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 아이야, 가라 1 밀리언셀러 클럽 46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이틀 전만 해도 난 아니라고 대들었을 거야. 그래, 난 경찰이야. 하지만 운 좋은 경찰이지. 좋은 아내와 좋은 집, 지금까지 투자도 괜찮게 했고 말이야. 20년만 채우면 난 옷 벗고 떠날 거야. 하지만 달라지는 게 뭐가 있지? 빌어먹을 지하실엔 여전히 난도질당한 아이가 있을 거 아냐? 그럼 이렇게 말할 건가? '그래, 좋아. 세상은 개똥 같아. 그래도 내 인생은 쓸 만하잖아? 세계는 어떻든 난 괜찮다고.' 무슨 뜻인지 알겠어?"

 

보스턴 시를 떠들석하게 만든 유괴 사건이 벌어진다. 유괴당한 아이의 이름은 아만다 맥크레디로 고작 네 살 먹었다. 사건에 개입하게 된 사립탐정 콤비 켄지와 제나로(둘은 파트너이자 연인이다)는 아만다의 엄마 헬렌을 만나고 헤아릴 수 없는 환멸감을 느낀다. 완벽한 백인쓰레기인 헬렌. 술과 마약과 TV에 절은 창녀에 불과한 그녀는 딸 아이를 데리고 해변에 갔다가 뜨거운 모래밭에 아이를 몇 시간이고 방치에 둬 전신화상을 입힐 정도로 생각없는 엄마다. 딸아이의 실종 사건을 조사하러 온 두 탐정에게 한 말이라고는 '화면 가리니까 TV에서 비켜요.' 정도.

 

켄지와 제나로는 아동범죄팀의 베테랑 형사들인 풀레와 브루사드와 함께 유괴 사건을 조사해나간다. 그날도 헬렌은 남자랑 술을 마시러 술집에 갔었고, 자물쇠로 잠기지도 않은 집에 혼자 자고 있던 아이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고도 열두 시간이나 지나서야 아이가 없어진 걸 알았다니 하늘은 왜 이런 여자에게 아이를 준 것인지 모르겠다. 간절히 원해도 아이를 얻지 못하는 부부도 많은 터에...

 

사건을 조사해나가다 보니 헬렌은 뜻밖에 거물 범죄자와 연루되어 있음이 밝혀지고, 켄지와 제네로는 어려서부터 친구인, 마피아도 함부로 못 건드릴 정도로 무지막지한 부바의 도움을 요청한다. 마침내 유괴범 측에서 연락이 오고 보스턴의 모든 경찰력이 총동원되어 인질금 교환 장소인 채석장을 포위한다. 그러나 돈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켄지, 제네로, 풀레, 브루사드의 앞에 나타난 건 인형을 든 아이가 아닌, 수백 발의 총탄이었다. 함정에 빠진 네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끝까지 집중하기 바란다. 저리도록 가슴 아픈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라, 아이야, 가라>는 <미스틱 리버>와 <살인자들의 섬>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이다. 두 작품 이전에 쓰고 있었던 켄지/제나로 시리즈의 네번째 이야기로 역시 대단한 필력을 보여준다. 데니스 루헤인의 강점은 역시 오감을 모두 만족시키는 글을 쓴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 때때로 등장하는 돌발적인 폭력 장면은 근육을 모두 긴장시킬 정도로 강렬하고, 주의깊게 배치된 단서를 두 탐정이 하나씩 깨닫는 대목은 머리를 팽팽 돌아가게 만든다. 찰진 대사의 윤기 역시 대단하고 다소 신경질적인 느낌이 드는 시니컬한 유머 감각도 제법이다.

 

그러나 역시 데니스 루헤인은 우리의 감정에 직접 호소하는 작가가 아닐런지. 그의 소설에서 살아 숨쉬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전작 <미스틱 리버>에서 살해당한 여자의 장례식 장면은 굉장히 길고 자세하지만 사실 플롯과는 무관해 빼버려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빼버리면 작품의 맛이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는 장례식 장면을 통해 살아 남은 가족들의 절절한 슬픔과 인생과 죽음의 허망함 등을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봉사하고 지키는 일을 너무도 하고 싶었던 두 형사의 절절한 토로나 어쩔 수 없이 안타까운 선택을 해야 하는 켄지, 제나로의 심경에 나는 진실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 재미있고 놀라운 작품의 정보를 무심히 누설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일테니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게 유감이다. 다만 이 작품 결미의 '선택의 문제'에 대해 많은 토론을 나눠보고 싶다. 켄지의 선택, 제나로의 선택 중 무엇도 쉽사리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도록 하자.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윤리적인지를. 세상에 옳은 일이란 무엇일까, 누가 그걸 판단할 수 있을까. 선택의 문제에 어쩔 수 없는 주인공은 결국 깊은 좌절에 빠지고, 그 좌절감은 내 마음까지 흠뻑 적셔놓고 말았다.

 

흔한 범죄소설이 절대 아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깊은 회한과 탄식이 비어져나온다. 데니스 루헤인은 이 작품으로 자신이야말로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임을 입증해보였다고 생각한다. 올해 책을 한 권만 읽을 수 있다면 이 작품을 택하기 바란다. 그만큼 대단한 걸작이다.

 

"그는 광장의 반짝이는 형광빛과 기상등대와 무선송신기의 붉은 펄스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아름답군. 하나 알려줄까?'

'뭘요?'

'난 아이들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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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9-26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0여쪽 두권으로 나눠져 있어서, 일찌감치 보관함에서 빼버린 책이에요. 흑. 아마존에나 가봐여지요. ( --)

날개 2006-09-2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강력한 뽐뿌질을......^^

상복의랑데뷰 2006-09-27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왕~기대가 됩니다. ^^

물만두 2006-09-27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팍팍 밀어보아요^^

jedai2000 2006-09-27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뭐 그러시다면 원서로라도 보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날개님...이거 읽고 불만족하시면 저를 패 죽이셔도 좋아요. ^^

상복의 랑데뷰님...당장 읽어보세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물만두님...여력이 되는 대로 결사적으로 이 작품을 띄울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

oldhand 2006-09-2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제다이 님이 밀면 뜹니다. 떠요. ^^

Koni 2006-09-27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굉장히 강력한 추천이군요. 하지만 jedai2000님의 추천은... 그냥 넘기기가 어려워요.ㅠ_ㅠ

jedai2000 2006-09-27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먼저 올드핸드님에게 띄워야겠네요 ^^ 사서 읽어 보실거죠? ^^

냐오님...오랜만에 강력하게 추천할 작품을 만났습니다. 이번 만큼은 꼭 그냥 넘어가지 마시고 한 번 넘어가주세요. 후회 안 하실 거예요. ^^

비연 2006-09-27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이러면 안되는데...또 지르게 되었군요...보관함에 쏘옥~

Apple 2006-09-27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밀어보아요~^^

jedai2000 2006-09-28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보관함에 넣어두셨다 나중에 꼭 주문하셔야 해요. ^^

애플님...넵~ 함께 잘 밀어보아요. ^^

paviana 2006-10-04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제다이님도 만두님도 둘다 무서워요...이렇게 강력한 뽐뿌라니....
제목좀 보세요..올해 최고의 책이라는 말씀이시죠? ㅠㅠ

jedai2000 2006-10-08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뽐뿌에 넘어가주세요. ^^ 한 번만 믿어주세요. 현재까지는 올해 최고의 재미와 감동, 슬픔이 있었던 소설이었답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

라이더 2006-10-2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을 알게 되어 '아임소리마마' 읽게 되었는데, 여기까지 흘러오게되었습니다. 저두 밀어 드릴께요.

jedai2000 2006-10-2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분을 알게 되셨군요. ^^ <아임 소리 마마>는 재미있게 읽으셨나 모르겠네요. 이거 많은 분들이 밀어주셔서 든든하네요. 반갑습니다. 라이더님..^^
 
또 다른 나 - 시드니 셀던 자서전
시드니 셀던 지음, 최필원 옮김 / 북앳북스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또 다른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 시드니 셀던이 인생의 황혼기를 맞아 스스로 자신의 지난 인생을 돌아본 자서전입니다. 시드니 셀던이 무슨 간디처럼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위인도 아니고, 헤밍웨이처럼 존경 받는 작가도 아닌데 웬 자서전? 하실 분도 분명히 계시겠지만 꼭 역사책에 나오는 어마어마한 위인만이 자서전을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시드니 셀던은 1970년 <벌거벗은 얼굴>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18권의 소설로 전세계에서 3억부를 팔아치웠다지만 분명히 후세에 길이 남을 문호라고는 부를 수 없는 작가입니다. 당대 대중의 기호를 정확히 읽어 잘 팔릴 만한 대중소설을 기획해 충실하게 소설화해낸 상업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위에도 말했듯이 꼭 위인만이 자서전을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기나긴 인생의 여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을 만한 교훈을 줄 수 있다면 누가 쓴들 어떻겠습니까. <또 다른 나>는 적어도 저에게만은 큰 교훈을 주었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많은 힘을 준 작품이므로 당당하게 추천합니다.

 

시드니 셀던은 1917년 시카고에서 출생했습니다. 본명이 시드니 샥텔인 그는 가난한 이민자 부모의 장남으로 그의 가족은 대공황 때 극심한 빈곤의 늪에 빠지고 맙니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인 그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과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대학교를 어쩔 수 없이 그만 두고 열일곱 살에 호텔 카지노 휴대품 관리소, 약국 점원, 공장 직원 등으로 살아갑니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작가의 꿈은 멀어져가기만 하자 그는 자살을 결심합니다. 일하던 약국에서 수면제를 몰래 빼돌리고 자살을 결행하려 하는 순간, 아버지에게 발각된 시드니 샥텔. 아버지는 절망에 빠진 아들과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시드니, 넌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

그제야 나는 아버지의 말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건 어제 얘기였어요."

"그럼 내일은?"

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 인생이란 원래 소설 같은 거 아니겠니?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있잖아. 페이지를 넘기기 전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요."

"그걸 어떻게 알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페이지인 거야, 시드니. 곳곳에 깜짝 놀랄만한 일이 숨어 있다고. 페이지를 넘기기 전까진 그 누구도 알 수 없어."

 

과연 그렇습니다. 인생은 기나긴 장편소설. 페이지를 넘기기 전까진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앞페이지가 우울했다고 해도 뒷장까지 절망적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결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소설을 보고 우리가 크나큰 희망을 느끼는 것처럼 이 자서전에는 마술 같은 희망과 용솟음치는 용기가 가득합니다. 더구나 결말을 알 수 없어 가슴 졸이며 보게 되는 소설과 달리 우리는 이 자서전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온갖 좌절과 고난을 넘어 결국 성공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게 되는 시드니 셀던의 현재 모습을 익히 알고 있기에 편안히 페이지를 넘기면 되는 것이지요. 참으로 간만에 하게 되는 흐뭇한 독서인 셈입니다. 

 

시드니는 발음하기 어려운 성을 셀던으로 고치고 헐리우드로 날아갑니다. 물론 어떤 비전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는 MGN이나 20세기 폭스 등의 거대한 스튜디오들의 전성기. 스튜디오 안에 광대한 촬영지와 150여명의 전속 작가 등을 갖추고 영화를 생산해냈습니다. 실로 미국 영화의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기였죠. 시드니는 먼저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시나리오 리더로 일하게 됩니다. 그럴싸한 소설을 읽고 대강의 내용 요약과 느낀 점들을 정리하면 되는 일이었죠. 이 일자리를 잡는 과정 역시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타이프라이터도 버스비도 없는 그에게 저녁 6시까지 4백 페이지 소설을 읽고 30장짜리 페이퍼를 작성해오라고 요구하는 스튜디오. 그는 무조건 말합니다. "물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근처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는 사촌의 전부인을 무작정 찾아가 도와달라고 말합니다. 사촌이 바람펴서 끝난 사이기 때문에 사실 거기 가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사촌의 전부인은 그의 불굴의 의지를 높이 평가해 점심도 굶고 타이프를 쳐줍니다. 시드니 셀던은 당연히 채용되었죠.

 

그 다음부터 시드니 셀던의 부침 많았던 인생이 재현됩니다. 추간판 탈출증으로 며칠씩 쓰러져있는가 하면, 브로드웨이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뮤지컬을 올리기도 하고, 조울증으로 비정상적인 언동을 보였으며,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두 번의 결혼으로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를 얻었고, 누구보다 소중한 첫째 딸을 낳았으며, 태어나자마자 병으로 죽은 둘째 딸을 가슴에 묻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아흔에 가까운 노작가의 인생을 깊이 있게 볼 수 있으며, 그가 가졌던 꿈과 희망에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됩니다. 이런 장면도 있으니까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시나리오 리더로 일하고 싶어 찾아갔을 때, 문전박대 당한 그가 나중에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사장 자리를 제의받게 되는...

 

초창기 미국의 연예 비즈니스계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도 유용한 책입니다. 데이비드 셀즈닉 같은 타이쿤 프로듀서가 활개를 쳤던 스튜디오 전성기부터, TV의 도래로 연예계의 무게추가 TV로 옮겨갔던 시대까지 두루 현장에서 활동했던 사람답게 뛰어난 기억력으로 당대 명사들의 흔적을 재현해놓고 있습니다. 마릴린 먼로와 데이트했던 이야기와 벤자민 '벅시' 시걸의 애인과 데이트하다 죽을 뻔했던 일들은 아주 재미있고, 프레드 아스테어, 버스터 키튼, 세실 B 드밀, 주디 갈란드,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의 유명인들도 다수 출현합니다. 심지어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시드니 셀던의 집 파티에서 설거지를 도맡았다는 이야기는 그 아니면 누구도 말하지 못할 일화겠죠. 시드니 셀던이 그 유명한 캐리 그랜트를 감독했던 것도 정말 몰랐던 일로 우리 생각보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연예계 종사자였나를 깨닫게 만들어줍니다.

 

웬만한 소설보다 이 이야기들이 훨씬 재미있는 건 역시 실화기 때문이겠죠. 자서전이 보통 용비어천가가 되기 쉬운데 반해 이 책은 비교적 균형적입니다. 그가 받았던 온갖 혹평도 가감없이 실려 있고, 그가 행했던 선행들(예를 들어 작가 생활 초창기에 그는 일을 잡으면 비슷한 처지의 가난한 시나리오 지망생과 항상 공저를 했습니다), 매커시 선풍을 맞아 용기있게 저항했던 일들을 그다지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정작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70년대 이후의 인생은 그리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18편의 책을 어떻게 구상했으며, 어떻게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는가를 공개한다면 작가지망생들에게 참 도움이 될텐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게 바로 제가 속편을 기대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짐작컨대 "물론 할 수 있습니다"일 것입니다. 시드니 셀던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네버 기브업 정신으로 많은 문제들을 헤쳐나가 왔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성공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일테죠. 나약한 정신 상태로 '나는 안 돼', '못 해'만 일삼는 저같은 사람에게 깊은 반성과 귀감을 준 책으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만약 작가지망생이라면 시드니 셀던의, 영화에서 갈고 닦인 듯한 뛰어난 장면 전환 기법이나 진지함과 유머를 어떻게 황금비율로 조화시키는가 등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작가로서의 정신 자세를 확실하게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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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6-09-23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겠군요.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감사.

jedai2000 2006-09-23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와 소설에 관심 많은 저에게는 최고의 자서전이었지만 사마천님이 보시기에 어떨지 몰라 조심스럽네요. 아마도 분명히 재미있어 하실 거라 믿습니다. ^^

sayonara 2006-12-21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드니 셀던이 최근에는 건강문제로 모든 글을 구술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도 시드니 셀던이 팔팔하던 10년 전쯤에 직접 썼다면 얼마나 더 흥미진진했울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저에게도 가장 재미있는 자서전이었습니다.

jedai2000 2006-12-30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구술이었군요. 머 지금도 충분히 재미있긴 한데 본인이 직접 썼으면 더 좋았겠죠. 구술이라도 좋으니 작가생활을 다룬 속편이 꼭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스텝파더 스텝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1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일본 소설이 시쳇말로 대세다.  자고 일어나면 신간들이 줄줄이 쏟아지는데, 이건 뭐 생전 듣도보도 못한 작가서부터 전일본을 떠르르하게 울리는 대형 작가의 작품까지 그 장르도 다양하다. 이런 비상시국(?)일수록 작가와 작품을 잘 선택해야 지갑에 위기를 초래하지 않고 좋은 작품만 쏙쏙 골라 즐거운 독서 생활을 할 수 있는 법이니 독자들의 제대로 된 안목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미야베 미유키야말로 독자의 안전한 선택에 한 치의 위험도 주지 않는 보증수표 격의 작가다. 7년 연속 일본 유수의 출판 잡지 '다빈치'의 여성 인기작가 순위에서 1위를 했다거나, 평단에서 받은 온갖 상들을 줄줄이 열거하는 건 이제 입이 아플 지경이 됐다. 독자한테 사랑 받고, 평자에게 인정 받는 행복한 작가가 바로 미야베 미유키인 것이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화차> <모방범> <이유> <용은 잠들다> 등의 명실상부한 대표작이 이미 번역되어 나왔고,  <스나크 사냥> <마술은 속삭인다> 등의 초기 수작들도 나올 예정이고, <누군가>와 <이름 없는 독>같은 완전 최신작도 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그녀의 팬이라면 정말 즐거울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 어디서 미유키 책을 안내줄까 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 하던 것도 벌써 옛일이 되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인기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책이 재미있다는 거다. 부동산, 신용카드 남용 같은 현실적인 문제부터 초능력, 염력 등의 낯선 소재, 시대소설부터 판타지까지 관심사도 무궁무진한데 그 다양한 소재를 미스터리 터치를 섞어 흥미진진하게 잘 풀어내는 감각이 있다. 적어도 미야베 미유키는 자신이 추리소설가라는 자각을 갖고 있고,  어떤 장르의 작품을 쓰더라도 미스터리 특유의 수수께끼 푸는 맛을 살리려 노력한다. <스텝 파더 스텝>도 다소 가벼운 유머 소설에 가깝지만 이런 미야베 미유키만의 특징은 여전해 추리소설적인 재미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한 마디로 일반 독자와 미스터리 독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줄 아는 영리한 작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모두들 공감하는 미야베 미유키 작품의 온기야말로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게 된 직접적인 이유일 것이다. 그녀는 미스터리 소설가다. 작품에서 사람도 죽고, 범죄도 일어나고, 도둑질도 벌어진다. 하지만 모든 작품의 결말에는 비록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라 해도 용서하고, 동정하며, 이해하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담담하게 배어 있다. 약하고 부족한 인간이라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는 긍정적인 작가의 마음에 결국 우리도 깊이 공감하고 만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든 작품에는 작가 특유의 인간애와 사랑이 녹아들어가 있어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갈증으로 목이 타는 사람이 물을 계속 찾게 되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관계에 대한 갈증을 느껴본 사람이 미야베 미유키 책을 찾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다.

<스텝 파더 스텝>은 작가의 휴머니즘(?)을 잘 드러내주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우연히 가짜 부자 관계가 된 도둑과 쌍둥이가 서로의 필요를 넘어 진짜 아버지와 아들로 환골탈태한다는 내용은, 핏줄을 뛰어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야말로 진짜 가족의 조건이 아닐까, 하는 소박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하기야 남보다 못한 가족도 많은 터에 과히 틀린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이런 거창한 이야기는 관두고 단순하게 봐도 굉장히 재미있다. 7편의 단편들은 모두 유쾌하고 소박한 코지 미스터리로 손색이 없다. 다루고 있는 사건들도 끔찍한 게 아니라, 난데없이 전혀 관계 없는 지방신문이 집에 투척되는 사건(?) 등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이다. 본격적인 미스터리 소설로 보기엔 트릭이 약한 감이 많지만 가벼운 미스터리 풍의 유머소설로 본다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의 화자인 도둑이 약간 시니컬하게 내뱉는 현대 사회와 일그러진 가족 관계에 대한 (그다지 맵지 않은) 풍자를 보면 아주 가볍지는 않은 작품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아봐야 헛수고이고 우물가에서는 우물물을 찾아야 하듯이, <스텝 파더 스텝>에서는 작가가 공들여 준비한 유머를 찾아 즐기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 같다. 특히 중학생 쌍둥이가 한 마디씩 말을 번갈아가며 하는 버릇을 보여줄 때가 아주 귀엽고 재미있다. 흉내내고 싶어질 정도다. 때로는 배꼽을 간지르는 듯한 가글가글한 유머부터 천장을 날려버릴 대폭소까지 웃고 즐길 구석이 많은 작품으로 무료한 시간을 그닥 골머리 썩여가며 보내고 싶지 않은 분들께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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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09-21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요즘 일본 작가의 책이 무지 많이 나오고 있어요. 따라잡기 벅찹니다. @@

jedai2000 2006-09-22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더 나올 것입니다..-_-;; 여기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모르겠네요. 독자 입장에서야 재미있는 책이 많아지는 거니까 좋긴 하지만, 직업적으로는 일본 소설 판권료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썩 좋지만은 않네요. -_-''

하이드 2006-09-22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베 미유키.가 이렇게 웃기게 쓸 수도 있다는걸 안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어요 ^^ 어여어여 나머지 작품들도 다 소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jedai2000 2006-09-2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안에 2권 정도 더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다재다능한 작가죠. <스텝 파더 스텝>이야 다소 가볍지만, 작가가 다양한 걸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의의가 있는 것 같아요. ^^
 
종말의 바보
이사카 고타로 지음, 윤덕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일 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사카 고타로의 최신작. 예전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좋은 영화의 조건을 '20자로 요약 가능할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확실히 그의 영화는 '외계인과 우정을 나누는 지구 꼬마'. '현대에 부활한 공룡' 등 20자 미만으로 쉽게 요약될 수 있다. 이른바 '하이 콘셉트'라는 것으로 내용 요약이 짧게 가능하다는 건 그만큼 중심 내용이 분명하고, 소구점이 명확해 보는 사람들이 골머리 썩히지 않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종말의 바보]는 전형적인 하이 콘셉트의 법칙을 따른다. '지구의 종말이 3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20자를 넘지 않는다. 심리 테스트나 심심풀이용 100문100답에나 나올 듯한 뻔한 질문이지만 막상 답변하기는 어렵다. 닥치는 대로 폭음, 폭식, 폭연애(?)를 하면서 되는 대로 막 살 수도 있겠고, 쭉 해왔던 일을 묵묵히 수도자처럼 해나갈 수도 있겠다. [종말의 바보]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8명의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머릿 속으로 슬며시 생각해보고 책장을 넘기도록.

 

비교적 다작 작가인만큼 신선도와 필력이 빨리 소진되지는 않을까 팬으로서 항상 걱정되는데 [종말의 바보]는 어깨에 힘을 완전 빼고 쓴 작품임이 느껴진다. 아마도 잡지에 연재하지 않았을까 추측되는 짤막한 8개의 단편들은 다소 평범한 느낌이다.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이나 이리저리 꼬인 플롯이 하나씩 맞아가는 짜릿한 구성의 재미를 느끼기는 어렵고, '종말'에 맞닥뜨린 사람들의 심리를 비교적 정공법으로 그리고 있다. 만약 이사카 고타로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종말이라는 소재 자체가 주는 흥미와 이사카 고타로의 또하나의 장기인 피식 새어나오는 유머,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경쾌하게 풀어내는 능력에 감탄하고 말 것이다. 물론 이사카 고타로의 오랜 팬들이 보기엔 전작들의 재기를 별로 느낄 수 없어 약간 심심하겠지만.

 

거대한 운석이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카운트다운은 벌써 시작되었고, 남은 시간은 이제 단3년. 폭력과 살인으로 울분을 풀던 시민들도 이젠 지쳐 적당히 평화가 찾아온다. 서서히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 믿기지 않는 현실을 앞두고 일본 동북지방 센다이 시(이사카 고타로의 모든 소설 배경은 센다이다. 아마도 고향인 듯)에 위치한 센다이 힐스타운 아파트에 사는 8명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죽음을 앞두고 소원해진 가족과 화해하는 남편도 있고, 임신한 아이를 낳을 것인지 말 것인지(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의 수명은 단 2년에 불과하니까) 고민하는 부부도 있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당신의 선택지도 채워져 있을 것이다.

 

8개의 단편 중에는 그저그런 것도 있고, 꽤 그럴싸한 것도 있다. 개인적으로 <강철의 킥복서>나 <소행성의 밤> 같은 것이 좋았고 <형제의 복수> 같은 건 시간낭비였다. 짤막한 만큼 쉽게 읽히고 제법 감동도 있다. 읽고 나서 크게 후회할 수는 없는 단편집이다. 다만 이 정도의 감동 소설은 다른 작가들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사카 고타로라면 종말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좀더 독특하고 재기발랄하게 요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열성팬의 투정을 마지막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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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9-19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다 좋은 작품만 쓰면 괴물이겠죠^^;;;

jedai2000 2006-09-1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쁜 작품이라는 건 아니구요. 좋은 작품인데, 이사카 고타로의 팬으로써 그 사람 색채가 별로 안 나는 게 좀 섭섭해서 투정을 해봤습니다. ^^
 
플리커 스타일 - 카가미 키미히코에게 어울리는 살인
사토 유야 지음, 주진언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공군: 오랜만에 나오니까 좋지.
강군: 응. 그러게.
공군: 니가 무슨 흡혈귀도 아니고 허구헌날 집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있냐. 집 근처에 이렇게 좋은 산이 있는데 말야. 사람이 자연에서 기를 받아야지 말야. 맑은 공기도 쐬면서 광합성도 하고.
강군: 우리가 무슨 식물이냐.
공군: 생각하는 건 식물만도 못하잖아.
강군: 그렇긴 하지. 야, 저기서 물 좀 먹고 가자. 홍륜사라고 절 있는데, 그 뒤에 가면 약수 있다.


공군: 시원하니 좋네. 진짜 약수라서 그런지 웬지 기운도 나는 것 같고.
강군: 임마. 이 물 한 잔 마시면 3년 젊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어.
공군: 그래! 그럼 더 마셔야겠네.
강군: 어이쿠. 그렇다고 그렇게 많이 마셔.
공군: 열 잔 마셨더니 배부르네.
강군: 이야, 30년 젊어진거네. 그런데 확실히 젊어지고 있어. 어라, 어라! 점점 아이가 되간다! 이야, 신기하네! 머리카락 빠지고, 배 나오고, 다리 짧아지고...완전 아기네, 아기 됐네!  
공군: 너 지금 내 외모 갖고 놀리는 거지?
강군: 응.
공군: 어, 저기 개 있다! 절에서 기르는 개인가 봐. 귀엽네. 워리, 워리. 이리 와봐라. 어이쿠, 저 개 같은 게 사람 말을 씹네.
강군: 야 이 자샤. 저 개가 저래뵈도 절에서 큰 개야.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읇는다고 좋은 경문을 그렇게 들은 개가 악인한테 가까이 갈 것 같아. 선악을 구별하는 개라구. 내가 한 번 불러볼게...


공군: 아직도 아프냐.
강군: 힝, 물 것까진 없었는데. 나쁜 개 녀석.
공군: 내가 악인이라 가까이 오지 않는거면, 개이빨에 물린 너는 대악인이다. 이 자샤.
강군: 그만 해. 아파 죽겠는데.
공군: 이제 내려가자. 내려 가면서 심심한데 최근에 읽는 책 이야기나 해봐라.
강군: 갑자기 맥락과는 무관한 책 이야기는 왜 꺼내?
공군: 그럼 헛소리만 지껄이다 이 글 끝낼거야.
강군: 뭔 소리야?
공군: 그런 게 있어.


강군: 뭐, 니가 듣고 싶다니 이야기하지. 최근에 본 책은 사토 유야라는 일본의 80년생 젊은 작가가 쓴 <플리커 스타일>이다. 제21회 메피스토상 수상작이지.
공군: 그게 뭔데?
강군: 재미있는 엔터테인먼트 소설에 시상하는 건데, 부정기적으로 아무 때나 그럴싸한 작품이 나오면 준다더라. 최근 일본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라이트노벨 같은 가벼운 읽을거리에서 보통 수상작이 뽑히고 호러에서 미스터리까지 다양한 소재를 건드린다던데.
공군: 그런 게 있었구나. 수준은 어때?
강군: 아직은 젊고 문장 훈련이 덜 된 작가들이 많아 좀 가볍지. 냉정하게 보면 함량 미달인 구석도 많고. 게다가 메피스토상을 주관하는 출판사에서 그 상이 부정기적이라는 점을 이용해 수상작을 1년에 6개나 내고 막 그랬다더라.
공군: 왜?
강군: 출판사에서 유행을 만들려고 그러는 거지 뭐 다른 이유가 있겠냐. 메피스토상 수상자들이 많아지면 걔네들도 일정한 세력을 형성하고 그러겠지. 자세히는 모른다만.
공군: 그렇구나.



강군: <플리커 스타일>은 동생이 강간당하고 자살하자, 그 강간범들의 딸 세 명을 납치해 복수하려고 하는 카가미라는 대학생이 주인공이야. 카가미가 목표물에 접근하는 과정이 초반에 그려지는데, 애한테는 어렸을 때부터 소꿉친구가 있어. 야스미라는 여자앤데, 얘도 독특한 거라. 일본 전국을 돌며 77명의 소녀 연쇄살인을 벌인 '나이프 잭'이 살해할 때마다 살인자의 눈으로 그 광경을 보는 능력이 있어. 그러니까 이 책은 카가미의 납치 행각과 야스미와 나이프 잭의 이야기가 병행되다 나중에 합치되는 구성을 가지고 있는 거지.
공군: 독특하네. 납치에 초능력이라니.
강군: 원래 메피스토상이 독특한 구석이 많아. 그 점을 보고 뽑는거니까. 그렇지만 독특하다는 게 면죄부는 될 수 없듯이 <플리커 스타일>은 실패작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야.
공군: 왜?
강군: 일단 문장이나 묘사가 후져. 예를 들어 지하철 역에 사람이 많을 때 '드래콘 퀘스트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을 연상케 했다.' 하는 식의 유치한 문장이 작품을 이루고 있어. 무엇보다 이게 꼭 미스터리 소설은 아니더라도 두 개의 이야기가 병렬되면서 진행되니까 나중에 모든 게 착착 맞아 떨어지는 구성의 묘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반전이 있긴 하지만 그닥 재미있는 반전도 아니고.
공군: 치명적이네.

강군: 엄청나게 막 나가기도 하지. 강간, 납치, 살인, 감금 등 강력 범죄가 계속 등장하는데, 그냥 소재에 그칠 뿐, 피해자의 아픔이나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필연적인 이유가 없지. 일본의 젊은 작가답게 게임 같고, 만화 같을 뿐 진실성이 없어. 일단 주인공이 아무리 동생이 그렇게 됐다기로소니 여자들을 납치해 감금하고 치고 패고 별 짓을 다하니까 별로 정도 안 가고.
공군: 그렇구나.
강군: 아무리 생각해도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아. 물론 수월하고 어느 정도 재미있게 읽히는 면도 있지. 그치만 소설의 문장이라고는 할 수 없는 즉홍적이고 안이한 문장과 소재의 선정성에 기댄 혐의가 다분하니까 좋은 점수가 나오지 않아. 마무리가 거의 뭐 처절하게 잔인한 수준인데,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랄 정도였으니까 별로 인상적인 것도 아니지. 내가 볼 때는 아직 함량미달의 작가다.
공군: 많이 쓰다보면 발전하겠지 뭐. 아무튼 잘 들었다. 야, 산 밑에 오니까 포장 쳐놓고 술 판다. 맥주 한 잔 하고 갈까?
강군: 잠깐만. 돌탑 좀 쌓고.


공군: 아주 공들여 소원 빌더라. 뭐 빌었냐?
강군: 우리 지혜 항상 건강하고, 자기 맡은 일에서 최고가 되길.
공군: 우리 지혜? 서지혜가 언제 니 꺼 됐냐?
강군: 조만간 그렇게 될 거야^^ 자, 이제 맥주 마시러 가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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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6-09-17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이 그렇게 됐으면, 그 범인들을 족쳐야지 왜 또 그 동생들에게 나쁜짓을 하느냐... 하고 씁쓸하네요. 강간문제는 뭐라고 포장해도 여자에게는 섬뜩한 범죄예요.

jedai2000 2006-09-17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 중 한 명이 우리 아빠가 잘못을 했는데, 왜 나한테 그러냐고 따지는 장면이 있는데, 주인공이 들어도 맞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대답을 못 하더라구요. 물론 주인공이 여자들을 강간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끔찍하게 대하죠. 강간은 정말 최악이라는 말도 부족한 정말 끔찍한 범죄죠. 공감합니다.

Apple 2006-09-17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케~또 대화체 리뷰군요!!! 리뷰가 쏙쏙 드러온다는.....^^

jedai2000 2006-09-18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플님...고맙습니다. ^^ 대화체 리뷰의 최대 강점은 역시 쓰는 사람도 재미있다는 거죠. 앞으로도 종종 쓸테니 계속 기대해주세요 ^^

werpoll 2006-09-18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유머감각이 풍부하시군요 ^^

jedai2000 2006-09-18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깽이탐정님...제 유머와 코드가 맞나 봅니다..^^ 재미없어 하시는 분들이 더 많은데 반갑네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nemuko 2006-09-18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지혜양 이야기는 빠지질 않는군요^^

jedai2000 2006-09-18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혜양과 맥주는 강군공군 리뷰의 필수요소랍니다. ^^

상복의랑데뷰 2006-09-18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트릭1기를 봤는데 유키에랑 지혜양이랑 비슷해 보이더군요 ^^; 살까말까 고민했는데, 리뷰를 보니 참아도 될 것 같습니다. 흐흣

jedai2000 2006-09-1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두 사람이 닮았군요. 저는 뭐 둘 다 좋아하니까요. 하지만 서지혜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건 민족감정 때문일까요. ^^ 참으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