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위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 - 이노우에 마기

 

 

 

 

 

 

 

 

 

 

 

 

 

 

기적의 존재를 믿는 탐정 우에오로 조. 그는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살인사건의 여러 가설을 전부 검토하고, 모든 가능성을 낱낱이 제거해 나간다. 최후의 최후까지 파헤쳐봐도 끝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결국 기적이 존재함이 증명되는 것이 아닌가! 기적으로 보이는 불가능범죄 속의 트릭을 밝혀내고, 불가해한 기적을 인간계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게 일반적인 탐정의 역할이라면 이 소설은 정반대다. 이 참신한 역발상이 제대로 먹혔다. 예전 <스트리트 파이터>나 <철권>처럼 대전게임의 형식을 빌어 기적을 믿는 탐정에게 속속 도전하는 능력자들. 그중에는 전직 검사도 있고, 프로페셔널 킬러 같은 범죄의 전문가도 있다. 그들은 현장을 분석해 다양한 물리 법칙 등을 내세워 몇 가지 그럴듯한 가설을 내놓지만 끝까지 다 들은 탐정은 오직 이렇게 말할 뿐이다.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가설들을 논리적으로 파해하는 탐정의 활약이 재미 포인트다. 즉, 도전자는 트릭을 풀려 하지만 탐정이라는 작자가 어떻게든 트릭을 미궁으로 남기려 하는 역할의 전도가 일어나는 것이다(보통 추리소설에서탐정의 도전자는 대개 범인으로서 트릭이 밝혀지면 끝장이다). 기발한 발상으로 한계에 달한 본격 추리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린 작가에게 찬사를 보낸다. 다만 한 가지 사건을 두고 여러 개의 흥미로운 가설이 세워지는 이런 추리소설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하는 탐정의 진짜 해결 방법이 가장 강력해야 하는데 그 점이 살짝 아쉽다.

 

4위 <진실의 10미터 앞> - 요네자와 호노부

 

 

 

 

 

 

 

 

 

 

 

 

 

 

일상계 학원 미스터리로 시작해 본격 추리, 중세풍 판타지를 가미한 추리소설 등 손 대는 장르마다 성공시키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계의 기린아 요네자와 호노부의 단편집이다. 전작 <왕과 서커스>에서 활약한 여성 기자가 일본의 각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취재하는 도중에 밝혀지는 사건의 진짜 얼굴을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 다치아리이 마치는 대단한 추리력의 소유자로 사건 관계자에게 듣는 사소한 몇 마디로도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는데 전부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섯 개의 수록작 중 잡지 연재 사정상 급하게 써야 했던 '정의로운 사나이' 말고는 대부분 수준이 높고, '고이가사네 정사'와 '나이프를 잃은 추억 속에', '이름을 새기는 죽음' 같은 작품들은 최상급이다. 특히 '고이가사네 정사'는 2010년대 일본 단편 추리소설을 모두 통틀어서도 버금 가는 작품이 없어 보인다. 기자가 주인공이다 보니 취재 윤리 및 기자로서의 마음가짐 등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통찰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요네자와를 오늘의 요네자와로 만들어준 독특한 장점, 즉 책장을 다 덮고 나서도 한동안은 작가가 그린 세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문학적 여운'이 짧은 이야기들 속에서도 여전하다는 점을 확인해 더욱 반가웠다.

 

 

3위 시인장의 살인 - 이마무라 마사히로

 

 

 

 

 

 

 

 

 

 

 

 

 

 

시 쓰는 저택에서의 살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인은 살아 있는 시체, 좀비를 말하는 거였다. 대형 펜션의 1층을 점령해버린 좀비 떼에게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대학생들이 2층과 3층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지만 당연히(?) 연속 밀실 살인사건이 벌어져 탐정 역의 여학생과 '왓슨' 역의 남학생이 수사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산불 같은 대형 화재나 호우, 눈보라 등 주로 자연재해로 만들었던 클로즈드 서클을 좀비 떼로 만들었다는 게 독특하다. 더구나 좀비들이 단순히 등장인물들을 고립시키거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가 부여한 좀비만의 특성들을 활용해 밀실 트릭의 주재료로 쓰였다는 점에서 흠 잡을 데 없는 본격 추리소설이다(단서로 쓰이는 좀비의 특성들은 작가가 공정하게 죄다 공개했다). 세 개의 밀실 살인은 답을 알고 나면 늘 그렇듯이 왜 내가 이 간단한 걸 몰랐을까 하면서 애꿎은 머리를 쥐어박게 되지만 간단한 만큼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답이라서 뒷맛이 좋다. 다만 추리소설을 처음 써봤다는 작가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문장력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고,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인상비평 한 마디로 처리하는 게 아쉽긴 하다. 예를 들어 A라는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생겼다고 묘사하면 그 여자는 진짜로 신경질적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질적이다. 이는 캐릭터의 외면은 물론 내면까지도 한두 컷으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에서 쓰는 기법이지 소설에서는 좀 더 정교한 인물 묘사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슷하게 수많은 등장인물의 성격을 한두 장면에서 길지 않게 묘사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생생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과 비교해보면 내공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비라는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서브컬처를 적절하게 끌어와 추리소설의 영역을 한층 확장시키고, 원래 독자와 작가의 두뇌싸움이라는 유희에서 출발한 추리소설의 한바탕 놀이 정신을 무리없이 계승한 작가의 행보는 크게 주목할 만하다.

 

 

2위 <거울 속 외딴 성> - 츠지무라 미츠키

 

 

 

 

 

 

 

 

 

 

 

 

 

 

데뷔작 <차가운 학교는 멈추지 않는다>부터 학원물에서 강점을 보여왔던 츠지무라 미츠키의 학원물 완성작이 아닐까 싶다. 요즘 한국에서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등교거부 히키코모리를 주요 제재로 삼아 등교거부 학생들의 연대와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또래들이 전부 학교에 가고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안에서 두 배의 고독을 느끼는 등교거부 학생 고코로, 그런데 방 안의 거울에서 밝은 빛이 흘러나오고 그 거울에 손을 대보자 낯선 성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 성에는 자신과 비슷한 여러 명의 등교거부 학생들이 있고, 늑대 가면을 쓴 신비로운 소녀가 1년 동안 이 성에서 숨겨진 열쇠를 찾으면 소원을 이뤄준다고 선언한다. <나니아 연대기>스러운 전개를 기반으로 한 판타지 소설이지만 등교거부 학생들이 겪는 여러 차별과 학교에서의 왕따 등은 전혀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다. 오랜 취재가 선행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실감 나는 묘사에서 학교가 얼마나 병든 곳인지, 그 학교에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청소년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장르 구분을 하자면 어쩔 수 없이 판타지라고 해야겠지만 몇 가지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 미스터리들은 공정한 단서와 논리 등 충분히 '추리소설적'으로 풀어 나가므로 추리소설 랭킹에 올라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여러 설명이 필요 없는 정말 감동적인 소설이며 여러 번 눈물을 닦게 되는 강력 최루탄이기도 하다. 1위만 없었다면 단연 올해 최고의 작품!

 

 

1위 <맥파이 살인사건> - 앤서니 호로비츠

 

 

 

 

 

 

 

 

 

 

 

 

 

 

사이코 스릴러나 형사물, 요즘 대세인 도메스틱 스릴러 등에 밀려 어느새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어버린 영미 퍼즐 미스터리의 놀라운 반격이다. 오랜만에 영미에서 정통 본격 추리소설이 나온 것만 해도 반가운 판에 이 정도 완성도라니 정말이지 감탄을 넘어 감격했다. 애거서 크리스티를 모티브로 삼은 소설이지만 실제 크리스티가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주로 셜록 홈스나 007 등 기존 유명작들의 후속작을 써서 생계를 이루는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작가라고 폄하했던(글쓴이가) 앤서니 호로비츠였는데, 정작 자기만의 얘기에서 이렇게 장쾌한 한 방을 날릴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특히 아티쿠스 퓐트라는 포와로를 방불케 하는 고전적인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가 현실에서도 살해당하면서 극 중에서의 살인과 현실에서의 살인이라는 두 가지 미스터리가 동시에 굴러가는 구성이 절묘하다. 두 사건 다 인상적인 해결 장면이 기다리고 있으며 어느 하나 완성도 면에서 빠지는 게 없다. 물론 포와로 시리즈를 고스란히 재현한 극 중에서의 살인을 독자들은 더 좋아할 것 같긴 하다만, 현실에서의 살인도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회장 매튜 프리처드(크리스티 외손자) 등 실제 인물도 등장하고 출판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편집자 출신인 글쓴이는 더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살해 동기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게 추리소설 애호가이자 편집자로서 나 같아도 죽였을 것 같다, 하하). 한 가지 아쉬운 건 핵심 단서 중 하나에서 편집이 조금 아쉽다는 것. 원서를 봐야겠지만 내 생각에 편집이 조금 잘못 돼서 독자들이 헷갈릴 여지가 있는 단서가 하나 있다. 물론 감상의 재미를 결정적으로 해치지는 않지만 워낙 좋은 작품에서는 자그마한 흠도 크게 보이게 마련이니까. 마침내 자기만의 세계를 일궈낸 앤서니 호로비츠의 신작을 계속 만나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호로비츠 작가님, 충성! 충성! 충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년부터 장장 4년간 부정기적으로 연재했던 알파벳 시리즈의 마지막이다. 고작 이걸 이렇게나 오래 걸렸다니 확실히 추리소설 리뷰어로서는 집중력이 거의 사라졌나 보다ㅠ.,ㅠ 암튼 처음부터 끝까지 관심 가져주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 또 이런 거대(?) 기획물을 쓸지 모르겠지만 곧 다시 만나요^.~

 

 

Villain - 악당

 

선정작 - <서른 개의 관> by 모리스 르블랑

 

 

 

 

 

 

 

 

 

 

 

 

 

최종 후보작 - <시티즌 빈스> by 제스 월터

 

 

 

 

 

 

 

 

 

 

 

 

 

처음 이 알파벳 시리즈를 쓸 때부터 단어 수가 적은 'V'부터 'Z'까지가 난관이 될 것을 직감했는데 예상대로였다. 특히 V는 '빅토리'부터 '빅팀'까지 별의별 단어를 다 떠올려보다가 문득 추리소설 사상 최고의 캐릭터 하나를 소개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다름 아닌 도둑의 왕이자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일단 뤼팽을 낙점하고 악당을 뜻하는 '빌런'이라는 단어를 나중에 끼워맞춘 셈인데, 사실 뤼팽은 쓰리꾼, 빈집털이, 들치기 등을 전문으로 하는 도둑임에 틀림없지만 진짜로 독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악행을 저지른 적은 거의 없으니 본인이 악당으로 소개되는 걸 알았다면 조금 섭섭할지도 모르겠다. 순수문학을 지향했으나 시쳇말로 영 뜨지를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던 작가 모리스 르블랑은 바다 건너 영국에서 매부리코에 날카로운 인상의 명탐정이 신드롬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풍문을 듣자 그와 비슷한 추리소설로 한 재산 일굴 결심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똑같이 탐정을 등장시키는 건 작가로서 자존심이 상하니까 정반대인 도둑을 주인공으로 삼아 전무후무한 대도 아르센 뤼팽 이야기들을 쓰는데, 순수문학으로 갈고 닦은 유려한 필력에 멋진 캐릭터, 처음 써본 것치곤 의외로 재능 있었던 추리소설 플롯 역량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조국 프랑스에서 셜록 홈스만큼의 인기를 얻는 데 성공한다. 그 후 르블랑은 30년 넘는 세월 동안 20여 편의 뤼팽 시리즈를 쓰면서 애초 꿈꿨던 순수문학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못했지만 훈장도 타고, 영화 판권도 팔아서 백만장자도 되고, 세계적인 명사의 지위까지 얻었으니 펜 한 자루로 인생역전을 이룬, 개인적으로 참 부러운 양반이다ㅠ.,ㅠ 코난 도일보다 홈스가 더 유명하듯이 르블랑보다 더 유명한 인물은 당연히 아르센 뤼팽일 터. 범죄자이면서도 저열하지 않고, 바람둥이면서도 추잡하지 않은, 호쾌하고 낭만적인 괴도 이미지는 뤼팽을 삽시간에 문학계의 슈퍼스타로 만들어주었다. 개인적으로 2-3년 전에 모 출판사의 뤼팽 시리즈 출간의 감수 일을 한 적이 있다. 금전적으로는 어디 가서 말하기 민망한 금액을 받고 몇 달간 집에 틀어박혀 7,000페이지 이상을 읽었는데, 꼭 돈을 떠나서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뤼팽 시리즈를 다 읽어볼까 싶어 기쁜 마음으로 일을 맡았었다. 그리고 얻은 깨달음은 다음부터는 절대로 돈을 떠나지 말자...가 아니고 생각보다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가 탁월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우리가 흔히 홈스는 추리, 뤼팽은 모험으로 거칠게 구분하기 일쑤였는데, 찬찬히 다시 보니까 플롯이나 트릭, 반전 등 추리소설로의 장치도 절대 홈스에 뒤떨어지지 않더라. 특히 내가 시리즈 최고작으로 꼽는 <서른 개의 관>은 신비한 섬에서 끔찍한 전설이 재현되어 무려 수십 명의 사람이 죽는 엄청난 사건에서 뤼팽이 천의무봉의 추리를 펼친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싶은, 다분히 환상적인 설정들도 전부 뤼팽의 명추리로 해결되는 걸 보면서 완전히 넉아웃 되는 기분이었다. 뤼팽 팬이라면 <수정마개>나 <기암성>의 모험소설 터치를 더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추리소설 팬으로서는 역시 <서른 개의 관>이 최고 걸작이다. 으스스한 분위기도 일품이니 이번 여름에 꼭 읽어보시길...최종 후보작에 뽑힌 <시티즌 빈스>는 뤼팽보다 더 악당 같지 않은 인물이지만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고, 꼭 많은 독자들에게 진가를 알리고 싶은 작품이라 넣었다. 사실 주인공 빈스가 신용카드 사기꾼이니 악당이라면 악당이 아니겠는가. 물론 앞에 小자가 붙겠지만. 마피아와 일하던 조무래기 사기꾼 빈스는 어쩔 수 없이 법정에 서서 마피아를 고발하고 새로운 신분을 얻는다. 범죄자로서의 과거를 잊고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곧 마피아의 킬러가 그를 제거하기 위해 빈스의 마을에 나타난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쫓기면서도 범죄자로서의 과거를 벗고, 온전한 시민으로서의 재생을 위해 대통령 선거에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한 빈스의 분투가 유쾌하면서도 눈물겹다. 민주사회에서 투표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올해 우리 국민들도 체감해봤으니 아직 안 읽어본 분들이 있다면 소악당 빈스의 시민으로서의 갱생기인 <시티즌 빈스>를 절대 놓치지 마시라.

 

 

Wife - 아내

 

선정작 - <레베카> by 대프니 듀 모리에

 

 

 

 

 

 

 

 

 

 

 

 

 

 

최종 후보작 - <나를 찾아줘> by 길리언 플린

 

 

 

 

 

 

 

 

 

 

 

 

 

원시시대에서 역사가 태동하면서 사회문화적으로 가장 달라진 건 아마도 결혼제도가 아닐까 싶다. 원시시대에는 동굴이나 기초적인 촌락 같은 곳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남편과 아내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공동으로 육아를 했을 듯한데, 요즘 장가 가기가 너무 힘들어 마흔이 다 되도록 혼자 사는 필자 입장에선 역시 옛날이 좋았어, 하며 담배를 빼어물게 된다. 지금 무슨 얘기를-_-;; 아무튼 역사시대로 접어들면서부터 서서히 결혼제도가 정착되면서 일부 특권층을 제외하고는 일부일처의 문화가 자리잡게 되는데, 덕분에 예전에는 하지 않아도 좋았던 고민도 생겨나고 말았다. 결혼이란 게 마치 복권 뽑는 것 같아서 배우자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향후의 인생이 180도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물론 결혼 전에 최대한 알아본다 한들 사람 속이 물 속처럼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도 아니니 배우자의 전모를 완벽하게 파악할 방법도 없다. 남녀를 통틀어 운 좋게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배우자를 만나면 그런대로 한 세상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천성이 음탕하거나 사치스럽거나 무능력하다면 곧장 지옥으로 떨어지는 셈이니까 결혼만큼 신중해야 할 것도 세상에 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이 좋은 사람인줄 알고 결혼했지만 알고 보니 무서운 비밀을 감추고 있었다는 오래된 동화 '푸른 수염' 같은 이야기는 결혼으로 시작되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여성들의 무의식적인 공포를 반영하지 않았을까 싶다. 가난한 고아 처지의 여자가 우연히 매너 좋고 재력 빵빵한 미남 귀족에게 끌려 결혼에 골인했다가 죽은 전처 '레베카'의 그림자에 온갖 고생을 하면서 영혼까지 탈탈 털린다는 <레베카>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소설이다. 작가는 히치콕의 동명 영화와 60년대에 만들어진 <새> 등으로 유명한 영국의 대프니 듀 모리에. 아무래도 여성 작가이기 때문인지 미묘한 심리 묘사가 일품인데, 보잘것없는 신분과 레베카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외모의 여주인공 '나(끝까지 이름이 안 나온다)'가 느끼는 전반부의 자격지심부터 서서히 레베카와 관련된 전모가 드러나는 후반부의 서스펜스까지 단 한순간도 독자들의 주의를 놓아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1930년대 작품답지 않은 레베카의 악녀 포스로 회상 장면조차 없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한 부부의 삶을 나락으로 몰아놓는 대단히 지능적이고 현대적인 캐릭터다. 고딕 로망스처럼 시작하지만 한 구의 시체가 등장하면서부터 탁월한 범죄 추리소설로 전환하는 <레베카>에서 작가가 여주인공의 이름을 보여주지 않는 건 왜일까? 꼭 (이름이 있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더라도, 그 어느 누구도 결혼으로 인한 고초를 겪을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여자가 잘못된(?) 결혼으로 인해 고초를 겪는 소설을 소개했으니 공평하게 이번에는 남자 편으로. <나를 찾아줘>는 불륜을 저지른 남편이, 본인 생각보다 아내가 훨씬 더 무시무시한 인물이었음을 점차 알게 되는 과정이 일품인 스릴러다. 소설도 꽤나 베스트셀러였으며, <레베카>처럼 영화로도 만들어져 대단한 흥행을 기록했다. 가정생활에 얽힌 범죄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른바 '도메스틱 스릴러'의 선구자격인 작품으로 비슷비슷한 플롯의 유사작들이 쏟아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아내가 아니라 그 역전구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요즘 인기 있는 페미니즘의 영향을 타고 히트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독서시장의 주된 손님이 여성들이라 이러한 유행은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X-file - 엑스파일

 

선정작 - <망량의 상자> by 교고쿠 나쓰히코

 

 

 

 

 

 

 

 

 

 

 

 

 

후보작 - <염매처럼 신들린 것> by 미쓰다 신조

 

 

 

 

 

 

 

 

 

 

 

 

 

본격적으로 억지를 부릴 순간이다. 도저히 X로 시작되는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 연전에 대히트한 드라마 <엑스파일>을 가져왔다. 드라마가 하도 흥행해 '초자연적이거나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일에 대한 문건'을 뜻하는 보통명사화됐기에 떳떳하게 사용한다. 우겨봐야 억지라고요-_-? 하여튼 초자연적이거나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일이라면 UFO나 외계인, 초고대문명, 초능력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가 가장 궁금해하는 건 유령이나 요괴 등이 과연 실존할까 하는 것일 터.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넘어, 우리 주변에서 때로는 도움을 주고, 때로는 징벌도 가하는 정체불명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으니 도깨비부터 갓파, 강시, 악마, 뱀파이어, 미이라 등 국적을 불문하고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이야기가 발견된다. 그래도 역시나 유령이나 요괴 이야기의 챔피언 나라는 뭐니뭐니 해도 일본이 아닐까 싶은데, 요괴의 나라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수천 개의 요괴가 오늘도 아이들의 악몽 속에서 활약(?)하고 있단다. 이렇게 요괴가 인기 있는 나라이다 보니 아마추어 요괴 연구가도 많은 게 당연지사. 아무래도 뭐 하나에 꽂히면 상상을 초월하는 오타쿠의 나라답게 요괴 오타쿠도 없으면 이상할 텐데, <망량의 상자>의 작가 교고쿠 나쓰히코가 바로 유명한 요괴 오타쿠이다. 원래는 책표지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지만 취미로 써서 투고한 <우부메의 여름>과 후속작 <망량의 상자>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지금은 요괴를 소재로 한 기묘한 추리소설의 1인자로 우뚝 섰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작품들은 국내에서도 워낙 인기가 있어 자세한 소개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만, 추젠지 아키히코라는 퇴마사(?), 범인의 과거가 그냥(!) 보이는 장미십자탐정 에노키즈, 화자 역할을 하는 괴기소설가 세키구치 등이 요괴의 소행으로만 보이는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조사해나가는 절륜한 재미의 추리소설 시리즈다. 모든 시리즈의 제목에 그 책의 핵심 테마인 요괴 이름이 등장하며, 온갖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굴비 꿰듯 한 달음에 주르륵 꿰어지면서 진실이 드러나는 후반부의 진상 풀이 장면이 트레이드마크. 특히 명작은 <망량의 상자>로 열차 사고 때문에 온 몸이 토막난 소녀와 머리를 들고 다니는 남자, 정체불명의 연구소가 독자들의 혼을 온통 빼놓는데, 거기 더해 주인공 추젠지는 요괴에 대한 잡설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 읽다 보면 대략 정신이 아득해진다. 어렵게어렵게 후반부까지 읽으면 추젠지의 사건 풀이가 보상처럼 주어지는데, 너무도 놀라운 진상이라 그야말로 압권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배경인 1950년대에 비해 지나치게 발달한 과학이나 여러 요소들을 볼 때 리얼리즘에 기반한 추리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캐릭터성이 강한 재패니메이션이나 전기소설 등의 요소가 짙다. 1990년대 후반부터의 라이트노벨 열풍에도 직접적으로 기여한 현대 일본 추리소설의 정점으로 저자의 건강 악화 때문에 후속작들의 출간이 더딘 게 아쉬울 따름이다...교고쿠 나쓰히코의 대성공으로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제법 나왔는데, 역시 요괴전문가 탐정을 등장시킨 미쓰다 신조만큼은 단순히 교고쿠 아류작이라고 부른다면 많이 섭섭할 것 같다. 방랑 환상소설가 '도조 겐야'가 교고쿠 시리즈와 비슷한 시대적 배경인 1950년대의 일본 오지를 돌아다니면서 <산마처럼 비웃는 것>,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등 제목마다 이름이 들어간 요괴와 관련된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 시리즈(쓰고 보니 교고쿠 판박이잖아-_-;;)도 교고쿠 못지않은 수준급의 추리소설들이기에. 밀실 강의나 추리소설에서 목 잘린 시체가 등장하는 이유에 대한 강의를 작중에 넣는 등 교고쿠보다는 정통적인 본격 추리소설에 가까우며, 저자도 캐릭터보다는 추리소설적인 트릭에 더욱 집중하는 눈치이다. 특히 교고쿠 나쓰히코 특유의 살인적인 수다가 없으니 교고쿠 '순한 맛'이라고나 할까, 추리소설 팬들이라면 읽기 훨씬 편하다. '염매'라는 귀신이 무려 십여 명 이상 등장하는 엄청나게 복잡한 추리소설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은 플롯이 복잡한 만큼 해결이 짜릿해 감히 일독을 권한다.

 

 

Yesterday - 과거

 

선정작 - <장미의 이름> by 움베르토 에코

 

 

 

 

 

 

 

 

 

 

 

 

 

 

 

 

최종 후보작 - <핑거스미스> by 세라 워터스

 

 

 

 

 

 

 

 

 

 

 

 

 

예스터데이라고 해서 '어제'라는 뜻보다는 좀 더 광의의 의미인 '과거'를 사용했다. 과거, 즉 역사를 소재로 한 추리소설은 장르의 태동기부터 지금까지 쭉 인기가 있었다. 아무래도 고대 이집트나 당나라, 고대 로마 등 이국적이고 근사한 배경을 등장시키기도 좋고, 시저의 암살이나 십자군 전쟁 등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현장감 있게 묘사할 수도 있어 역사에 흥미가 깊고, 또 웬만큼 역사적 지식도 가진 추리소설가라면 꼭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아닐 수 없다.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석학 움베르토 에코 또한 지식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양반이라 돈도 벌고, 학식 자랑도 할 겸 역사 추리소설을 한 권 썼는데 이 작품이 그 유명한 <장미의 이름>이다. 가톨릭의 위세가 정점에 달했던 중세시대, 가상의 수도원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배스커빌 사람 윌리엄과 제자 아드소. 그들은 (하느님이 천지창조에 걸린 시간인) 딱 일주일 동안 묵시록과 유사한 형태로 살해당한 네 수도사의 죽음을 밝혀낸다. 윌리엄이 '배스커빌' 사람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일종의 셜록 홈스 패스터시이기도 한데, 윌리엄은 당시 기준에서 과학수사를 신봉하며 무려 로저 베이컨의 제자답게 '귀납법'과 '삼단논법' 등의 추리법을 보여줘 완전히 과거판 셜록 홈스이다.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제자 아드소는 당연히 왓슨 역할을 맡는데, 사부 윌리엄은 홈스보다는 인간미가 더 있고 따뜻한 성품이라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제자에 대한 여러 배려들이 흐뭇하게 느껴진다. 추리소설로서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단순히 추리소설로만 평가하기에는 들어간 노고가 좀 아깝다. 종합 지식인답게 교권과 속권이 충돌한 당시의 역사적 배경, 기독교파 사이의 이단 논쟁, 수도원의 세밀한 묘사와 중세인의 생활상 등 모든 부분에서 배울거리가 넘친다. 물론 추리소설의 플롯을 더 좋아하고 집중하는 나로서는 제발 수도원 기둥 묘사보다는 용의자에게 데려가달라고, 하면서 비명이 절로 나오긴 했다만 참고 읽으면 절로 지식이 늘어감을 인정할 수밖에 없긴 하다. 유독 소설책에서도 지식이나 지적인 느낌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독서시장에서는 이러한 점이 특히 잘 먹혀 이미 교양인 필독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기호학이나 중세사에 큰 관심이 없어 교양서로의 가치는 잘 모르겠지만 흥미진진한 역사 '추리소설'로서의 매력만큼은 보증한다...최종 후보작인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는 작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원작이다. <핑거스미스>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배경으로 했다면, <아가씨>는 일제시대랄까. 주인 아씨와 하녀의 이야기가 중심축이라는 건 두 매체 다 비슷하고, 이야기 전개의 3분의 1까지는 완전히 똑같은 진행이다. 하지만 정신병원과 관련된 첫 번째 대반전이 펼쳐지는 순간부터 영화와 원작은 다른 길을 가는데, 내 기준으로는 원작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첫 번째 기함했던 반전과 같은 수준의 놀라운 반전이 두 번이나 더 펼쳐져 그야말로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었다. 물론 <아가씨>도 다른 부분에서 예술적 성취를 거둔 구석이 있겠지만 이야기의 재미만큼은 원작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영화만 보신 분들도 이참에 꼭 원작을 읽어보시길. 저자 세라 워터스는 빅토리아 시대의 레즈비언, 도색소설 등을 연구한 학자로서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을 주로 쓰고 있으며 매 작품마다 높은 완성도로 갈채를 받고 있는 주목할 만한 소설가이다. 

 

 

Zonk - 취하다

 

선정작 - <800만 가지 죽는 방법> by 로렌스 블록

 

 

 

 

 

 

 

 

 

 

 

 

 

 

 

 

최종 후보작 - <밤의 파수꾼> by 켄 브루언

 

 

 

 

 

 

 

 

 

 

 

 

 

 

Z도 마땅한 게 없어서 영어사전을 뒤적였다. 'zonk'라는 듣도 보도 못한 단어가 술이나 약에 '취하다'라는 뜻이라 술에 관한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술은 고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중국 같은 곳에서도 곡주의 유적이 발견될 정도로 오래 됐으며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인류의 충실한 친구로 늘 함께 해왔다. 특히 동서고금의 작가들은 거의 대부분 술을 좋아했는데, 글밥을 암만 먹어봐야 출세와는 큰 인연이 없으니 호의호식과도 거리가 멀기 마련. 그저 부실한 안주에 애꿎은 술병만 붙들고 고달픈 처지를 한탄하며 그나마 시름을 잊는 게 유일한 호사렷다. 만약 운이 좋아 돈푼이나 만지는 작가가 됐다면 그때는 괜찮은 안주에 맛 좋은 술로 대취해서 흥 깨나 누리며 살아갈 테니 역시 술이 빠질 수 있겠는가. 게다가 술에 취한 몽롱한 상태에서 보는 환상 같은 것들이 작품 아이디어에도 도움이 될 수 있어 그런 면에서도 술병을 놓을 수 없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작가만큼 술을 좋아하는 인종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작가들이 이렇게 술을 좋아하니 작가들이 쓰는 소설에도 술이 많이 등장할 수밖에. 60년대부터 현재까지 수십 편의 추리소설을 쓴 로렌스 블록도 술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작가이다. 작가의 대표적인 시리즈 캐릭터인 매트 스커더가 알코올중독으로 고통받으며 사건들을 해결하는 초창기 시리즈들이 특히 그러한데, <800만 가지 죽는 방법>은 책장에서 술 냄새가 날 정도로 술 얘기가 넘쳐난다. 전직 경찰이었던 알코올중독의 사립탑정 매트 스커더는 술에 취하면 더욱 감상적이 돼서 뉴욕 시민 800만 명, 그 하나하나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오직 술병 하나만을 의지하며 고독하게 도시를 방랑하는 하드보일드 탐정 캐릭터는 매트 스커더 이후 하나의 원형으로 굳어졌는데,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나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같은 인기 캐릭터에서도 비슷한 면모를 찾을 수 있다. 매트 스커더는 후기 작품들에서 술을 끊는데,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흥미가 좀 떨어지는 걸 어쩔 수 없더라...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술맛을 돋군 추리소설은 최종 후보작인 <밤의 파수꾼>이다. 아일랜드 추리소설가 켄 브루언의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이 작가가 현재 알코올중독이거나 한때 중독이었다는 데 100만 원도 걸 수 있다. 그만큼 알코올중독자 특유의 기이한 언행이나 또다시 술에 취해 모든 걸 망치고 말았다는 자괴감, 버티고 버티다 끝내 술의 유혹에 무너지는 모습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 사립탐정 잭 테일러가 여고생의 자살사건을 조사하는 이야기인 <밤의 파수꾼>은 추리소설의 플롯보다는 알코올중독자의 내면에 더 집중했고, 흥겹게 술에 취한 아저씨의 어마어마한 유머들이 쏟아진다. 책장을 덮자마다 혼자서(!) 술집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던 진귀한 경험을 하게 해준 책이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에서는 술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애주가로서 따뜻하고 흥겨운 술자리 속에서 범인에 대한 단서를 잡는다거나 추리를 완성시키는 등 즐거운 알코올 미스터리를 봤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하세요. 사랑하는 알라딘 이웃님들.

 

기쁜 소식이 있어 자랑 겸 감사 인사드리려 들렀습니다.

소녀시대 태연과 3년간의 비밀연애 끝에 약혼을 발표한다는 내용은 물론 아니고요^^

 

두어 달 전에 나온 제 졸저 <브라더>가 영화화 계약을 했네요. 

자세히 밝히기는 아직 좀 그렇지만 국내 굴지의 영화사와 도장을 찍었습니다.

처녀작이라 빈틈도 많고 부족한 구석도 많은데 단지 운이 좋아서인 것 같습니다.

책 판매가 솔직히 그저 그래서 용기를 많이 잃었었는데 이번 계약을 계기로

금전적으로나마 정신적으로나마 큰 힘을 얻어 다시 한두 권 더 끄적여볼 것 같습니다.

 

개인 블로그나 활동하는 다른 사이트에는 얼추 소식을 전했는데,

알라딘 서재에는 깜빡 잊고 전하지 않아 늦게나마 글을 남깁니다.

어려울 때는 한 번만 도와달라고 글을 올리고, 조금 좋은 소식이 있으니 까맞게 잊어버리는 게

사람의 얄팍함인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의 얄팍함이 아니라, 그냥 제다이 저 개인의 얄팍함이라고요-_-?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__) 

 

알라딘 이웃님들의 분에 넘치는 많은 관심 덕분에 그나마의 성과를 얻은 듯해

감히 몇 자 남겨봅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aviana 2013-10-14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드려요. 영화도 잘 되기를 바랄게요

사마천 2013-10-14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영화까지 대박나시기를.. ^^

야클 2013-10-14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드디어 뜨시는건가요? ㅎㅎ 축하해요. ^^

jedai2000 2013-10-14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감사드립니다. 그러게요. 영화도 잘 되면 정말 좋겠어요^^

사마천님...넵, 감사합니다! 영화 대박나면 저도 수익의 일부를 얻게 되니 대박나야죠^^

야클님...아이고, 뜨긴요. 아직 멀었고 딱 1센티미터쯤 떴습니다ㅎㅎ 축하 감사합니다!

재는재로 2013-10-15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책은 읽어봤는데 진짜 비정한 암흑가의 이야기더군요 서로 이용해 먹는 의리도 사랑도 없는 비정한 모습이 그야말료 약육강신의 정글 다음 책도 기대합니다 영화 대박 화이팅

프레이야 2013-10-15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정말 축하드려요. 기대됩니다 ^^

BRINY 2013-10-15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되네요. 축하드립니다.

이매지 2013-10-15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박. 축하드려요!

jedai2000 2013-10-15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는재로님...이야, 정말 사서 읽어주셨군요ㅠ.,ㅠ 진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__) 친분이 있다고 넘 과찬해주시는 것 같아요. 첫 책이라 아무래도 부족한 점이 제 눈에는 훨씬 많이 보이더라구요. 영화사에서 잘 각색해주길 바랄 뿐이에요. 고맙습니다!

프레이야님...정말정말 감사합니다! 구체적인 소식 들려오면 꼭 다시 전할게요~

브리니님...기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매지님...대박 축하해주셔서 고마워요^^

노이에자이트 2013-10-15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혹시 하세 세이슈 좋아하신다는 그 분인가요?

영화 주연은 누가 될지 궁금하군요.

jedai2000 2013-10-15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이에자이트님...감사합니다. 하세 세이슈 광팬 맞구요^^ <브라더>에서 살짝 흉내 내봤습니다. 영화 주연은 몇몇 후보는 들었지만 밝힐 수는 없네요.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실로 오래간만에 개인적으로 기쁜 소식이 있어서 올립니다. 이번에 운 좋게도 <브라더>라는 창작 장편소설을 출간하게 되어, 홍보영업광고선전선동을 위해서 한 1년만에 글을 쓰네요. 무명의 신인 작가이다 보니, 출간 직후 열흘이 지나도 별 반응이 없고 조용히 잊히기만 해서 뭐라도 해보자 해서 예전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이곳에 글을 남겨봅니다.

 

요즘은 들어오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서도, 혹시나 간혹 제 서재에 들어오시는 분이 있으면 <브라더> 꼭 기억해주세요. 조폭세계가 주된 배경이지만 추리소설풍의 트릭도 있고, 남녀 4인의 시각으로 전개되는 등 구성적인 면에서도 재주껏 힘을 기울였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을 테지만, 겸허하게 반응을 기다려보고 싶네요. 지금은 악플보다 무서운 무플 상태라ㅠ.ㅠ 솔직히 독자분들의 반응이 너무 궁금하거든요.

 

그럼 모처럼 들어와 홍보영업광고선전선동만 하고 가서 죄송합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클 2013-07-07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대박 나시길!

jedai2000 2013-07-07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대박은 기대도 안 하고요^^;; 소박...아니, 중박만ㅎㅎ 야클님 응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쥬베이 2013-07-07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님!!!!!!!! 제다이님!!!!!!!!!!
이런 완전 대박 소식을 들고 오시다니!!! 이제 소설가 제다이님으로 불러야 하나요??ㅋㅋ
소설가 데뷔 축하드립니다^^
제가 꼭 읽고 서평 남기겠습니다.
사적인 감정없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냉정한(ㅋ) 평가를 내리겠으니 긴장하세요ㅋㅋㅋ

소설가 제다이님 만세!!!!!! ^^

2013-07-07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8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3-07-07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좋은 반응 얻기를 바랍니다^^

이매지 2013-07-08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제다이님 <브라더> 기억하겠습니다. ㅎㅎㅎ

jedai2000 2013-07-08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베이님...아이고, 반갑습니다ㅠ.ㅠ 반가워해주시니 너무 기뻐요. 실은 1년만에 나타나 홍보 글만 띡 던져놨다고 뭐라고 하실까 봐(멘탈이 유리라서요ㅎㅎ) 엄청 걱정했거든요. 이래서 오래된 곳이 좋은 곳인가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냉정...하지 않으셔도^^;; 다시 한 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프레이야님...네,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에 보는 프레이야님 아이디, 너무 반갑네요^^

이매지님...이매지님도 정말 반갑습니다. 브라자도 아닌 브라더! 꼭 기억해주세용. 저도 이제 나이를 먹어서, 아저씨 저질 개그 죄송합니다(__)
 

* 완벽하게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 2010년에 출간된 책만을 포함하며, 당연히 국내에 출간된 모든 일본 미스터리를 읽지는 못했습니다.    

 

 5위 가다라의 돼지 - 나카지마 라모

 
 

 

 

 

 

 

오컬트에 미친 괴짜 소설가 나카지마 라모의 대표작으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주인공은 아프리카 민속학의 권위자 오우베 교수. 8년 전, 그는 현지 연구를 위해 케냐에 온 가족을 데리고 갔다가 사고로 딸을 잃어버린다. 딸의 시체는 찾지 못했지만 죽었을 것이라는 심증은 거의 명백한 상태. 일본으로 돌아온 오우베 교수는 알코올중독에 걸려 시시껄렁한 오컬트 방송에 게스트로 참여하는 웃음거리 신세로 전락한다. 한편 딸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여긴 탓에 실의에 빠진 아내는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사이비 종교에 가입하고, 자연스레 가족은 거의 붕괴 직전. 이 책은 총 3부로 되어 있는데, 1부는 오우베 교수가 탁월한 마술사와 손잡고 아내가 심취한 사이비 종교지도자의 가짜 기적을 폭로하는 내용이다. 2부에서는 다시 아프리카로 떠난 오우베 교수 일행이 무시무시한 아프리카 주술사의 손에서 그의 영능력의 기반이 되는 보물(?)을 되찾아오고, 3부는 보물을 빼앗긴 아프리카 주술사가 일본으로 찾아와 이 대명천지에 주술 대결을 펼친다. 즉, 일본-아프리카-일본의 순으로 진행된다는 얘기. 간단히 말해서 1부는 완전히 일본 드라마 <트릭>이고, 2부는 <솔로몬의 동굴>, <인디아나 존스> 같은 모험물, 3부는 주술이 난무하는 일본식 전기물 같은 느낌이다. 몇 가지 물리트릭이 나오는 1부를 제외한다면 정통적인 추리소설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특히 3부는 어떻게 봐도 추리소설이 아니다), 주술, 밀교 등에 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빠르고 박력 있는 전개에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특히 3부는 스플래터 호러, 좀비물 같은 B급 호러영화 스타일의 흥미도 주니까 그쪽 팬이라면 더 재미있어 할 듯. 잡종 장르 엔터테인먼트물로 강력하게 추천한다.

 
4위 리라장 사건 - 아유카와 데쓰야 

 

 

 

 

 

 

  

일본 추리소설계의 역사적 거장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미지수였던 아유카와 데쓰야의 작품이 출간되었다. 에도가와 란포, 요코미조 세이시, 마쓰모토 세이초급의 작가가 이제서야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아쉽지만, 늦게라도 볼 수 있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유카와 데쓰야는 흔히 철도 알리바이 트릭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국내에서는 이 장르가 그다지 인기가 있다고 볼 수 없어 정통 본격 추리소설 <리라장 사건>이 먼저 소개된 듯하다. '리라장'이라는 여름별장(한정된 공간)에 머무르게 된 일군의 예술가 지망생들(한정된 등장인물)이 하나씩 살해되는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다른 본격 추리소설처럼 경찰들은 무수히 쌓인 단서와 복선을 건드리지도 못하고 변죽만 울리다 두 손을 들어버리며, 결국 죽을 만한 사람이 다 죽고 나서야 명탐정이 슬금슬금 등장해 멋지게 사건을 해결한다. 한마디로 애거서 크리스티 스타일이랄까, 익숙한 만큼 편안하고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다. 흔히 SF소설은 아무리 과학적인 설정을 바탕에 깐다 해도 결국은 비현실의 이야기라는 장르의 특성을 감안하고 읽어야 하는 것처럼, 본격 추리소설의 인공적인 작위성 또한 이 장르의 고유한 특징이 아닐까 싶다. 작가와 독자가 공동으로 합의한 규칙에 따라 공정하게 펼치는 두뇌싸움. 이러한 퍼즐 추리소설의 역사는 벌써 150년이 훌쩍 넘었고, 아직까지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리라장 사건>을 150년 간의 은밀한 즐거움을 아는 모든 독자들에게 권하는 바이다. 개인적으로 고전 본격 추리소설의 팬으로서 앞으로도 <리라장 사건>과 같은 훌륭한 작품이 많이 소개됐으면 좋겠고, 아울러 <검은 트렁크>를 비롯한 아유카와 데쓰야의 철도 알리바이 트릭도 한두 권쯤 꼭 맛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3위 이방의 기사 - 시마다 소지 
 


 

 

 

 

 

 

  

시마다 소지가 창조한 명탐정 미타라이와 왓슨 역할을 하는 이시오카 콤비의 원점이 되는 작품. 작가는 습작 기간 동안 이 작품을 최초로 썼지만 출간이 불발되었고, 오히려 두 번째로 쓴 <점성술 살인사건>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래놓고 몇 년을 잊고 있다가 출판사들의 신작 독촉이 거세지자, 혹시 <이방의 기사>를 재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어보니 이게 웬걸, 지금 발표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내용이 아닌가! 겨울바지 주머니에 만 원짜리 한 장을 넣어두고 다음 해 겨울에 우연히 발견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 공돈이 생긴 듯 신나는 느낌, <이방의 기사>야말로 시마다 소지에게는 복권 같은 짜릿한 책일 것이라는 짐작에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여담이지만 최근 몹시 바쁘기도 하고, 또 스포일러를 당할 우려가 워낙 커서 타인의 추리소설 리뷰를 읽지 않은 지 좀 됐다. 그저 스쳐 지나가면서 덧글이나 볼까 말까 하는 정도인데, 이 작품은 대개 평이 좋지 않은 것 같더라. 국내에 나온 시마다 소지의 작품 중에 <이방의 기사>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조금 아쉽지만 취향 차이를 운운하며 그냥 밀어붙이는 수밖에. 환상의 시체 유기 트릭을 선보인 <점성술 살인사건>이나 황당하리만큼 스케일이 큰 건축 물리 트릭을 사용한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에 비하면 추리나 트릭이 평범해서 반응이 그저 그런 걸까? 일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 <이방의 기사>만의 장점이 다소 평범하고 작위적인 트릭이라는 약점을 충분히 상쇄한다고 믿는다. 중반부에 펼쳐지는 AV(?) 혹은 가츠메 아즈사를 연상시키는 능욕당하는 유부녀와 그 복수담 같은 전개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절절한 로맨스는 그간 트릭 지상주의자로만 보였던 시마다 소지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펼쳐 보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미타라이, 이시오카 콤비의 빛나는 우정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황량한 이방의 땅에서 위기에 처한 이시오카를 구하기 위해 현대의 말, 그러니까 오토바이를 타고 출전하는 기사 미타라이의 장쾌한 모습은 몇 번을 봐도 그저 황홀하다.     


2위 은폐수사2: 수사의 재구성 - 곤노 빈

 
 

 

 

 

 

 

원제는 <과단>. 작년에 출간되었던 <은폐수사>의 속편이다. 세상이 다 아는 고집불통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은 죽어도 안 통하는 원리원칙주의자 류자키가 겪는 새로운 사건을 기다렸던 분들께 무척이나 반가운 작품이 아닐까 싶다. 경찰청 본청의 고위직에서 일하던 전편에서 모종의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일선 경찰서장으로 강등된 류자키. 그는 도내에서 권총 강도가 인질극을 벌이는 사건 현장을 지휘하다가 결국 특공대에게 침투 사살 명령을 내린다. 무사히(?) 범인을 사살하고, 인질을 구출하지만 아뿔싸, 범인의 권총에는 남은 총알이 없었다! 총알도 없는 범인을 사살하다니 과잉대응이라는 비난이 쏟아지지만 류자키는 담담하다. 범인이 총알이 있는지, 없는지를 사전에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이번에도 인질극 현장 대응 매뉴얼을 원칙대로 따랐을 뿐이다. 한편 사살된 범인의 농성 현장을 조사하던 류자키의 부하 경관들은 수상한 증거들을 연달아 발견한다. 과연 류자키는 이번에도 논란을 벗어나 국민에게 봉사하는 국가공무원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전편과 비슷하게 빠른 속도감과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연속되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전편에는 없었던 제대로 된 사건의 수사 과정과 의외의 결말, 반전까지 만끽할 수 있어 딱 두 배 더 재미있다. 작가 곤노 빈은 경찰소설 분야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가로, 다카무라 가오루처럼 가혹할 정도로 정밀하거나, 요코야마 히데오, 사사키 조처럼 비장하지만은 않은 엔터테인먼트형 경찰소설의 제일인자라 불러주고 싶다. 언뜻 보면 재수없는 엘리트지만 알면 알수록 끌리는 류자키라는 캐릭터의 매력만으로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 보장한다.     


1위 마크스의 산 - 다카무라 가오루 
 


 

 

 

 

 

 

 

다카무라 가오루의 전설적인 경찰소설. 1993년에 출간되고 10년쯤 뒤에 작가가 전면 개고한 작품이 이번에 나왔다. 예전에 한 번 본 걸 또 읽을 가치가 있을까 하고 반신반의한 게 사실이지만 막상 읽어보니 역시 예전의 감동은 어디 가지 않더라. 또한 내용적으로도 수정한 부분이 많아 비교해서 읽는 재미도 있었다. 예컨대, 십수 년 전에 미나미알프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를 소상히 기록한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유서가 발견되는 상황 같은 곳은 완전히 새로 썼다. 예전에 나온 단행본판(고려원)과 비교하기 위해서라도 바로 단행본판을 다시 읽을까 생각했지만 이 우울하고 비통한 이야기를 두 번 연달아 읽는 건 도저히 무리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꼭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 모든 이야기의 발아점이 되는 1970년대의 일가족 자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산림노동자의 박살 사건, 그리고 신원을 알 수 없는 백골 사체의 출현을 지나 1991년 현재 도쿄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고다 형사의 활약상을 그린 소설이다. 그러나 고다 형사뿐 아니라 그가 몸담고 있는 수사 1과7계의 모든 형사들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사건 해결을 위해 현장에서 발로 뛰는 그들의 처절한 2주일간의 투쟁의 기록이랄까. 현미경처럼 세밀하고 정교한 수사 과정의 묘사나, 동료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보다 한 발짝 더 앞서 공을 세우기 위한 형사들간의 암투 등은 그전의 어느 경찰소설에서도 본 적이 없다. 가히 입을 못 다물 만큼 압도적인 걸작! 흔히 먹먹하다는 말을 자주 쓰는데, 헤쳐도 헤쳐도 어둠만이 가득한 산을 오르는 '마크스'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그 무엇만큼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장면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이미 현대의 클래식, 비슷한 시기에 나온 어떤 작품과도 비교를 불허하는 경지에 오른 작품이라 생각한다.   

 

 

베스트 단편

<유리기린> 중 '닥스훈트의 우울' - 가노 도모코  


  

 

 

 

 

 

  

올해는 좋은 단편집이 제법 나온 해였다. 따라서 선택이 어려웠지만 여러 단편집 가운데 작품성에 비해 별달리 화제를 불러일으키지 못한 단편집을 골랐다. 가노 도모코의 <유리기린>. 한 고등학생 소녀가 살해되면서 시작되는 이 연작 단편집은 소녀의 죽음이 남긴 것, 그리고 쓸쓸히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첫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살아 있는 상태로 나오지 않는 소녀가 책장을 다 덮을 때쯤에는 피와 살을 가진 분명한 형태로 독자의 가슴속에 맺히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결국 작가의 필력이 뛰어다는 얘기겠지. 다소 무리하게 모든 단편들을 하나로 꿰어맞추려고 시도했던 마지막 단편이 조금 떨어지고 그 외의 모든 단편들이 다 좋다. 탐정 역할을 하는 인물은 소녀가 다녔던 학교의 양호선생. 이중 '닥스훈트의 우울'은 평범한 동네에서 고양이들의 다리가 잇따라 칼로 베이는 사건을 그린다. 다들 알다시피 살아 있는 짐승을 붙잡는 것만 해도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다리에 칼을 댄다면 그 짐승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사방팔방으로 뛰며 난리를 피울 터. 이런 난점에도 불구하고 동네에서는 고양이 피습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이 이야기를 들은 양호선생은 사색이 된다.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더 큰 일이 벌어질 거라고...일상 미스터리풍의 간단한 트릭이지만 논리적으로 말이 되고 소름 끼치는 범인의 악의가 느껴져 뒷맛이 쓴 작품이다. 요즘은 어째 이런 단편이 끌린다. 단순하면서도 통렬하게 의표를 찌르는 그런 단편. 꼭 '닥스훈트의 우울'만이 아니라 모든 단편이 흥미로워 이대로 묻히기에는 영 아쉽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 2011-02-28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위 마크스의 산 ㅠㅠㅠㅠㅠㅠ 정말 여운 긴 이야기에요. 그 다음에 막 흥분해서 산 '조시'는 1권 읽다 말았다는;

2위 곤노 빈. 정말 좋죠? 아주 깔끔하고, 재미난, 별 갈등 없이 주인공 위주로 흘러가는 이야기. 전편도 특이했지만, 2편은 더욱 좋았어요.

3위 이방의 기사는 .... 그냥 사심 가득 담아 나쁘지 않다. 정도

4위 리라장은 작년 일본 미스터리 순위를 거꾸로 하며 개인적으로 뒤에서 4위 정도는 할 수도 있을 것 같; ^^;

5위 가다라의 돼지...가 5위라니! 라고 하지만, 1위가 마크스의 산이다보니 뭐 ^^

무해한모리군 2011-02-28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별찜을 해두고 천천히 봐야겠어요 ^^

jedai2000 2011-02-28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조시>는 공장 묘사가 대박이죠ㅎㅎ 절대 끝나지 않는 기계 묘사-_-;; 결말도 암울하기가 <마크스의 산>의 두 배라죠. 그래도 3편 <레이디조커>까지는 나와줬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ㅠ.ㅠ

곤노 빈은 3편이 소개될지 안 될지 불투명한 것 같은데 꼭 나왔으면 좋겠구요. <이방의 기사>는 개인 취향이 넘 강하게 반영됐어요ㅎㅎㅎ <리라장 사건>은 퍼즐 미스터리로서는 괜찮은 수준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의외네요. <가다라의 돼지>는 정말 신나게 읽었죠^^

고고씽휘모리님...그래요. 다 좋은 작품이니 찬찬히 하나씩 읽어보세염^^

하이드 2011-02-28 23:53   좋아요 0 | URL
곤노 빈 못 나올 것 같다고 하던데, 2편이 재미났고, 입소문의 힘에 힘입어 잘 팔리고, 꼭 나왔음 좋겠어요.

리라장 역시 작가가 싫어서 그러는거니 역시 사심 가득합니다. ^^ 시마다 소지와는 반대의 의미로다가.

<조시>는 읽어보도록 해야겠네요. 여름에 읽어야 좋을 것 같긴 하지만, 우울한 결말이라니, 맘이 갑니다. <레이디 조커> 나오는거 기정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안 나올지도 모른다는 건가요? ㅡㅜ

jedai2000 2011-03-02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시작 출판사 자체가 활동을 안 하는데다, 1, 2편이 썩 잘 나갔다고는 할 수 없으니 3편을 보기 힘들겠죠. <조시>는 늦여름, 가을쯤이 배경인데 가오루 소설 중에서도 가장 어둡고 우울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제가 알기로 S출판사가 <레이디조커>까지는 계약을 안 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