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산(山) /신대철
춥다. 눈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걸어야 할까? 잡념과 머리카락이 희어지도록 걷고 밤의 끝에서 또 얼마를 걸어야 될까? 너무 넓은 밤, 사람들은 밤보다 더 넓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이름을 붙여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
이름으로 말하고 이름으로 듣는 사람들
이름을 두세 개씩 갖고 이름에 매여 사는 사람들
깊은 산(山)에 가고 싶다. 사람들은 산(山)을 다 어디에 두고 다닐까? 혹은 산(山)을 깎아 대체 무엇을 메웠을까? 생각을 돌리자, 눈발이 날린다.
눈꽃, 은방울꽃, 안개꽃, 메밀꽃, 배꽃, 찔레꽃, 박꽃
나는 하루를 하루종일 돌았어도
분침 하나 약자의 침묵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들어가자, 추위 속으로.
때까치, 바람새, 까투리, 오소리, 너구리, 도토리, 다람쥐, 물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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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 배우 강신일씨의 낭독의 발견에 다녀왔습니다.
서른명 정도의 방청객이 옹기종기 무대 바로 앞에서 앉아 한시간 정도 녹화를 했습니다.
강신일씨는 한국 연극계의 로버트드니로라고 불렸다 하지요.
최근 간암투병을 하셨다는데 다시 건강해지신 모습을 뵈어 무척 기뻤습니다.
말씀을 나눌 때는 그저 무뚝뚝하고 말없는 경상도 싸나이가,
연극 대사를 읊을 때는 어찌나 열정적인 예술가의 모습으로 변모하던지요.
연극<변>에서 춘향을 향해 마음을 열라는 변사또의 대사는
'아 배우란 작품을 소화해 그 숨결까지 관객에서 이해시켜주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녹화의 마지막은 연극의 한대목인 김민기씨의 노래를 불러주셨습니다.
노래와 읊조림의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 그 곡조가 마음을 애잔하게 울려주었습니다.
금요일밤 12시에 방송된다네요. 이런 프로야 말로 온가족이 시청해도 좋을텐데 너무 늦은 시간에 하네요. 여의도의 봄이 참 아름다울 때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방청가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