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데이.
이런 날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 생각했지만, 한 달전 무심코 집어 먹은 쵸콜릿이 생각나 그냥 넘어가긴 어려울 것 같은 느낌. 꼭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책상 위에 사탕과 쵸콜릿이 넘쳐나겠지만, 남들 다 하는데 빠지면 담합해서 왕따시킬까 두려워 아침 일찍 쵸콜릿을 사러 제과점에 갔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줘도 될 일이지만, 아무런 의미 없는 재화(goods)의 전달이 받는 이에게 어떤 감흥을 안겨주리오. 말 그대로 남들 다 주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집에 가져가다 잃어버려도 그 사실조차 모르는 그런 물건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일요일 오후, 친구 결혼식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끄적인다.

to. 원만한 결재를 도와주는 모 여직원

책상위 결재판이 켜켜이 쌓여갈때
그대옥안(玉顔) 떠올리며 그대이름 외쳐보네
소인어찌 그대에게 이런부탁 편하겠소
눈물만이 하염없이 가슴속을 적시우네


항상 OO께 서류를 전달하는 직원들의 각골난망(刻骨難忘)한 심정을 노래한 시조로, 뜻하지 않은 현실에 직면하여 유발된 내적 갈등의 절제된 표현이 단연 두드러진다.

to. 우리 부서 여직원

OOOO OO실엔 여직원이 한명있네
사막속에 오아시스, 황무지속 꽃이라네
챙겨주지 못한마음 가슴속이 시퍼렇네
이제부터 시작이네 이자까지 기대하게


지끔까지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마음을 자괴적인 필치로 표현한 글로 마지막 행의 “이자까지 기대하게”를 읊을 때는 벅차오르는 감동의 소용돌이를 경험할 수 있다.

to. 자금부 여직원

하늘하늘 지결위에 숫자들이 즐비하네
한자한자 적은것이 애틋하고 꼼꼼하네
그대손길 안닿으면 종이조각 불과하네
어서빨리 접수하세 결재기일 임박했네


카드값에 헐덕이는 일부 직원들의 급박한 심정을 사사조의 운율에 맞춰 표현한 시조로, 특히 3행의 “그대손실 안닿으면 종이조각 불과하네”는 한낱 종이조각에 불과한 지결이 유가증권으로 탈바꿈되는 경이적인 순간을 절묘하게 묘사했다.

to. 회계부 여직원

따르르릉 따르르릉 전화왔네 OO씨네
미정산금 들어보니 눈이휘뚱 정신혼미
전화끊고 호흡조절 침착하게 반추하네
걱정하는 그댈보니 내가슴은 찢어지네


OO님의 미정산금 내역 통보를 받고 당황해 하는 직원의 모습을 표현한 시조로, 마지막 행의 “걱정하는 그댈보니 내가슴은 찢어지네”에서는 서로를 걱정하는 OO실 직원의 고뇌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to. 기획실 여직원


사방팔방 둘러봐도 안보이네 자리없네
어디갔니 결재판아! 이제그만 돌아오렴
안그래도 작은얼굴 결재판에 묻혀있네
심호흡후 물어봤네 웃어주니 나도웃네

☞ 해석
일행 : 동분서주 결재판의 행방을 찾는 직원이 OO씨가 부재중임을 확인함.
이행 : 잃어버린 결재판을 떠올리며 서럽게 읍소하는 장면
삼행 : 정신차리고 다시 확인하니 차곡차곡 쌓인 결재판 뒤에 OO씨의 모습 발견
사행 : 눈물을 닦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조심스레 물었더니 기분 좋게 맞아주어 덩달아 웃었다는 얘기

이런 글을 10여편(?) 썼다니.... 반응이 나쁘지 않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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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진 2005-03-14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좋아들 할것 같은데요.

piano避我路 2005-03-15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해짐님! 반갑습니다. 오늘 아침, 반응 좋았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리고 선물하신 책은 밤마다 아껴서 읽고 있습니다.

연우주 2005-03-18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글 너무 멋져요~~
 

토요일 오전 11시. 회사에서 약 7만원 어치의 책 배송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학습서, 세계사 관련 책, 그리고 '오만과 편견'.
택배 기사님께 전화 드렸더니 4시 이후에나 도착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주말에 볼 생각으로 주문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순간이었죠.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부심하고 있던 차에 택배 아저씨께서 알라딘 박스 두 개를 가지고 들어오셨습니다. (택배 아저씬 거짓말쟁이였습니다)

그 중 하나가 모해짐님께서 제게 선물하신 '청춘의 문장들'이었습니다.

받자마자 고맙다는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주말 내내 빈둥거리다 이제서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젯밤에 몇 페이지 읽었는데, 모해짐님께서 쓰신 리뷰처럼 '문장 하나하나가 한편의 시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리뷰를 읽고, 그 리뷰에 매혹되 책을 사는 경우는 많았지만, 구매 동기 부여자에게 책까지 부여받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열심히 읽어도 모해짐님과 같은 리뷰를 쓰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제 느낌정도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봄 추위에 몸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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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진 2005-03-08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퍼갑니다.. 제 리뷰 쓴 책을 선물하다니..민망..
 
 전출처 : 진진 > [퍼온글] 글쓰기의 쾌락

[특별부록|글쓰기의 쾌락]
글쓰기의 쾌락-생각의 질주,몰입의 황홀(신동아 '03 11월호 별책부록)

생각의 질주, 몰입의 황홀
삶의 모든 것을 기록하라
글쓰기의 백미는 책을 쓰는 일이다. 그곳에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이 숨어 있다. 아이디어가 넘쳐 흘러 쾌속으로 질주할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아이디어가 막혀서 오도가도 못할 때가 있다.

나는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이 글을 쓴다. 새벽녘에 글을 쓰다 보면 몰입상태에 빠져들 때가 많다. 그때 세상 천지에는 오로지 자신과 마주한 또 다른 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 두뇌 속에 입력된 수많은 정보가 날아갈듯 조합되면서 컴퓨터 화면을 메워나간다. 조용한 새벽녘, 빠른 속도로 컴퓨터 문자판을 두드리면서 나는 곧잘 “나는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문장을 떠올리곤 한다.

누구에게든 정체성이란 것이 필요하다. 정해진 코스에 따른 공부를 마친 다음, 나 역시 정체성의 위기를 맞았다. 그런 방황을 거쳐 얻은 것은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나’다. 이제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마치 음식을 먹는 일처럼, 옷을 입고 벗는 일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50여권의 책을 썼다. 1992년 상업용 출판을 처음 시작했으니까 본격적인 글쓰기의 역사는 10년 남짓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유년기나 청소년기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 따로 글쓰기 훈련을 받은 적도 없다. 시골에서 자란 보통 아이들처럼 독서나 글쓰기보다 바닷가를 뛰어다니거나 고기잡이 배를 타고 남해안 이곳저곳을 다닌 시간이 훨씬 많았다.

나는 전업 전문작가도 아니다. 언젠가 찰스 핸디의 ‘코끼리와 벼룩’을 읽다가 그에겐 글쓰기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보너스 정도라는 표현을 보았다. 직장을 다닐 때나 지금이나 글쓰기는 나의 전부를 걸어야 하는 주업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내 고향 경남 통영의 아름다운 풍광이 글쓰기에 필요한 감성을 키워주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풍부한 감성은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고기잡이 뱃전에서 바라보는 여명(黎明)이나 노을에 붉게 물드는 통영 항구의 정경은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아직도 내 가슴에 살아 있다.

그러나 내가 타고난 자질로 글을 쓰게 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스스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꾸준히 글쓰기 능력을 다듬어 왔다. 이런 경험 때문에 나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나도 쓸 수 있다’는 그런 용기 말이다.

글은 훈련의 산물이다

기초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자신의 생각이나 믿음 그리고 체험을 타인에게 전달할 능력이 있다. 즉 조금만 훈련하면 누구나 글쓰기를 중요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글쓰기는 원고지에 만년필로 메워가야 하는 일이었다. 육체적으로도 고된 일이었음에 분명하다. 능률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은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컴퓨터는 글쓰기의 혁명을 가져왔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생각을 손쉽게 담을 수 있다. 그리고 편집기능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글쓰기의 심리적 저항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기서 심리적 저항감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새로운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누구나 느끼는 ‘망설임’이다. 그런데 컴퓨터 앞에 앉으면 ‘그냥’ 쓰기 시작하면 된다.

어른이 되어 나의 첫 글쓰기는 보고서였다. 내가 일하던 곳은 연구소였기 때문에 딱딱한 보고서를 1년에 한두 권씩 내야 했다. 그런데 박사과정이라는 훈련을 거치고 연구소에서 수많은 보고서를 쓴 것이 지금 하고 있는 대중적인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사물이나 현상을 논리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웠기 때문이다. 주위 동료들은 대부분 연구 보고서를 쓰는데 만족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기승전결이 꽉 짜여진 그런 보고서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첫 작품이 ‘한국기업흥망사’였다. 당시만 해도 연구소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상업용 출판을 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 ‘한국기업흥망사’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상당한 인기를 얻자 문제가 발생했다. 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상업용 책을 내놓았다는 ‘죄’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었던 것이다. 직장에서 쫓겨날 뻔한 그런 해프닝들을 지금 돌이켜보면 우습기 짝이 없다.

연구소 시절 초기, 그러니까 20대 말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은 모두 언젠가 떠난다. 죽은 후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재산을 남기고, 어떤 사람은 자식을 남기고, 또 어떤 사람은 책을 남긴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영원히 사는 일’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다. 유한한 삶을 뛰어넘어 삶의 자취를 남길 수 있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택한 것이다. 그런 생각 때문에 나는 30대부터 괜찮은 책을 쓰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당시 쓴 책 가운데 지금까지 읽힐 만한 책을 나름대로 꼽아본다면 나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기업가’ ‘시장경제란 무엇인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시장경제와 그 적들’ 등이다.

매일 자서전을 써라

자신이 살아온 삶의 자취를 남기는 것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글로 써서 남기지 않은 삶은 죽음과 함께 망각의 늪으로 사라져버린다.

스스로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삶도 그 길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겐 독특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삶의 경험이든 글로 남길 가치가 있다. 그리고 글로써 자신의 경험을 정리하다 보면 부족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부족한 점을 알아야 채우는 일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세일즈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하자. 그가 세일즈를 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애환들, 세일즈를 통해서 본 인간과 세상…. 이 모든 것이 훌륭한 글감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경험이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가치 있는 것임을 깨닫는 사람은 드물다.

‘삶의 모든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라’ 내가 좋아하는 글귀 가운데 하나다. 나는 경험하는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나의 저작 중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 ‘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다. 이 책은 2001년 12월에 출간되어 2002년 경영경제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이 심오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다. 내가 20여년 동안 해온 자기경영의 경험들을 차근차근 정리했을 뿐이다. 내가 무(無)에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가를 정리한 것인데, 의외로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어찌 보면 이 책도 용감함의 산물이다. 정론이나 이론이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 자기경영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기까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이런 경험과 지식이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평소 생각해 왔던 바를 글로 분명하게 기록할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사실 그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관찰력 덕분이었다. 조직생활을 하는 동안 젊은 사람들이 직장업무에 매몰되어 정작 ‘자신을 만들어 가는 프로젝트’를 갖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시간, 지식, 건강, 행복, 인맥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했다.

자, 내 책을 소개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가능하며 자신의 경험이 평범하게 보이지만 차곡차곡 정리해 두면 쓸모가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내가 지금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아버지의 삶을 기록해두지 못한 것이다. 70세 이상 어르신들은 일제 식민지, 2차대전, 해방,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대사의 산증인들이다. 그분들이 험난한 세월 생계를 유지하고 사업을 일으키고 자식을 키운 과정 그 자체가 훌륭한 이야기다.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아버지께서 병환으로 누우신 점이 못내 아쉽다.

그러나 막상 우리는 기록하는 일에 무척 인색하다. 산업계에서도 큰 획을 그은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기록을 찾기가 어렵다. 평소 자신의 삶을 차근차근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리라. 리처드 닉슨이 낙향한 후 집필한 ‘지도자들’이란 책을 보면, 그가 매일 메모형식으로 자신의 삶을 기록해 두었음을 알 수 있다. 훗날 그는 파란만장했던 정치역정을 진솔하게 그려서 적지 않은 인세수입을 얻기도 했다.

지난해 교보생명 창업자인 고 신용호 회장이 쓴 ‘새경영’이란 책을 읽었다. 한문체 문장을 또박또박 읽어가면서 ‘아! 현장을 뛰면서도 이런 경지까지 지식을 끌어올릴 수 있구나’라고 감탄한 적이 있다. 그가 자신의 경험을 글로 남기지 않았다면, 그 지식은 육신의 소멸과 함께 영원히 사장되어버렸을 것이다. 미국에서 페코철강을 일구어낸 백영중 회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일생을 ‘나는 성실과 정직으로 미국을 정복했다’란 제목으로 묶어놓지 않았다면 누가 그의 일생을 기억할 수 있겠는가. 지금도 ‘나는 내식대로 살아왔다’는 공병우 박사의 글을 읽을 때면 여전히 그가 나와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처음부터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때는 약간의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게다가 두려움도 함께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 글쓰기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문리를 터득하게 되지 않을까. 수백, 수천 장의 원고지를 채운 다음 이루는 경지라 할 수 있다. 지름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일단은 많이 써야 한다.

 

글쓰기의 황홀

글쓰기에는 어떤 기쁨이 있는가. 글쓰기에는 쾌락과 고통이 아주 가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창조하는 재미를 들 수 있다. 글쓰기는 멋진 ‘지적 유희(遊戱)’다. 두뇌가 팽팽한 긴장 상태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쏟아내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경험이다. 세상에는 골프, 테니스, 여행 등 여러 가지 취미 활동이 있지만 글 쓰기는 이들 취미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큰 감동과 재미를 제공한다.

짧은 글을 쓸 때는 지적 즐거움의 크기도 그만큼 작다. 하루 동안 여러 편의 짧은 글을 쓰면 공허감이 밀려든다. 그래서 짧은 글과 긴 글을 병행해야 한다. 여기서 긴 글이란 한 권의 책을 쓰는 일이다. 사람들은 흔히 내게 “그렇게 자주 책을 내놓는 비결이 뭐냐?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다.

글쓰기의 백미는 책을 쓰는 일이다. 그곳에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이 숨어 있다. 아이디어가 넘쳐 흘러 쾌속으로 질주할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아이디어가 막혀서 오도가도 못할 때가 있다. 책을 쓰는 일은 자신을 다스리고 강건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다작(多作)을 한다면 그만큼 자기관리에 엄격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긴 글을 쓰는 것은 아이들이 레고 블록을 쌓으며 몰입상태에 들어가는 것처럼 진한 즐거움을 준다. 새로운 주제의 책을 쓰는 일은 정말 무에서 출발한다. 그 상태에서 주춧돌을 놓고 건물을 올려 가는 것처럼 두뇌 속에서 하나하나 작업이 진행된다. 물론 여기서 느끼는 기쁨은 고통의 경계선을 넘나들기도 한다.

강연, 기고, 방송 등과 같은 활동도 나에겐 중요하지만 책을 쓰는 일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그만큼 지적 쾌락이 크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꽉 차는 듯한 충만감도 그런 느낌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아무튼 나는 쓰지 않으면 공허감이 밀려온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마무리하면 며칠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책을 시작한다. 책을 만들어 가고 있을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매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글쓰기가 주는 즐거움은 그것만이 아니다. 글쓰기를 즐겨 하는 사람은 주변을 대충대충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은 예리하고 섬세한 눈을 갖고 있다. 글쓰기를 하면서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라도 무심코 넘기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글쓰기의 소재를 찾는 목적도 있겠지만,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이 완전히 변화했음을 알게 된다. 매사를 예리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꿈꾸듯 살아가지 않는다. 삶이 주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글쓰기가 가진 실용적인 혜택을 무시할 수 없다. 글을 쓰기 때문에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다.

글쓰기가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은 생각을 다듬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영의 세계를 들여다보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직접 다듬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흔히 부하의 머리를 거쳐 나온 글을 다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하지만, 글쓰기가 안겨주는 큰 혜택을 포기하는 셈이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오고 간다. 생각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그냥 생각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자주 자신의 생각으로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글을 쓸 때 비로소 우리는 생각을 차분히 정리해 나갈 수 있다.

내가 즐겨 드는 사례 가운데 하나가 운전이다. 부유하거나 지위가 높아서 따로 운전기사를 둘 형편이라 하더라도, 직접 운전을 할 줄 모른다면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큰 기쁨 중 하나를 놓치는 셈이다. 직접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머리와 손을 거치는 글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것에 도저히 미칠 수가 없다. 반드시 직접 써야 한다.

당신은 왜 사는가. 부, 권력, 명성 등 사람마다 각양각색의 목표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심성 저변에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부를 추구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데도 이 같은 원초적 본능이 강력히 작용한다. 글로써 자신의 생각이나 믿음을 드러내는 일은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내면의 소리가 글의 소재다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찬찬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20대 청년에서 30대 젊은이로, 그리고 40대 중년을 향해서 변화해 가는 자신을 지그시 지켜보는 것도 글쓰기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누구나 처음 글을 쓰려면 두려움이 앞선다. 글쓰기란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일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선뜻 시도하지 못한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느끼고, 체험하고, 제안하는 내용들을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긴다고 생각하면 뜻밖에도 간단하다. 예를 들어 부모라면 아이들의 유년기를 일기형태로 남겨 본다. 또 책을 읽고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또박또박 정리해 독후감을 쓴다면 글쓰기 입문으로 손색이 없다.

그냥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글을 쓰겠다는 결심이 서면 바로 컴퓨터를 켜서 이 글에 대한 여러분의 느낌이나 의견을 쓰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반드시 꾸준히 써야 한다. 글쓰기에 왕도(王道)란 없다. 얼마나 많은 글을 써보느냐로 좌우된다. 글을 쓰면 쓸수록 두뇌의 한 부분에서 글쓰기와 관련된 도로망이 커져간다는 걸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

일기형식도 좋고 메모형식도 좋다.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가장 좋은 도구가 노트북이다. 틈 날 때마다 파일을 만들어서 그곳에 생활 속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해 둔다. 때로는 특정 주제를 두고 수필 형태로 써보기도 한다. 어떤 형식이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해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만일 책을 쓰고 싶다면 한번은 심리적 저항감을 벗어 던져야 한다. 그러니까 첫 번째 책이 중요하다. 한번 성공하면, 여러 권의 책을 쓸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쓰고자 하면 용기를 가져야 한다. 자신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다음,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전체 목차를 정리한다. 그 다음에 각각의 목차에 속한 소제목의 글들을 채워나간다.

책을 쓸 때 내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다. 먼저 전체 구성안을 마련하고, 각각의 구성안에 들어갈 소제목을 정한 다음, 소제목 하나하나를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글을 만들어 간다. 세상 만사가 그렇듯 책을 쓰는 일도 처음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지 않는다. 잠정적인 계획안은 항상 변화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면 책을 쓰는 일이 긴 여행처럼 느껴질 것이다. 좀더 프로답게 글을 쓰고 싶다면 먼저 읽는 것을 즐겨야 한다.

좋은 글쓰기는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글쓰기와 글읽기는 거의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만약 읽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남의 이야기를 읽기만 하고 자신의 유익함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 것, 단순히 독자에 만족하는 것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든다. 주변에는 독서를 가까이하지만 정작 실용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남의 글이란 자신의 재창조에 직접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가치가 있다. 세상살이에서 관계란 주고받는 것 아닌가. 읽은 만큼 생산해야 한다. 다음 생산을 위해 꼭 필요한 독서라고 하면 독서의 의미도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은 내면세계를 기록으로 남겨가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위험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누구나 좌절과 실의, 곤경에 빠질 수 있다. 이때 글쓰기를 꾸준히 해왔다면 위기를 쉽게 넘길 것이다. 글쓰기란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멋진 도구다.   (끝)

글: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gong@gong.co.kr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라이스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유기업센터·자유기업원 초대 소장 및 원장, 코아정보시스템·인티즌 대표이사를 거쳐 현재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저서로 ‘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 ‘공병호의 독서노트’ 등 50여권이 있다.
발행일: 2003 년 11 월 01 일 (통권 530 호)
쪽수: 38 ~ 45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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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간을 내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러니까 공부하기도 바빴던 시절에 영어, 수학이 아닌 '사색'이라는 자족自足적 과목이 있었던거다. 얼마나 진지했는지 단순히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표나 도형, 그래프까지 동원하며 체계화, 이론화 시켜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 덕분에 성적은 곤두박질쳤고, 늦은 밤 부모님은 격려반 감시반의 목적으로 독서실 방문하셨지만, 난 언제나 독서실을 지키고 있었다. 뚜렷한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성적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야단칠 수 없었던 부모님은 그냥, 그냥 바라보셨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나와 함께 했던 그 노트는, 나락으로 추락했던, 그래서 더이상의 바닥은 없을 거라 생각했던 당시의 나에게 찢겨져 버렸다.  공들여 쌓은 모래성이 한순간의 파도로 흔적없이 사라지듯, 처절하게 고민하고 번뇌했던 자취들은 철저하게 찢겨졌다. 

이제와서 생각하지만, 난 더 치열했어야 했다. 더 미치도록 생각하고 적었어야 했고, 한두번쯤은 완전히 자아상실했어야 했다. 그리하여 지금 이 시간, 사유思惟와 발현顯의 괴리를  줄였어야 했다.

무당벌레 한 마리가 플라타너스 나무 위를 올라가고 있다. 얼마나 높은 나무인지도, 얼마나 많은 가지가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위를 향해 올라갈 뿐이다. 이미 수천 개의 갈림길을 지나왔기에 무당벌레가 갈 수 있는 나뭇가지는 한정되어 있다. 땅과 멀어질수록 경우의 수는 줄어들고 기력은 쇠약해진다. 운이 좋게 그는 5693번째 갈림길에서 아름다운 부인을 만났고 7364번째 갈림길에서는 자신을 쏙 빼닮은 아들도 낳았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나뭇가지, 그러니까 14693번 나뭇가지에 올라왔을 때 6개의 다리 중 4개는 이미 그 기능을 하지 못 했고, 젊은 시절 새빨간 등껍질에 또렷하게 찍힌 새까만 점은 그 경계선마저 불분명할 정도로 뿌옇게 번져버린지 오래다. 사력을 다해 나뭇가지 끝에 선다. 바람이 거칠다. 이제 가야할 시간이 왔음을 실감한다.  다리에 힘이 풀려 온전히 균형을 잡는 것마저 힘겹다. 천천히 눈을 감고, 중력에 몸을 맡긴다. 자연과 한몸이 된 그는 철저히 v=gt ,라는 자유낙하 속도를 준수하며 떨어진다. 그렇게 하나의 생이 마감된다.

그 노트에 적혀진 희미하게 기억나는 하나의 이론으로 당시 난 그림까지 그렸었다.

확실한 과거를 거쳐 더 확실한 현재를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갈림길이 남아있고 과연 몇 번째 나뭇가지에 서게될지 도무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지금의 내모습.

사랑한다.

여전히 불확실한 내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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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대설 주의보는 나로 하여금 생각하지 않아도 될 몇 가지 일들을 떠올리게 했지만, 의자는 너무 불편했고, 책상은 매우 어지러웠으며, 사무실은 숨막힐 듯이 답답했기에 야밤 도주하듯이 사무실을 뛰쳐나와 영동고속도로를 달렸다.  1호선열차 운행 중단이라는 악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로 위 차간 거리는 넓었다.  

인천 소재 OO여자고등학교. 반 편성 공고가 있었는지 학생들은 서로서로 반을 물어본다. 다소 소란스런 모습 속에 해맑은 웃음 소리가 섞여 있다. 잠시동안 학창시절을 추억한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학교 이전 후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기 위해서다. 난 이런 일을 하며 밥벌어 먹고 산다. 학생들에겐 추억 만들어지는 배움의 터전인 이 공간이, 내겐 연면적, 층수, 수익 등의 숫자로 해석되어진다는 게 안타깝다.

사진을 찍기 위해 들어간 어느 합기도 학원 정문 출입구에 버젓이 걸려져 있는 그림 속 금언.

"노력은 곳 고수의 길"
우울 한 날씨에 알맞는 우울한 글이다. 화창한 날 봤다면 아마 한참 웃었을 그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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