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폭스8월버젯행사)(Last Tango in Paris)
20세기폭스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금지된 사랑을 하고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원초적 감정을 건드리는, 일반인들보다 조금 더 격정적이고 예민하고 치열한 사랑과 욕망을 고도의 정밀함으로 표현해낸 영화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멜로나 로맨스 영화를 잘 못본다. 잘 보고 싶은데 극장에서는 아예 고르질 않고 보다가 10분 안에 꺼버리는 게 대다수. 상큼, 발랄, 현실적 얘기들을 내가 별로 안 좋아한다고 결론 짓고도 자꾸 보려고 기웃거린다. 예전엔 프랑스 영화, 요즘은 소규모 유럽 영화들 대부분이 그런 것 같은데 그 중에서도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는 <베티 블루 37.2>(1986) 다음으로 묘하게 아픈 영화다. 길을 잃은 욕망이 표류하는 것 같은 간절하면서도 치명적인 선이 있는데 스토리보다 이미지로 먼저 다가오는 감독이 그려내다보니 과하게 야한 영화로 포장된 감이 없지 않다. 물론 에로틱한 면이 없지 않고 벗은 여자를 샤워시키는 장면은 후반부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지만 정작 영화에서 선호되는 씬들이 섹스에 골몰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고독. 향할 수 없는 목표. 길 잃은 영혼. 그런 것들이 시대의 흐름창을 만나 폭발적으로 표류한다. 선호하는 감독이 없었는데 이제 알모도바르보다 빔 벤더스와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들이 더 황홀하게 느껴진다. 존재의 무거움을 감당하려고 혹은 감당하지 못해 서로가 서로에게 짐으로 얹혀야 하는, 그 모진 영혼들이 만나 결합하는 모든 장면이 파리의 퇴폐적 아름다움과 만나 야릇하고 살벌하게 진행된다. 이런 영화는 바로 그 야릇함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 정말로 끝이다.

 

위태로움이 배제된 사랑은 권태를, 위험을 갈망하는 사랑은 파멸을 몰고 온다.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로 데뷔한 에바 그린의 엄마이자 배우인 마를렌 조베르는 마리아 슈나이더가 겨우 19세에 잔느 역을 맡은 후 육체적,정신적으로 모두 배우로서도 여자로서도 정체된 고통을 겪은 점을 들면서 에바 그린의 첫 작품을 반대했다고 한다. 내면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딸이 노출과 고독의 강도가 강한 작품을 한 후 찾아올 공허를 걱정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잘 해냈고 데뷔작은 큰 반향을 일으켜서 지금까지도 할리우드와 유럽 소규모 영화를 넘나들며 고공행진하는 요염한 배우가 되었다. 외모는 그때보다 못해진 것 같지만 이 작품이 첫 주연작이자 대표작이던 마리아 슈나이더에 비하면 에바 그린의 필모그래피는 꽤 단단하고 발전 가능성이 열려있다. 베르톨루치 감독이 스토리보다는 영상미에 치중하는 바람에 지독한 탐미주의자로만 꼽히는 게 아쉽다. 나는 아무래도 이제 몇몇 감독들을 완전히 편애하기로 한 듯한데 아주 좋아하는 것은 동시에 아주 싫어지기도 쉬운 지점에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일 뿐이라고만 밝혀두어야겠다. 어느 시점의 나는 이 영화들에 열광했다고, 어느 감독들의 특정 시선에 기댄 이미지들을 간절히 바랐다고 뭐 그렇게 기억 속에 묻어가는 어떤 것으로.

 

다시 <대부> 시리즈를 학습했다. 봤다기 보다 학습이 어울린다. 다시 볼 경우에 생기는 어떤 특별한 시선을 나로서는 부정하기 힘들고(물론 의도치 않게 훌쩍 다가서는 지점까지 부정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지금은 말론 브란도를 너무 보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느끼고 싶고 푹 빠지고 싶어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나의 태생에 59년이란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부정하고픈 어떤 시간과 감정이 소중해서 오래도록 담아두고 싶다. 배우 황정민이 장례식장의 슬픔 속에 앉아서조차 다음에 연기할 때 이 감정, 이 느낌을 잊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옳고 그름을 떠나 자기가 징그럽게 느껴졌다던 일화에 덧붙인 다른 사람의 시각은 그는 진정한 배우가 맞구나, 하는 것이었단다. 오래 전에는 어제 쓴 글이 다음 날 읽어도 창피하고 부끄러워 늘 삭제버튼을 밥먹듯이 눌렀다. 어린 마음이 조금 유치할 수도 있고, 못 가진 걸 숨기기 위해 센 척 했을 수도 있고,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비이성적임이 부끄러워 울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들이 삭제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이 영화에 스며든 외로움과 고독, 소통하지 못하는 답답한 마음이 점점 닫혀가는 것, 익명 뒤에 숨어 자꾸만 감춰야 하는 사랑, 다 까발림으로서 놓쳐버릴 것만 같은 상대에 대한 불안, 만나지 못하는 마음과 의미를 상실한 섹스, 쓸쓸한 파리 그리고 현대인들. 모든 것들을 원한다. 혹은 사랑한다. 다가가는 대신 스스로 파멸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누군가를 이제는 이해한다. 아무 것도 없다. 지독한 눈빛과 광기어린 쓸쓸함 만을 제자리에 놓은 채, 대배우 말론 브란도는, 파리는, 그렇게 떠났다. 다시 꺼내볼 날은 훨씬 훗날이었으면 좋겠다.

 

나, 누군가를 소유하지도, 누군가에게 소유되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을 안을 수 있다면, 아무 것도 가질 수 없을 테지만 아무 것도 될 수 없을 테지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그 사실 때문에 하루하루를 아주 고달프게 살아서 언젠가 나를 누르고 지나갈 그 기차 앞에 설 날이 오게 될 지도. 존재를 혁명하며 섹슈얼리즘을 간절히 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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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5-30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영화, 반복되는 행위들 속에서 어떤 고독감과 허무감이 증폭되는 영화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상 볼 때는 말씀하신대로 꽤 영상미가 있는 편이라, 그런 생각을 못하고 말았어요. 그러니까 뭐 그런거죠. 저렇게 외롭다고 섹스를 하고 있는 저들이 외로운걸까, 텅빈 방에서 홀로 이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가 외로운걸까,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하다면서 화면은 더럽게 이쁘네, 젠장..뭐 그런 거.

참 생각해보면 나이 70이 넘은 이 분도 올해 영화를 하나 내놓으시고 칸도 다녀가셨으니, 놀라운 할아버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하나 더 놀라운 사실은 올해 90세가 된 알랭 레네도 올해 영화를 내놓고 칸에 출품했다는 사실..90이 되신 분이 도대체 어떤 영화를 내놓으셨을지 되게 궁금하지 않아요? (나만 그러나..)

아이리시스 2012-06-02 14:34   좋아요 0 | URL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와 쌍벽을 이루는 우울함이랄까, 사실 <베티블루> 보면서는 우울하진 않았는데요.. 파란 페인트 바른 집에서 살고싶다는 생각만 했었어요. 하하. 이 영화 혼자 보면 정말 그런 기분 들어요. 프랑스 영화들은 대부분 그렇던데.. 영상미가 필터 탓이 아니라 배경 탓일까요. 아직도 모르겠..

90세.. 알랭 레네요..?(찾아봄) 대단하죠.(저도 궁금함) 예전엔 노장감독이라면 고리타분할 거란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몇 번 확인한 후에는 나는 지금도 살기가 귀찮은데(!) 70..90.. 저렇게 오랫동안 살면 대체 뭘 하고 살아야 되나 싶어요.(응?)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5-31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의 고독은 파리에서 느껴야 제맛...^^
언제 다시 가서 그 고독을 맛볼 수 있을까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려나....

아이리시스 2012-06-02 14:37   좋아요 0 | URL
원래는 올해 두오모(피렌체) 가야하는 계획표인데 꼬박꼬박 넣는 저축보험 대출을 며칠 전에도 받았다는.. 넣고 쓰고 넣고 쓰고 하는 일의 연속이에요ㅠㅠ 히히히 현맘님은 훌쩍 가심 되죠^^

나 파리 다녀올게요^^(응?)

이렇게 말하는 날이 오겠죠.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6-03 01:34   좋아요 0 | URL
나 피렌체 좀 다녀올게요.
그래요? 난 파리 가요.
그럼 잘 다녀와요.

이렇게 일상적으로다가, 평범하게 대화하면 정말 좋겠다. 그죠? 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06-03 02:10   좋아요 0 | URL
현맘님 밤에 뭐하시는 거예요?!(라고 묻고, 너는............?!)

나 내일 창원 가요.
잘 다녀오라고 해줘요.(나름 장거리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6-03 21:39   좋아요 0 | URL
창원 잘 다녀왔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창원도 참 심리적으로 먼데, 뭐...파리는 더하네요..ㅋㅋㅋ)

아이리시스 2012-06-03 23:00   좋아요 0 | URL
저는 비행기 타고 열세시간 영국갈 때 설렘보다는 좀 많이 무서웠거든요.. 몽골 땅 지나갈 때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지겹고 두렵고 발작 일으킬 것 같았어요. 하늘에서 열세시간이나 간다는 게.. 그리고 비행기..나이 먹지 않아도 심리적으로 잘 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걸.. 실감한 것 같아요.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비행기 열시간..헐..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요, 현맘님ㅠㅠ 그래도 지금 누가 가라면 당장 가겠어요!(벗으라면 벗겠어요, 그 심정ㅎㅎ)

음.. 창원 멀어요. 멀고 피곤하고 어쨌든 다 지나가서 후련해요. 제가 다 피곤해요. 현맘님은 뭐하셨을까요?! 저 지금 '체리마루' 좀 퍼먹을라구요. 장동건이 나오고 있는데 리모컨 뺏기고 송승헌 보는 엄마한테 점령당했어요! 이런..아이스크림이나 퍼먹죠 뭐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