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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ur Ros - Valtari [3단 에코 디지팩]
시규어 로스 (Sigur Ros) 노래 / 워너뮤직(팔로폰)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그들의 등장을 꼬박꼬박 기다렸다거나 기다려왔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왜인지도 모르게 기다리는 앨범 중 하나였고 나오면 습관처럼 듣게 됐고 새로 나오지 않는 동안은 이미 나와있는 음악을 반복해서 들었다.
제정신과 제정신이 아닌 중간. 물론 잠에 곯아떨어지기 전의 새벽 상태를 얘기하는 건데, 나는 머리가 팽팽돌 때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겠다 싶으면 낮에는 편하게(여유롭게) 듣지 못하는 앨범을 틀어놓는다. 평소 시규어 로스 틀어놓고 있으면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혼자 안드로메다로 간다. 좋은 뜻이기도 안좋은 듯이기도 한데, 지금은 안좋은 뜻이다. 왜냐면 그게 낮에는 별로 좋지 않다. 제정신이어야 현실을 직시해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실수 안하고 똘망똘망하게 살지, 아이슬란드나 북유럽이나 시규어 로스가 내 '현실'은 분명 아니잖아. 그래서 좀 참다가 밤에 틀었는데 뭐, 밤잠을 설쳤다. 심지어 틀어놓고 자서 아침에 깨어보니 아직도 이어폰으로 흐르고 있는 음악이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닥터후가 된 기분. 닥터진의 송승헌, 옥탑방 왕세자의 왕세자, 인현왕후의 남자의 지현우가 된 기분. 여긴 어디고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시작부터 끝까지 꾸물꾸물하면서 시리고 차갑다. 대체 어디 이런 세상이 있나 싶어 유토피아, 샹그릴라를 찾아나서야할 것 같은 충동마저 느껴졌다. 세상에, 이건 꿈이야. 음악이 꿈이다.
며칠 전까진 이걸 들었다. 얘(어리니까)는 발음이 살짝 말리는 것마저도 귀엽다. 목소리 톤이 남자치고는 비교적 높은 것 같은데 고음에서 목소리가 커지는(보통 발성연습이 덜됐거나 노래 못할 때 나타나는) 일반인티(!)를 내서. 영화제 신인상을 휩쓸던 때부터 이미 일반인이 아니었는데도. 잘하는 게 많아 보였고, 갈 길을 명확히 아는 배우처럼 보였다. 이미지관리 플랜이 잘 짜여있는 정갈한 배우라는 이미지도 주지만, 한편으로 먼 느낌이기도 했는데 노래로 일반인티를 내다니. 드라마에 한 번도 삽입되지 않았는데(패션왕은 OST가 자그마치 일곱 번이나 나왔음) 종영한 후엔가 종영하던 주에 음원이 나왔다. OST 사서 듣고 결제하고 그러진 않지만 당시에는 종종 찾아보긴 했다. 자고로 OST는 작품 안에서 빛나는 법이니 더 말 안하고 패스.
다시 시규어 로스. 이 몽롱함과 신비로움과 아름다움. 얼마 전 소설 <조드>를 읽고나서(1권만 본 상태. 내가 그렇지!) 충동적으로 아는 사이트를 다 뒤져 몽골에 관한 (여행이든 뭐든) 다큐를 찾아냈다.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남의 사진만으로도 이미 이 세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데 아시아라는 게, 심지어 아이슬란드보다 더 낯설게 느껴진다는 게 신기해서 아주 오랫동안 돌려보고 또 돌려보고 그랬다. 웬만한 나라들(심지어 끔찍한 에티오피아나 폭탄 터지는 이라크 어느 마을도)도 가면 가는 거지 뭐, 하는 기분인데 이상하게도 몽골만은 이 곳이 이 세상에 정말로 존재한단 말인가, 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 왜?
이인화의 <하늘꽃>과 김형수의 <조드>가 지금 몽골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 옛날의 몽골을, 전설과 신화로 얘기하기 때문이다. 또 그런 소설들을 내가 좋아했었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의 것이기도 했던 땅이고, 한때 우리의 것을 공유했던 땅이며, 어쩌면 우리의 것이 될 수도 있었던 역사라 친근감이 드는건가 하면 그뿐만이 아니다. 몽골의 사막을 건너는 낙타는 또 어떠냐면, 사하라나 아라비아를 뛰어넘는 어떤 신비의 영역을 구축한다. 더 가까운 곳에, 더 북쪽에, 하물며 같은 인종에. 한마디로 동질감인가 하면 확인할 길이 완벽하지 않다. 모르겠다. 친구는 중앙아시아어과를 다니며 터키어와 또 뭐더라, 다른 한 가지 언어를 공부했다. 다음날 생각하길 우즈벡어였던 것 같다. 졸업 후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스탄불로 떠나거나 여느 전공처럼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진로를 택한다고 했다. 중앙아시아. 내게 중앙아시아는 딱 그 정도 상식을 지닌 곳이었고, 친구에게는 친구가 가이드를 하고있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놓인 도시 정도일 것이다. 자기가 배운 언어에 대한 애증과 대학생활하며 꿈꿨던 어떤 풍경을 간직한 곳.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슴에 담고 꿈꾸는 건 너나 나나 같아, 수다떨던 이십대 초반이 떠오른다. 역사책 제일 앞 페이지에는 韓족으로서 한국,몽골,터키가 같은 혈통이라고 나온다. 쌍봉낙타가 있는 곳도 몽골, 고구려와 같은 기마민족인 것도 몽골, 고대 중국과 갖은 전쟁을 벌이며 서로 압박하며 살아남은 비슷한 역사를 지닌 것도 몽골. 내게 시규어 로스는 유럽의 몽골 같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 동떨어진 곳, 아무 것도 없는 곳, 갈 수 없는 곳, 가려는 생각조차 없는 곳,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곳, 추운 곳, 얼음으로 뒤덮인 곳,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 유토피아(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또는 이상향(理想鄕)을 가리키는 말)나 샹그릴라(신비롭고 아름다운 산골짜기나 그런 장소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며, 티베트어로 '푸른 달빛의 골짜기'라는 뜻)라고 해도 전혀 새로운 비유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비유(이)다.
허공의, 미지의, 공감각의, 초현실의, 잔향의, 울림의, 메아리의, 승리의, 장미. 반가워, 나와줘서. 조금은 두렵고 또 조금은 춥고 또 황홀한 밤을 선사해줘서 그리고 금세 사라져버리는 손길, 눈길, 발길 다 닿지 않는 곳에 있어줘서. 한결같이 혹은 새롭게. 여행지에서 들을 수도 있고, 들으며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역시, 시규어 로스는 자체가 여행이다. 음악이 아니 음악 듣는 내가 만들어내는 가상의 세계가 바로 여행이다. 일생에 몇 번, 만날 때마다 매번, 낯설어서 아름다운. 오늘 느낀 기시감이 내일 날이 밝기도 전에 이미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이, 정체모를 느낌이라니, 고맙다. 덕분에 내일이 기다려진다.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