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막스 뮐러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헷갈린다. 방학 때 혼자 버스 타고 외숙모외삼촌네 공부하러 다니던 중1 때(개인과외랄까, 외숙모께는 사회를, 외삼촌께는 수학을 배웠다) 그집 작은 방 책장에서 본 책이 엄마보다 세 살 위, 아빠와 연세가 같은 외삼촌이 학창시절에 읽던 오래된 판본의 <독일인의 사랑>이었는지 <첫사랑>이었는지. 제대로였다면 헷갈릴 수가 없다. 막스 뮐러는 독일인이고 투르게네프는 러시아인이다. 이 소설은 동양학자이자 비교언어학자로 유명한 막스 뮐러가 남긴 유일한 순수문학이다. 완전히 다르니까 도저히 헷갈릴 수가 없는데 아직도 기억하지 못한다. 읽으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미스터리를 푸는 기분으로 시작. 아마도 이 책이었다고 굳게 믿는 중이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지만 꼭 안 중요한 것도 아니다.

 

없는 감수성을 빌려와 쓰자면, 내게 한 마디 해주기 위해 너는 수십 번 머리와 가슴으로 말을 고민하는 사람이고, 나는 나름 생각을 거쳤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툭툭 뱉어내는 사람이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이고 본능적이다. 책은 내가 더 많이 읽지만 그게 너보다 내가 더 똑똑하다거나 지혜롭다거나 하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읽은 책에 관한 얘기나 읽고 있는 책에 관한 얘기를 너와 나는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문자도 통화도 엄청나게 해대는 그런 커플은 아니다. 대학 때는 함께 도서관에도 종종 갔고 우리가 아직 친구였을 때 너는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나를 무려 토요일에 만나기 위해 일부러 도서관에 와서 끝나는 시간을 기다렸지만 네 맘을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던 나는 재빠르게 집으로 돌아갔던 것 같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고 차 타고 떠나는 나를 지켜보던 네 모습을 백미러로 보았다. 이 소설은 우리가 처음 만난 스무살, 다시 만난 스물한 살, 친구들끼리 함께 간 여름여행 후 연인이 되기 시작한 스물두 살에 읽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소중한 편지와 사진들, 빛 바랜 꽃바구니와 이제는 상해버린 샴페인이 들어있던 화이트데이 꽃바구니, 친구집을 빌려 촛불폭탄과 꽃다발과 와인으로 장식한 1주년 기념파티 등이 신선한 향기였을 때. 감수성이 말랑말랑해서 터질 것 같던 때. 사랑을 해서가 아니라 원래 내 감수성이 그정도일 때. 그래서 작은 일에도 서운하고 울고 따지고 토라지고 그랬을 때.

 

너무 진한 사랑소설은 이제 좀 부끄럽다. 화내는 것조차 귀찮고 에너지가 든다. 요즘 관심거리는 주로 어떤 상황에 대한 너의 생각을 묻는 것이다. 그것도 내 예상을 거의 벗어나지 않지만, 푸하하. 만약 완전 반대 입장이라도 함께지만 여전히 타인이라서 이해하자 치면 이해못할 것도 없다. 정치성향은 좀 같았으면 하는 이상한 바람이 있다. 나는 부모님과도 같았기 때문에 그게 많이 답답할 것 같다. 아, 이래서 종교적 갈등도 생기는 구나 싶다. 이해가 불가능할 경우 내 삶에 들여놓지 않으면 그만이다. 사랑에 대해 나는 할 이야기가 없다. 아무리 예쁘게 치장하고 또 치장해도 더는 추억할 에피소드가 없다. 내게 사랑은 과거가 아니고 우리 사이는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더이상 예쁜 엽서나 긴 편지지에 너를 향한 마음을 고백하지 않고 너 또한 그렇다. 가끔 받기는 하는데 쓰기는 진짜 싫더라. orz 진지한 대신 애틋함은 증발했고 사랑이 불길 치솟는 감당못할 감정만은 아니라는 걸 너도 나도 안다. 네 맘까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나만큼이나 너도 많이 까야 하는 양파같은 남자라서. 수많은 영화를 둘이서 봤지만 그것들은 모조리 함께한 시간으로 치환되거나 증발되었다. 하지만 어떤 책도 동시에 읽거나 함께 읽지는 않는다. 그런 적이 없다. 영화 <더 리더>에도 <소피의 선택>에도 남녀가 함께 책 읽는 장면이 나온다. 소피(메릴 스트립)가 폴란드어로 한 줄 읽으면 네이든(케빈 클라인)이 영어로 번역해 한 줄 읽는 울프는 울프라서가 아니라 책이라서가 아니라 와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로맨틱하다. 해보고 싶을 만큼은 아니지만 어딘가 울컥하는 구석이 있다.

 

그러니까 한국인이 아니라 '독일인'이 뭐 다른 게 있나 싶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 채 읽는다. 아마 이 소설의 주제는 두 국가의 민족성 차이가 아닐테고, 더군다나 독일인만의 특수한 사랑을 그려낸 것만도 아닐 것이다. '기독교적 사랑' 그러니까 플라토닉한 사랑을 풀어내는 점에서 지드의 <좁은 문>과 상통한다. 그치만 지드를 엄청 좋아하고 <좁은 문>을 특별히 애정하는 것과는 반대로 이 소설은 어디를 애정해야 할지, 반이나 이해하긴 한 건지 의심스럽다. 기독교적 색채, 육체와 영혼을 초월하는 사랑, 도덕적 순수(동정이나 순결을 의미하는 것 아님) 등을 대사를 통해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점은 신선하지만, 그 의미가 간결하고 뚜렷한 문장으로 마음에 쏙 박히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하물며 여주인공 이름은 동정녀와 동일한 '마리아'다. <독일인의 사랑>은 그녀를 맘에 품고 다가가는 한 남자의 마음과 상황을 독백 아니 일기로 담아낸다. 그녀는 몸이 성치 않아서 육체적 사랑이 불가능한 나머지 나를 멀리하거나 피한다.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기다리고 다가가고 또 감싸안는 한 남자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회고록과 같다. 8장으로 이루어졌으며 시간 순으로 간다. 그렇다. 이걸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차용한 소설이라면 <폭풍의 언덕>, 헨리 제임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까지 알고 있다. 쉽게 읽히지 않고, 느릿느릿하면서도 그 독백을 따라가기가 숨차서 포기한 적도 여러 번이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이 소설은 아마 그 중에서 가장 짧은 작품일 것이다. 소설이라 부를 수 있다면 말이지만.

 

소년들은 청년기와 장년기에서는 이미 사라진 순수함과 진심,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법이다. 그러면서도 당시 나는 그녀가 사랑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될 타인에 속한다고 믿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내게 했던 진지한 말들은 건성으로 듣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영혼이 가까워질 수 있는 한 가장 가까이, 그녀의 영혼이 내 영혼에 접근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 이 독백 아니 회고는 <독일인의 사랑>의 주제에 가장 근접한 문장일 것이다.

 

우리가 간구하는 것은 세속적 재화가 아니잖은가. 우리는 다만, 서로를 발견하고 알아볼 두 영혼이 손을 잡고 마주 바라보며, 이 짧은 지상의 여행을 같이 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뿐, 그래서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나는 그녀의 병고의 지팡이가 되고, 그녀는 내게 위안이나 사랑스런 배려자로 머물기를 기원할 뿐인 것이다.

 

이 사랑은 육체와 영혼 둘 중 어느 하나를 앞세우는 법이 없다. 그녀는 몸이 성치 못하다. 그는 몸이 성하다. 그런 차이가 둘을 사랑하지 못하게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사랑은 육체만으로도, 정신만으로도 온전할 수 없다. 그녀는 성치 못한 몸을 가졌지만 사랑은 죽음으로도 파괴될 수 없는 것이며, 죽음으로 승화되어 불멸한다. 그런 온전한 사랑을 갈구한다. 침묵이 사랑을 지켜준다. 상당부분 준 만큼 바라는 사랑의 거래성과 대가성을 조심스럽고 확실하게 비판한다. 에즈워드의 시를 인용하여 드러내는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 육체를 욕망하는 사랑, 정신의 위안을 바라는 사랑, 부모와 자식, 부부간, 박애 등 모든 애정을 능가하는 가장 고귀한 곳의 사랑이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의미를 사랑이라는 한 단어 속에 쑤셔넣는가. 가장 사랑다운 사랑은 하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으면서 사랑가는 또 왜 그리도 많은가. 비록 내게는 가져보지 못한 큰 사랑의 울림과 그 속에 든 고결한 의미가 한꺼번에 다가오지는 않았어도 분명히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구석이 있다. 여전히 사랑 앞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재단하고 또 끼워넣으려는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인형처럼 맞추려하거나 맞춰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는 대로 삶과 죽음과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이란! 그런 게 과연 있긴 있을까. 없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이 간결하고도 순수한 소설이 사랑받는 것 같다.

 

'독일인의 사랑'의 독일인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 보다 문화적 차이에 의해 이해되어야 하는 제목이라고 역자가 전한다. 사랑의 형태와 의미와 철학에 국적이 있을 리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묻자.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

 

그럼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아니, 당신은 어떤 대답을 기다리는가. 기대하는 대답과 직접 듣게 될 대답은 같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마리아가 질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런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 온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누군가의 사랑을 지켜보기만 해도 너무 숨차고 피곤한 세상이다.

어린아이에게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보세요. 꽃한테 왜 피어 있는지를 물어보세요. 태양에게 왜 빛나고 있냐고 물어보세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순간 내 존재의 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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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2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2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2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2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2-06-2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구절, 참 좋아요. 전 요즘 찐~~~한 사랑소설 읽고 싶은데 혹시 이런 소설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

아이리시스 2012-06-26 00:17   좋아요 0 | URL
근데 이건 [기독교적 색채]를 극복할 용기있는 사람만 봐야될 것 같아요. 나한테만 어려운 건지, 난 벌써 타락한 건지, 이런 사랑이 없다고 믿는 건 아니지만, 사랑에는 물론 여러가지 종류가 있지만, 이건 좀-_-;; 찐~~~한 거?! 로렌스 읽어요.(시루스님은 봤을 것 같지만)

2012-06-23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6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