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의 로마사 3부작의 첫번째 권인 임페리움은 돈도 없는 저 로마 외곽 촌뜨기 신인 정치인 키케로가 어떻게 권력을 움켜지는 지를 보여준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경멸해 마지 않는 대상과도 과감히 손을 잡고, 대중의 마음을 얻기위해 화려한 쇼와 호의를 배풀기도 한다. 이 책을 읽노라면 정치란 그저 권모술수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도 키케로를 보면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뒤꿈치라도 좀 따라가줬으면 하는 점이 여럿 보인다.
첫째로 그 성실함이다. 이 사람 키케로는 (비록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에 한해서이기는 하지만) 매일매일 유권자들의 애로사항을 듣는다. 물론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을 때만 움직일지라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가도 된다고 생각하고, 움직이지는 않더라도 이야기를 듣기라도 하는게 어딘가.
둘째로 타협이다. 이 책 속의 키케로의 목표는 오직 집정관, 즉 권력을 얻는 것이므로, 그것을 얻기위해서 때로는 상처입을지라도 과감한 타협을 감행한다. 그러서 그는 '정치의 발견'에서 언급된 것처럼 작은 승리를 얻을 수 있다. 꼬장꼬장한 원칙을 지키다 판을 깨버리거나, 그 후과로 서민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할지 모를 결정이 통과되게 해버린 사람들은 이 고대 정치인에게 배울지다.
셋째로 말이다. 정치에서 말이 차지하는 부분은 얼마나 클까? 우리나라 국회를 생각해보면 말보다야 체력을 키우면 될듯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키케로는 말로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오른다. 또 우리가 아는 오바마도 말로 3년반만에 미국 대통령을 거머진다. (물론 두사람 다 말 뿐이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치인들이여, 몸싸움 좀 그만하고 말로 타협도 하고, 말로 내 마음을 설레게 해 선거운동에도 뛰어들게 해 주시라.
나는 신인이야. 때문에 너희들 외에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나는 집정관을 원해. 그건 불후를 의미하고 당연히 싸워볼 만한 전리품이잖아? 그리고 여기는 로마야. 로마. 철학이 논하는 관념상의 이상향이 아니라 부패의 강위에 세워진 영광의 도시란 말이다. 그러니까 받아들여 필요하다면 기꺼이 카탈리나라도 변호하겠어.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그를 내칠 거야. 물론 그도 그렇게 하겠지. 우리가 사는 세계가 바로 그런 곳이니까. - 361쪽
"로마는 단순한 지리가 아닙니다. 로마는 강, 산, 심지어 바다 따위로 정의되어서도 안 됩니다. 혈통과 인종과 종교의 문제도 아닙니다. 로마는 하나의 이상이어야 합니다. 우리 조상이 저 산에서 내려와 법의 이름 아래 공동체 삶을 구현한 이후로 1만년, 로마는 인류가 이룩해놓은 가장 고귀한 자유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관중들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그들은 그 권리를 없는 이들을 위해 사용하여야 하며, 시민권이야말로 불의 비밀만큼이나 소중한 특권이자 문명의 증거라는 말로 연설을 마쳤다. - 385쪽
그 순간 나는 루키우스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말, 말, 말. 늘 말뿐이로군. 말을 솔깃하게 만드는 자네 재주엔 도무지 한계라는 게 없는 건가? - 462쪽
키케로에 대한 평가는 각양각색일지라도 그는 기억에 남는 정치인이 되었다.
정치적 발견에서 다시 몇 마디 따와서 적자면, 선한 의도를 위해 어디까지 구정물에 발을 담궈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현실적 정치야심을 지닌 더 많은 투철한 소명의식과 마음을 움직이는 말로 무장한 정치인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을 다리삼아 나같은 무지렁이도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더 많은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
로마를 다룬 그 많은 영화와 책이 하지 못한 일을 이 책이 해냈다. 늘 어려운 이름들 때문인지 읽고나면 금새 잊어버린던 로마가 드디어 내 머리속에 생생히 자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