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서 우셨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아득했던 만큼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내내 엷어졌는데요.

할머니는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무슨 작심이라도 하신 듯 지난 1년간 고이 쟁여두었던 할아버지의 옷가지며, 물품들을 커다란 상자에 담아 내놓으셨습니다. 그렁이던 눈물이 모르게 흘러내리고, 할머니는 고개를 돌리셨는데요. 저는 아무 할 말 없어 그냥 상자를 나릅니다.

나도 이제 무언가를 꾸려 태우고,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인생의 종착 즈음에 나를 위해 눈물 흘려줄 익명의 사랑을 떠올렸습니다. 세월에는 항상 주름이 있듯이 주름진 사랑이란 걸 조금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늘은 푸르렀구요. 자욱한 연기들에 하나씩 하나씩 할아버지의 자취들이 가뭇없이 사라질 때, 할머니는 저 멀리 할아버지의 산소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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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0-27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해가 갈수록 기억은 그리움으로 더 진해질 것입니다.
할머니 마음, 제 마음이 짠해집니다.
오래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더 오랜 세월을 사시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납니다. 그해도 벌써 십사년 전이네요. 쓸쓸한 가슴 한켠 쓸어가며 사셨을
외할머니의 마음이 이제야 느껴지니 말입니다.
바람결님 고요한 토요일 저녁이에요. 주일 은혜로이 보내시기 바랍니다.

바람결 2007-10-27 19:26   좋아요 0 | URL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해가 갈수록 더께오는 그리움들.
그걸 감내해내는 것이 사랑의 완성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어요.

고요한 저녁인데요, 저 산 위에 휘영청 밝은 달이 걸려있군요.
참 좋은 날입니다. 혜경님도 남은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훈미러브 2007-10-27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일년....
참 시간이 빨리 흘러가네요~

일년전 장례식장에서 나눔이 생각나네요~

바람결 2007-10-29 02:14   좋아요 0 | URL
시간 참 빠르죠?
저도 아직 그 시절이 생각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