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막스 뮐러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헷갈린다. 방학 때 혼자 버스 타고 외숙모외삼촌네 공부하러 다니던 중1 때(개인과외랄까, 외숙모께는 사회를, 외삼촌께는 수학을 배웠다) 그집 작은 방 책장에서 본 책이 엄마보다 세 살 위, 아빠와 연세가 같은 외삼촌이 학창시절에 읽던 오래된 판본의 <독일인의 사랑>이었는지 <첫사랑>이었는지. 제대로였다면 헷갈릴 수가 없다. 막스 뮐러는 독일인이고 투르게네프는 러시아인이다. 이 소설은 동양학자이자 비교언어학자로 유명한 막스 뮐러가 남긴 유일한 순수문학이다. 완전히 다르니까 도저히 헷갈릴 수가 없는데 아직도 기억하지 못한다. 읽으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미스터리를 푸는 기분으로 시작. 아마도 이 책이었다고 굳게 믿는 중이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지만 꼭 안 중요한 것도 아니다.

 

없는 감수성을 빌려와 쓰자면, 내게 한 마디 해주기 위해 너는 수십 번 머리와 가슴으로 말을 고민하는 사람이고, 나는 나름 생각을 거쳤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툭툭 뱉어내는 사람이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이고 본능적이다. 책은 내가 더 많이 읽지만 그게 너보다 내가 더 똑똑하다거나 지혜롭다거나 하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읽은 책에 관한 얘기나 읽고 있는 책에 관한 얘기를 너와 나는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문자도 통화도 엄청나게 해대는 그런 커플은 아니다. 대학 때는 함께 도서관에도 종종 갔고 우리가 아직 친구였을 때 너는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나를 무려 토요일에 만나기 위해 일부러 도서관에 와서 끝나는 시간을 기다렸지만 네 맘을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던 나는 재빠르게 집으로 돌아갔던 것 같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고 차 타고 떠나는 나를 지켜보던 네 모습을 백미러로 보았다. 이 소설은 우리가 처음 만난 스무살, 다시 만난 스물한 살, 친구들끼리 함께 간 여름여행 후 연인이 되기 시작한 스물두 살에 읽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소중한 편지와 사진들, 빛 바랜 꽃바구니와 이제는 상해버린 샴페인이 들어있던 화이트데이 꽃바구니, 친구집을 빌려 촛불폭탄과 꽃다발과 와인으로 장식한 1주년 기념파티 등이 신선한 향기였을 때. 감수성이 말랑말랑해서 터질 것 같던 때. 사랑을 해서가 아니라 원래 내 감수성이 그정도일 때. 그래서 작은 일에도 서운하고 울고 따지고 토라지고 그랬을 때.

 

너무 진한 사랑소설은 이제 좀 부끄럽다. 화내는 것조차 귀찮고 에너지가 든다. 요즘 관심거리는 주로 어떤 상황에 대한 너의 생각을 묻는 것이다. 그것도 내 예상을 거의 벗어나지 않지만, 푸하하. 만약 완전 반대 입장이라도 함께지만 여전히 타인이라서 이해하자 치면 이해못할 것도 없다. 정치성향은 좀 같았으면 하는 이상한 바람이 있다. 나는 부모님과도 같았기 때문에 그게 많이 답답할 것 같다. 아, 이래서 종교적 갈등도 생기는 구나 싶다. 이해가 불가능할 경우 내 삶에 들여놓지 않으면 그만이다. 사랑에 대해 나는 할 이야기가 없다. 아무리 예쁘게 치장하고 또 치장해도 더는 추억할 에피소드가 없다. 내게 사랑은 과거가 아니고 우리 사이는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더이상 예쁜 엽서나 긴 편지지에 너를 향한 마음을 고백하지 않고 너 또한 그렇다. 가끔 받기는 하는데 쓰기는 진짜 싫더라. orz 진지한 대신 애틋함은 증발했고 사랑이 불길 치솟는 감당못할 감정만은 아니라는 걸 너도 나도 안다. 네 맘까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나만큼이나 너도 많이 까야 하는 양파같은 남자라서. 수많은 영화를 둘이서 봤지만 그것들은 모조리 함께한 시간으로 치환되거나 증발되었다. 하지만 어떤 책도 동시에 읽거나 함께 읽지는 않는다. 그런 적이 없다. 영화 <더 리더>에도 <소피의 선택>에도 남녀가 함께 책 읽는 장면이 나온다. 소피(메릴 스트립)가 폴란드어로 한 줄 읽으면 네이든(케빈 클라인)이 영어로 번역해 한 줄 읽는 울프는 울프라서가 아니라 책이라서가 아니라 와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로맨틱하다. 해보고 싶을 만큼은 아니지만 어딘가 울컥하는 구석이 있다.

 

그러니까 한국인이 아니라 '독일인'이 뭐 다른 게 있나 싶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 채 읽는다. 아마 이 소설의 주제는 두 국가의 민족성 차이가 아닐테고, 더군다나 독일인만의 특수한 사랑을 그려낸 것만도 아닐 것이다. '기독교적 사랑' 그러니까 플라토닉한 사랑을 풀어내는 점에서 지드의 <좁은 문>과 상통한다. 그치만 지드를 엄청 좋아하고 <좁은 문>을 특별히 애정하는 것과는 반대로 이 소설은 어디를 애정해야 할지, 반이나 이해하긴 한 건지 의심스럽다. 기독교적 색채, 육체와 영혼을 초월하는 사랑, 도덕적 순수(동정이나 순결을 의미하는 것 아님) 등을 대사를 통해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점은 신선하지만, 그 의미가 간결하고 뚜렷한 문장으로 마음에 쏙 박히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하물며 여주인공 이름은 동정녀와 동일한 '마리아'다. <독일인의 사랑>은 그녀를 맘에 품고 다가가는 한 남자의 마음과 상황을 독백 아니 일기로 담아낸다. 그녀는 몸이 성치 않아서 육체적 사랑이 불가능한 나머지 나를 멀리하거나 피한다.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기다리고 다가가고 또 감싸안는 한 남자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회고록과 같다. 8장으로 이루어졌으며 시간 순으로 간다. 그렇다. 이걸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차용한 소설이라면 <폭풍의 언덕>, 헨리 제임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까지 알고 있다. 쉽게 읽히지 않고, 느릿느릿하면서도 그 독백을 따라가기가 숨차서 포기한 적도 여러 번이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이 소설은 아마 그 중에서 가장 짧은 작품일 것이다. 소설이라 부를 수 있다면 말이지만.

 

소년들은 청년기와 장년기에서는 이미 사라진 순수함과 진심,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법이다. 그러면서도 당시 나는 그녀가 사랑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될 타인에 속한다고 믿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내게 했던 진지한 말들은 건성으로 듣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영혼이 가까워질 수 있는 한 가장 가까이, 그녀의 영혼이 내 영혼에 접근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 이 독백 아니 회고는 <독일인의 사랑>의 주제에 가장 근접한 문장일 것이다.

 

우리가 간구하는 것은 세속적 재화가 아니잖은가. 우리는 다만, 서로를 발견하고 알아볼 두 영혼이 손을 잡고 마주 바라보며, 이 짧은 지상의 여행을 같이 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뿐, 그래서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나는 그녀의 병고의 지팡이가 되고, 그녀는 내게 위안이나 사랑스런 배려자로 머물기를 기원할 뿐인 것이다.

 

이 사랑은 육체와 영혼 둘 중 어느 하나를 앞세우는 법이 없다. 그녀는 몸이 성치 못하다. 그는 몸이 성하다. 그런 차이가 둘을 사랑하지 못하게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사랑은 육체만으로도, 정신만으로도 온전할 수 없다. 그녀는 성치 못한 몸을 가졌지만 사랑은 죽음으로도 파괴될 수 없는 것이며, 죽음으로 승화되어 불멸한다. 그런 온전한 사랑을 갈구한다. 침묵이 사랑을 지켜준다. 상당부분 준 만큼 바라는 사랑의 거래성과 대가성을 조심스럽고 확실하게 비판한다. 에즈워드의 시를 인용하여 드러내는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 육체를 욕망하는 사랑, 정신의 위안을 바라는 사랑, 부모와 자식, 부부간, 박애 등 모든 애정을 능가하는 가장 고귀한 곳의 사랑이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의미를 사랑이라는 한 단어 속에 쑤셔넣는가. 가장 사랑다운 사랑은 하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으면서 사랑가는 또 왜 그리도 많은가. 비록 내게는 가져보지 못한 큰 사랑의 울림과 그 속에 든 고결한 의미가 한꺼번에 다가오지는 않았어도 분명히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구석이 있다. 여전히 사랑 앞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재단하고 또 끼워넣으려는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인형처럼 맞추려하거나 맞춰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는 대로 삶과 죽음과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이란! 그런 게 과연 있긴 있을까. 없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이 간결하고도 순수한 소설이 사랑받는 것 같다.

 

'독일인의 사랑'의 독일인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 보다 문화적 차이에 의해 이해되어야 하는 제목이라고 역자가 전한다. 사랑의 형태와 의미와 철학에 국적이 있을 리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묻자.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

 

그럼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아니, 당신은 어떤 대답을 기다리는가. 기대하는 대답과 직접 듣게 될 대답은 같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마리아가 질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런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 온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누군가의 사랑을 지켜보기만 해도 너무 숨차고 피곤한 세상이다.

어린아이에게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보세요. 꽃한테 왜 피어 있는지를 물어보세요. 태양에게 왜 빛나고 있냐고 물어보세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순간 내 존재의 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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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2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2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2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2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2-06-2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구절, 참 좋아요. 전 요즘 찐~~~한 사랑소설 읽고 싶은데 혹시 이런 소설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

아이리시스 2012-06-26 00:17   좋아요 0 | URL
근데 이건 [기독교적 색채]를 극복할 용기있는 사람만 봐야될 것 같아요. 나한테만 어려운 건지, 난 벌써 타락한 건지, 이런 사랑이 없다고 믿는 건 아니지만, 사랑에는 물론 여러가지 종류가 있지만, 이건 좀-_-;; 찐~~~한 거?! 로렌스 읽어요.(시루스님은 봤을 것 같지만)

2012-06-23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6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긴 글에 죄책감이 있다. 읽히려면 간결하고 정확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더군다나 프로도 아니라 누군가에게 끝까지 읽힌다는 욕심을 오래 전에 버렸다. 담아야 해서 좀 길다. 평소 쓰던 것보다 더 길다. 이 페이퍼는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 몇 편에 관한 얘기고, 오랜만에 찾아보니 밥 먹으면서 읽어도 시간이 모자랄 엄청난 양의 단편이 있더라는 것과, 이제부터는 일부러라도 종종 읽겠다는 다짐이자, 어쨌든 이런 생각으로 글이 시작되었다는 뭐 그런 얘기.

 

단막극을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목적이 뚜렷했으나 단막극을 본다고 대본을 쓸 수 있을 리 없었고, 영화대본을 들여다본다고 시나리오가 뚝딱 써지는 것도 아니었고, 주구장창 연극을 봐도 희곡이 짠하고 나타날 리 없었다. 왜냐면 그것들은 고스란히 내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법인데 나에게는 하나도 없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패션잡지 에디터가 되기 위해 수 십통의 이력서와 자소서를 우편과 멜로 뿌린 동기는 비로소 연락을 받고 뛸듯이 기뻐하며 간 면접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하도 간절히 이력서를 보내기에 얼굴이라도 꼭 한 번 보고 싶었어요. 궁금했거든요. 결과는 낙방. 간절한 것이 곧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파리에서 만난 그는 나를 두고 '쓰잘데기 없는 학과'에 다닌다고도 했었다. 푸핫. 옆에 있던 건축학도 친구가 웃었고 공대를 나온 그도 웃었고 나도 웃었다. 그래, 21세기에 글로만 먹고 살겠다는 건 얼마나 가시방석인가. 부모님에게 못할 짓인가. 자책하진 않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어쨌거나 글은 실재 혹은 실존과 비교하면 정말 안드로메다다. 이 왜곡 많은 (글자의)이미지가 나와 당신 사이에 저질러 놓은 섬은 또 얼마나 넓은가. 사랑한다는 고백이 날아가는 속도는 얼마나 덧없으며 또 불가능한가. 나는 수줍은 대신 말을 잘했다. 글이 되기도 전에 생각이 말로 먼저 튀어나왔다. 지금은 (반만 진심인데)말보다 글을 더 잘썼으면 좋겠다. 글보다는 말이 더 먹히니까 완전히 진심은 아니다. 확신이 들지 않는다. orz

 

어쨌거나 아주 오랜만의 한국문학. 밤새워 읽고 보고서를 작성하던 여러 밤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때의 숭고했던 자세는 앞으로 영영 없을 듯해서 서운하고 서글픈 마음. 스물 셋 커피숍에서 데이트 약속을 기다리며 핫초코를 시켜놓고 전자사전을 펴 뜻을 찾아가며 읽던 <혼불>하며(과제였다), 온갖 문예지들 그리고 수상 단편들을 날마다 읽던 추억이 아련하다. 누리는 시간과 해야 할 일들이 당연히 내 것이 아니란 걸, 그땐 왜 몰랐을까.  

 

 

2011년 단 며칠, 부활한 TV문학관 속에 이 작품이 있었다. 광염+소나타=광기 어린 음악을 만드는 예술가 얘기다.

 

 

 

 

 

 

 

 

 

 

 

 

 

 

 

역시 C샤프 단음계로서, 제일곡은 뽑아 먹고, 아다지오에서 시작되는데,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 수평선 위로 넘어가려는 저녁 해, 이러한 온화한 것이 차차 스케르초로 들어가서는 소낙비, 풍랑, 번개질, 무서운 바람 소리, 우레질, 전복되는 배, 곤해서 물에 떨어지는 갈매기, 한번 뒤집어지면서 해일에 쓸려 나가는 동네 사람의 부르짖음-흥분에서 흥분, 광포에서 광포, 야성에서 야성, 온갖 공포와 포학한 광격이 눈앞에 어릿거리는데, 이 늙은 내가 그만 흥분에 못 견디어, 뜻하지 않고 '그만두어 달라'고 고함친 것만으로도 짐작하시겠지요.

 

이 대목은 어떻게 하면 알아들을 수 있지? 음대 갔었다면? C샤프 단음계에서부터 머리에 쥐나기 시작. 피아노를 들으며 이런 감상이 나올 수 있다면 글이 아니라 음악을 해야 마땅하다고 고개 끄덕끄덕. K선생도 좀 멋있는 사람 같다. 여튼 '성난 파도''피의 선율'은 백성수의 비상한 광기와 열정으로 '우연히' 지어진 곡조다. 방화와 살인. 무너져내리는 잿더미와 이름 없는 자를 갈갈이 찢는 것에서 이 세상 모든 영혼을 울리는 음보가 태어났다면, 천재 작곡가(음악가)가 났다고 칭송할 수 있을까. 김동인의 <광염소나타>는 천재성을 지닌 한 남자가 계통적 훈련 아닌 광기로 뽑아낸 음악으로 인해 짙은 예술성을 획득하지만 존재로서의 파멸을 촉진하며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예술품과 예술가의 반비례 관계를 포착하여 진정한 예술가의 위치를 묻는 동시에, 예술은 어디까지 타당화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그의 방화는 어머니의 병환 중 지극히 가난해서 병원에 가지 못하자, 약국 카운터에 약사는 없고 돈이 올려져있는 것을 우연히 보고는 그 돈을 훔친 것이 발단이다. 주인에게 잡혀 감방에 6개월을 있을 때 어머니는 아들을 부르며 기어나와 거리에서 죽었다. 아무리 애원해도 외면했던 당시 주인집에 홧김에 불을 지르고 도망친 성당에서 광기에 휩싸여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K선생의 눈에 띈다. K선생의 백성수 두둔은 사실상 용인될 수 없다. 어떤 가치로도 방화, 시체 강간, 살인 등을 용인할 수 없는 것이 오늘 날의 시각이기도 하지만, 그로인해 설명할 수 없는 흥분과 광기를 갖고 천재적 예술성을 발휘해 어떤 창작물을 만들었더라도, 심지어 살아숨쉬는 예술품을 창조했다고 하더라도 이 예술품과 예술가를 동일시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가치판단 혹은 문제는 남는다. K선생은 윤리와 도덕의 잣대로 예술가의 천재적 기질을 억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작가의 미적 세계관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이런 지독한 탐미주의는 자칫 시대/현실 동떨어짐을 반영할 수밖에 없으며,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없거나, 꿈에서는 가능하더라도 현실에서는 절대 허용될 수 없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희곡 시나리오 수업 중 쌤이 제일 많이 언급한 플롯은 공지영의 <인간에 대한 예의>와 윤대녕의 <천지간>이었다. 가장 많이 읽히는 본보기를 들었던 쌤과 하도 들어서 읽지 않아도 익숙한 느낌이 팽배한 나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독서 미완결 상태로 기억 속에 묻혀있는 두 편이다. 워낙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고 작품이 좋을 것 같기도 했지만 그 섬세한 결이 역시 좋아서 당시 무슨 얘길 하시며 어떤 식으로 언급됐었나 궁금했지만 저질 기억력이 그걸 알려줄 리가 없지. 시험공부의 후유증은 오래 남아 디오니소스(술의 신 바커스)를 위한 제천의식(종교적 행사)에서 시작되었다는 희곡(연극)의 기원만이 엄하게 떠오른다. 나는 연극이란 매체를 아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건 지리적 영향일 가능성이 없지 않고, 연극을 보러가면 언제나 좋았다. 살아 움직이는 배우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과 호흡하는 배우와 관객의 거리가 늘 가슴뛰었다. 그러니까 이론을 기억하고 있는 건 당시 신나게 공부했었음을 반추하는 거라서, 오랜만에 연극관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작가의 자전적 경향이 강하게 표출된다. 사랑관도 그렇고, 문학에의 열정과 좌절 같은 것들이 그렇다. 하나하나 읽다 나도 모르게 전체를 읽었고, 표제작에 대해서만 말한다.

 

이미지도 없이 이름만 강요하는 것 같네요, 내가.. 어떻게 말이라는 것으로 그를 설명할 수가 있을까요.

 

어느 날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봉우리가 바라다보이는 한 사파리에서 야영 중 불현듯 깨달은 바 있어 다시 돌아왔다는 그녀의 이력. 어떤 방랑과 초월, 실현에 대한 호기심이 그녀의 이국생활과 경력 그리고 다시 돌아온 지금을 궁금하게 했기에 찾아갔다. 원래는 1970년대 초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의 주모자였던 권오규란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 했었다.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대치되던 시절, 진리를 한 번 알아버린 사람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벗어나지 못한 채 여기저기를 떠돈다. 이십대의 팔팔한 젊은이가 오십이 넘은 나이에 출소하여 집에 돌아와서도 방문을 두드리는 일련의 세월에 덕지덕지 묻은 상처는 아무리 벗기려 해도 지울 수가 없는 거였다. 아직, 여전히, 이 세상과 저 세상처럼 나와 당신 사이에는 벽이, 섬이 견고하게 둘러쳐진 것일까. 그 집엔 강아지가 있었거든.. 그 강아지는 하루 종일 연못가에 놓인 돌에 코를 박고 가만히 앉아 있어. 내가 강아지가 왜저러느냐고 물었더니 이민자 화백이 대답하데. 강아지요? 아아.. 강아지는 명상을 하는 중이에요. (중략) 무슨 명상이오.. (중략) 글쎄요, 이런 거겠죠. 물속에 고기가 있네..

 

팔십년대의 아들딸들은 달랐다. 감옥에서 이십년 동안 그저 앉아 있던 권오규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난한 가방을 달랑 들고 그림공부를 하러 뉴욕으로 떠나는 이민자의 모습도 보였다. 비밀결사를 다 결성하기도 전에 체포되는 권오규. 그 무렵 뉴욕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민자. 감옥에 앉아 있는 권오규. 인도를 맨발로 방랑하는 이민자. 감옥에서 일곱 걸음 걷다가 뒤돌아서서 다시 일곱 걸음 걷는 권오규. 아프리카의 눈 엎인 킬리만자로가 보이는 사파리에서 불현듯 그 무엇인가 깨닫는 이민자. 그래도 감옥에 앉아 있는 권오규. 지겹도록 이십년 동안 앉아만 있는 권오규. 무엇을 견디려고, 무엇을 기다리려고 그저 앉아 있는 권오규. 화염병을 들고 뛰던 강선배, 휴지뭉치를 들고 코를 풀며 따라가던 나..

 

여기, 시대와 역사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켰던 한 사람이 있다. 나는 누구보다 더 이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십대, 팔십년대가 무섭도록 감흥이 없을 만큼 나도 나이를 먹고 있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소설집을 펴면 제일 처음으로 만나는 작품이다. 샤갈과 눈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초자연적 현상은 분위기를 지배한다. 눈이 내린다고 꼭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것인가. 상대적인 모멸감 때문이 아니라, 저마다 키워온 스스로의 환상에 기만당한 것 같다는 자괴감 때문에 우리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현실과 환상은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다를 수 있는 것일까. 지난 연대 내내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환상에 뜨겁게 사로잡혀 있었고, 이제 그것은 빈틈없이 깨져버린 것이었다. 라는 대사로 둘러처지는 연대라는 환상과 허무, 정치에의 혐오, 그것들은 무기인 듯 보였으나 무력감이었다. '이제는'이라는 회의론과 '그래도'라는 명분론 끝에 술 테이블을 뒤집는 싸움. 그날 그 말을 듣고 어째서 명분론 쪽에서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질 않았는지, 그 뒤로도 우리는 오랫동안 그 이유를 감지할 수 없었다. 명분론 쪽에 서 있던 당사자마저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으니까, 나머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거기에 일종의 심리적 동조의식, 다시 말해 논쟁을 위한 논쟁으로 어쩔 수 없이 상반되는 견해를 취했지만, 명분론의 이면에도 역시 회의론적인 요소가 다분히 내재돼 있었으리라는 짐작만 어렴풋이 해나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짐작은 당사자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통해 분명한 사실로 확인되었다.

 

연대에는 이탈이 없어야 하나. 이 허무의 술자리가 파장한 다음에야 비로소 깨닫는 것 한 가지. 상실된 대화와 깊은 단절감. 이후 모임에서 계속되는 잡담 또 잡담 그리고 잡담. 의미없는 말만 통용되는 시간. 의미있는 말이 철저하게 통제당하는 공간. 거기에는 연대와 열정, 기대감과 설렘 따위는 없었다. 술자리에서 절반이 돌아간 다음에야 비로소 남은 사람들에게는 결속감과 새로운 공감대와 은밀한 연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 여자를 만나 '샤갈의 마을'에 가게 된다.

 

'흩어졌다'는 결과보다 '흩어져가고 있다'는 과정 때문에 괴로운가. 결국은 '둘'도 남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지. 여자의 목소리가 슬프게 들려온다. 우린 모두 누구를 기다리고 누구와 자고 누구의 손을 잡고 그렇게 한걸음씩 나아가는 존재인가 보다. 함께 있을 땐 고독을 꿈꾸고, 혼자일 땐 누군가와의 연대를 꿈꾸는.

 

 

 

 

 

 

 

 

 

 

 

 

 

 

 

<신라의 푸른 길>은 신경숙의 <부석사>가 그랬듯 문학기행을 떠나고 싶게 한다. 대학 때부터 경로와 목적을 적어내려간 기행노트가 몇 권이고, 그 중 아직 떠나지 못한 장소, 여전히 느끼지 못한 정취가 또 얼만지. 내가 절 탐방을 좋아하고, 불상도 좋아하고 탑도 좋아하고 고요를 좋아하고(애들 말에 의하면 내가 제일 말이 많다는데!) 무엇보다 얼마 전 친구들끼리 모였다가 나온 템플스테이는 로망인데, '새벽부터 일어나서' 부분에서 약간 좌절(침묵과 수양도 약간 힘들 것 같지만). 하지만 나는 이성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보통사람이니 맘먹으면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닌데 언젠가,로 약속했지만 지금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진 상태임. 석굴암 본존불상 아미타불과 경주에서 강릉까지 가는 7번 국도를 떠올리고 있었다. 와 같은 문장에서 시작부터 발이 푹 하고 빠지면 더이상 집중이 되지 않고 안절부절못한다. 경주에서 포항을 거쳐 강릉까지 바다를 끼고 가는 7번 국도. 우왓. 남쪽 항구도시에 사는 나는 이 국도가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진 전용도로 같다. 어릴 때 임진각 자유의 다리, 통일전망대 가면서 아빠가 달렸던 길과 몇 해 전 여름, 가는 길에 진탕 싸우긴 했어도 나름 신나게 떠났던 여행도 그 국도였나. 김연수의 소설 제목. 나는 운전을 못하니까 모른다.

 

내일은 일찍 움직여야 하고 차를 타고 이 책을 읽을까 한다. 내가 갈 길이 7번 국도도 아니고 여행가는 것도 답사가는 것도 아니지만 어쩐지 해야 할 일을 든든히 챙겨서 차를 타는 기분이 기다려진달까. 어디 갈 땐 무거운 거 싫어서 책 잘 챙기지 않는데 이 책이 전자책에..전자책에.. 내일 할 일 만들어둔다고 페이퍼에 구멍을 만들었다. 뭐 가끔 이럴 때도 있어야 재밌지! 빈틈도 있고 구멍도 나고 앞뒤 말도 안맞고 간혹 그래야.. 그래서 안녕. 윤대녕 작가를 엄청 좋아하는데 하필이면 여기 이 책에 구멍을 내다니 다시 와서 이어쓰겠음. 꼬옥 쓰겠음.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은 겨우 찾았다. 이 작품집에 실린 구효서의 <카프카를 읽는 밤>은 비 오는 날의 삼거리에 서 있던 밝은 핑크빛 원피스를 입은 그녀로부터 시작한다. 그녀의 상처 그리고 나의 상처. 그녀는 재일 한국인 그리고 나는 그냥 한국인. 그녀가 내 눈에 띈 까닭도 어쩌면 그녀가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날 내 행보에 특별한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적 시적 걷다 보면 시선마저 느긋해져 그런 사소한 것들까지 일일이 보아낼 수 있는 거니까. 그녀는 누군가에게 길을 물으려 하고 있었고 나는 일부러 그녀 곁을 천천히 걸으며 질문해오길 기다리다 그녀를 안내한다. 다시 만날 줄 몰랐던 그녀와 몇 번 마주치고, 드러나는 그녀의 삶과 나의 삶, 그녀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 아주 짧지만 강렬하다. 무엇에 대해? 카프카에 대해. 하지만 저지 코진스키를 언급하는 부분이 더 강렬하다.

 

유태인에 관한 거라면 나는 저지 코진스키의 <더 페인티드 버드>를 잊지 못한다. 매 장마다 소름이 끼치는 그 소설 9장에는, 집단학살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알아버린 유태인들이 어린 자식들을 달리는 열차 밖으로 내던진다. 열차가 지나간 마을엔 바퀴에 찢긴 아이들의 사지가 건초 더미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요행히 목숨이 붙은 아이들은 가난한 마을 사람들한테 신발과 옷을 빼앗기고 얼어죽거나, 여자 아이일 경우엔 거기에다 강간까지 당한다.

 

자신에게 그 소설과 같은 내용의 쓰라린 고통만을 안겨주고 나중에는 정치적으로 억압하기까지 한 조국을 탈출해 저지 코진스키는 미국에서 전혀 새로운 언어로 소설을 썼다. 전혀 새로운 언어로. 그러나 선배 유태인인 카프카는, 프라하에 끝까지 웅크리고 앉아, 저 독일인의 언어로 <변신> <실종자> <심판> <성>과 같은 소설들을 써낼 수밖에 없었다.

 

재일 한국인 그녀와 유태인 저지 코진스키 혹은 카프카. 나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을 것 같다. 영토와 국토를 잃고 방황하는 그들의 상실과 절망과 소외감을 온전히는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있는 지금 이 자리는 내 것이라 믿고 살아가는 것만이 견딜 수 있는 일일 것 같다.

 

 

 

 

 

 

 

 

 

 

 

 

 

 

 

 

김인숙의 소설 중 <소현>이 시대와 문체를 통해 왜 그녀가 써야 했는지 알 수 있었다면(당시 나는 그 문체를 말투로 따라하면서 다녔음), <미칠 수 있겠니>는 발리라는 이국적 공간과 지진이라는 자연재해, 상처와 배신으로 얼룩진 사랑을 치유하려는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내면을 슬프지만 절망적이지는 않게 그리려는 느낌을 주었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고, 과거와 현재가 버무려지는 느낌 또한 그랬다. 결과적으로 아주 애틋하고 완전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때로 아득해져서 손에서 놓아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었고, 좋았다. 여류 소설가들이 외국 체류나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닌데다 나와 다르지도 않아서 좋았는데(물론 그들의 여행기는 별도로 하고) 그게 처음이 아니었다니 반가운 기분(와락). <먼 길>은 작가가 1993년부터 1년 6개월을 시드니에서 보낸 경험을 살려 쓴 소설로 1995년 한국일보 작품상을 수상했다. 시기로 보면 거의 20년 전인데, 젊은이들의 방황과 정착이라는 코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 걸 보면, 사는 일의 본연적 고민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만은 않은 듯하다.

 

...내 기억 속에는 아직도 청년인 당신... 그래서 서글픈 기억... 나는 그것을 붙들고 있을 힘이 없습니다.. 로 요약되는, 한때, 당신을 사랑했었노라고.. 잊지 않는 이상 서글픔이 사라질 수도 없다는 서연의 편지로부터 시작한다. 누가 이, 절절한 기억 속 주인공일지 가슴이 콩닥거리며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포트 멕콰리로 떠나기로 한 날, 서연의 편지를 받았다는 이는 한영이다. 그리고 한영의 세상에는 낚싯배를 모는 형 한림과 명우가 있다. 8년 전 사랑했던 서연만이 없다. 명우를 처음 만난 날은 이해할 수 없다. 네가 아직도 혼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게 왜 희망처럼 여겨졌는지. 관계를 맺는 모든 일에 실패만을 거듭해왔던 지나간 내 삶이, 왜 그렇게 느닷없이 축복처럼 여겨졌는지... 라는 편지를 띄우고 그녀의 답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교민잡지사에서 한국인으로서 난민비자로 영주권을 취득한 명우를 취재하기로 한 건 그것이 도저히 통용될 수 없는 특수한 사례였기 때문이었다.

 

이민.. 이것을 끝내고 저것을 선택하는 일. 모든 것의 시작. 그들은 이 시작 앞에, 걸어가야 할 먼 길 앞에 흔들리고 좌절한다. 과거를 버리지 못하고 단절하지도 못한 채, 울컥하는 심정으로 받아들어야 하는 모든 것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 한영에게는 그 과거 속에 서연이 존재했다. 한림에게는 노래하지 못한 채 헛도는 자유와 그로인해 실패한 결혼생활이 그랬고, 명우에게는 학생 점거농성으로 받은 1년 반의 징역생활이 그랬다. 모두에게 신열같은 열병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방인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서연의 그리움을 토로하는 한영에게 명우는 말한다. 사랑이란 건 비로소 그리움으로 확인되는 감정이 아니던가요. 자조적 웃음을 날리면서도 형(한림)의 방랑벽과 속박된 자유, 명우의 내가 헛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고백이 결코 아닙니다. 내 길은 헛되지 않았는데 내 삶이 헛되어졌다는 것, 그걸 말하고자 하는 겁니다. 라는 얼치기 고백에도 그만 마음이 사방으로 철렁하는 몰골이 되어버린 자신이 소외감에 몸서리친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었다.

 

생존의 행렬. 한영은 몰랐고 서연은 직관으로 알았던 바로 그것. 언젠가 세월이 뒤틀릴 것이라는 사실. 가족병력이 있던 서연과의 교제를 반대한 아버지를 당신이라 칭하며 맞섰지만, 미칠 것 같은 소유욕에도 불구하고 병신 자식의 아비가 되고싶지 않았던 비열함이 그를 이민자로 내몰았다. 서연 대신 창녀를 안으면서, 여자의 배에 지폐를 뿌려대면서도 잊지 않고 싶은 것, 포기할 수 없었던 것, 집착했던 것, 비열함도 아니고 좌절도 아닌 어떤 신념과 계획. 한영은 그것을 다시 갖고 싶었다. 그녀의 손을 부여잡고 떠나자고. 새롭게 시작하자고. 풍선처럼 가볍게 살자고 말하던 그는 몰랐고 서연은 알았던 것. 그것.

 

상처를 기억하고 간직하는 것, 그리하여 그 상처에 온 가슴이 전부 문대질 때까지, 끝끝내 버티는 것. 현주소에조차 온전히 머물지 못함을 아프게 상기하며 그가 내린 결론이라면 저마다의 이유로 남을 여기 이 자리, 현주소에 온전히 머무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 이 페이퍼의 박스글이나 색깔글은 모두 소설 속에서 가져온 인용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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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2-06-03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이님. 나 아이님을 아주 미치게 사랑하고 싶다, 이 한 마디만 하고 갈께요.

아이리시스 2012-06-03 21:53   좋아요 0 | URL
세상에, 너무 격하게 애정하는 댓글 쓰심 댈러웨이님 오해 삽니다ㅋㅋㅋ
제가 여기저기 사랑을 좀 많이 받긴 하지만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돌아왔어요. 댈러웨이님 서재에 제 댓글 확인해요. 오랜만에 비밀이에요ㅋㅋㅋ

이진 2012-06-03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아이님 디게 오랜만이다.
아이님 비밀은 뭘까. 아참 그리고 댈러웨이님보다 내가 더 아이님 사랑하는거 알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이님 단편 극도로 싫어한다며요, 언젠가 본적 있는거 같은데. 몰입하면 끝난다구 ㅎㅎㅎ 저도 그랬는데, 요샌 단편이 더 좋아요.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지만 간단하게 읽고 읽고 난 후의 그 짧지만 아릿한(?) 여운. 그런게 좋더라구요. 문장도 단편이 더 좋은거 같구.

내 친구도 <혼불> 도저히 읽을게 못된다고 해서 물어봤더니 옆에 사전두고 봐야한다고 ㅋㅋ

아이리시스 2012-06-03 23:10   좋아요 0 | URL
아악, 소이진님 보면 저 꼬마아이 얼굴 떠오르고 소이진님 겹쳐지고 그러면서 막 머리 쓰다듬고 싶어요.(나 나쁜누나 아님-.-) 또 사랑고백 받다니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아람~(지금 음표 찾을라고 다 해봤는데 어딨는지 모르겠음. 여튼 나는 노래중)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응응, 그래요! 난 예전에도 단편을 싫어했어요. 근데 그게 맞아요. 소이진님은 현명한 문학소년^^
국문과 수업 듣는데 시험 쳤었어요. 거기 나오는 어휘의 뜻. 나는 하나하나 읽으며 정리했는데(!) 그거 어휘집이 따로 있더라고요. 덕분에 책은 열심히 읽었는데 쪽지시험은 망했어요. 시험은 역시 꼼수와 요령이 있어야 해요(!!!) 수능 끝나면 소이진님도 꼭 읽어요.(응?) 수능치고나서.

ㅎㅎㅎㅎㅎㅎㅎㅎㅎ사랑해요, 소이진님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잘자요.. 안녕.

티티카카 2012-06-04 14:37   좋아요 0 | URL
와우, 굉장히 귀여우시네요 ㅋㅋㅋ두 분 다!

저는 최명희 작가님이 원고를 쓸 때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 같다는 말이 잊혀지지 않더군요. 그저 읽기만 해도 힘든데 그런 깊고 무거운 책을 오랜 시간 풀어내려고 애썼던 작가님을 생각하니 끝없는 존경이...!

아이리시스 2012-06-04 16:19   좋아요 0 | URL
히히히 티티카카님 안녕?

소이진님이 귀여운 거예요ㅋㅋㅋ 진짜 귀엽^^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멋지다.. 사실 내용은 잘 기억도 안나는데 책 펴면 적어도 5권까지는 단어마다 뜻이 빽빽하게 적혀있어요. 며느리의 비애.. 저는 그것만 지독하게 떠올라요. 한 권씩 사서 읽었는데 어느새 10권을 사서 모았을 때 뿌듯한 느낌과.. 이제 저 책 다시 뺄 때 티티카카님도 함께 떠오를 것 같아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6-04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댓글 달러 왔어요..ㅎㅎㅎ 나 매일 서재에 들어와요. 그런데 맨날 빈 화면 앞에 두고 망설여요.
자꾸 말을 고르는거죠. 뭔가 막힘이 있나봐요. 내 안에.

7번 국도 말예요. 우리는 강원도에서 경주갈 때 그 길로 갔었어요. 진짜 좋았어요. 해가 지는게 아쉬울 정도로...
그리고 대학교 때 남동생하고 둘이서는 기차를 타고 그 해안선을 타고 내려갔었어요. 서울에서 출발해서 강릉에서 하루 묵고 부산에서 하루 묵는 그때 나름으론 꽤 먼 거리의 여행이었죠. 남동생 대학입학 기념 여행. (솔직히 걔는 뭐가 좋았겠어요. 누나랑 단 둘이..ㅋㅋㅋ)
그때 가 본 부산. 고분고분한 서울 말씨 쓰는 저와 남동생은 지하철 안에서도 남포동 떡볶이 집 안에서도 시선을 자주 받았던 기억이, 그래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막 나네요. 여행가고 싶다.

우리 7번 국도 중간 어디쯤에서 만나요. 지금 당장!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ㅋㅋㅋㅋㅋㅋㅋ
(막 이러면서 전 자러 갑니다. 언젠가는...)

아이리시스 2012-06-04 16:25   좋아요 0 | URL
그 길이 그 길 맞나봐요. 그럼 저는 그 국도에서 대판 싸운 기억이........ㅠㅠ 7번 국도.. 리스본 28번 트램 뭐 그런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김연수의 [7번 국도] 그 책 안 읽었는데 보고 싶어지네요. 책은커녕 윤대녕은커녕 차 타고 잠만 잤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계속 미완성일 것 같아요.

남동생과 여행이라니 저희는 상상할 수도 없는데요ㅋㅋㅋ 오, 고분고분한..그게 바로 제가 부러운 거예요! 서울 가면 저도 시선 자주 받는데ㅋㅋㅋ 다른 이유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7번 국도 중간에서 만나야 합니까?! 제가 운전 못하니까 데릴러 와요. 데릴러 와요! (막 이런다)ㅋㅋㅋ

댈러웨이 2012-06-04 21:04   좋아요 0 | URL
윤대녕은 커녕...요? --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ㅠ.ㅠ

아이리시스 2012-06-08 00:1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읽긴 읽었어요, 짧으니까요, 댈러웨이님ㅎㅎ
근데 별로 재미가 없..신라와 경주와 여자가 왔다갔다하다가 가버렸어요ㅠㅠ

2012-06-04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4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티티카카 2012-06-04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밤에 이 글을 쓰셨군요 :) 시간의 무게가 더해진 그 밤의 글이 저의 추억까지 환기하네요.
저도 단막극 참 좋아해요. 진부한 드라마들 사이에서 신인 작가만의 톡톡 튀는 전개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죠. 그런데 이제는 그런 재미가 모두 날아가버렸어요. 말씀하신대로 무얼 보더라도 아웃풋이 있어야 하는데, 허무맹랑한 감정의 편린들만 남게되는 것 같아 일체 손을 못 대겠어요. 순수한 재미마저 잃어버린 건 아닐까 두렵기도 하구요ㅠ;;
파리에서 있었던 사연은 씁쓸하네요. 남들에게는 '쓰잘데기 없는 학과'라고 불려지는 데다 수많은 글쟁이들 앞에 한없이 무력해지게 만드는 학과!!

근데,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아이리시스가 무슨 뜻이죠? 검색해보니까 소설 제목으로 있네요? 아닌감? ㅎㅎ....

아이리시스 2012-06-04 16:31   좋아요 0 | URL
그게..그분 여동생도 같은 학과였어요. 그런데 잡지에디터여서 글과 여행 사이를 하염없이 방황하는 분. 아마 그래서였을 거예요. 잘 아니까! 아님 기분이 나빴겠죠..저도..^^

요즘도 단막극 하는데 자꾸 연속이에요, 4부작 8부작 이렇게요..

irisis 'i'과 'r'과 's'의 조합이 좋아서 창작해낸 거. 뜻은 없어요.하하. 티티카카님이 뜻 만들어주시길^^ 우왓, 소설을 발견하셨어요? 그건 무슨 뜻일까요?!

티티카카 2012-06-04 19:23   좋아요 0 | URL
http://en.wikipedia.org/wiki/The_Well_of_Echoes

소설 제목이 아니라 주인공 이름이었네요. 영어라 막눈이 도졌나보군요 줴길...ㅋ

아이리시스 2012-06-08 00:19   좋아요 0 | URL
위키피디아 가서 봤어요, 티티카카님. 아..두번째 주인공! 주인공의 라이벌이라는데요..저 해석했어요. 너무 신기했거든요. 나 처음 봤어(ㅋㅋㅋ)

2012-06-06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8 0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igur Ros - Valtari [3단 에코 디지팩]
시규어 로스 (Sigur Ros) 노래 / 워너뮤직(팔로폰)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그들의 등장을 꼬박꼬박 기다렸다거나 기다려왔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왜인지도 모르게 기다리는 앨범 중 하나였고 나오면 습관처럼 듣게 됐고 새로 나오지 않는 동안은 이미 나와있는 음악을 반복해서 들었다.

 

제정신과 제정신이 아닌 중간. 물론 잠에 곯아떨어지기 전의 새벽 상태를 얘기하는 건데, 나는 머리가 팽팽돌 때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겠다 싶으면 낮에는 편하게(여유롭게) 듣지 못하는 앨범을 틀어놓는다. 평소 시규어 로스 틀어놓고 있으면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혼자 안드로메다로 간다. 좋은 뜻이기도 안좋은 듯이기도 한데, 지금은 안좋은 뜻이다. 왜냐면 그게 낮에는 별로 좋지 않다. 제정신이어야 현실을 직시해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실수 안하고 똘망똘망하게 살지, 아이슬란드나 북유럽이나 시규어 로스가 내 '현실'은 분명 아니잖아. 그래서 좀 참다가 밤에 틀었는데 뭐, 밤잠을 설쳤다. 심지어 틀어놓고 자서 아침에 깨어보니 아직도 이어폰으로 흐르고 있는 음악이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닥터후가 된 기분. 닥터진의 송승헌, 옥탑방 왕세자의 왕세자, 인현왕후의 남자의 지현우가 된 기분. 여긴 어디고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시작부터 끝까지 꾸물꾸물하면서 시리고 차갑다. 대체 어디 이런 세상이 있나 싶어 유토피아, 샹그릴라를 찾아나서야할 것 같은 충동마저 느껴졌다. 세상에, 이건 꿈이야. 음악이 꿈이다.

 

며칠 전까진 이걸 들었다. 얘(어리니까)는 발음이 살짝 말리는 것마저도 귀엽다. 목소리 톤이 남자치고는 비교적 높은 것 같은데 고음에서 목소리가 커지는(보통 발성연습이 덜됐거나 노래 못할 때 나타나는) 일반인티(!)를 내서. 영화제 신인상을 휩쓸던 때부터 이미 일반인이 아니었는데도. 잘하는 게 많아 보였고, 갈 길을 명확히 아는 배우처럼 보였다. 이미지관리 플랜이 잘 짜여있는 정갈한 배우라는 이미지도 주지만, 한편으로 먼 느낌이기도 했는데 노래로 일반인티를 내다니. 드라마에 한 번도 삽입되지 않았는데(패션왕은 OST가 자그마치 일곱 번이나 나왔음) 종영한 후엔가 종영하던 주에 음원이 나왔다. OST 사서 듣고 결제하고 그러진 않지만 당시에는 종종 찾아보긴 했다. 자고로 OST는 작품 안에서 빛나는 법이니 더 말 안하고 패스.

 

 

다시 시규어 로스. 이 몽롱함과 신비로움과 아름다움. 얼마 전 소설 <조드>를 읽고나서(1권만 본 상태. 내가 그렇지!) 충동적으로 아는 사이트를 다 뒤져 몽골에 관한 (여행이든 뭐든) 다큐를 찾아냈다.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남의 사진만으로도 이미 이 세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데 아시아라는 게, 심지어 아이슬란드보다 더 낯설게 느껴진다는 게 신기해서 아주 오랫동안 돌려보고 또 돌려보고 그랬다. 웬만한 나라들(심지어 끔찍한 에티오피아나 폭탄 터지는 이라크 어느 마을도)도 가면 가는 거지 뭐, 하는 기분인데 이상하게도 몽골만은 이 곳이 이 세상에 정말로 존재한단 말인가, 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 왜?

 

이인화의 <하늘꽃>과 김형수의 <조드>가 지금 몽골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 옛날의 몽골을, 전설과 신화로 얘기하기 때문이다. 또 그런 소설들을 내가 좋아했었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의 것이기도 했던 땅이고, 한때 우리의 것을 공유했던 땅이며, 어쩌면 우리의 것이 될 수도 있었던 역사라 친근감이 드는건가 하면 그뿐만이 아니다. 몽골의 사막을 건너는 낙타는 또 어떠냐면, 사하라나 아라비아를 뛰어넘는 어떤 신비의 영역을 구축한다. 더 가까운 곳에, 더 북쪽에, 하물며 같은 인종에. 한마디로 동질감인가 하면 확인할 길이 완벽하지 않다. 모르겠다. 친구는 중앙아시아어과를 다니며 터키어와 또 뭐더라, 다른 한 가지 언어를 공부했다. 다음날 생각하길 우즈벡어였던 것 같다. 졸업 후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스탄불로 떠나거나 여느 전공처럼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진로를 택한다고 했다. 중앙아시아. 내게 중앙아시아는 딱 그 정도 상식을 지닌 곳이었고, 친구에게는 친구가 가이드를 하고있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놓인 도시 정도일 것이다. 자기가 배운 언어에 대한 애증과 대학생활하며 꿈꿨던 어떤 풍경을 간직한 곳.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슴에 담고 꿈꾸는 건 너나 나나 같아, 수다떨던 이십대 초반이 떠오른다. 역사책 제일 앞 페이지에는 韓족으로서 한국,몽골,터키가 같은 혈통이라고 나온다. 쌍봉낙타가 있는 곳도 몽골, 고구려와 같은 기마민족인 것도 몽골, 고대 중국과 갖은 전쟁을 벌이며 서로 압박하며 살아남은 비슷한 역사를 지닌 것도 몽골. 내게 시규어 로스는 유럽의 몽골 같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 동떨어진 곳, 아무 것도 없는 곳, 갈 수 없는 곳, 가려는 생각조차 없는 곳,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곳, 추운 곳, 얼음으로 뒤덮인 곳,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 유토피아(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또는 이상향(理想鄕)을 가리키는 말)나 샹그릴라(신비롭고 아름다운 산골짜기나 그런 장소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며, 티베트어로 '푸른 달빛의 골짜기'라는 뜻)라고 해도 전혀 새로운 비유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비유(이)다.

 

허공의, 미지의, 공감각의, 초현실의, 잔향의, 울림의, 메아리의, 승리의, 장미. 반가워, 나와줘서. 조금은 두렵고 또 조금은 춥고 또 황홀한 밤을 선사해줘서 그리고 금세 사라져버리는 손길, 눈길, 발길 다 닿지 않는 곳에 있어줘서. 한결같이 혹은 새롭게. 여행지에서 들을 수도 있고, 들으며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역시, 시규어 로스는 자체가 여행이다. 음악이 아니 음악 듣는 내가 만들어내는 가상의 세계가 바로 여행이다. 일생에 몇 번, 만날 때마다 매번, 낯설어서 아름다운. 오늘 느낀 기시감이 내일 날이 밝기도 전에 이미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이, 정체모를 느낌이라니, 고맙다. 덕분에 내일이 기다려진다.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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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카카 2012-06-02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 듣는 내가 만들어내는 가상의 세계가 바로 여행이라는 말씀, 공감합니다! 뮤직 비디오가 참 멋지더군요.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프로필 사진은 누구죠?

아이리시스 2012-06-03 02:06   좋아요 0 | URL
티티카카님은 이나영, 저는 실비아 플라스!

닉넴이 예뻐요. 그리고 반가워요. 이 밤에, 처음오신 분의 댓글이구나(!) 이러면서 행복해하고 있슴. 행복한 주말밤 되세요. 우리 음악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자구요^^

댈러웨이 2012-06-03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님 글엔 자꾸 먼댓글을 달고 싶어지는데 엄청 참는거 알아요?
어제 계속 시규어 로스 들었어요.
오늘도 계속 들을거에요.

제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아이슬란드일거에요. 언제부터 그 추운 나라에 대한 환상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이미 알고 있겠지만 아래의 두 음악, 아이님이랑 듣고 싶어요.

http://www.youtube.com/watch?v=9VwjiZmE_jA =>뷰욕이 피쳐링 했어요.
http://www.youtube.com/watch?v=mYIfiQlfaas => 맑고 몽환적이죠.
(성은 같지만 다른 뮤지션이에요.)

일요일 잘 보내요. ^^

아이리시스 2012-06-03 22:06   좋아요 0 | URL
나만 간 건 아니었어요 :) 안드로메다는 댈러웨이님도 같이 갔어..( '') 히히 저는 먼댓글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자꾸 까먹어요! 근데 지금은 그 메뉴도 안드로메다로 가버렸어.. 지금 주소로 들어가서 듣고있는 중. 근데요, 세상에 뮤지션들은 왜 일케 많은 거예욧! 것도 제가 모르는..사실은 아는 게 극소수지만, 이야, 가야금 소리가 나는 것 같아요!! 아.. 저 성이 아이슬란드 성이예요? 저는 이런 뮤지션이 있는지 몰랐어요. 오호호. 둘 다 좋네요^^ 맑고 몽환적.. 좀 더 다운되어 있는 듯해요. 시규어 로스는 진짜 이 세상 아닌 것 같았거든요. 잠결에..

얼마 전에 화산폭발했을 때 친구가 더블린까지 재가 날아온다며 아이슬란드 싫다고 했어요ㅋㅋㅋ 저는 그 나라는 이상하게 시규어 로스랑 화산재만.. 얼음도.. 추운 건 싫지만.. 꼭 가보고 싶어요. 꼭 가보겠다고 하지 않으면 지나쳐갈 수 없는 나라일 것 같아요.

오늘 일요일 거기 날씨 많이 추웠어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폭스8월버젯행사)(Last Tango in Paris)
20세기폭스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금지된 사랑을 하고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원초적 감정을 건드리는, 일반인들보다 조금 더 격정적이고 예민하고 치열한 사랑과 욕망을 고도의 정밀함으로 표현해낸 영화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멜로나 로맨스 영화를 잘 못본다. 잘 보고 싶은데 극장에서는 아예 고르질 않고 보다가 10분 안에 꺼버리는 게 대다수. 상큼, 발랄, 현실적 얘기들을 내가 별로 안 좋아한다고 결론 짓고도 자꾸 보려고 기웃거린다. 예전엔 프랑스 영화, 요즘은 소규모 유럽 영화들 대부분이 그런 것 같은데 그 중에서도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는 <베티 블루 37.2>(1986) 다음으로 묘하게 아픈 영화다. 길을 잃은 욕망이 표류하는 것 같은 간절하면서도 치명적인 선이 있는데 스토리보다 이미지로 먼저 다가오는 감독이 그려내다보니 과하게 야한 영화로 포장된 감이 없지 않다. 물론 에로틱한 면이 없지 않고 벗은 여자를 샤워시키는 장면은 후반부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지만 정작 영화에서 선호되는 씬들이 섹스에 골몰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고독. 향할 수 없는 목표. 길 잃은 영혼. 그런 것들이 시대의 흐름창을 만나 폭발적으로 표류한다. 선호하는 감독이 없었는데 이제 알모도바르보다 빔 벤더스와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들이 더 황홀하게 느껴진다. 존재의 무거움을 감당하려고 혹은 감당하지 못해 서로가 서로에게 짐으로 얹혀야 하는, 그 모진 영혼들이 만나 결합하는 모든 장면이 파리의 퇴폐적 아름다움과 만나 야릇하고 살벌하게 진행된다. 이런 영화는 바로 그 야릇함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 정말로 끝이다.

 

위태로움이 배제된 사랑은 권태를, 위험을 갈망하는 사랑은 파멸을 몰고 온다.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로 데뷔한 에바 그린의 엄마이자 배우인 마를렌 조베르는 마리아 슈나이더가 겨우 19세에 잔느 역을 맡은 후 육체적,정신적으로 모두 배우로서도 여자로서도 정체된 고통을 겪은 점을 들면서 에바 그린의 첫 작품을 반대했다고 한다. 내면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딸이 노출과 고독의 강도가 강한 작품을 한 후 찾아올 공허를 걱정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잘 해냈고 데뷔작은 큰 반향을 일으켜서 지금까지도 할리우드와 유럽 소규모 영화를 넘나들며 고공행진하는 요염한 배우가 되었다. 외모는 그때보다 못해진 것 같지만 이 작품이 첫 주연작이자 대표작이던 마리아 슈나이더에 비하면 에바 그린의 필모그래피는 꽤 단단하고 발전 가능성이 열려있다. 베르톨루치 감독이 스토리보다는 영상미에 치중하는 바람에 지독한 탐미주의자로만 꼽히는 게 아쉽다. 나는 아무래도 이제 몇몇 감독들을 완전히 편애하기로 한 듯한데 아주 좋아하는 것은 동시에 아주 싫어지기도 쉬운 지점에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일 뿐이라고만 밝혀두어야겠다. 어느 시점의 나는 이 영화들에 열광했다고, 어느 감독들의 특정 시선에 기댄 이미지들을 간절히 바랐다고 뭐 그렇게 기억 속에 묻어가는 어떤 것으로.

 

다시 <대부> 시리즈를 학습했다. 봤다기 보다 학습이 어울린다. 다시 볼 경우에 생기는 어떤 특별한 시선을 나로서는 부정하기 힘들고(물론 의도치 않게 훌쩍 다가서는 지점까지 부정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지금은 말론 브란도를 너무 보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느끼고 싶고 푹 빠지고 싶어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나의 태생에 59년이란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부정하고픈 어떤 시간과 감정이 소중해서 오래도록 담아두고 싶다. 배우 황정민이 장례식장의 슬픔 속에 앉아서조차 다음에 연기할 때 이 감정, 이 느낌을 잊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옳고 그름을 떠나 자기가 징그럽게 느껴졌다던 일화에 덧붙인 다른 사람의 시각은 그는 진정한 배우가 맞구나, 하는 것이었단다. 오래 전에는 어제 쓴 글이 다음 날 읽어도 창피하고 부끄러워 늘 삭제버튼을 밥먹듯이 눌렀다. 어린 마음이 조금 유치할 수도 있고, 못 가진 걸 숨기기 위해 센 척 했을 수도 있고,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비이성적임이 부끄러워 울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들이 삭제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이 영화에 스며든 외로움과 고독, 소통하지 못하는 답답한 마음이 점점 닫혀가는 것, 익명 뒤에 숨어 자꾸만 감춰야 하는 사랑, 다 까발림으로서 놓쳐버릴 것만 같은 상대에 대한 불안, 만나지 못하는 마음과 의미를 상실한 섹스, 쓸쓸한 파리 그리고 현대인들. 모든 것들을 원한다. 혹은 사랑한다. 다가가는 대신 스스로 파멸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누군가를 이제는 이해한다. 아무 것도 없다. 지독한 눈빛과 광기어린 쓸쓸함 만을 제자리에 놓은 채, 대배우 말론 브란도는, 파리는, 그렇게 떠났다. 다시 꺼내볼 날은 훨씬 훗날이었으면 좋겠다.

 

나, 누군가를 소유하지도, 누군가에게 소유되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을 안을 수 있다면, 아무 것도 가질 수 없을 테지만 아무 것도 될 수 없을 테지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그 사실 때문에 하루하루를 아주 고달프게 살아서 언젠가 나를 누르고 지나갈 그 기차 앞에 설 날이 오게 될 지도. 존재를 혁명하며 섹슈얼리즘을 간절히 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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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5-30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영화, 반복되는 행위들 속에서 어떤 고독감과 허무감이 증폭되는 영화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상 볼 때는 말씀하신대로 꽤 영상미가 있는 편이라, 그런 생각을 못하고 말았어요. 그러니까 뭐 그런거죠. 저렇게 외롭다고 섹스를 하고 있는 저들이 외로운걸까, 텅빈 방에서 홀로 이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가 외로운걸까,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하다면서 화면은 더럽게 이쁘네, 젠장..뭐 그런 거.

참 생각해보면 나이 70이 넘은 이 분도 올해 영화를 하나 내놓으시고 칸도 다녀가셨으니, 놀라운 할아버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하나 더 놀라운 사실은 올해 90세가 된 알랭 레네도 올해 영화를 내놓고 칸에 출품했다는 사실..90이 되신 분이 도대체 어떤 영화를 내놓으셨을지 되게 궁금하지 않아요? (나만 그러나..)

아이리시스 2012-06-02 14:34   좋아요 0 | URL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와 쌍벽을 이루는 우울함이랄까, 사실 <베티블루> 보면서는 우울하진 않았는데요.. 파란 페인트 바른 집에서 살고싶다는 생각만 했었어요. 하하. 이 영화 혼자 보면 정말 그런 기분 들어요. 프랑스 영화들은 대부분 그렇던데.. 영상미가 필터 탓이 아니라 배경 탓일까요. 아직도 모르겠..

90세.. 알랭 레네요..?(찾아봄) 대단하죠.(저도 궁금함) 예전엔 노장감독이라면 고리타분할 거란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몇 번 확인한 후에는 나는 지금도 살기가 귀찮은데(!) 70..90.. 저렇게 오랫동안 살면 대체 뭘 하고 살아야 되나 싶어요.(응?)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5-31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의 고독은 파리에서 느껴야 제맛...^^
언제 다시 가서 그 고독을 맛볼 수 있을까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려나....

아이리시스 2012-06-02 14:37   좋아요 0 | URL
원래는 올해 두오모(피렌체) 가야하는 계획표인데 꼬박꼬박 넣는 저축보험 대출을 며칠 전에도 받았다는.. 넣고 쓰고 넣고 쓰고 하는 일의 연속이에요ㅠㅠ 히히히 현맘님은 훌쩍 가심 되죠^^

나 파리 다녀올게요^^(응?)

이렇게 말하는 날이 오겠죠.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6-03 01:34   좋아요 0 | URL
나 피렌체 좀 다녀올게요.
그래요? 난 파리 가요.
그럼 잘 다녀와요.

이렇게 일상적으로다가, 평범하게 대화하면 정말 좋겠다. 그죠? 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06-03 02:10   좋아요 0 | URL
현맘님 밤에 뭐하시는 거예요?!(라고 묻고, 너는............?!)

나 내일 창원 가요.
잘 다녀오라고 해줘요.(나름 장거리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6-03 21:39   좋아요 0 | URL
창원 잘 다녀왔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창원도 참 심리적으로 먼데, 뭐...파리는 더하네요..ㅋㅋㅋ)

아이리시스 2012-06-03 23:00   좋아요 0 | URL
저는 비행기 타고 열세시간 영국갈 때 설렘보다는 좀 많이 무서웠거든요.. 몽골 땅 지나갈 때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지겹고 두렵고 발작 일으킬 것 같았어요. 하늘에서 열세시간이나 간다는 게.. 그리고 비행기..나이 먹지 않아도 심리적으로 잘 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걸.. 실감한 것 같아요.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비행기 열시간..헐..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요, 현맘님ㅠㅠ 그래도 지금 누가 가라면 당장 가겠어요!(벗으라면 벗겠어요, 그 심정ㅎㅎ)

음.. 창원 멀어요. 멀고 피곤하고 어쨌든 다 지나가서 후련해요. 제가 다 피곤해요. 현맘님은 뭐하셨을까요?! 저 지금 '체리마루' 좀 퍼먹을라구요. 장동건이 나오고 있는데 리모컨 뺏기고 송승헌 보는 엄마한테 점령당했어요! 이런..아이스크림이나 퍼먹죠 뭐ㅎㅎ
 
플래쉬댄스 - 할인행사
애드리안 라인 감독, 제니퍼 빌즈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춤은 꿈이고 이유다. 희열도 희망도 열망도 절망도 좌절도 말해야 하는데 젊은 날의 초상에는 앞의 것과 뒤의 것이 늘 엎치락뒤치락 한다.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막힘없이 술술 말할 수도 서술할 수도 있다. 말과 행위의 괴리는 놀랍도록 부풀어오른다. 꿈에 대해 말할라치면 늘 저지당한다. 죽을 때까지 꿈꾸며 살아야 하는 존재로 태어났지만 꿈과 청춘이 향하는 곳은 늘 한정되어 있는 시절일 뿐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고, 허락되지 않은 꿈꾸기가 점점 창피하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어간다. 모두에게 주어진 형벌처럼 보편적이라 딱히 억울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하얀 페이지를 열어놓고 써야 할 말을 몰라 당황한다. 오프닝부터 음악이 참 좋아서 흠뻑 빠져들었다가 끝나자마자 파일을 찾아서 아이팟에 넣고 재생시켰다. 뮤지컬 영화를 많이 보고 좋아도 하는데 중간에 나오는 긴 댄스장면은 볼 때는 몰입했으면서 스토리 방해요소가 아닌가 싶기까지 하다. 뒤로 훔쳐보고 앞에서 욕하는 배드걸 굿걸

 

 

 

 

<물랑루즈>를 고3 수능시험 후 당시 단짝이던 짝꿍과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꼈고, <시카고>를 스물 하나 참 예쁠 때 단조로운 일상을 극복해줄 어떤 열정으로 받아들였고, <드림걸즈>는 비욘세보다 제니퍼 허드슨의 꿈이 이뤄지길 원하며 닳도록 OST를 재생시켰다. 그때가 막 스물 다섯이었다. 그동안 시간이 정지되었다. 꿈도 역사처럼 진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렌트>, <바흐 이전의 침묵>, <사랑은 비를 타고>, <사운드 오브 뮤직>, <피나>, <오페라의 유령>, <하이스쿨 뮤지컬>, <벨벳 골드마인>, <헤드윅>은 봤거나 앞으로 볼 영화. <바흐 이전의 침묵>의 장르가 뮤지컬이라니 바흐, 클래식도 뮤지컬로 가능한가. 우와 신기해. 이 영화를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카페>가 연관검색어에 뜬다.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좋아해서 엄청 기대된다. 왜 모르고 있었지 보다는 어째서 관심갖지 않고 있었지 말하고 싶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존재하는 것이 내 앞에 오는 것과 받아들이는 과정은 본능,직감으로도 가능하지만 우연,필연인 경우도 많다. 피츠버그의 제철공장 용접공 알렉스는 밤에 나이트클럽 플로어 댄스로 일한다. 시간을 팔아 돈을 사고, 돈으로 꿈을 꾸는 것 또한 자본이 지배하는 고단한 사회의 일부일 터, 풋풋하고 아름다운 그녀는 춤과 무용으로 세상을 사로잡으리란 꿈을 안고 언젠가 댄서가 되기를 원한다. 그녀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밤에 꾸는 꿈과 미래를 향한 열정이 있기에 낮의 힘겨운 노동을 즐기듯 견딘다. 견디는 것조차 즐거울 수 있다. 그때 사장 닉이 다가온다. 언제 어디서나 사장님이 문제군. 드라마 <패션왕>의 마지막회는 좌절과 경악의 도가니였는데, 열아홉 번의 설렘과 부푼 꿈이 한 번의 삽질과 실수와 겉멋으로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정해진 결말(미국에서 생긴 일로 결말짓는 건 방송 전 뉴욕 로케이션할 때 찍어왔을테니)에 끼워맞춰 가는 미래가 이 시대 이 청춘(을 비롯한 대다수 노동자와 서민)을 한없이 갉아먹는다. '넌 다른 사람이 벌어다 주지만! 난 내가 벌어야 된다'거나 '너는 사랑만 해도 되지만! 나는 일도 해야 된다'던 강영걸(유아인)의 대사는 이 사회의 치자와 피치자의 근본을 뼈저리게 돌아보게 했다. '그러니까 사랑타령 그만해'라는 말에서 먹고살기 어려우면 사랑조차 철저히 짓밟힐 수 있는 가치라는 사실을 느낀 것도 묘하게 아팠다.

 

춤추는 용접공 알렉스는 순수와 미모와 재간으로 닉을 사로잡는다. 그녀가 뿜어내는 열정과 재능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건만, 닉과 사랑에 빠져 그의 도움을 받아 훨훨 날아오를 수 있게 되는 것은 더 큰 행운이다. 축복과 행운은 연타로 온다. 알렉스가 사랑과 꿈을 이룬 건 왕자님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낮과 밤 모두를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냈기 때문이라는 것을 학습시키는 기분좋은 한 편의 춤이 엔딩으로선 더없이 황홀하다. 꿈과 청춘은 진행중일 때 가장 빛나는 가치임은 틀림없다. 꿈은 이뤄지고 나면 더이상 꿈이 아니고, 꿈이 이뤄지지 못하면 더 아프지만 또 노력할 기회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 축복이기도 하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가슴을 부여잡았다. 젊음과 음악은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대립각은 일상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데다 지극히 사소하기까지 해서 야속한 경우가 많다. '재물'보다 '추억'이 <패션왕>의 이가영(신세경)이 정재혁(이제훈) 보다 강영걸(유아인)을 사랑하게 만든 결정적 이유라면, 강영걸의 입에서 '내가 돈이 없니, 뭐가 없니'라거나 '말만 해, 니가 원하는 거 내가 다 해줄게'라는 대사는 나오게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그 말이 나온 순간 이 남자가 지금껏 세상에 당하고 또 굴복하고 극복하려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즉 캐릭터의 타당성이 모조리 몰락한다는 어느 방송평론가의 말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그것이 곧 사람이었다. 가진 것 없는 이가 생애 처음으로 모든 것을 가지게 됐을 때,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동일하다면 그게 더 반전드라마다.

 

패션,청춘,사랑의 코드를 버젓이 내걸고 화려한 걸음으로 모두가 잃은 꿈을 찾아줄 것만 같았던 이 드라마가 진즉에 패션을 버리고, 끝에 비로소 청춘과 사랑 거기다 가졌던 인간성마저 버리고 세상에서조차 버림받는 것을 목격하자 더이상 기대할 수 있는 게 없어졌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제목도, 내용도 뻔한 책이 업계에서도 놀랄 만큼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뻔하지만 궁금한 것과 호기심, 듣고 싶은 말을 듣는 안도감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꿈을 꾸는 것과 꿈을 짓밟히는 건 동시에 있을 수도 있고, 한 번에 하나씩만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꿈을 버려서는 안된다는 위로를 듣고 싶은 것이다. 돈도 잃고 사랑 앞에 당당하지 못해 술 취해 서럽게 울다지쳐 쓰러진 어떤 남자를 손잡아 일으켜 세우지는 못할 망정, 총으로 쏴버리는 게 처음부터 예정되었더라면 한동안 몰려오던 당혹스러움을 기이함으로 돌리고 말았을 수도 있겠다.

 

알렉스는 댄스 오디션에 참가한 후 닉이 몰래 통과시켰다는 사실을 알고는 화를 내며 싸운다. 닉은 알렉스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강영걸은 이가영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하고 또 해주고 싶어하지만 여자들에게 단순히 당신이 이룬 것을 받기만 하는 것은 꿈이 아니다. 꿈은 내 힘으로 이뤘을 때만 의미있다는 사실에 반발하는 순간 세상은 청춘을 내동댕이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타인에게 편승해 이루는 꿈은 꿈이 아니라 재물에의 욕심이고, 그래서 다 가졌을 때 사람은 항상 변하거나 또 다른 것을 원하게 되거나 한다. 청춘영화에는 거의 무엇도 필요하지 않다. 뛰는 가슴과 미친 열정, 올바른 방향과 제대로된 질주가 필요할 뿐이다. 어떤 식으로 위로한대도 위로를 받는 그들 자신이 받아야 할 바로 그 위로의 질을 가장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적이 있다는, 꿈을 버리면 안된다는 뻔한 말이 가장 필요하다. 그들에게도 실패와 성공과 꿈꿀 자유에 대한 명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일 무너져도 오늘은 집을 짓고 들어가 앉고 싶고, 내일 죽어도 오늘은 절정을 선물할 길고 황홀한 섹스를 하고 싶고,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은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기 때문이다. 딱 내일이 오기 전까지 살아갈 이유, 살아야 할 이유, 그것만으로 청춘을 위로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가. 이렇게 옛날 영화 한 편이면 괜찮은 것을. 절제할 때 절제하고 폭발할 때 폭발하는 조화로운 음악 한 곡과 춤 사위 한 판이면 다 괜찮아질 것을.

 

 

 

 

아메리칸 드림이 별건가. 아메리카에서 원하고 바라는 일 할 수 있으면 그게 아메리칸 드림이지! 오래된 영화의 촌스럽고 일직선 방향의 플롯마저 멋있다. 때로는 정주행이 역주행보다 더 감동적이기도 한 법. 근데 춤출 때마다 엉덩이,다리부분을 지나치게 클로즈업하는 게 보는 내내 불편하기는 했는데, 이것도 배드걸 굿걸 영향 받은 내 구질구질한 편견 때문인지 아님 감독취향인지. 필모그래피가 이런 거 보니까 취향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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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5-24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아침!! 아이리시스님^^
플래쉬댄스, 정말 오래 전 보았던 영화, 새롭네요^^
근데 그 당시에는 감독을 몰랐는데 애드리안 라인 감독이었군요.
제리미 아이언스가 험버트로 나오는 롤리타와 나인앤하프 위크, 마이클 더글라스 나오는 저 영화 ..
역시 취향이었군요, 그분.ㅎㅎ
그나저나 춤추고 싶어요, 아이님^^

아이리시스 2012-05-24 22:12   좋아요 0 | URL
네, 감독님 취향ㅎㅎ

음, 프레이야님하고 현맘님하고 두분이서 춤 배우시면 될 것 같아요. 춤은 재즈댄스,발레,한국무용할 것 없이 참 로망이에요. 요즘은 아이돌들마저도ㅠㅠ 부러워요. 누가 반대편에서 춤추면 같은 방향이 아니라서 따라하지를 못하겠어요 엉엉.

이 영화 유명했군요!

자목련 2012-05-24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재하는 것이 내 앞에 오는 것과 받아들이는 과정은 본능,직감으로도 가능하지만 우연,필연인 경우도 많다 - 이 문장 참 좋아요.

익숙하고 경쾌한 리듬이 흐린 하늘을 잊게 하네요.
신나게 춤추고 나면 모든 게 달라질 것만 같은, 그런^^

아이리시스 2012-05-24 22:23   좋아요 0 | URL
날씨가 오늘도 많이 흐렸어요. 뭐 신나는 일이 별로 없네요, 자목련님은요? 재미난 일 있으심 저한테 자랑해주세요ㅠ 고민상담도 해주세요ㅠ 심심해요ㅠ

아무리 좋은 게 눈 앞에 와 있어도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안 보이는 것 같아요. 다시 보니까 좋다고 해주셔서 더 좋아진 것 같은데요 히히히. 팔랑거리는 저 치마와 녹색신발이 우아한 춤과 어울리는 예쁜 옷차림 같아요. 어울려요^^

춤을 배우기에 저는 너무 수줍어요ㅠㅠ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5-24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래쉬댄스.
이거 개봉하고 돌풍을 일으켰을 때, 제가 우리 딸 나이였거든요.
그때 뮤지컬 영화에 꽂혀 한때 <그리스>랑 <플래쉬 댄스>에 열광한 사춘기를...
이 영화 때문에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영화 관련 잡지들을 끼고 살았었어요. 이걸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어쩌면 나처럼 고지식하고 융통성없고 재미없는 사람 마음 속에 일탈과 욕망에 대한 열정이 더 많을지도 몰라요.
말도 없고 숫기도 없고 모범생이었던 어렸을 적 진짜 내 꿈은 <피겨스케이팅 선수>나 <뮤지컬 가수>였으니까..ㅎㅎ
지금도 몸치에 음치인데도 여전히 활동적이고 액티브한 누군가를 보면 설레요.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한참 봄앓이하던 지난 달엔 춤을 배워볼까 했다니까요. 좀 움직이고 싶어요.

아이리시스 2012-05-24 22:32   좋아요 0 | URL
안녕, 현맘님. 오랜만!

이 영화가 그렇게 유명했어요? 평점이 좀 높길래 의아해하면서 그래도 볼만은 하겠지 했는데 오프닝 음악이 바그다드 카페의 콜링 유를 능가하는 거예요. 물론 화면빨은 아니지만ㅋㅋ 이 영화 태어난 연도가 저랑 같아요. 동갑이에요ㅎㅎ

아..현맘님 김연아가 되고 싶었구나? 뮤지컬도 멋있어요! 우아..저는 그런 꿈 꿔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어릴 적에 외교관이 되고 싶었는데 외교관이 공무원이란 걸 몰랐을 때의 일이에요ㅠㅠ 유창한 언어도 멋있고 외국에서 자국을 위해 일하는 것도 멋있어서요. 그 이외에는 꿈이라기 보다는 배우들이 부러웠던 것 같아요. 역할 속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과 그걸 핑계로 이것저것 배우고 이나라 저나라 다니는 게 그저 좋아보여서..( '') 근데 패션잡지 에디터와 여행사 직원도 가능하잖아요. 직업의 세계는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

현맘님 저는 몸치에다 운동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춤은 그저 로망에 불과해요ㅠㅠ 현맘님은 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예술을 강의하시는 분이 고지식하고 융통성없고 재미없다니 이건 불공평해요!! 스스로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저를 두 번 죽이는 거예요! 저도 활동적이진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되고 싶다기 보다는 그런 사람 보면 신기하고 부럽고 그런 것 같아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5-25 22:23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그게 아이러니예요. 디자인하는 사람이 고지식하고 융통성없고 재미없다는 것이 가능하다니까요..ㅎㅎㅎ
활동적인걸 동경하면서도 절대 움직이기 싫어해요. 음악이 나오면 정말 리듬을 타고 싶어 고개가 어깨가 들썩이는데 진짜 박치에 음치. 그래서 더 로망인가봐요.

외교관이 꿈이었다니. 참 똘망똘망한 어린이였어요.^^ 지금은 늦은 꿈인걸까요?

아이리시스 2012-05-26 21:12   좋아요 0 | URL
푸하하 어찌나 똘망똘망했는지..( '') 정말로 외교관 이렇게 썼었는지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저건 마음속 꿈이고 내가 공부 못하는 거 내가 알고부터는 마음 속으로 생각만 했어요. 뭐..아주 늦진 않았는데요. 토익을 좀 하고 외무고시를 통과하면(!) 될 수 있어요. 제2외국어도 하나쯤 하고요. 제 머리와 끈기로는 한 10년 걸리겠어요.(진짜 끔찍하다..)

현맘님, 클럽가서 춤추는 건 어떠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흐흠ㅋㅋㅋ 괜찮아요, 춤이 뭐 대수라고.. 우리에겐 현맘님 디자인이 있어요. 현맘님이 그림 그리시는 거 카페 탁자 반대편에 앉아서 보는 게 소원이에요. 그림=디자인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댈러웨이 2012-05-24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댄싱 시리즈 영화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가물가물요.
이 감독이 그 감독이군요. ㅎㅎㅎ
그런데 알렉스 그러니까 퐁네프가 생각나는 건 뭔지... ( ")

청춘은 너무 빨리져요. 아무것도 모를 때 그 시절 다 보내 버리고, 후두둑 목련 지듯 툭, 통째로.

아이님, 기다렸어요!
아침에 다녀 갔는데 댓글은 이제 남기는 심정, 알죠?

아이리시스 2012-05-24 22:34   좋아요 0 | URL
ㅎㅎ댈러웨이님, 알렉스 하니까 퐁네프가 왜 생각납니까?( '')
거기서 알렉스라는 남자와 퐁네프로 여행가신 적 있습니까,라고 묻다가 갑자기 거기 주인공 이름이 알렉스인 거 생각난다..ㅠㅠ 그 영화가 좋아서 파리에 내리자마자 퐁네프 다리에 갔었어요^^

알렉스는 보통 남자이름인데, 가수도 그렇고.. 여기서 여자이름이라서 적응이 안됐어요.하하. 뭐지..이 선입견은..

네!
그 심정 알겠어요.호호호.^^

댈러웨이 2012-05-25 16:45   좋아요 0 | URL
>>>알렉스라는 남자와 퐁네프로 여행가신 적 있습니까>>> ㅎㅎㅎ 어쩌라는 겁니까 이건? 엄청 웃다 갑니다요.

아이리시스 2012-05-26 21:08   좋아요 0 | URL
퐁네프는 남자랑 가겠죠? 댈러웨이님 갔다면서요.. 들킨거죠, 저한테ㅋㅋㅋ

댈러웨이 2012-05-29 15:09   좋아요 0 | URL
알렉산더(남)->알렉스/알렉산드리아(여)->알렉스
보통 이름이 저렇게 길어 버리면 짧게 줄여서 말하는데, 알렉스 경우도 그 경우일거에요.
예) 리차드->딕(--;;) 갑자기 생각나는게 저것밖에 없네요. --;;

추천놀이 좋은데 아이님만 해줄 것요. 전 읽은게 없어서.ㅎㅎㅎ

*아이님 여기다 댓글달지마요. ^^

아이리시스 2012-05-29 16:14   좋아요 0 | URL
아......(머리 돌아가는 소리), 댈러웨이님 짱^^
근데 리차드는 왜 딕입니까?(라고 묻는다, 말 안듣고 댓글도 달고, 히히히)

맥거핀 2012-05-2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드리언 라인은 사춘기 중고딩 남학생들에게는 참 좋은 감독(...)이었습니다.^^ 올려놓으신 아이린 카라 노래 들으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잘 읽었어요. 전주 나올 때부터 촌티가 물씬물씬 나는데, 저는 이런 노래 좋아요.ㅋ(예를 들어 AHA의 'Take On Me' 같은 거..) 음..패션왕 결말로 말이 많던데, 충격에서 잘 빠져나오고 계신지..

아이리시스 2012-05-25 00:2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 좋아요, 촌티까지 어쩔 수는 없지만 좋기는 좋아요. 저도 이런 노래 좋아요. 뮤지컬곡 좋아요. 요즘 옛날 영화가 좋아요.

세상에, 열아홉 번을 봤다는 사실조차 부정하고 싶은 엔딩이었어요ㅠㅠ 신세경이 죽였을 수도 있다고 네티즌들이 추론할 때 정말로 작가 만나러 가고 싶..( '') 저는 늘 드라마는 드라마고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책은 책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쿨(?)한 사람인데 사람들이 왜 게시판에 난리를 치는지 이해가 가요. 저분들 부부작가더라고요. 감이 확 떨어진 게 아닌가..

마녀고양이 2012-05-29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래쉬 댄스의 여주인공 너무 이쁘잖아요, 그런데 다음 영화부터는 별루 안 좋아서... ㅠㅠ
그리고 여주인공이 직접 춤췄다고 첨에 난리였는데, 대역으로 밝혀져서 여주 맡았던 배우가 급 하강했죠...

코요테 어글리두 무지 이쁘잖아요. 그런데
거기 나오는 남주나 여주나 그 다음 작품은 별게 없어서, 서운해요.

나두, 이런 영화 넘 좋아해요, 특히 알렉스의 사슴같은 눈망울,
현맘님 말씀하시는 그리스도 엄청 좋아해서, dvd 가지고 몇번이나 봤는데!

아이리시스 2012-05-29 16:11   좋아요 0 | URL
네!네! 저는 코요테 어글리가 엄청 좋아요. 뮤지컬영화 중에서 제일 제 스타일이라고 당시에는 생각했는데.. <그리스>는 더 오래된 거라 거부감이 좀 있었는데 그렇잖아도 현맘님 말씀하실 때부터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마고님은 정말 좋은 건 계속 보시는 것 같아요. 그만큼 좋아하는 게 있다는 사실이 저는 좋아보여요. 저는 좀 싫증 잘 내서 보고 또 보는 건 드문 편이어서요..

최근에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다시 보고 리뷰 썼는데요. 그..(또 까먹음) 여주인공도 그랬잖아요. 거의 첫 주연작이자 대표작. 그때가 20대 초반이었는데.. 서운하고 아쉽고 그래요..

아.. 그 춤이 직접 춘 춤이 아니라니.........ㅠㅠ 배우 자존심은 배우가 지키는 게, 블랙스완처럼! (근데 이 영화는 아직도 못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