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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또 올게 - 아흔여섯 어머니와 일흔둘의 딸이 함께 쓴 콧등 찡한 우리들 어머니 이야기
홍영녀.황안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평점 :
부모는 자식이 늙어가도 늘 슬하에 놓인 자식마냥 자나깨나 부디 잘 살고 행복해 주기를 바란다.동서고금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은 한결같으리라.내가 못먹고 못입고 못배운 한을 자식들에겐 되물림 해주고 싶지 않아 허리 띠를 졸라매고 살아왔던 한국의부모님들의 자식에 대한 기대와 애착은 남다르지 않을까도 싶다.
그렇게 자식들을 위해 한평생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살아왔건만 호강도 못해 드리고 덜컥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효자,효녀야 있겠지만 요즘 세태에 비추어볼 때 먹고 살기 바쁘다고 형제간에 병수발 문제로 옥신각신하고 눈치를 보며 어떻게든 거추장스러운 상황에서 빠져 나오려 하는 부류도 있음을 안다.자식에게 바친 세월을 반푼이라도 해드린다면 마음이든 물질이든 부모를 위해 병수발을 하고 손이라도 따뜻하게 잡으며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지녀야 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임에 틀림없다.
96세의 어머니와 72세의 딸간의 애틋하고도 훈훈하며 슬픈 감동이 절로 나오게 하는 이 글을 읽어 가면서 평소 눈물샘이 많지 않은 어쩌면 냉정하다 못해 냉혈한이라도 자주 들었던 나인데(살다 보니 웃음보다는 고난의 시절이 많았던거 같음) 딸인 저자도 어머니에게 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모가 자식들과 손자,손녀,죽은 첫째 아들을 생각하며 몰래 적어 놓은 8권의 일기장을 읽어 가면서 할머니가 황씨 집안에 시집와서 시어머니,남편,자식 기르기,지나온 시절 회고 하기,남은 여생등에 대한 가슴 '찡'하게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나도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남은 어머니께 잘 해 드리지 못한다.현실적인 여건이라는 핑계도 있고 성격상 자주 전화를 못하는 것도 있지만 명절내지 성묘시 어머니를 뵐때면 세월이 유수같다는 말처럼 어머니의 얼굴,손마디,발걸음,어눌해져 가는 말투,흐릿한 기억등이 30대 초반의 어머니 모습과 지금의 70대의 모습을 생각할때 인간의 삶은 짧기에 마음을 추스려 더 잘 해드려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본가는 구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한옥촌이고 골목들이 여기 저기 엉겨있어 마치 뱀의 형상을 띠고 있다.고작 하룻밤을 자고 본가를 나서면 어머니는 어느새 준비하셨는지 푸성귀부터 밑반찬,자반등을 형제별로 나누어 봉지에 담아 챙겨 놓으신다."건강하시고 편안하게 지내세요"라고 인사를 드리고 골목길을 내딛으면 어머니께서는 감나무 몸체에 한 손을 얹고 한 손으론 "부디 잘 살고 행복하라"말씀 하신다.우리 식구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다섯 손가락을 세워 흔드신다.그리고 행여 발걸음을 돌리셨나 하고 뒤돌아보면 아직도 선채로 여전히 손을 흔드신다.
아흔여섯의 홍영녀 할머니는 70이 넘어 손자로부터 한글을 깨치시고 서툰 솜씨나마 8권의 일기장에 살아온 나날을 회고하고 삶이란 무엇이며 남은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 할지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전해주고 있다.그 옛날 어르신들 모두가 물자가 부족하고 가난하게 살아온 탓도 있지만 어느 날 딸이 어머님을 목욕시켜 드리려 할때 속옷을 돌아가신 남편 것을 입으셨다는 대목에서 검약의 정신도 좋지만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남편을 속옷으로 대신하신 점에서 나도 모르게 눈가가 붉어졌고 눈가에 이슬이 살짝 맺히게 되었다.
내 부모가 형제자매들에게 해주신 만큼의 사랑과 희생정신은 가슴 절절히 느끼지 못할 때도 있고 가끔은 뼈저리게 느낄 때도 있다.내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모조리 해주고 싶다.험난한 세파를 살아가고 자신이 우주의 주체가 될수 있도록 많은 조언과 격려,보이지 않은 가르침과 그림자가 되어 주고 싶다.나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아이들이 나와 처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자식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근면하고도 검약의 정신으로 열심히 살았다는 정신적인 가르침을 남겨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