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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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보면 너무나 당혹스러운 순간이 있다.

세상이 너무나 낯설고, 찾아오는 사건들이 너무나 차갑다.

처음 학교에 들어가던 날이 기억난다.

어머니의 손에서 떨어져서 넓은 운동장에 이름표를 붙이고 서 있던 순간을......

양초로 닦아 윤이나던 미끄러운 교실의 마루바닥을 밟던 낯설음을......

그 후 인생은 낯설음과 당혹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입었을 때 느끼는 그 낯설음이란......

영원히 함께 있을 것 같던 부모님의 죽음 앞에 서 있을 때의 당혹함이란.......

하지만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 낯설음과 당혹스러움에 적응해 간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이 살기 위해 발견한 그 몸부림으로......


한 여성이 이 낯선 세상과 아버지의 잃은 당혹감을 이기기 위해 몸부림친 기록이 여기 있다.

헬렌 맥도널드가 쓴 [메이블 이야기]이다.

'메이블'은 헬렌이 길들인 참매의 이름이다.

헬렌은 어느 날 갑자기 사진기자였던 아버지를 심장마비로 잃는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에 당혹해 하고, 낯선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교수직에도 흥미를 잃고, 직장도 관두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어릴 적부터 길들이고 싶었던 참매를 길들인다.


참매 보통 매에 비해 크기가 작지만, 워낙 야생성이 강해 길들이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참매를 길들이는데 실패한다.

헬렌은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과 인생에 대한 무력감을 참매를 길들이며 극복하려고 한다.

참매와 연결된 끈은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같다.

그 끈이 끊어지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두려워하며 그 끈을 부여잡는다.

마치 아버지와의 끊어진 끈을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러나 헬렌이 정작 참매를 통해서 발견한 것은 참매 안에 있던 야생성에서 자신을 본 것이었다.

길들여 지지 않는 '메이블'의 야생성을 통해 헬렌은 자기 안에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성을 본다.

그리고 '메이블'이 길들여지는 모습을 보면서, 또는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해 간다.


헬렌이 메이블을 길들이면서 함께 동행한 사람은 T. H. 화이트라는 사람이다.

화이트는 헬렌의 남자친구도 아니고, 헬렌의 동료도 아니다.

심지어 헬렌은 화이트를 만나본적도 없다.

화이트는 헬렌이 어린 시절 읽었던 [참매]라는 책을 쓴 헬렌의 전 세대 사람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성적으로 학대당했으며, 학교라는 곳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후에 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그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숲 속의 오두막집에서 '고스'라는 참매를 훈련시키며 생활한다.

그가 '고스'를 훈련시키는 과정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는 서툴르지만 '고스'의 야생성을 인정하고 그 야생성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고스'를 잃어버린다.


헬렌은 '메이블'을 길들이며 화이트가 '고스'를 길들이는 과정을 함께 기록하고 있다.

둘은 함께 동행하며 '메이블'과 '고스'를 길들인다.

그리고 '메이블'과 '고스'의 야생성에서 자신들의 야생성을 발견한다.

세상에 길들여지는 자신들을, 세상에 길들여 지지 않는 자신들을 본다.

아버지의 죽음에 적응하는 자신을, 아버지의 죽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본다.

헬렌은 고스가 꿩과 토기를 사냥하는 장면에서 당혹스러워한다.

한편으로 고스가 짐승을 죽이는 것을 도와주면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한다.

그러나 곧 그는 죽음을 자연스러움의 일부분으로 받아 들인다.


나는 매를 빤히 바라보고, 매는 죽은 꿩을 쥐고서 광적인 눈으로 나를 빤히 응시한다. 나는 놀란다. 어떤 감정을 기대햇는지 모르겠다. 피에 대한 굶주림? 잔인성? 아니, 그런 게 아니다. 산울타리 안을 휘젓고 다니느라 내 몸 전체가 가시에 끍힌 상처투성이고, 가슴속 어딘가가 아파 온다. 대기 중에 엷은 안개가 끼어 있다. 건조하다. 활석 같다. 나는 매를, 꿩을, 다시 매를 쳐다본다. 그러자 모든 게 바뀐다. 매는 폭력적인 죽음을 가하는 것을 그만둔다. 메이블은 아이가 된다. 그게 나를 속속들이 뒤흔든다. 메이블은 아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막 파악하기 시작한 어린 매. 자기가 뭘 해야 하는 존재인지 깨달은 아이다. 나는 엄마가 아기에게 밥을 먹이듯 나도 모르게 팔을 뻗어 매와 함께 꿩의 털을 뽑기 시작한다. 매를 위해, 메이블이 먹기 시작하자, 나는 쭈구리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 본다. 찬찬히 살핀다. 깃털이 날려 산울타리 밑으로 떠다니다가 거미집과 가시 돋은 가지에 걸린다. 발톱의 붉은 피가 마르고 굳는다. 시간이 흐른다. 햇빛의 축복, 바람이 엉겅퀴 줄기를 흔들다 잦아든다. 그리고 나는 울기 시작한다. 소리 죽여서,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꿩 때문에, 매 때문에, 아버지와 그의 인내심 때문에. 울타리 옆에 서서 매들이 오기를 기다리던 그 어린 여자애 때문에 운다.

- 본문 중에서(P291-2) -

 

 

사냥을 마친 메이블 옆에 무릎을 꿇고 있을 때면 늘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사냥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산 것을 죽이는 행위를 혐오한다. 거미를 밟는 것도 싫고, 파리를 살려 두다가 남의 비웃음을 사기 일쑤다. 그런데 이제 나는 피에 굶주린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이해했다. 그게 납득되는 것은 내가 매와 동일한 눈으로 볼 때뿐이었지만, 그 순간에는 세상의 무엇보다도 합당하다 싶었다. 머리 위를 나는 새들을 복 때면 고개를 돌린 채 갈망을 품은 눈으로 좇곤 했다.

                                                      - 중략 -

하지만 매가 동물을 잡을 때마다 그것은 나를 동물이라는 존재에서 사람이라는 존재로 끌고 같다. 그것은 거대한 퍼즐이었고, 반복해서 재연되었다. 심장은 어떻게 멈추는가. 매는 나무잎 더미 속에 엎드린 토끼를 여덟 개의 강한 발톱으로 낚아채 날개로 덮었다. 꼬리를 펼치고, 눈은 타오르며, 긴장과 야생적인 웅크린 자세 때문에 목덜리 깃털은 곧추섰다. 바로 그때 나는 팔을 뻗어 토끼의 뭉친 근육을 만졌고, 부드러운 황갈색 털이 난 토끼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거머쥐고 다른 손으로 뒷다리들을 힘껏 한 번, 두 번 당기면서 목을 부러뜨렸다. 토끼는 흐릿한 눈으로 한바탕 발버둥 쳤다. 나는 토끼의 눈을 아주 가만히 만지며 죽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모든 것의 멈춤, 멈춤, 멈춤, 나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내가 토끼를 죽이지 않으면 매가 타고 앉아서 먹기 시작할 터였다. 그렇게 먹히는 도중 어느 시점에서 토끼는 죽을 테고, 그것이 참매가 사냥감을 죽이는 방법이다. 매가 먹이를 먹는 도중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다. 나는 사냥감들이 그런 고통에 시달리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사냥은 우리를 동물로 만들지만 동물의 죽음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 매와 사냥감 옆에 무릎 꿇고 앉아 있자니, 책임감이 워낙 크게 느껴져 그것이 내 가슴을 파고들어 대성당만한 한 크기로 부풀었다.

- 본문 중에서(P309-10)-

 

 

헬렌은 '메이블'이 사냥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 역시 세상에 적응해 간다.

또 '메이블'에게 죽임 당하는 사냥감을 보면서 죽음이란 것에 적응해 간다.

물론 이 과정에서 헬렌의 날카롭고 예민한 감수성이 곳곳에 묻어나와 읽는 이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메이블이 길들여지는 것처럼 세상에 길들여 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매일 만나는 낯설음과 당혹스러움......

죽음과 사건들.....

그 과정에 우리도 헬렌처럼, 화이트처럼, 그리고 '메이블'과 '고스'처럼 낯설어하고 당혹스러워 한다.


이 책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헬렌에게 묶여 있던 '메이블'은 매 번 고민했을 것이다.

'내가 저 주인이라고 부르는 '헬렌'이란 여자와 계속 끈으로 연결 되어 있어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이 끈을 끊고 날아가야 하나?'

실재로 이 책에는 '메이블'이 계속 야생성과 길들임 속에서 갈등하는 장면이 나온다.

메이블이 끝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인생도 메이블처럼 매일 고민을 한다.

낯선 세상과 당혹스러운 사건 앞에서, 야생성과 길들임 사이에서 방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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