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달라이 라마
당신에게도 용서할 수 없는 게 있지
용서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내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한 가지 용서하면
신은 나의 잘못을 두 가지나 용서한다고
살면서 얼마나 많이 남을 용서했느냐에 따라
신이 나를 용서한다고
불쌍한 내 귀에 아무리 속삭여도
달라이 라마
당신에게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슬픔이 있지
용서만이 인간의 최선의 아름다움이 아닐 때가 있지
내가 내 상처의 뒷골목을 휘청거리며 걸어갈 때
내가 내 분노의 산을 헉헉거리며 올라가
기어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릴 때
아버지처럼 다정히 내 어깨를 감싸안고
용서하는 일보다 용서를 청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용서할 수 없으면 차라리 잊기라도 하라고
거듭거듭 말씀하셔도
달라이 라마
당신에게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분노가 있지
히말라야의 새벽보다 먼저 일어나
설산에 홀로 뜬 초승달을 바라보며
문득 외로움에 젖을 때가 있지
야윈 부처님의 어깨에 기대어
용서보다 먼저 눈물에 젖을 때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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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비젠탈의 <해바라기>였던가?
달라이 라마는 "나는 어느 누군가에게, 그리고 인류 전체에게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우리가 기꺼이 용서해야 한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시에서 시인은 불유쾌한 심기를 드러낸다.
용서라는 문제는, 그렇게 한가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용서는 실제로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 듯 싶다. 오히려 '용서'보다, '먼저 눈물 젖을 때가 있'다는 그의 말이 절절한 건 너무나도 쉽게 용서를 말하는 우리네 종교의 습속 때문이리라.
외로움에 잦아드는 눈물이 의지에 선행한다는 분명한 사실을 시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