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호평일색인 고지전을 보았다.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은 너나할 것 없이 장기에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담고 있다. 더하여 전쟁이란 적을 역사를 가진 하나의 '인간'이 아닌 '괴물'로 보아야만 한다는 것도, 인간으로 보는 순간 한 인간을 소멸시킬 만큼의 명분을 찾기란 너무나 어려운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빼어났고, 고지전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우리나라 산악지형의 좁은 시야 속에서의 전투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작위적이고 밍밍한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 

 일전에 읽고 여러번 리뷰를 쓰려다 실패한 차가운 피부가 문득 생각이 난다. 너무나 얇고 어디선가 읽어 본듯한 줄거리인데 읽고나니 머리속은 복잡하고 속도 약간 미쓱하다. 타자, 폭력, 집착과 사랑, 고독과 광기, 인간의 정의까지 많은 질문을 던진다.  

 이 책 속에 남자는 인간들하고 한 일년 떨어져 조용하게 고독을 씹으며 책이나 읽으려고 남극에 기상관으로 지원한다. 아니 그런데 이놈의 남극에 오자마자 자신을 공격하는 차가운 피부를 가진 바다괴물들과 매일밤마다 싸워야 하는 신세다. 죽이고 또 죽여도 그들은 또 나온다. 그러나 그가 미워하는 것은 진정 죽이고 싶은 것은 차가운 바다 괴물이 아니라 자신을 무시하고, 죽음앞에 내버려둔 전임 기상관이다! 인간이란 이렇게 복잡미묘하다.  

뭐랄까 고지전에 인물들은 너무 전형적이다. 그들이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도 너무 단선이고 감정도 남북 모두 할 것 없이 모두 하나다. 그래서 인가? 여하간 결론은 차가운 피부를 여름나기용으로 추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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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09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고고씽휘모리님 :)

[차가운 피부] 꼭 읽어봐야겠네요. 줄거리 보니까 박민규의 '양을 만드신 그분께서 당신도 만드셨을까'였나요, 그 단편이 떠오르네요. 매일 같이 신호음이 울리면 정체모를 괴물들과 사투를 벌여야하는 일상의 반복, 그게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도 이상할 거 없을 것 같아요.

무해한모리군 2011-08-10 08:3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말없는수다쟁이님
정말 두려운건 우리안에 폭력이 있다는 것보다 그 폭력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인거 같아요.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군대 같은 조직에서 한번 엄청난 폭력을 타인에게 저지르고 나면 그 이전의 상태로는 갈 수 없는 것 말이지요.. 그러니까 저 위의 주인공들은 어떤 의미에서 다 죽은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로 2011-08-09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지전 봤는데 님과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하지만 이제현인가?? 그 사람 죽는 장면은 정말 뭉클했어요!!ㅜㅜ

무해한모리군 2011-08-10 08:39   좋아요 0 | URL
저는 흐릿한 시야밖에서 중공군이 몰려올때요 --;;
정말 무서웠을거 같아요...
인간목숨이 정말 하찮던 그 시간이 불과 얼마전이라는게 놀라워요.
영화에 잠깐 나오는 낙동강 전투 이야기를 저는 어려서 많이 들었거든요.
어린 학도병들이 정말 많이 죽어서 우리집 앞에 비석도 있었어요..
그걸 미화하는 영화들에 비하면 훨씬 낫다는 생각도 들고요.

무스탕 2011-08-09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지전 보면서 '배우랑 스텝이랑 대따 힘들었겠다..' 하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어요;;;

무해한모리군 2011-08-10 08:36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전투신이 약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던데 실제 전투는 오히려 이 영화 같았을거 같아요.. 산을 타고 또 타고 ㅎㅎㅎㅎ 장비든 스텝들이 더 고생했겠지요..

마늘빵 2011-08-09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지전 잘 만든 오락 영화라고 봐야. ^^ 이미 써먹은 소재를 새롭게 만들긴 했지만, 그 이상은 없는.

무해한모리군 2011-08-10 08:37   좋아요 0 | URL
너무 상업적으로 안전한 길을 간거아닐까요?
화자를 신하균으로 선택한 것도 그렇고 ^^
물론 오마이에 나온 것처럼 '이명박 정권'하에 이런식으로 한국영화를 그렸다는 게 의미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요.

하늘바람 2011-08-10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지전보다 차가운 피부가 더 읽고픈데요

무해한모리군 2011-08-11 13:02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이 차가운 피부 같은 어린이 작품을 만들면 멋질 거 같아요.
요즘 아이들 작품은 내용이 무거운 것도 많더라구요.

순오기 2011-08-12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지전에서 어린 중대장의 목욕 장면이 특히 작위적이었어요.
굳이 그런 장면을 넣어 몸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는지.
하지만 고지전이 하고픈 말은 관객 모두 알아들었으니 됐지만...

무해한모리군 2011-08-12 18:13   좋아요 0 | URL
마지막 장면이 제겐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