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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박에 조선사 - 역사 무식자도 쉽게 맥을 잡는 ㅣ 단박에 한국사
심용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유난히 역사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특히 조선사의 단면들을 매우 좋아한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는 장면, 요동정벌을 꿈꾸었던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허무하게 죽는 장면,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권을 빼앗는 장면, 연산군이나 광해군과 같은 왕들의 축출되는 장면, 그리고 얼마 전 영화로도 만들어진 영조에 의해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장면 등, 조선사는 매 순간마다 드라마틱 한 장면들이 숨어져 있다.
[단박에 조선사]는 이런 조선의 초기와 중기까지의 역사를 그림과 함께 재미있게 정리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심용환 작가의 단박에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교과에서 배운 획일적인 역사가 아니라, 다양한 시간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 배운 암기식 역사는 단순히 선과 악의 이분법 구조를 통해 역사를 평가했었다. 그러나 심용환 작가는 다양한 시각과 입장에서 역사의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한국사를 배울 때 우리는 어떤 왕은 좋은 왕, 어떤 왕은 나쁜 왕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분류로 역사를 배웠었다. 예를 들어 연산군이나 광해군, 선조 등은 나쁜 왕이고, 세종대왕이나 영조나 정조 등은 좋은 왕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단순히 왕들과 그들의 업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상황과 다양한 시각에서 왕들의 정치와 업적을 평가한다. 또한 단순히 한반도에 갇혀 있는 역사가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세계 역사와의 관계에서 한국의 역사를 다시 조명하고 있다.
[단박의 조선사]는 고려 말기 공민왕의 시대부터 시작된다. 나름 결단성을 가지고 원의 세력을 몰아내고 나라를 새롭게 하려 했던 공민왕의 개혁이 무너지고, 정도전이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조선 초기에는 정도전의 유학 이념과 조준의 과전법을 통해 체계적인 국가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비록 정도전이 이방원에 의해 죽고 주변 인물들이 실권을 잃었지만, 태조 이방원은 정도전의 개혁을 그대로 이어가며 조선의 기틀을 만들어 간다. 저자 역시 조선이라는 나라가 정도전이 만들었던 시스템대로 발전되었다고 강조한다.
"정도전은 태조에 의해 제거된 후 조선 말인 고종 때가 되어서야 간신히 복권돼요. 그것도 경북궁을 건설했다는 공로로 복권됐으니 치졸한 느낌마저 있죠. 하지만 조선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방향 자체가 정도전 그리고 그와 같은 꿈을 꾸었던 사람들의 기대대로 나아갔다는 걸 생각하면 누가 감히 '정도전과 그들'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요." (P 50)
그러나 세종으로 이어지면 찬란하게 빛났던 조선의 영광은 단종과 세조 때부터 무언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비록 세조가 왕권을 잡은 후 여러 가지 치적이 있었지만, 세조가 김종서 등을 죽이고 정권을 차지한 계유정난 이후 조선의 기틀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저자 역시 계유정난이 조선의 발전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쳤음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계유정난으로 인한 후유증이에요. 정통성이 없는 자가 강제로 국왕이 되었고, 그를 도운 한명회가 단수에 공신이 되어 중앙 정계를 장악하는 것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권력자게에 줄 서고 눈치 잘 보면 출세할 수 있다는 신념이 광범위하게 퍼질 수밖에 없었겠죠. 나아가 세조의 통치 방식에서 나타난 공신 우대 정책이나 사람을 관직에 쉽게 쉽게 임명하고 자르고 하는 좋지 못한 정치 문화가 등장하고 맙니다. 계유정난은 역성혁명이나 왕자의 난과는 분명히 다른 성격을 띱니다. 왕자의 난 역시 권력 쟁탈전이라는 특징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애초 건국이 되고 나면 공신 간의 피비린내 나는 혈투가 있기 마련이고, 이를 통해 세력 관계가 정리되면서 나라가 안정되는 경향을 보이거든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됐건 왕자의 난은 건국 후 갈등의 전형이에요. 더구나 최종적인 승리자인 태종이 공신과 외척 문제를 철저하게 정리했고, 세종의 치세가 30여 년이나 이어졌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정치 질서가 확립된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계유정난의 여파는 이런 안정적 발전에 심각한 내적 위기를 만든 셈이에요." (P 100-1)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계유정난과 세조의 통치에 대한 저자의 평가이다. 단순히 세조 시대의 평가가 아닌 굴곡된 현대사의 모습까지 투영되어 있는 듯한 저자의 평가에 많은 공감을 느끼며 읽었다.
"누군가의 욕망이 음모와 불법을 등에 업고 관철되고 나면, 이에 동참했던 사람들이 대가를 요구하기 마련이죠. 목숨을 걸고 공을 세웠으니까요. 마냥 보상만 해줄 수 없으니 견제를 해야겠고, 그러다 보면 전체적인 상황은 더욱 기괴해지고 맙니다. 사회적 공공성의 상실이 어떤 파급효과를 미치는 세조의 일생을 통해 증명해 보인답니다." (P 103)
그 후의 역사는 계속되는 당쟁과 외척들의 권력싸움이었고,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광해군을 보는 시각이다. 일방적으로 폭군으로 해석되는 연산군과 달리, 광해군의 다양한 측면으로 해석되는 왕이고, 최근에는 긍정적인 면으로 많이 해석된다. 그러나 저자는 이 부분이 친일 학자들의 영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광해군이 비록 외치는 어느 정도 잘 했지만, 내치에 있어서는 거의 자기 파괴적이 수준이었다고 말한다. 이이첨과 같은 사람들에게 휘둘리며 적대세력들을 숙청하는 공포정치를 했고, 그 결과 정작 인조반정이 일어났을 때는 궁궐을 지킬 인물조차 없었다는 것입니다.
"정치 지형도는 해가 갈수록 나빠지는데 광해군의 태도는 해가 갈수록 우유부단해집니다. 이조판서를 5년간 임명하지 못한 적도 있고 병조판서 역시 비슷한 수준이었답니다. 조정에서 격렬한 쟁론이 벌어지면 그에 부흥해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광해군은 점점 느슨해지기만 합니다. 이른바 공포정치를 주도한 이이첨의 정치공작이 광해군으로서는 차라리 편할 수 있는 사정이었죠. 정치에 일일이 간여하지 않아도 알아서 일이 돌아간다고 느꼈을 테니까요." (P 324)
이렇게 조선의 역사는 점점 기괴해져 가다가 영조와 정조 때 잠시 회복이 된다. 이 책은 영조와 정조를 마지막 부분으로 다루고 있지만, 저자의 정조에 대한 해석 역시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했다. 정조의 개혁을 부분적인 개혁이나 현실에 타협한 개혁으로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정종이 인사에 있어서 외척이나 국왕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을 등용했고, 당쟁 역시 그의 시대에 더 심해졌다고 본다. 그럼에도 잘못된 해석이 정종을 영웅시 하고 있다고 본다.
"정조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업적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선 후기 어떤 국왕보다도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업적을 일구어냈으니까요. 여기에 더하여 정조를 위대한 개혁가로 바라보고자 하는 역사학자들의 욕망이 투영돼 '그이 집권이 지속되었다면', '세도정치가 없었다면'식의 가정을 하면서 정조가 근대화의 기초를 놓았다는 과장된 주장마저 나오게 된 거죠. (P460)"
저자의 책을 읽으며 그동안 단순한 시각으로만 바라보았던 조선의 역사와 왕들의 평가가 조금 더 입체적이고 다양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아쉬웠던 부분은 기존의 단박에 시리즈가 특정한 시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서 깊이 있게 역사를 설명하고 해석할 수 있었다면, 이번 시리즈는 조선시대 전반을 다루고 있어서 깊이에 있어서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역시 두 세 권으로 나누어져서 조금 더 깊이 있게 조선사의 부분들을 해석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