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春"
이 말을 좋아한다.
'春'.
이름에 들어가면 한없이 촌스러워지는 이 말이
'靑'과 만나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다니
감격스러울 따름이다.

예전에 '청춘'이란 라면이 있었다.
언제나 청춘일 수밖에 없는 까치와 엄지가 나왔던
당시엔 파격적이었던
광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라면이 싫었다.
가격 대비 중량
면발의 탄성과 꼬임의 정도
스프의 염분
다시마의 크기
썰어진 양념의 종류와는
하등의 관계 없이.

'청춘'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이는 그 말이
고작 인스턴트 식품 따위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너구리'가 그랬다.

'너구리'하면 아직까지 라면이 떠오르는 난,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가 아니었다면 아직까지
너구리는 항상 '오동통'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제2의 '너구리'가 '청춘'이 아니길
'청춘'이 '너구리'의 전철을 밟지 않길
그저 원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구멍가게 라면 진열대에서 얼쩡대는 사람과 마주칠 때면
묻지 않았음에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말했다.
'청춘'의 면발은 고무줄 같고
스프에선 역한 냄새가 난다고.

당시 세상은 지금처럼 흉흉하지 않았고
인생을, 아니 적어도 라면만은 달관한 듯한
학생의 읊조림을
그들은 쉽게 외면할 수 없었다.

이것은 '하얀 거짓말'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이
튀긴 밀가루와 빨간 소금물로 의미부여(기호학적으로 '기표'와 '기의'의 잘못된 만남)되는 것을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노력으로
티비에선 더이상 까치가 나오지 않았고
가게 진열대엔 서서히 '청춘'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작은 노력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청춘 사업'이란 말도 좋다.
'청춘'이란 말이
'사업'이라는
말그대로 비지니스적인 말과
이토록 어울릴 수 있단 말인가!

이 복합 명사의 궁합은
'청춘'의 이복형제인 '젊음'이 대신하므로써
느끼게 되는 이질화의 절대값 이상이다.

불행히도
내 청춘사업은 몇년째 극심한 불황속에 있다.
인정하긴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

사업을, 그보다 먼저 청춘을 가능하게 해주셨던 초기 투자자(부모님)는
이미 리턴(returns)을 포기한 상태고
한 때 함께 사업을 한
또는, 앞으로 그렇게 하자던
사람들은 이미 대박(혹은 쪽박)을 터뜨렸다.

하지만 난
가만히 서서 눈을 감는다.
옷깃을 스쳐가는 시간의 결을 느끼며.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푸른 봄'을 기다린다.
여전히 '푸른 봄'을 가슴에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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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2-28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님의 글을 오랜만에 만나 더 반갑습니다.
청춘..좋지요.
님이나 저나 지금 청춘을 관통하고 있는거 아닙니꽈!!!
청춘은 봄이요, 봄은 꽃나라...노래를 부릅시다...
꽃이 피려다가 숨을 것 같은 날씨입니다. 왤케 춥습니까!
그래도 푸른 봄...가슴속에 피어나겠죠?^^

털짱 2006-02-2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행히도 내 청춘사업은 몇년째 극심한 불황속에 있다"
아아, 너무 공감가는 멋진 표현!!!!
추천 한방입니다.^^

털짱 2006-08-03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봐도 너무 멋진 글입니다.... 왜 더 안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