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도미난스 - 지배하는 인간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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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국문학에 있어서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벽이 무척 두껍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스티븐킹과 같은 경우 스릴러작품을 많이 쓰는데도 문학적으로도 매우 인정을 받고 있고, 일본의 경우 미유베미유키 같은 경우는 추리소설을 쓰고 있지만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 대해서 매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순수문학이라는 틀이 너무 두꺼워서 일반 대중들이 점점 문학에 대해서 멀어져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다행이도 요사이 젊은 작가군에서 기존의 틀을 깨는 신선한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김성중 작가의 [국경시장]이나, 김연수 작가의 [원더보이], 요사이 인기를 얻고 있는 김중혁 작가의 작품들까지...... 기존의 한국문학에서 보지 못했던 틀을 깨는 신선한 작품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장강명 작가의 [호모도미난스]라는 작품 역시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벽을 허무는 신선한 작품이었다.

 

장강명 작가는 [한국이 싫어서]라는 작품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사회를 보는 새롭고도 실랄한 시각, 그리고 시니컬한 언어들이 마음에 들어 다른 작품들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호모도미난스]는 내가 생각하던 작가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한 작가가 쓴 같은 작품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혀 새로운 작품이었다.([호모도미난스]가 먼저 쓰여진 작품이니 [한국이 싫어서]가 새로운 작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작품은 언어를 통해 타인을 지배하는 새로운 능력을 가진 '호모도미난스'라는 신인류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스릴러같기도 하고, SF소설 같기도 하다. 영화 엑스맨시리즈를 연상시키기거나 많은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마이클세이키의 [브릴리언스]라는 책의 분위기도 풍긴다.

 

이 책에서는 호모도미난스를 '흰원숭이'라고 부른다. 중국인 의사 류잉춘은 우연히 흰원숭이가 된 후 이들의 능력이 세상의 혼란을 가져오고, 결국에는 인류를 멸망시킬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백원단'이란 단체를 만들어 흰원숭이들을 통제하려 한다. 하지만 흰원숭이가 된 후에 후유증으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능력을 물려 줄 인물을 찾던 중 한국인 안시현을 발견하게 된다.

 

안시현은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혼자 중국에 의료봉사를 하러 왔다가 우연히 사람을 구하게 된다. 류잉춘은 안시현에게 흰원숭이의 능력을 선하게 사용할 본성을 발견하고 그에게 자신의 능력을 물려준다. 이 소설은 흰원숭이가 된 안시현이 다른 흰원숭이들의 음모나 폭주를 막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찌보면 재미를 추구하는 스릴러와 SF소설같지만, 소설은 타인을 복종시키는 무한한 능력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들춰낸다. '내 말 한 마디에 타인이 무조건적으로 복종한다면 나는 어떻게 변할까?' 그때는 아마 인간 안에 있는 본성이 들어날 것이다. 자신의 욕망과 분노와 같은 모든 것이 여과없이 드러날 것이다. 작가는 이런 모든 본성 밑에는 결국 허무와 권태가 있다고 말한다. 결국 흰원숭이가 된 사람들은 자살충동에 휩쓸리게 된다. 모든 것을 얻은 후에 오는 것은 허무와 권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을 복종시키는 자신의 권력은 결국 자신을 죽음을 내몬다고 말한다.

 

요즘들어 한 때 존경했던 인물들이 타인을 지배하는 권력을 얻은 후에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권력이 그를 변하게 했는지, 아니면 그 안에 감추어 있던 본성이 권력을 얻은 후에 드러나는 것이지 모르겠다. 다만 그런 주위사람들을 볼 때마다 인간에 대한 씁쓸한 마음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며 마냥 재미있게만 읽을 수 없었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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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류의 기업들은 인문학에 주목하는가 - 기술을 이기는 인문학의 힘
모기룡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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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모든 인간의 활동의 기초가 되는 지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것을 너무 빨리 이익이나 성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기만 한다면 기업과 기업인에게도 좋은 지식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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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도미난스 - 지배하는 인간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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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를 읽고 다른 작품이 궁금해서 구입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문학이 미국이나 유럽 문학에 비해서 너무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벽이 두껍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그 벽을 허무는 좋은 작품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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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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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보면 너무나 당혹스러운 순간이 있다.

세상이 너무나 낯설고, 찾아오는 사건들이 너무나 차갑다.

처음 학교에 들어가던 날이 기억난다.

어머니의 손에서 떨어져서 넓은 운동장에 이름표를 붙이고 서 있던 순간을......

양초로 닦아 윤이나던 미끄러운 교실의 마루바닥을 밟던 낯설음을......

그 후 인생은 낯설음과 당혹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입었을 때 느끼는 그 낯설음이란......

영원히 함께 있을 것 같던 부모님의 죽음 앞에 서 있을 때의 당혹함이란.......

하지만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 낯설음과 당혹스러움에 적응해 간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이 살기 위해 발견한 그 몸부림으로......


한 여성이 이 낯선 세상과 아버지의 잃은 당혹감을 이기기 위해 몸부림친 기록이 여기 있다.

헬렌 맥도널드가 쓴 [메이블 이야기]이다.

'메이블'은 헬렌이 길들인 참매의 이름이다.

헬렌은 어느 날 갑자기 사진기자였던 아버지를 심장마비로 잃는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에 당혹해 하고, 낯선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교수직에도 흥미를 잃고, 직장도 관두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어릴 적부터 길들이고 싶었던 참매를 길들인다.


참매 보통 매에 비해 크기가 작지만, 워낙 야생성이 강해 길들이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참매를 길들이는데 실패한다.

헬렌은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과 인생에 대한 무력감을 참매를 길들이며 극복하려고 한다.

참매와 연결된 끈은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같다.

그 끈이 끊어지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두려워하며 그 끈을 부여잡는다.

마치 아버지와의 끊어진 끈을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러나 헬렌이 정작 참매를 통해서 발견한 것은 참매 안에 있던 야생성에서 자신을 본 것이었다.

길들여 지지 않는 '메이블'의 야생성을 통해 헬렌은 자기 안에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성을 본다.

그리고 '메이블'이 길들여지는 모습을 보면서, 또는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해 간다.


헬렌이 메이블을 길들이면서 함께 동행한 사람은 T. H. 화이트라는 사람이다.

화이트는 헬렌의 남자친구도 아니고, 헬렌의 동료도 아니다.

심지어 헬렌은 화이트를 만나본적도 없다.

화이트는 헬렌이 어린 시절 읽었던 [참매]라는 책을 쓴 헬렌의 전 세대 사람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성적으로 학대당했으며, 학교라는 곳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후에 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그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숲 속의 오두막집에서 '고스'라는 참매를 훈련시키며 생활한다.

그가 '고스'를 훈련시키는 과정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는 서툴르지만 '고스'의 야생성을 인정하고 그 야생성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고스'를 잃어버린다.


헬렌은 '메이블'을 길들이며 화이트가 '고스'를 길들이는 과정을 함께 기록하고 있다.

둘은 함께 동행하며 '메이블'과 '고스'를 길들인다.

그리고 '메이블'과 '고스'의 야생성에서 자신들의 야생성을 발견한다.

세상에 길들여지는 자신들을, 세상에 길들여 지지 않는 자신들을 본다.

아버지의 죽음에 적응하는 자신을, 아버지의 죽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본다.

헬렌은 고스가 꿩과 토기를 사냥하는 장면에서 당혹스러워한다.

한편으로 고스가 짐승을 죽이는 것을 도와주면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한다.

그러나 곧 그는 죽음을 자연스러움의 일부분으로 받아 들인다.


나는 매를 빤히 바라보고, 매는 죽은 꿩을 쥐고서 광적인 눈으로 나를 빤히 응시한다. 나는 놀란다. 어떤 감정을 기대햇는지 모르겠다. 피에 대한 굶주림? 잔인성? 아니, 그런 게 아니다. 산울타리 안을 휘젓고 다니느라 내 몸 전체가 가시에 끍힌 상처투성이고, 가슴속 어딘가가 아파 온다. 대기 중에 엷은 안개가 끼어 있다. 건조하다. 활석 같다. 나는 매를, 꿩을, 다시 매를 쳐다본다. 그러자 모든 게 바뀐다. 매는 폭력적인 죽음을 가하는 것을 그만둔다. 메이블은 아이가 된다. 그게 나를 속속들이 뒤흔든다. 메이블은 아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막 파악하기 시작한 어린 매. 자기가 뭘 해야 하는 존재인지 깨달은 아이다. 나는 엄마가 아기에게 밥을 먹이듯 나도 모르게 팔을 뻗어 매와 함께 꿩의 털을 뽑기 시작한다. 매를 위해, 메이블이 먹기 시작하자, 나는 쭈구리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 본다. 찬찬히 살핀다. 깃털이 날려 산울타리 밑으로 떠다니다가 거미집과 가시 돋은 가지에 걸린다. 발톱의 붉은 피가 마르고 굳는다. 시간이 흐른다. 햇빛의 축복, 바람이 엉겅퀴 줄기를 흔들다 잦아든다. 그리고 나는 울기 시작한다. 소리 죽여서,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꿩 때문에, 매 때문에, 아버지와 그의 인내심 때문에. 울타리 옆에 서서 매들이 오기를 기다리던 그 어린 여자애 때문에 운다.

- 본문 중에서(P291-2) -

 

 

사냥을 마친 메이블 옆에 무릎을 꿇고 있을 때면 늘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사냥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산 것을 죽이는 행위를 혐오한다. 거미를 밟는 것도 싫고, 파리를 살려 두다가 남의 비웃음을 사기 일쑤다. 그런데 이제 나는 피에 굶주린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이해했다. 그게 납득되는 것은 내가 매와 동일한 눈으로 볼 때뿐이었지만, 그 순간에는 세상의 무엇보다도 합당하다 싶었다. 머리 위를 나는 새들을 복 때면 고개를 돌린 채 갈망을 품은 눈으로 좇곤 했다.

                                                      - 중략 -

하지만 매가 동물을 잡을 때마다 그것은 나를 동물이라는 존재에서 사람이라는 존재로 끌고 같다. 그것은 거대한 퍼즐이었고, 반복해서 재연되었다. 심장은 어떻게 멈추는가. 매는 나무잎 더미 속에 엎드린 토끼를 여덟 개의 강한 발톱으로 낚아채 날개로 덮었다. 꼬리를 펼치고, 눈은 타오르며, 긴장과 야생적인 웅크린 자세 때문에 목덜리 깃털은 곧추섰다. 바로 그때 나는 팔을 뻗어 토끼의 뭉친 근육을 만졌고, 부드러운 황갈색 털이 난 토끼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거머쥐고 다른 손으로 뒷다리들을 힘껏 한 번, 두 번 당기면서 목을 부러뜨렸다. 토끼는 흐릿한 눈으로 한바탕 발버둥 쳤다. 나는 토끼의 눈을 아주 가만히 만지며 죽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모든 것의 멈춤, 멈춤, 멈춤, 나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내가 토끼를 죽이지 않으면 매가 타고 앉아서 먹기 시작할 터였다. 그렇게 먹히는 도중 어느 시점에서 토끼는 죽을 테고, 그것이 참매가 사냥감을 죽이는 방법이다. 매가 먹이를 먹는 도중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다. 나는 사냥감들이 그런 고통에 시달리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사냥은 우리를 동물로 만들지만 동물의 죽음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 매와 사냥감 옆에 무릎 꿇고 앉아 있자니, 책임감이 워낙 크게 느껴져 그것이 내 가슴을 파고들어 대성당만한 한 크기로 부풀었다.

- 본문 중에서(P309-10)-

 

 

헬렌은 '메이블'이 사냥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 역시 세상에 적응해 간다.

또 '메이블'에게 죽임 당하는 사냥감을 보면서 죽음이란 것에 적응해 간다.

물론 이 과정에서 헬렌의 날카롭고 예민한 감수성이 곳곳에 묻어나와 읽는 이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메이블이 길들여지는 것처럼 세상에 길들여 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매일 만나는 낯설음과 당혹스러움......

죽음과 사건들.....

그 과정에 우리도 헬렌처럼, 화이트처럼, 그리고 '메이블'과 '고스'처럼 낯설어하고 당혹스러워 한다.


이 책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헬렌에게 묶여 있던 '메이블'은 매 번 고민했을 것이다.

'내가 저 주인이라고 부르는 '헬렌'이란 여자와 계속 끈으로 연결 되어 있어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이 끈을 끊고 날아가야 하나?'

실재로 이 책에는 '메이블'이 계속 야생성과 길들임 속에서 갈등하는 장면이 나온다.

메이블이 끝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인생도 메이블처럼 매일 고민을 한다.

낯선 세상과 당혹스러운 사건 앞에서, 야생성과 길들임 사이에서 방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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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3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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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3권의 주 내용은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2번째 집정관이 되어 게르만 민족과의 전투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시작된다.

로마의 일인자 1권과 2권이 각각 3년씩의 기간의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3권은 5년간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5년 모두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모두 집정관을 역임한다.

앞에서 누마니아 예언자가 예언한대로 7번의 집정관 중 6번째 집정관까지 역임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두 번 역임하지도 못하는 집정관을 마리우스가 6번을 역임하는 이유는 로마의 혼란, 그것도 게르만 민족의 침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2권에서 게르만민족은 카이피오의 8개 군단과 말리우스의 10개 군단, 거이 10만명에 이르는 로마의 군대를 전멸시킨 후 사라진다.

위기감을 느낀 로마 평민회는 원로원의 반대공작에도 불구하고 마리우스를 2번째 집정관으로 선철한다.

그리고 마리우스는 2번째 집정관이 되어 다시 군대를 조직해 이탈리아 해안선을 따라서 북쪽으로 올라가 주둔을 한다.

그러나 게르만 민족은 마리우스가 2번째 집정관이 된 시기에는 공격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마리우스는 다시 한 번 집정관이 되어 게르만 민족의 공격에 대비한다.


이 때 활약한 사람이 술라이다.

그는 로마 명문가문인 파트라키 출신이지만 게르만 민족으로 변장을 해 1년이 넘는 시기 동안 게르만 민족에 침투하여 그들의 정보를 알아 온다.

그는 게르만 민족 족장회의에 참여할 정도의 권한을 얻게 되고, 게르만 여자와 결혼도 하여 쌍둥이 자녀를 낳기까지 한다.

그리고 게르만 민족이 지금까지의 이동경로와 게르만 민족이 다시 로마를 침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게르만 민족은 킴브리족의 보이오릭스라는 사람에 의해 통합이 되어서 80만의 대군으로 조직되어 세 갈래로 로마를 침공할 계획을 세운다.





게르만 민족의 침략 소식을 들은 로마는 네 번째로 마리우스를 집정관으로 연임을 시킨다.

그리고 마리우스는 4번째 집정관 시기에 세 갈래로 침입하는 게르만민족의 한 갈래인 데우토네스족을 맞아 뛰어난 전술을 그들을 전멸시킨다.

게르만 민족 10만명을 몰살시키고 수많은 전리품을 얻은 마리우스는 로마의 영웅이 된다.

두 번째 갈래인 게르만민족의 왕 보이오릭스가 이끄는 킴브리족 역시 술라의 뛰어난 대응으로 별 활약을 하지 못하고, 마리우스의 군대에 의해 카툴루스 카이스라의 연합군대에 의해 전멸하다 시피 한다.

세 번째 갈래의 민족들은 흐지부지 흩어진다.

이로서 마리우스는 게르만 민족의 침략으로부터 로마를 지켜 낸다.


게르만 민족의 침략이 사라지자 마리우스는 다시금 정치적 코너로 몰린다.

그가 자신의 천민 군사들에게 아프리카 섬의 영지를 나눠주려는 계획은 로마원로원에 의해 무산되게 된다.

아울러 한 때 마리우스의 정책을 입안하는데 압장을 섰던 사투누리누스는 마리우스와 대립하게 된다.

뛰어난 연설가인자 선동정치가인 사투누리누스는 친구의 살인죄로 인해 자신이 위기에 몰리자 로마 백성들을 선동해 폭동을 일으킨다.

결국 원로원은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려 있던 마리우스에게 다시금 전권을 주어 폭동을 진압하게 한다.

마리우스는 그의 천재적인 지휘관으로서의 재능을 발위해 폭동을 일시에 진압한다.



3권에서는 거이 마리우스의 전성기를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의일인자의 주인공은 마리우스와 술라였지만 3권에서는 마리우스가 단독적인 주인공으로 부각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뛰어난 지략으로 게르만 민족을 무찌르고 로마를 구해낸다.

이 과정에서 로마의 정치적 한계 상황이 잘 드러난다.

마리우스로 대표되는 개혁적인 세력과 원로원의 스카우루스와 메텔루스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의 대립이 한층 더 심각해 진다.

로마 각 지에서는 반란이 일어나고, 이탈리아 동맹은 균열이 일어난다.

이 상황에서 기근까지 일어나 사투누리누스같은 선동정치가에 의한 폭동까지 일어난다.

마리우스라는 영웅으로 인해 이런 위기 속에서도 로마가 유지되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위태위태 하다.

저자는 [로마의 일인자] 3권을 통해 후에 줄리어스 시저라는 독재자이자 영웅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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