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치는 사람에게는, 다른 뺨도 돌려대고, 네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는, 속옷도 거절하지 말아라. 30 너에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 것을 가져 가는 사람에게서 도로 찾으려고 하지 말아라. 31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 32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33 너희를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너희가 좋게 대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한다. 34 도로 받을 생각으로 남에게 꾸어 주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죄인들에게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너희는 가장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누가복음 6: 27-36, 표준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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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완서 님의 묵상집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을 읽던 중에 “자화상”이란 제목의 글이 내내 마음에 남아, 지난 주일에는 청년들과 함께 글을 읽으며 몇 마디 나누었어요. 글에서 본문 삼았던 누가복음 6장 27절부터 36절의 말씀을 중심 삼아서요. 읽고, 묵상하기를 반복한 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갈무리하여 잠깐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한 나이 어린 청년의 몇 마디가 저에게 죽비를 후려칩니다.
“아무개 형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라는 제 물음에, 단박에,
“이해가 안돼요.”
"......"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죠? 왜 예수님은 이렇게 살라는 거에요. 이 말씀은 거짓말 같아요.”
“......아무개 형제, 저 너무 기쁘고, 슬퍼요. 왜 이 참 말씀이 거짓말 같아졌을까요? 혹시 세상이 거짓말 같아진 건 아닐런지요?”
“모르겠어요. 더 생각해봐야겠어요.”
저의 고백처럼, 너무 기쁘고 슬펐습니다. 이렇게 정직한 대답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에 기뻤구요, 참은 사라지고, 거짓이 판치는 세상은 슬픔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박완서 님은 “저는 그렇게 못살겠습니다”라고 손사래쳤나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거절하고 돌아서면 다시 예수라는 사내가 문득 그리워 돌아보고, 돌아오고 그러길 몇 차례. ‘자화상’처럼 자꾸만 들여다본 나는 어느덧 예수에 잇댄 존재였겠지요. 그래요. 이렇게 살라고 하는 예수를 따르는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살라고 여전히 요청하는 예수 당신 때문이겠습니다. 아니요, 덕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