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냉동고를 열어라
송경동
불에 그을린 그대로
150일째 다섯구의 시신이
얼어붙은 순천향병원 냉동고에 갇혀 있다
까닭도 알 수 없다
죽인 자도 알 수 없다
새벽나절이었다
그들은 사람이었지만 토끼처럼 몰이를 당했다
그들은 사람이었지만 쓰레기처럼 태워졌다
그들은 양민이었지만 적군처럼 살해당했다
평지에선 살 곳이 없어 망루를 짓고 올랐다
35년째 세를 얻어 식당을 하던 일흔둘 할아버지가
25년, 30년 뒷골목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할머니가
책대여점을 하던 마흔의 어미가
24시간 편의점을 하던 아내가
반찬가게를 하던 이웃이
커피가게를 하던 고운 손이
우리의 처지가 이렇게 절박하다고
호소의 망루를 지었다
돌아온 것은 대답없는 메아리였고
너무나도 신속한 용역과 경찰의 합동작전이었다
6명이 죽고 십여명이 다치고
또 십수명이 구속되었다
이웃이 이웃을 죽였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이었다
단지 쓰레기를 치웠을 뿐이니
단지 말을 잘 듣지 않는 짐승 몇을 해치웠을 뿐이니
경찰과 용역깡패들과 정부와
대통령은 아무런 죄도 없었다
그렇게 6명이 죽고도
이 사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수의 시민들이 차벽과 연행에 맞서
양심의 촛불을 들고
추운 겨울부터 더운 초여름까지
어둔 거리에서 쫓기며 항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들 역시 수배되거나, 체포되거나, 소환당했다
용산참사를 말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었다
용산참사를 추모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유가족들이 다시 경찰에 밟히고 희롱당했다
하루 이틀 날짜가 쌓여 다섯달이 되었다
하, 유가족들의 피눈물이 다섯달이 되었다
하, 이웃들의 원통에 찬 한숨이 다섯달이 되었다
하, 죽어서도 무슨 죄를 그리 지어
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 날이 다섯 달이 되었다
그런데 민주주의 사회라고 한다
민주주의가 용산에서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는데
열린 사회라고 한다
억울한 죽음들이 다섯달째 차가운 냉동고에 감금당해 있는데
살만한 사회라고 한다
150일째 다섯구의 시신이
차가운 냉동고에 갇혀 있다
150일째 우리 모두의 양심이
차가운 냉동고에 억류당해 있다
150일째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차가운 냉동고에 처박혀 있다
150일째 이 사회의 역사가 전진하지 못하고
차가운 냉동고에 얼어붙어 있다
150일째 우리 모두의 분노가
차가운 냉동고에서 시퍼렇게 얼어붙어가고 있다
150일째 우리 모두의 뜨거운 눈물이
차가운 냉동고에서 꽁꽁 얼어붙어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는 우리의 용기가 갇혀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의 권리가 묶여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 자식들의 미래가 갇혀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 모두의 것인 민주주의가 볼모로 갇혀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 모두의 소망은
평등과 평화와 사랑의 염원이 주리틀려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거기 너와 내가 갇혀 있다
너와 나의 사랑이 갇혀 있다
너와 나의 연대가 갇혀 있다
너와 나의 정당한 분노가 갇혀 있다
제발 이 냉동고를 열자
너와 내가, 당신과 우리가
모두 한마음으로 우리의 참담한 오늘을
우리의 꽉 막힌 내일을
얼어붙은 이 시대를
열어라, 이 냉동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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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말한다
[절박한 것은 어쩌면 살아있는 우리들인지도 모른다. 죽은 자들은 아직도 식지 않은 분노로 푸르딩딩하다. 냉동고의 철문을 꽉 끌어안고 열어주지 않는다. 이렇게 떠날 수는 없다고 그들은 아직도 산 우리들을 향해 시위 중인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한복판을 점거 중인지도 모른다. 이 분노의, 차가운 냉동고를 열어주자.]
때로는 이 아무 조건 없이 분노할 수 있는 죽음에 노무현전대통령의 죽음의 반 만큼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사람들이 미워지기도 했다. 참으로 긴 시간 잊혀지고, 고립되어 거기 서울의 한가운데 아직 그들이 있다.
너른 평수의 아파트, 조금 더 많은 돈돈돈, 여기저기 개발.. 언제까지 욕심에 눈이 어두워 인간다운 삶을 포기할 것인가. 아파트 한평에 살부비고 살던 이웃의 목숨 하나랑 바꾸어야 하는가. 이 죽음을 잊지 말자. 나부터..
용산촛불과 7월 19일(일) 4시 시청광장에 더 많은 사람이 모이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잊지말기를
어서 저 냉동고의 문이 열리기를
서른번째 생일의 첫 소원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