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박에 조선사 - 역사 무식자도 쉽게 맥을 잡는 단박에 한국사
심용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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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역사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특히 조선사의 단면들을 매우 좋아한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는 장면, 요동정벌을 꿈꾸었던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허무하게 죽는 장면,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권을 빼앗는 장면, 연산군이나 광해군과 같은 왕들의 축출되는 장면, 그리고 얼마 전 영화로도 만들어진 영조에 의해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장면 등, 조선사는 매 순간마다 드라마틱 한 장면들이 숨어져 있다.

 

 

[단박에 조선사]는 이런 조선의 초기와 중기까지의 역사를 그림과 함께 재미있게 정리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심용환 작가의 단박에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교과에서 배운 획일적인 역사가 아니라, 다양한 시간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 배운 암기식 역사는 단순히 선과 악의 이분법 구조를 통해 역사를 평가했었다. 그러나 심용환 작가는 다양한 시각과 입장에서 역사의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한국사를 배울 때 우리는 어떤 왕은 좋은 왕, 어떤 왕은 나쁜 왕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분류로 역사를 배웠었다. 예를 들어 연산군이나 광해군, 선조 등은 나쁜 왕이고, 세종대왕이나 영조나 정조 등은 좋은 왕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단순히 왕들과 그들의 업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상황과 다양한 시각에서 왕들의 정치와 업적을 평가한다. 또한 단순히 한반도에 갇혀 있는 역사가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세계 역사와의 관계에서 한국의 역사를 다시 조명하고 있다.

 

 

[단박의 조선사]는 고려 말기 공민왕의 시대부터 시작된다. 나름 결단성을 가지고 원의 세력을 몰아내고 나라를 새롭게 하려 했던 공민왕의 개혁이 무너지고, 정도전이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조선 초기에는 정도전의 유학 이념과 조준의 과전법을 통해 체계적인 국가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비록 정도전이 이방원에 의해 죽고 주변 인물들이 실권을 잃었지만, 태조 이방원은 정도전의 개혁을 그대로 이어가며 조선의 기틀을 만들어 간다. 저자 역시 조선이라는 나라가 정도전이 만들었던 시스템대로 발전되었다고 강조한다.

 

 

"정도전은 태조에 의해 제거된 후 조선 말인 고종 때가 되어서야 간신히 복권돼요. 그것도 경북궁을 건설했다는 공로로 복권됐으니 치졸한 느낌마저 있죠. 하지만 조선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방향 자체가 정도전 그리고 그와 같은 꿈을 꾸었던 사람들의 기대대로 나아갔다는 걸 생각하면 누가 감히 '정도전과 그들'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요." (P 50)

 

 

그러나 세종으로 이어지면 찬란하게 빛났던 조선의 영광은 단종과 세조 때부터 무언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비록 세조가 왕권을 잡은 후 여러 가지 치적이 있었지만, 세조가 김종서 등을 죽이고 정권을 차지한 계유정난 이후 조선의 기틀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저자 역시 계유정난이 조선의 발전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쳤음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계유정난으로 인한 후유증이에요. 정통성이 없는 자가 강제로 국왕이 되었고, 그를 도운 한명회가 단수에 공신이 되어 중앙 정계를 장악하는 것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권력자게에 줄 서고 눈치 잘 보면 출세할 수 있다는 신념이 광범위하게 퍼질 수밖에 없었겠죠. 나아가 세조의 통치 방식에서 나타난 공신 우대 정책이나 사람을 관직에 쉽게 쉽게 임명하고 자르고 하는 좋지 못한 정치 문화가 등장하고 맙니다. 계유정난은 역성혁명이나 왕자의 난과는 분명히 다른 성격을 띱니다. 왕자의 난 역시 권력 쟁탈전이라는 특징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애초 건국이 되고 나면 공신 간의 피비린내 나는 혈투가 있기 마련이고, 이를 통해 세력 관계가 정리되면서 나라가 안정되는 경향을 보이거든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됐건 왕자의 난은 건국 후 갈등의 전형이에요. 더구나 최종적인 승리자인 태종이 공신과 외척 문제를 철저하게 정리했고, 세종의 치세가 30여 년이나 이어졌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정치 질서가 확립된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계유정난의 여파는 이런 안정적 발전에 심각한 내적 위기를 만든 셈이에요." (P 100-1)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계유정난과 세조의 통치에 대한 저자의 평가이다. 단순히 세조 시대의 평가가 아닌 굴곡된 현대사의 모습까지 투영되어 있는 듯한 저자의 평가에 많은 공감을 느끼며 읽었다.

 

 

"누군가의 욕망이 음모와 불법을 등에 업고 관철되고 나면, 이에 동참했던 사람들이 대가를 요구하기 마련이죠. 목숨을 걸고 공을 세웠으니까요. 마냥 보상만 해줄 수 없으니 견제를 해야겠고, 그러다 보면 전체적인 상황은 더욱 기괴해지고 맙니다. 사회적 공공성의 상실이 어떤 파급효과를 미치는 세조의 일생을 통해 증명해 보인답니다." (P 103)

 

 

그 후의 역사는 계속되는 당쟁과 외척들의 권력싸움이었고,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광해군을 보는 시각이다. 일방적으로 폭군으로 해석되는 연산군과 달리, 광해군의 다양한 측면으로 해석되는 왕이고, 최근에는 긍정적인 면으로 많이 해석된다. 그러나 저자는 이 부분이 친일 학자들의 영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광해군이 비록 외치는 어느 정도 잘 했지만, 내치에 있어서는 거의 자기 파괴적이 수준이었다고 말한다. 이이첨과 같은 사람들에게 휘둘리며 적대세력들을 숙청하는 공포정치를 했고, 그 결과 정작 인조반정이 일어났을 때는 궁궐을 지킬 인물조차 없었다는 것입니다.

 

 

"정치 지형도는 해가 갈수록 나빠지는데 광해군의 태도는 해가 갈수록 우유부단해집니다. 이조판서를 5년간 임명하지 못한 적도 있고 병조판서 역시 비슷한 수준이었답니다. 조정에서 격렬한 쟁론이 벌어지면 그에 부흥해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광해군은 점점 느슨해지기만 합니다. 이른바 공포정치를 주도한 이이첨의 정치공작이 광해군으로서는 차라리 편할 수 있는 사정이었죠. 정치에 일일이 간여하지 않아도 알아서 일이 돌아간다고 느꼈을 테니까요." (P 324)

 

 

이렇게 조선의 역사는 점점 기괴해져 가다가 영조와 정조 때 잠시 회복이 된다. 이 책은 영조와 정조를 마지막 부분으로 다루고 있지만, 저자의 정조에 대한 해석 역시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했다. 정조의 개혁을 부분적인 개혁이나 현실에 타협한 개혁으로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정종이 인사에 있어서 외척이나 국왕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을 등용했고, 당쟁 역시 그의 시대에 더 심해졌다고 본다. 그럼에도 잘못된 해석이 정종을 영웅시 하고 있다고 본다.

 

 

"정조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업적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선 후기 어떤 국왕보다도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업적을 일구어냈으니까요. 여기에 더하여 정조를 위대한 개혁가로 바라보고자 하는 역사학자들의 욕망이 투영돼 '그이 집권이 지속되었다면', '세도정치가 없었다면'식의 가정을 하면서 정조가 근대화의 기초를 놓았다는 과장된 주장마저 나오게 된 거죠. (P460)"

 

 

저자의 책을 읽으며 그동안 단순한 시각으로만 바라보았던 조선의 역사와 왕들의 평가가 조금 더 입체적이고 다양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아쉬웠던 부분은 기존의 단박에 시리즈가 특정한 시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서 깊이 있게 역사를 설명하고 해석할 수 있었다면, 이번 시리즈는 조선시대 전반을 다루고 있어서 깊이에 있어서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역시 두 세 권으로 나누어져서 조금 더 깊이 있게 조선사의 부분들을 해석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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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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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내가 살던 마을에는 채석장이 있었다. 마을에서 보면 그냥 민둥산이었지만, 도로 쪽에서 보면 포클레인과 중장비들이 언덕을 깎고 있는 절벽이었다. 절벽 위에서 채석장 밑을 바라보면 커다란 포클레인이 손바닥만 하게 보이는 아득한 높이였다. 마을에서 큰 도로로 나가기 위해서는 채석장을 한참 돌아야 했다. 채석장의 절벽 위로 지나가는 짧은 길이 있기는 했지만, 위험해서 어른들이 절대로 다니지 못하게 하는 길이었다. 어느 날인가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해가 질 무렵이었는데, 채석장 절벽 위의 작은 길을 책가방을 메고 아무런 생각 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돌부리에 걸렸는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한쪽은 언덕이었지만, 다른 한쪽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이었다. 다행히 언덕 쪽으로 넘어졌기에 손바닥만 찢기는 정도의 상처를 입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방금까지는 몰랐던 사실을 순간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아득한 절벽 속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세상을 살면서 그때와 비슷한 감정을 몇 번이나 느껴보았다. 아무렇지 않게 세상을 걷고 있지만 내 삶의 한 쪽에는 까마득한 절벽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언제든지 내가 그 절벽으로 떨어질 수가 있다는 것을. 삶이 송두리째 절벽 속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절망감과 상실감을 몇 번이나 경험한 후에야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 절망감과 상실감을 표시 내지 않고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초등학교 시절 절벽에 떨어졌을 뻔했던 그날도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그리고 집으로 걸어왔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무 일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학교에 다녀왔다는 인사를 했다. 어쩌면 지금도 그 일을 반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손홍규 작가의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이라는 산문집을 읽으며 그렇게 절벽 속으로 떨어지는 마음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되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시대, 다른 삶을 살아왔던 그의 삶에서 느꼈던 그가 느꼈던 절망감과 상실감을 마치 내가 경험한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어떤 때는 그 감정이 너무 강렬해서 책장을 덮고 한참을 멍하게 있어야 했다.

 

 

책에서는 작가가 느꼈던 그 감정을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다. 그의 어린 시절 집에는 소가 한 마리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흔히 생각하듯 그도 소와 교감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소가 무례한 인공수정사에게 억지로 인공수정을 당하고, 송아지를 낳고, 또 팔려가는 과정 속에 그는 커다란 상실감을 경험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아버지와 어른들이 겪었을 절망감을 떠올린다.

 

 

“우시장 초입의 국밥집에서 호기롭게 거간꾼에게 한턱을 낸 뒤 잔뜩 취해 돌아오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취하지 않고서는 갔던 길을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 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긴 뒤 소머리 국밥집에 앉아 방금 떠나보낸 소를 생각하며 소주를 마시지 않고서는 길눈조차 어두워지고 마는. 생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허둥대는 그들처럼 아버지 역시 취해야 돌아올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P 19)

 

 

그는 이런 절망감을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에서도 발견한다. 아버지가 생사를 오가는 수술을 하던 날,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가는 순간도, 마취를 하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순간도, 그리고 예정보다 몇 시간이 지나서 생사를 오가는 순간도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이 분노로 바뀌어가는 순간, 그는 건물 구석 벤치에서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그렇게 혼자 두려움과 절망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잘리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동네 어른에게 아버지가 탈곡을 하다가 손가락이 탈곡기 안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혼자 집을 지켜야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린 손에 붕대를 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일터로 나갔다. 그러나 이미 아버지는 예전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작가는 그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느꼈던 절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절망을 말하고 싶다. 절망한 사람을 말하고 싶다. 절망한 사람 가운데 정말 절망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를 말하고 싶다. 멀쩡하게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인데 깊이 절망한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이토록 진부하게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손가락을 잃은 뒤로 아버지가 어떻게 절망했는지, 절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절망하지 않은 사람처럼 살아왔는지를 쓰고 싶다.” (P 75)

 

 

그가 타인의 눈에서 느꼈던 그 절망감은 단순히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에게서 만이 아니다. 그는 절망감에서 버티며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을 볼 때마다 그때의 감정을 떠올린다고 말한다. 그의 아버지는 손가락이 잘린 후 논을 팔고 트럭을 사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 말주변이 없었던 아버지는 매번 실패를 했고, 그때마다 절망 속에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는 아버지의 장사를 따랐다가 아버지에 무능력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썩인 감정으로 돌아왔던 저녁을 떠올린다.

 

 

“고창 읍내에서 고향 집까지 가면서 내가 보았던 건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전조등이 비친 만큼만이 열려 있었고 우리가 지나가면 그 공간 역시 어둠에 잠겼다. 끝도 없는 어둠 속을 헤치고 나가면서 아버지의 삶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기분이었다. 차갑고 드문 어느 골목 초입에 결코 팔릴 것 같지 않은 물건을 늘어놓은 노점상 앞을 지날 때거나 퇴직금으로 장사를 시작한 게 분명해 보이는 중년의 부부가 자신들의 가게 구석에 시름에 잠겨 멍하니 앉은 걸 보게 되면 그이들이 서 있는 경계, 그이들이 잘할 수 있는 일과 잘할 수 없지만 살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일의 경계라고 할 수 있는 그날 선 자리에 발바닥을 베이지 않고 부디 오래오래 서 있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P 205-6)

 

 

한 해를 마감하며 다들 살기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단지 뉴스에서만 듣는 소식이 아니다. 주변의 사업을 하는 친척이나 장사를 하는 지인들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어느 때에는 알 수 없는 의미의 눈빛으로 모든 것을 접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그때는 그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도저히 이해하거나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말하는 그 절망감과 상실감이 바로 그 눈빛이었으면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이 책에서의 작가처럼 바래 본다. 절망에서 빠진 이들이 삶의 경계에서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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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수를 죽이고 - 환몽 컬렉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0
오쓰이치 외 지음, 김선영 옮김, 아다치 히로타카 / 비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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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영화나 만화를 보면서 주인공을 통해 나 자신의 투영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어린 시절이 고달팠거나, 학창시절에 학교와 성적에 압박을 당하며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그런 어두운 현실을 벗어나게 하는 잠시의 이상적인 인물이 있었을 것이다. 내 또래의 친구들에게는 마징가 Z나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시키고는 했다. 여자친구들은 캔디나 들장미 소녀 하이디였던 것 같은데, 그 시절 여자친구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기에 잘 알지는 못한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는 홍콩 영화의 주인공들을 좋아했다. 성냥개비 하나를 물고, 절대로 총알이 떨어지지 않는 총을 들고 난사를 해다는 주윤발이나 유덕화와 같은 홍콩 르와르 영화의 주인공들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현실에 적응하면서부터 이런 인물들과 분리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오쓰이치의 [메리 수를 죽이고]는 현실의 고달픔을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음울하고, 때로는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그중 이 소설집의 대표 작품인 [메리 수를 죽이고]는 흔히 이야기하는 한 오덕 소녀의 성장기이다. 주인공은 뚱한 체구에 친구들에게 인기가 없는 외톨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잊기 위해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 빠져있다.

"나는 초라한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먹는 걸 워낙 좋아해서 그런지 체형은 호빵 같았고, 소극적인 사고방식에 말재주도 없고, 굼뜨고, 뭘 해도 자신감이 없으며, 누가 말을 걸면 얼굴을 붉히고, 웃음소리는 흉하고, 촌스러운 안경을 쓰고 있어 이성은 물로 동성에게도 무시당했으며 반에서는 음침하고 기분 나쁜 여자로 인식되고 있었다. 살아봤자 좋은 일은 하나도 없어, 내가 왜 살고 있는지 스스로 의아할 정도였다. 그런 나도 창작물의 세계에 푹 빠져 있을 때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P 179-180)"

주인공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판타지 만화와 소설 동호에게 들어갔고, 그곳에서 가사라기 루카라를 필명으로 소설을 쓰기 한다. 비록 고등학교 친구들이 돌려보는 유치한 소설이었지만, 제법 글 실력을 인정받아 인기를 얻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녀의 소설마다 '메리 수'가 등장하는 것이었다.

메리 수란 유명한 영화나 게임의 세계관을 그대로 가져와 2차 소설을 쓸 때 흔히 등장하는 전형적인 캐릭터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을 투영해 이상화시킨 인물로 대부분 미소년이나 미소녀로서 청소년의 나이에 함대를 지위하거나 무한한 능력으로 전쟁을 승리하는 등의 허무맹랑한 존재이다. 스타트랙이라는 영화의 2차 소설에서 메리 수라는 열다섯 살의 여자 주인공이 등장한 후 이런 특성을 가진 주인공들을 메리 수라고 부른다. 루카는 자신의 소설에서 메리 수가 등장하지 않게 온갖 노력을 한다. 그럼에도 어떤 소설을 써도 메리 수가 등장한다. 그만큼 자신이 현실에서 억눌려 있고, 다른 자신을 꿈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루카는 자신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 운동을 하고, 사람과 대화를 하고, 여러 가지 취미를 익히며 자신 안에 메리 수에 대한 마음을 없애려 한다. 그렇게 점점 성장하다 보니 이제는 그녀의 소설에 더 이상 메리 수가 등장하지 않게 된다. 문제는 이제는 현실을 도피하지 않기 위해 소설을 쓰고자 하는 마음조차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킹카가 되어 대학생 생활을 하던 그녀는 우연히 예전의 자신의 소설의 메리 수를 만나게 된다. 작가의 대부분의 소설처럼 판타지적인 소설이지만, 단순히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소녀의 성장 과정을 매우 깊이 있게 보여 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집에는 중단편 정도의 분량인 [염소자리 친구]라는 소설도 실려 있다. 구약성경의 아사셀의 염소라는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소설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마다 한 마리의 염소를 택해 광야로 내 보낸다. 자신들의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보내는 것이다. 이것을 아사셀의 염소라고 부른다. 이 소설도 판타지적 요소가 있지만, 단순히 판타지 속에서 학교 폭력의 처참함을 묘사하고 있어서 너무 인상 깊게 일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 있게 읽은 소설은 처음에 실려 있는 [사랑스러운 원숭이의 일기]이다. 이 소설 역시 성장소설이다. 특이한 것은 저자의 다른 소설과는 달리 판타지적 요소가 없다는 것이다. 있었는데 내가 지나치고 읽었을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은 주인공은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로부터 잉크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잉크를 버리려던 주인공은 우연히 잉크를 다시 줍고, 잉크를 쓰기 위해 일기를 쓰고, 일기를 쓰면서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조급은 빠른 호흡을 통해 한 남자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그 짧은 이야기에 인생과 치유가 담긴 소설이다. 특히 주인공이 가정을 이루고 아내와 자녀가 자는 모습을 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툇마루에 어머니를 남겨두고 나나코와 가케루가 있는 다다미방으로 돌아갔다. 한 이불을 덮고 잠든 두 사람은 눈을 감은 얼굴이 서로 쏙 빼닮았다. 나는 두 사람을 깨우지 않도록 조심 쓰레 가방에서 일기장과 잉크병과 펜을 꺼내 그날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탁상 조명의 불빛 아래 글씨를 써 내려가는데 어느 틈에 나나코가 눈을 뜨고 내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행복한 얼굴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내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와 만난 의미. 카케루가 태어난 의미. 어머니가 나를 낳은 의미. 아버지가 어머니와 만나 의미. 뭔가 왈칵 치밀어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지금, 이 장소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다만 기적 같았다. 지금, 내 곁에 나나코가 있고, 가케루가 존재해,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몹시 소중하게 느껴졌다. 가케루. 내가 태어난 의미 바로 그것. 내 미래의 결정체. 그리고 나는 또한 아버지를 생각했다. 예전에 품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증오, 작가를 뒤따르려 가족을 버리다니 어리석은 남자다. 하지만 그 감정도 이제는 풍화되어 버렸다. 시간이라는 바람에 깎여나가 뾰족했던 부분이 곡선을 띠었다. 지금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네"라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내 펜으로 글을 쓰게 된 것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P 22-3)"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작가가 여러 가지 필명으로 섰던 다양한 스타일의 소설이 등장한다. 특히 마지막 [에바 마리 크로스]라는 소설은 인간 악기라는 소재를 등장시켜 마치 에드가 엘런 포우의 소설처럼 어둡고 기괴하다. 오래전 영화인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의 분위기도 풍긴다. 그럼에도 작가의 소설에 한결같이 등장하는 주제는 바로 '상처받은 인간'이다. 상처 받은 한 인간이 치유되는 과정을 소설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그 인간이 작가의 메리 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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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 관계 편 - 아이와 엄마가 함께 행복해지는 감동 부모 수업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인젠리 지음, 김락준 옮김 / 다산에듀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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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3년이 조금 못 되는 기간 동안 아이를 키운 것이다. 아내가 임신한 기간까지 합치면 3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 아이를 만났다. 그 기간 동안 매 순간이 두렵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는 순간이었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는 혹시 아이가 잘 못되면 어떡하나 무척 조심을 해야 했고, 태어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감기라도 한 번 걸려서 아이의 열이 40도를 육박하면 부부가 밤 잠을 설치며 긴장해야 했다. 이와 함께 매 순간이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아이가 처음 걸을 때부터 시작해서, 아빠와 엄마라는 단어를 말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까지 하는 순간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함을 느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아이가 육체와 함께 마음이 쑥쑥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점점 자신의 주관을 가지게 되면서 점점 더 긴장을 하게 된다. 혹시나 이 시기에 우리 부부가 아이를 잘 못 양육하여 아이가 비뚤어지거나 고집스러운 아이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그러기에 더 아이의 마음을 살피게 되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을 하게 된다.

이런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부부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이라는 책이다. 원래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쓰인 책이지만, 나와 같은 아빠들이 읽어도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중국인인 '안제리'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중국에서 [좋은 엄마가 좋은 선생님을 이긴다]라는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후, 수많은 엄마들의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 편지에 대한 대답을 엮은 책이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이란 책이다. 이 책은 '관계 편'과 '학습 편' 두 권으로 되어 있다. 관계 편은 주로 엄마가 아이를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많고, 학습 편에서는 아이의 학업에 대한 질문과 답이 많다.

이 책에서는 엄마가 아이와 관계하면서 일방적이지 않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기다려 주고, 인내하는 부분에 대해서 많이 언급한다.

"지나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이라는 외투를 입은 소유와 통제이자 두려움과 불신의 심리를 숨기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녀를 관리하고 자녀의 독립성을 빼앗는 것이에요. (관계 편 P 91)"

"아이가 뭔가를 하고 싶어 할 때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아무것도 못하게 하면 안 돼요.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 주세요. (학습 편 P 62)

아이를 혼낼 때도 감정적으로 혼내지 말고,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고 말한다.

"최악의 상황은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지 않고 화를 낸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때리고 욕하는 것이에요. 이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라 아이는 온종일 기분이 안 좋은 채로 마음에 '독소'가 쌓여 심리적으로 상처를 받아요. (P 193)"

아이가 부모를 거부하고 고모의 집에만 있겠다고 하는 아이를 상담하면서도 이 아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라고 말을 한다.

"고모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 아이가 엇나가지 않고 고모네 집에라도 있어서 다행이잖아요. 고모가 없었다면 아이는 더 많은 상처를 받았을 거예요. 고모네 집에 있기로 한 아이의 용기에 감사하고, 고모가 아이에게 정서적 피난처가 되어 준 것에 감사하세요. 아이를 집에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무리한 방법을 쓰지 마세요. 어떤 방법도 진실한 사랑만 못하니까요. 아이는 부모가 진실로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낄 때 집에 돌아올 거에요. (관계 편 P 126)"

이 과정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자유를 주는 것과 방임을 하는 것의 차이를 분명히 언급하기도 한다.

"진정한 자유는 방임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성장에 필요한 경험을 쌓을 수 있게 자녀에게 선택의 권리, 경험할 수 있는 권리, 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에요. (관계 편 P 91)"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양육의 방법이 너무 자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느끼게 된다. 아이가 하기 싫어하는 것, 또는 하지 않으려는 것은 그대로 놔두라고 말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 부분을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다. 아마 내가 아직도 많이 보수적인 부분이 있는가 보다. 성(性) 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열세 살짜리 아이가 방의 컴퓨터로 여성의 누드 사진을 보는데 어떡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에는 이것이 너무 심각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머님이 격렬하게 반응하시는 것은 내면에 깊게 뿌리내린 오래된 관습 때문이에요. '성은 더럽고 수치스러운 것이야. 그것이 지금 내 아이들의 영혼을 오염시키고 있어!' 어머님은 마치 아이가 불법적인 마약에 손을 댄 것처럼 반응하고, 앞으로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성적으로도 문란해지고 타락할까 봐 걱정하고 계세요. 그러니 절망할 수밖에요. 제가 말씀드릴게요. 어머님, 어머님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세상도 멀쩡하고 아이도 멀쩡하고 모든 것이 멀쩡해요. (학습 편 P 139)"

오히려 아이의 사생활을 엿본 부모님을 탓하며, 아이가 성(性)을 배우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 같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너무 성적인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남자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제 앞으로 많이 고민하고, 아이와 대화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은 깜빡깜빡 잊는다는 것이다. 아이의 생명의 탄생 과정과 그 아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부터 양육을 하다 보니, 이 아이가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가끔 잊을 때가 있다. 아이 안에 하나의 인격이 있고, 그 인격이 점점 성장하여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내 생각과 주장대로 아이를 대할 때가 있다. 그러다가 아이가 상처를 받은 것 같으면, 그때야 '아차!'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그 아이를 사랑하고, 인내하고, 그 아이 스스로 길을 찾게 하는 것, 그것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가장 좋은 양육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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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
힐러리 맨틀 지음, 박산호 옮김 / 민음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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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고시원에 화재가 나서 7명의 생명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주거 사각지대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누우면 겨우 발을 뻗을 수 있는 창문도 없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비닐하우스에서 일가족이 생활하는 사람들, 지하 만화방과 같은 곳에서 하룻밤 잠을 자는 사람들... 이런 보도를 볼 때마다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내 감정의 밑바닥에서는 알 수 없는 두 가지 감정이 일어난다. 하나는 낯선 감정이다. 아무리 뉴스 영상을 통해 그들이 사는 공간을 보여줘도 그곳은 내가 사는 곳이 아니기에 낯선 공간처럼 보인다.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또 하나는 두려움이다. 저런 공간에 내가 떨어진다면 어떨까? 그 공간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마치 그 공간이 나를 빨아들이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결국 개인에게 있어서 타인의 공간은 낯설고 두려움의 대상이다. 소설을 통해 타인의 삶을 접했을 때 느끼는 낯설고 공포적인 감정을 그대로 그리고 있는 작가가 있다. 한 번 수상하기도 힘들다는 맨부커상을 유일하게 두 번이나 수상한 '힐러리 맨틀'이란 작가이다. 힐러리 맨틀의 소설은 주로 다른 종족이나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 접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관습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녀는 이 과정에서 인종혐오나 사회적 차별들을 교훈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이 자신과 다른 타인과 접하는 과정을 마치 SF 영화의 주인공이 낯선 우주 생명체와 접하는 과정처럼 낯설면서도 공포스럽게 그리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타인에 대한 낯선 감정을 강렬하게 묘사한다.

이 책에는 작가의 열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첫 소설인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에서는 사우디에 근무한 남편을 따라 생활하는 한 여성의 시각에서 자신의 집을 방문한 한 파키스탄인을 묘사하고 있다. 더위와 권위적인 종교적 관습에 갇혀 주로 방안에서만 생활하던 주인공은 우연히 자신의 집을 방문한 한 파키스탄인 남성 '이자즈'를 만나게 된다. 이후에도 이자즈는 계속 주인공의 집을 방문하다. 그녀는 이자즈를 만나면서 그에게 호감을 가지지만, 한편으로는 또 알 수 없는 혐오감을 느낀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남편과 함께 마지못해 파키스탄인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을 방문했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항구 근처에 자리한 이자즈 가족의 아파트는 음식 냄새와 가구들로 꽉 차 있었다. 손이 닿는 곳마다 사진이 놓여 있었고, 카펫 위에 또 카펫이 깔려 있었다. 더운 밤이었고, 에어컨이 힘겹게 돌아가는 내내 잔기침을 해 가면서 물과 함께 곰팡이 홀씨와 병균을 뱉어 냈다. 식탁에 깐 리넨 테이블보는 축 늘어져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술 장식이 많았다. 나는 그 장식들을 계속 만지작거렸는데 마치 테디 베어의 귀처럼 나일론 털 같은 촉감이 있었다. 나는 바짝 긴장했지만 그 술 장식을 만지면서 마음이 좀 편해졌다. 식탁에는 둔해 보이는 노파가 앉아 긴 턱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쩝쩝거리고 있었다. (P 36)"

작가의 이런 주제의식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두 번째 작품인 콤마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어린 시절 친구와 대저택에 들어가 휠체어를 탄 장애를 가진 아이를 관찰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그들은 휠체어에 탄 아이를 문장의 콤마처럼 생겼다고 해서 '콤마'라고 부른다. 그리고 아이의 모습을 처음 가까이서 봤을 때의 감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는 봤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뭔가 보긴 봤지만 아직 뭔가가 되지 못한 상태였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우리가 본 건 얼굴이 아니라 어떻게든 얼굴이 되려고 하는 형상, 아마도 신이 우리를 만들려고 했을 때 막연히 상상하던 그런 형태 같았다. 우리가 본 공 같은 그것은 이목구비가 없었고, 어떤 의미도 없었고, 그냥 얼굴뼈 위로 살이 주르르 흘러내린 것 같았다. (P 69)"

이 소설집의 제목이자, 마지막 소설은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이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마을에 대처 수상이 눈 수술을 받기 위해 방문한다. 주인공이 집에서는 대처 수상이 수술을 받는 병원이 잘 보인다. 기자들과 관광객들이 마을에 진을 치고 있는데 누군가가 주인공의 집에 들어온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이들이 보일러 수리공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는 사진기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들은 대처 수상을 암살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소설에서는 분명히 이야기하지 않지만 아마 아일랜드 사람인 거 같다. 주인공은 이들에게 두려움과 함께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들을 탈출구인 벽에 있는 문으로 인도하면서 그 문을 이렇게 묘사한다.

"벽에 있는 문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것은 병약한 아이의 위로이자 죄수의 마지막 희망이다. 헐떡거리는 단말마의 괴로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떨어지는 깃털처럼 한숨을 쉬며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한 쉬운 출구다. 나무나 철을 지배하는 어떤 법칙도 따르지 않는 문이다. 어떤 자물쇠 수리공도 이 문과 맞서 이길 수 없고 어떤 집행관도 차고 들어올 수 없는 문이며, 믿음을 지닌 자의 눈에만 보이기 때문에 순찰하는 경찰관들도 그냥 지나치는 문이다. 일단 그 문을 통과하면 당신은 공기와 불꽃과 불길로 돌아온다.(P 278)"

비록 소설들을 다 읽고 저자의 주제의식을 통해 작품들을 다시 곱씹으면서 리뷰를 쓰고 있지만, 막상 처음 이 소설들을 한 편 한 편 접할 때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이질적이고 공포스러운 묘사에, 무언가도 확실히 드러나기 전에 갑자기 소설을 끝내버리는 저자의 방식이 읽는 내내 혼란스럽고 불편하게도 했다. 그런데 그런 저자의 글쓰기 방식이 이상하게 소설을 읽고 나서도 깊은 여운을 느끼게 한다. 처음 접한 작가의 작품이어서 아직 힐러리 맨틀이라는 작가와 그녀의 작품에 대해 깊이 있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읽어보고 싶은 매력적인 작가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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