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드는 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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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10-30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려야 할 것들을 기꺼이 버려두고 왔습니다.
아프지요, 아프지요.
하지만 방하착에 이른 운신은 비로소 물이 들테죠.
가장 황홀한 빛깔로요.

프레이야 2007-10-31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참 좋으네요. 시월의 마지막날, 왜 이리 쓸쓸도 한지요..

바람결 2007-11-01 00:39   좋아요 0 | URL
시 참 좋지요, 그나저나
쓸쓸하셨다구요...
저 또한 많이 쓸쓸했던 날이었습니다.
시월이 지나면 가을이 갈 것만 같아
더욱 그러했습니다.

쓸쓸함...가을이 남기는 마지막 선물인가요...?

비로그인 2007-11-04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결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

바람결 2007-11-05 12:13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알리샤님~^^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님도 잘 지내고 계신지요?

날이 춥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따뜻한 날 되었으면 좋겠어요.
행복한 날들 되세요~^^
 

 27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치는 사람에게는, 다른 뺨도 돌려대고, 네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는, 속옷도 거절하지 말아라. 30 너에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 것을 가져 가는 사람에게서 도로 찾으려고 하지 말아라. 31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 32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33 너희를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너희가 좋게 대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한다. 34 도로 받을 생각으로 남에게 꾸어 주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죄인들에게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너희는 가장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누가복음 6: 27-36, 표준새번역)

............................................

 소설가 박완서 님의 묵상집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을 읽던 중에 “자화상”이란 제목의 글이 내내 마음에 남아, 지난 주일에는 청년들과 함께 글을 읽으며 몇 마디 나누었어요. 글에서 본문 삼았던 누가복음 6장 27절부터 36절의 말씀을 중심 삼아서요. 읽고, 묵상하기를 반복한 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갈무리하여 잠깐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한 나이 어린 청년의 몇 마디가 저에게 죽비를 후려칩니다.

“아무개 형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라는 제 물음에, 단박에,

“이해가 안돼요.”

"......"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죠? 왜 예수님은 이렇게 살라는 거에요. 이 말씀은 거짓말 같아요.”

“......아무개 형제, 저 너무 기쁘고, 슬퍼요. 왜 이 참 말씀이 거짓말 같아졌을까요? 혹시 세상이 거짓말 같아진 건 아닐런지요?”

“모르겠어요. 더 생각해봐야겠어요.”

 저의 고백처럼, 너무 기쁘고 슬펐습니다. 이렇게 정직한 대답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에 기뻤구요, 참은 사라지고, 거짓이 판치는 세상은 슬픔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박완서 님은 “저는 그렇게 못살겠습니다”라고 손사래쳤나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거절하고 돌아서면 다시 예수라는 사내가 문득 그리워 돌아보고, 돌아오고 그러길 몇 차례. ‘자화상’처럼 자꾸만 들여다본 나는 어느덧 예수에 잇댄 존재였겠지요. 그래요. 이렇게 살라고 하는 예수를 따르는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살라고 여전히 요청하는 예수 당신 때문이겠습니다. 아니요, 덕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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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0-30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 저도 갖고 있지요.
아무개 형제의 마음이 순순해 보입니다.
이렇게 살라고.. 저도 다독여보고 갑니다.^^

바람결 2007-10-30 22:03   좋아요 0 | URL
이렇게 살면,
이렇게 살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요?
아름다운 세상일테지요...
 

젖지 않는 마음 - 편지 3

 

여기에 내리고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습니다

지게도 없이

자기가 자기를 버리러 가는 길

길가의 풀들이나 스치며 걷다 보면

발 끝에 쟁쟁 깨지는 슬픔의 돌멩이 몇 개

그것마저 내려놓고 가는 길

오로지 젖지 않는 마음 하나

어느 나무그늘 아래 부려두고 계신가요

여기에 밤새 비 내려

내 마음 시린 줄도 모르고 비에 젖었습니다

젖는 마음과 젖지 않는 마음의 거리

그렇게 먼 곳에서

다만 두 손 비비며 중얼거리는 말

그 무엇으로도 돌아오지 말기를

거기에 별빛으로나 그대 총총 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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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서 우셨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아득했던 만큼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내내 엷어졌는데요.

할머니는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무슨 작심이라도 하신 듯 지난 1년간 고이 쟁여두었던 할아버지의 옷가지며, 물품들을 커다란 상자에 담아 내놓으셨습니다. 그렁이던 눈물이 모르게 흘러내리고, 할머니는 고개를 돌리셨는데요. 저는 아무 할 말 없어 그냥 상자를 나릅니다.

나도 이제 무언가를 꾸려 태우고,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인생의 종착 즈음에 나를 위해 눈물 흘려줄 익명의 사랑을 떠올렸습니다. 세월에는 항상 주름이 있듯이 주름진 사랑이란 걸 조금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늘은 푸르렀구요. 자욱한 연기들에 하나씩 하나씩 할아버지의 자취들이 가뭇없이 사라질 때, 할머니는 저 멀리 할아버지의 산소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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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0-27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해가 갈수록 기억은 그리움으로 더 진해질 것입니다.
할머니 마음, 제 마음이 짠해집니다.
오래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더 오랜 세월을 사시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납니다. 그해도 벌써 십사년 전이네요. 쓸쓸한 가슴 한켠 쓸어가며 사셨을
외할머니의 마음이 이제야 느껴지니 말입니다.
바람결님 고요한 토요일 저녁이에요. 주일 은혜로이 보내시기 바랍니다.

바람결 2007-10-27 19:26   좋아요 0 | URL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해가 갈수록 더께오는 그리움들.
그걸 감내해내는 것이 사랑의 완성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어요.

고요한 저녁인데요, 저 산 위에 휘영청 밝은 달이 걸려있군요.
참 좋은 날입니다. 혜경님도 남은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훈미러브 2007-10-27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일년....
참 시간이 빨리 흘러가네요~

일년전 장례식장에서 나눔이 생각나네요~

바람결 2007-10-29 02:14   좋아요 0 | URL
시간 참 빠르죠?
저도 아직 그 시절이 생각나는데요...
 

어제요 순한 친구와 함께 한 잔 했는데요

시집 그만 보라고 얘기하대요 저는 그만 피식 웃어버렸는데요

아마도 친구가 보기엔 시로 하여 제가 지난 사랑에 대한 아픔과 기억을 재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나봐요 그래서 한 마디 했거든요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이 "시를 읽는 일은 영혼의 상처를 소독하는 일이야"

그랬나봐요

우리는 일쑤 상처를 봉합하고 수습하는데만 골몰했지 정작 그 상처를 씻어내고 소독하는 일에는 알면서도 게을렀어요 아니 무서워서 그랬나봐요

저무는 가을녘 마을버스 한 켠에 앉아 시집을 읽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저녁, 아펐구요 눈물도 쬐금 낫지만 그래도 참을만 했어요 참고 싶었어요

 

여전히 파주의 하늘은 푸르렀고, 금촌의료원 앞길을 거닐며 그 누군가를 비나리하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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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0-26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읽는 일? !!
바람결님, 어제 그곳엔 비가 왔나 봐요.
시월이 가고 있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바람결 2007-10-26 22:26   좋아요 0 | URL
잠깐 비가 와서 날이 맑아졌나봅니다.
저무는 시월 하늘 참 좋은 날이었어요.
저는 이런날 경춘선 열차를 타고 고향집에 내려왔답니다.^^

혜경님도 행복한 하루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