활 11년 만에 운명을 달리하시고 임종도 못했다.아버지는 매장을 하여 어느 시골 뒷동산에 계신다.추석 명절에 인사를 하러 갈때마다 옛일이 떠오른다.아버지의 바램과 기대를 저버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아버지의 소원을 저버린 자식이 되어 버린 불효자가 되어 버려 살아 생전엔 야속하게만 느껴졌던 아버지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농부라는 시골뜨기에서 버젓한 사회 우등생을 원하셨던 아버지의 의도를 늦게나마 깨닫게 된다.이젠 어른이 되어 자식을 낳고 기르는 부모 입장이 되어 아버지의 뜻과 생각을 되새겨 보니 무릇 아버지가 자식에 거는  기대와 넓은 사랑은 값지어서 돈과도 바꿀 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살아 생전에 기대에 어긋나게 행동했던 철없던 시절 진정으로 반성하는 자식이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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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멍청이
원행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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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까지는 뚜렷하게 갖고 있는 종교가 없다.불교든 기독교든 천주교든 신앙심이 깊고 종교의 본래의 정신,교리,이념을 실천하고 묵묵히 자신이 갖고 있는 종교에 대하여 애정과 사랑으로 일관하는 신자가 최고라고 생각한다.자신의 종교가 최고여서 믿어야 하고 타종교를 배타시하는 생각과 가치관은 오늘날과 같이 복잡다단한 환경하에서는 상생할 수가 없고 이전투구의 양상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어릴적 할머님과 함께 사월초파일에 자주 절에 다니고 연등 행사를 구경한 적이 있으며 49제에는 으례 절에 가서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산자와 죽은 자와의 고별식을 행하면서 절과 스님,청정무구한 산세를 떠올려 보면서 불교가 추구하는 중생구제와 보시의 정신을 깨달아 가기도 한다.불교는 그런 면에서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을 보듬고 넓은 마음으로 중생을 사랑하며 측은심과 겸양심마저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원행 스님,아명이 ’멍청이’라고 사부 탄허스님으로부터 붙여지고 그 멍청이라는 이름은 참으로 순박하게만 들린다.무욕과 인간이 갖고 있는 감정의 표출인 화와 노,누군가를 질투하고 시기하며 해코지할 법한 요소도 전혀 느낄 수가 없는 ’멍청이’는 일자무식에서 비롯되는 지식적인 요소와 잘난 체하는 느낌도 또한 느낄 수가 없어 소처럼 우직하고 충성하며 불자로서의 묵묵히 제 갈길을 걷는 수행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게 된다.

 한 분야의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대가가 될 수 없는 법이듯이 자신을 키워주고 계도해 주는 사부의 엄한 가르침과 규율을 혹독한 자신과의 싸움이라도 여기고 원행 스님은 젊은 날의 꿈과 이상을 스님의 길로 발을 들여 놓은 후 매일 새벽 3시(인시)에 몇 리나 되는 곳을 뚜벅 뚜벅 걸어가서 사부님의 세숫물을 받아 오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가 시작됨을 알게 되는데 그것도 혹한의 날씨라고 한다면 아무리 젊고 의지가 투철한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자신의 결심에 회의를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원행 스님은 왜 하필이면 새벽 3시의 물을 받아오라고 했는지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나,인시는 가장 고요하고 정기어린 이슬을 받은 계곡물이야말로 가장 청정하기 때문임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진리가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삼불휴(三不虧)가 가장 가슴에 와닿고 새겨 나가려 한다.첫째는 공든 탑이 무너지랴의 공이고 둘째는 만고의 불변인 덕이며 셋째는 성경이나 불경등성인이 말씀하신 입언(立言)이라는 대목이라고 한다.역시 세세손손 썩지 않을 진리이고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은 역시 과정이라고 본다.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한 결과보다는 과정을 진리로 보며 성공후엔 내리막길 만이 존재하는 법이고 정상까지의 과정 속의 땀과 노력이 소중함을 새삼 고귀함을 느끼게 하고 인생에서의 만족은 없으며 수분지족으로 대신하는 삶이 얼마나 값진 인생이고 진리인가를 생각케 한다.

 현재 오대산 월정사 부주지사로 봉직하고 계시는 원행 스님은 1980년대 사회 정화운동의 일환으로 스님들이 정부로부터 수난을 당할때 정신적,육체적으로 많은 위기와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그러나 그의 불교에의 투철한 믿음과 불교 정신을 온 몸으로 일관해 왔기에 그는 늘 보살과 신도들 앞에서 인생의 향기가 되고 살이 되는 법어를 설파하시면서 중생 구제를 실천하려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다가 온다.

 종교의 본질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원행 스님이 말씀하신 해당 종교만이 갖고 있는 정신과 취지를 실천하고 휴머니즘에 입각한 인격완성이 아닌가 생각한다.인격완성과 무관한 종교적 요소가 범람하는 현실의 종교적 정화작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대찬성이다.이는 종교가 혼자의 힘으로만은 아니될 것이다.국정을 쥐고 있는 위정자와 종교가가 손을 맞잡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치를 행해야 할 것이다.

     "불환과이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 P353인용

 그렇다,먹을 게 적은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르게 나누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일 것이다.한 사람이 1백만 명 먹을 것을 지니고 있다면 이것은 분명 정치부재의 사회임에 틀림없다.정치는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정치가 국민의 의사를 묵살하고 권력쟁취에 혈안이 되어 투쟁으로 일관한다면 그 사회의 전도는 암울하기만 할 것이다.정치인은 나라의 어른이 아니다.그저 심부름꾼이다.아울러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수립된 기강에 따라 위민 철학을 제공하는 분이다.그 명령과 호령은 각계 지도자와 가정의 부모들이 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불교의 중생 구제,해량같은 보시의 마음,인욕정신의 수행 정신,참된 종교인의 자세,참된 진리,밝은 미래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것을 곱씹어 보는 시간이 되었다.한 스님의 제자로서 묵묵히 수행하고 무욕의 정신으로 참된 종교인의 자세와 모습을 보여주는 원행 스님의 멍청이 정신은 물질 문명과 줄서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혼탁하고 답답한 한국 사회에 맑고 정기어린 실천적인 법어가 새삼 세인의 그릇된 정신을 일깨워 주는거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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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빼기 3 - 어느 날… 남편과 두 아이가 죽었습니다
바버라 파흘 에버하르트 지음, 김수연 옮김 / 에이미팩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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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 온다.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시간의 문제일뿐 사자는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소중한 생명을 앗아갈거 이기에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 주신 부모님,가족,친구들에게 사랑과 헌신,배려와 격려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무지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가 있으리라.

 이미 나도 이 세상에 태어나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희노애락을 나눴던 가족중 이미 몇 명 이 세상을 달리하고 남은 혈육에게 추억과 슬픔을 안겨 주었다.연로해서 돌아가신 조부모,숙환으로 오래도록 고통으로 살다가신 아버지,그리고 미혼으로 불행한 삶을 마친 동생으로 인해 영원히 같이 살것만 같았던 존재들이 반짝이던 이슬이 햇빛을 받아 사라지듯 흔적없이 온데 간데 없음을 느낄때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고 살아있을때 조금만 더 잘 할걸하는 후회와 상실감 밖에 남지 않는다.

 4빼기 3은 핵가족의 숫자를 여실히 보여 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짙게 배어 있다.아버지,어머니,두 명의 아이들이 단촐하게 살아감을 느끼게 한다.많지 않은 가족 4명 중의 3명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1명만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떠밀려 간 조수를 바라보는 형상은 이 글에서 실제적이고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다.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슬프고 고통스러우며 상실감으로 가득 찬 순간 순간을 누가 알아 주겠는가,주위의 친지,벗들이 찾아와 위로하고 다독여 주며 새로운 삶을 위한 충고도 사랑으로 넘쳐나던 혈족은 쉽게 잊혀질 수가 없을 것이다.

 혈육을 잃은 당사자의 고통과 슬픔,분노등은 자신과 외부 요인을 둘러싼 심리적 상태일 것이다.나와 평생을 같이 하고 정신적인 파트너로서 오래도록 삶을 이어가기로 약속했던 사랑과 존경스러운 남편,늘 눈에 밟힐 것만 같은 가녀리고도 사랑이 넘치는 두 명의 아이들은 남편 헬리가 모는 자동차가 순간적인 판단 미스인지 철길 건널목을 건너려다 다가오는 기차를 보지 못해 튕겨 나가며 지은이 바버라의 장난같은 운명은 시작된다.

 상실로 인한 마음의 억압,감정의 밀물,감정의 썰물,새로운 출발을 위한 모색까지의 시간과 여정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바버라는 가족을 잃고 그런대로 지난 추억과 기억을 되살리며 어떠한 영혼도 잃지 않을거라는 믿음하에 마음으로 남편과 두 자녀들에게 대화를 나누고 영적 교류를 하면서 비록 힘들고 가누기 힘든 상황이지만 자신같은 상황에 처한 이와 공감을 나누고 텅 비어 버린 가슴을 채우기 위해 힘과 용기를 얻어 살아가려는 마음과 자세에 감동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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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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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하고 수줍은 듯한 환한 미소에 넉넉한 이미지를 지닌 박완서작가의 생전 유고집이 되고 만 이 작품을 대하면서 작가의 실처럼 가늘고도 기나긴 길을 옆에서 보고 듣는 착각에 빠지게 되고 평소 매체를 통하여서든 남긴 작품을 통하여서인지 그 분의 일상과 생각,감정을 느낀 시간이었다.

 1931년 개풍에서 태어난 작가는 여덟살 무렵 서울로 상경하게 되고 학자풍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글을 읽고 공부를 잘 하는 모범생이었던거 같고 당시(해방후) 중학6년을 마친 후 서울대 국문학과에 입학을 하게 되지만 6.25전쟁이 발발하게 되면서 믿고 중심이 되었던 친오빠마저 잃게 되면서 가장 아닌 가장의 역할을 해야만 했던 마음의 고통과 삶의 번민이 싹이 텃던거 같다.일화이지만 가정의 생계비를 벌기 위해 미군 PX에서 몇 달간 월급제로 일하던 중 고박수근 화백과의 기묘한 인연이 소개되는데 박수근 화백은 당시 착하고 정직하며 고지식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그가 그린 벌것벗은 나무,아기를 업고 가는 여인의 모습이 작가에겐 크게 인상을 받았고 6.25의 전화는 성장통으로 이어졌고 결국 그는 미혹의 나이에 등단하게 되는데 데뷔작 또한 '나목'으로 정했을 정도로 박수근 화백의 그림으로부터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고 '나목'을 심사했던 고이청준 작가와의 인연도 실어 놓아 친근감마저 들게 되었다.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던가? 작가는 서울 아파트의 회백색 마을을 벗어나 배산임수를 낀 서울 근교로 이사를 하여 작고 무렵까지 10여년을 살면서 창가엔 산수화 나무,정원엔 잔디를 깔고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서 여생을 보냈다.호미로 풀을 뽑으며 땀이 흐르고 지치면 잔디밭에 넙쭉이 드러 누우며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잠깐의 휴식과 그녀만의 사색의 나래를 펴지 않았을까 한다.

 또한 작가로서 함량을 넓히고 창작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부단한 독서 그 중에서도 시를 즐겨 읽고 음미했던거 같다.나도 가끔 시를 읽고 음미하려 애쓰지만 봇물처럼 쏟아져 흘러 들어오는 트렌드 작품에 정신이 팔려 자주는 읽지 못하지만 짧고 운율감이 느껴오는 시는 삶을 살찌게 하고 상징적인 요소가 가미되므로 자연과 사회,개인의 삶을 반추하고 조명할 수가 있어 가까이 대하면 대할 수록 시의 맛은 잘 익은 사과 맛 같기도 하고 오래 묵은 된장 맛 같기도 함을 느낀다.

 작가는 학창 시절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던거 같다.수줍음도 타고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단짝과 함께 교복 가운을 뒤로 젖히며 백주에 영화관 안으로 직행하며 영화를 관람하는 쏠쏠한 맛을 느꼈다고 회고한다.영화 관람 도중에 정전이 되어 영화가 중단되면 기다렸다가 영화가 끝날때까지 다보고 나야 거금을 준 영화값이 아깝지 않다고 한다.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학교로 가면 어느덧 날은 저물고 동기들 모두 귀가하고 작가는 다음날 선생님께 혼이 날까봐 잠을 이루지 못한 날도 있었다고 한다.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앞서 보내고 텅빈 마음을 달래고 마음의 고통을 잊기 위해 작품 쓰는 일에 더욱 열중하고 마음을 다스리지 않았을까 싶다.그 중에 시간은 소리없이 흘러갔고 시간만이 그녀의 상처를 치휴하고 씻겨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작가로서의 명성과 지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백두산,홋카이도의 오타루,제주도 등의 여행은 사람과 자연,문화,풍물을 접하면서 작품의 소재,구상 등에도 커다란 일조를 하지 않았을까 한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필요한 사람이고 싶고,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
 -- 본문 중에서 --

 
현대 10대 문학가중 한 분으로서 마음의 고통과 상처를 열린 사회와 소통으로 다가서려했던 박완서작가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났지만 맑고 고운 심성과 감성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오래도록 보여준 점에 크게 감명을 받았고 작품에서 짙게 배어 나옴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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