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대학교 신입생 때였다. 우리 과에서 유난히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따로 지내는 동기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와 우연히 대화를 하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당시 나는 기독교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그 친구는 기독교에 대한 철저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우리는 신의 존재나 종교의 문제에서는 일치점을 찾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대화에서는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친구가 내게 추천한 책이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그 때 구입한 낡은 니체의 책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내가 처음 니체의 책을 접하면서 가졌던 감정은 니체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가졌던 경탄이나 환희의 감정이 아니었다. 반대로 니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가졌던 증오나 비판의 감정도 아니었다. 니체의 책은 나에게 한 인간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주었다. 니체를 좋아해서 그 사상에 심취한 사람들이 들으면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니체를 읽으며 세상을 향해서 홀로 몸부림 치는 한 인간의 처절한 투쟁을 보았다. 마치 거친 풍랑 위에서 커다른 배를 이끌고 혼자 항해하는 사람의 집념과 열정, 황량한 사막 위를 혼자 걷는 사람이 느끼는 고독과 좌절을 보았다. 그 후 니체의 책들을 좋아하고, 그 책들을 읽으며 니체에 대해 더 친숙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니체는 내게 어려운 존재였고, 그의 사상은 마치 안개 속의 사물처럼 모호하게 보이는 대상이었다.
거이 10년 가까이 정신없이 사느라 니체의 책들을 접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우연히 아카넷 출판사에서 나온 [니체를 읽는다]라는 책을 통해 다시금 니체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이 흥미를 끄는 이유는 그동안 나온 많은 니체의 해설서와는 다르게, 니체의 사상의 형성과정과 니체의 철학을 해석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니체의 사상이 어떻게 현대 사상의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니체의 핵심사상을, 2부에서는 니체와 그 시대의 사상가들에 대해서, 3부는 니체사상의 해석을 다루고 있다.
1부의 초반부에서는 주로 니체의 형성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은 니체의 '초인'사상과 '영원회귀' 사상이다.
니체의 초인사상은 기존의 서양철학의 뿌리와 같은 플라톤과 기독교 사상에 대한 반발이다. 플라톤은 현실세계를 초월한 이데아를 주장했고, 기독교는 그 플라톤의 이데아를 신의 개념과 동일시했다. 그로 인해 서양철학은 현실세계를 부정하고, 이상세계를 강조했다. 그러다보니 현실의 어려움을 직시하기 보다는 현실 너머의 세계에서 위안을 받으려 했다. 니체는 이에 대해 부정하며 짜라투스트라라는 인물을 통해 '신은 죽었다!'라고 말하며, 신에 의존하는 삶이 아닌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세상과 맞서는 삶을 주장한다. 그렇게 세상이 만든 가치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다.
'영원회귀'사상은 니체의 초인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쩌면 초인사상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세계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니체는 세상을 영원히 반복하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똑같이 반복되는 삶이라면 그 삶은 얼마나 고통일까? 그런데 니체는 바로 그 반복되는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사람, 내 삶이 계속해서 반복되더라도 그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을 초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니체의 초인사상과 영원회귀 사상을 설명하면서, 니체의 사상을 건강한 사상이라는 부분을 강조한다. 즉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세상과의 싸움을 피하지 않기에 그의 사상은 강인하고 건강한 사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약한 인간이 히말리야 같은 험한 산을 올라가야만 할 때 그 산은 그들을 힘들게 할 뿐인 저주의 산으로 나타나는 반면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한 인간에게는 오히려 험하기 때문에 더욱 숭고하고 아름다운 산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자에게 투쟁과 갈등이 지배하는, 생성 소멸하는 이 세계는 그 자체로 완전한 세계다. 이 세계에는 강한 동물과 약한 동물이 존재하듯이 탁월한 인간뿐이 아니라, 열등한 인간이 존재하지만, 서로를 필요로 하고 보완한다는 점에서 이 세계는 완전한 세계다. (P26-27)
니체의 철학은 모든 것을 병적이냐 건강하냐 혹은 우리를 병적으로 만드냐 건강하게 만드냐라는 관점에서 평가하다는 점에서 생리학적인 철학이다. 물론 그러한 생리학은 신체적인 차원의 건강과 병을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존 전체의 건강과 병을 진단하는 점에서 통상적인 생리학과는 다르다. (P49)
예를 들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허약한 자는 강한 바람을 두려워하고 혐오할 것이며 또한 그렇게 바람을 두려워하는 자신에 대해서 혐오감을 느낄 것이지만,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강한 자는 강한 바람을 오히려 즐기고 또한 이를 통해서 자신의 힘을 느끼고 자신이 고양된다고 느낄 것이다. 이 경우 바람은 혐오스러운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아름다운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과 바람은 언뜻 보기에는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사실은 상호대립을 토한 상호 간의 고양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양자 간의 투쟁은 사랑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P54-55)
이 부분을 읽으며 오랫 동안 가졌던 니체의 사상에 대한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든다. 과연 니체가 주장하는 '신은 죽었다'는 말이나, '인생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말들이 과연 그가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아포리즘적인 격언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니체의 무신론은 버트란트 러셀과 같은 과학적인 사고를 가진 사상가들의 무신론들과 다르다. 그들은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부정하는 것에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쓰고 있다. 그러나 니체의 사상은 논리적이라기 보다는 선언적이다. 그는 인간이 신의 존재를 믿음으로, 삶을 일회적이라고 생각함으로 우리 인생이 건강하지 않다고 믿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았기에, 자신의 삶이 불행했었다고 믿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기에 신을 믿기보다 자신을 믿음으로, 무한이 반복되는 삶을 긍정함으로서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