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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일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더군다나 그것이 법과 제도로 정해져 있다면 정말 문제가 있는 거지요. 사형이란 제도 말입니다. 이미 사형이란 제도를 폐지한 몇몇 나라들이 존재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여전합니다. 구태의연한 법과 제도, 문화 탓도 존재하지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때문 아닐까요? 사형. 누군가를 죽였기 때문에 응당한 대가로서 너도 죽어야 한다는 그 논리가 익숙해진 사람들의 심성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과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처벌에 다름 아닙니다. 속된 말로 '화풀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어떤 여지도, 가능성도 남겨두지 않은 곳, 그곳은 바로 사형입니다.
<전도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희망이 있다. 비록 개라고 하더라도, 살아있으면 죽은 사자보다 낫다."(9:4)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희망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살아있음, 그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러주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는 내내 저는 이 전도서의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희망이 있다...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희망인지...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사인지...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를...
"그래도 산다는 것, 죽을 것 같지만, 죽을 것 같다. 이건 사는게 아니야, 라고 되뇌는 것도 삶이라는 것을. 마치 더워 죽겠고 배고파 죽겠다는 것이 삶이듯이,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삶이듯이, 그것도 산 자에게만 허용되는 것, 그러므로 삶의 일부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제 죽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바꾸어서 말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303쪽)
윤수의 죽음 앞에서 유정은 이렇게 읊조리고 있었습니다. 오직 산 자에게만 허용되는 그 삶의 일부를 이제 유정은 감사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잘 살겠다고. 윤수의 죽음으로 인해서 그녀는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사형이라는 제도를 존속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모니카 신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도, 극악무도한 인간이라 해도, 설사 악마의 화신이라 해도 그를 포기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지요. 우리는 모두 전적으로 선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누구도 결백하지만은 않으니까, 우리는 다만 조금 더 착하고 조금 더 악하니까, 산다는 것이 속죄를 하든 더 죄를 짓든 그 기회를 주는 것인데 그래서 우리한테는 그걸 막을 권리가 없는 거니까......"(302쪽)
이처럼 산다는 것은 기회를 주는 것인데도, 그걸 막을 권리가 없는 우리 인간들은 기회를 박탈해버립니다. 기꺼해야 조금 더 선하거나 악한 인간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천부인권설. 본래 사람의 목숨이란, 인간의 권리란 하늘로부터 부여된 것이기에 사람이 어찌해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한 인간의 목숨을 업수이 여기는 것은 아닐지요. 그저 죄에 대한 대가라는 이유로 말입니다. 미래도, 희망도 없이 말입니다. 그간 우리들은 "모른다"는 말로 그 진실을 외면하며 살아 오진 않았는지요. 그러나 이제 인간에게 주어진 한 생이 그 무엇보다 소중함을,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그간 잊고 살아왔던 우리 사회의 일면을 재삼 바라보게 됨으로서 말입니다. 그 속에 뒤섞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한 공지영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그 행복한 시간 속으로 초대해주신 것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