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파더 스텝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1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일본 소설이 시쳇말로 대세다.  자고 일어나면 신간들이 줄줄이 쏟아지는데, 이건 뭐 생전 듣도보도 못한 작가서부터 전일본을 떠르르하게 울리는 대형 작가의 작품까지 그 장르도 다양하다. 이런 비상시국(?)일수록 작가와 작품을 잘 선택해야 지갑에 위기를 초래하지 않고 좋은 작품만 쏙쏙 골라 즐거운 독서 생활을 할 수 있는 법이니 독자들의 제대로 된 안목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미야베 미유키야말로 독자의 안전한 선택에 한 치의 위험도 주지 않는 보증수표 격의 작가다. 7년 연속 일본 유수의 출판 잡지 '다빈치'의 여성 인기작가 순위에서 1위를 했다거나, 평단에서 받은 온갖 상들을 줄줄이 열거하는 건 이제 입이 아플 지경이 됐다. 독자한테 사랑 받고, 평자에게 인정 받는 행복한 작가가 바로 미야베 미유키인 것이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화차> <모방범> <이유> <용은 잠들다> 등의 명실상부한 대표작이 이미 번역되어 나왔고,  <스나크 사냥> <마술은 속삭인다> 등의 초기 수작들도 나올 예정이고, <누군가>와 <이름 없는 독>같은 완전 최신작도 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그녀의 팬이라면 정말 즐거울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 어디서 미유키 책을 안내줄까 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 하던 것도 벌써 옛일이 되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인기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책이 재미있다는 거다. 부동산, 신용카드 남용 같은 현실적인 문제부터 초능력, 염력 등의 낯선 소재, 시대소설부터 판타지까지 관심사도 무궁무진한데 그 다양한 소재를 미스터리 터치를 섞어 흥미진진하게 잘 풀어내는 감각이 있다. 적어도 미야베 미유키는 자신이 추리소설가라는 자각을 갖고 있고,  어떤 장르의 작품을 쓰더라도 미스터리 특유의 수수께끼 푸는 맛을 살리려 노력한다. <스텝 파더 스텝>도 다소 가벼운 유머 소설에 가깝지만 이런 미야베 미유키만의 특징은 여전해 추리소설적인 재미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한 마디로 일반 독자와 미스터리 독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줄 아는 영리한 작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모두들 공감하는 미야베 미유키 작품의 온기야말로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게 된 직접적인 이유일 것이다. 그녀는 미스터리 소설가다. 작품에서 사람도 죽고, 범죄도 일어나고, 도둑질도 벌어진다. 하지만 모든 작품의 결말에는 비록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라 해도 용서하고, 동정하며, 이해하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담담하게 배어 있다. 약하고 부족한 인간이라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는 긍정적인 작가의 마음에 결국 우리도 깊이 공감하고 만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든 작품에는 작가 특유의 인간애와 사랑이 녹아들어가 있어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갈증으로 목이 타는 사람이 물을 계속 찾게 되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관계에 대한 갈증을 느껴본 사람이 미야베 미유키 책을 찾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다.

<스텝 파더 스텝>은 작가의 휴머니즘(?)을 잘 드러내주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우연히 가짜 부자 관계가 된 도둑과 쌍둥이가 서로의 필요를 넘어 진짜 아버지와 아들로 환골탈태한다는 내용은, 핏줄을 뛰어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야말로 진짜 가족의 조건이 아닐까, 하는 소박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하기야 남보다 못한 가족도 많은 터에 과히 틀린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이런 거창한 이야기는 관두고 단순하게 봐도 굉장히 재미있다. 7편의 단편들은 모두 유쾌하고 소박한 코지 미스터리로 손색이 없다. 다루고 있는 사건들도 끔찍한 게 아니라, 난데없이 전혀 관계 없는 지방신문이 집에 투척되는 사건(?) 등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이다. 본격적인 미스터리 소설로 보기엔 트릭이 약한 감이 많지만 가벼운 미스터리 풍의 유머소설로 본다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의 화자인 도둑이 약간 시니컬하게 내뱉는 현대 사회와 일그러진 가족 관계에 대한 (그다지 맵지 않은) 풍자를 보면 아주 가볍지는 않은 작품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아봐야 헛수고이고 우물가에서는 우물물을 찾아야 하듯이, <스텝 파더 스텝>에서는 작가가 공들여 준비한 유머를 찾아 즐기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 같다. 특히 중학생 쌍둥이가 한 마디씩 말을 번갈아가며 하는 버릇을 보여줄 때가 아주 귀엽고 재미있다. 흉내내고 싶어질 정도다. 때로는 배꼽을 간지르는 듯한 가글가글한 유머부터 천장을 날려버릴 대폭소까지 웃고 즐길 구석이 많은 작품으로 무료한 시간을 그닥 골머리 썩여가며 보내고 싶지 않은 분들께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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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09-21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요즘 일본 작가의 책이 무지 많이 나오고 있어요. 따라잡기 벅찹니다. @@

jedai2000 2006-09-22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더 나올 것입니다..-_-;; 여기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모르겠네요. 독자 입장에서야 재미있는 책이 많아지는 거니까 좋긴 하지만, 직업적으로는 일본 소설 판권료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썩 좋지만은 않네요. -_-''

하이드 2006-09-22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베 미유키.가 이렇게 웃기게 쓸 수도 있다는걸 안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어요 ^^ 어여어여 나머지 작품들도 다 소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jedai2000 2006-09-2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안에 2권 정도 더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다재다능한 작가죠. <스텝 파더 스텝>이야 다소 가볍지만, 작가가 다양한 걸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의의가 있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