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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 - 나쁜 신념과 정책은 왜 이토록 끈질기게 살아남는가
폴 크루그먼 지음, 김진원 옮김 / 부키 / 2022년 7월
평점 :
고등학교 때 '정치경제'라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왜 정치와 경제를 한권의 교과서에 묶어 가르치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사실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이름도 잊힌, '허벅지'라고 불리던 정치경제 선생님만 희미하게 떠오를 뿐입니다. 허벅지가 너무 두꺼워 '허벅지'가 된 그는, 라스트 네임을 떼고 '벅지'로 불리다가 그 조차도 귀찮아져, '벅'을 경유해 '뻑'으로 불리게 되죠.
그 때 정치와 경제가 종이 한장 만큼 매우 가깝다는 걸 느꼈습니다. 정작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데 그 둘이 친하다는 것을 먼저 알아버린 거죠.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이 후보자의 정책 방향성, 가치관 등을 판단하여 선거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대표자를 선출합니다. 선출된 대표자는 그가 내건 공약과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 정책을 통해 이를 현실에 구현하죠.
예산이 필요한 정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정책이 있지만 제도나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하고, 또 그렇게 시행된 정책은 어떻게든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경제 또한 대표자나 정책 결정권자가 어떤 가치관을 가졌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미세조정이 힘들고 파급효과를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충분히 신중해야 하지만 너무 신중한 나머지 '골든 타임'을 놓쳐버리면 막대한 손실과 희생이 뒤따를 수 있으므로, 무턱대고 신중만이 능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저자인 폴 크루그먼은 책에서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한다는 말을 합니다.
(* 테크노크라트는 정책입안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정책과 관련된 냉철한 지식을 제공하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그의 연구는 '실증 경제학(positive economics)', 즉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지, 세상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주장하는 '규범 경제학(normative economics)'은 아닙니다.
결국 현상을 사실 대로 기술하고 가치(정치) 중립적으로 판단하려 하는 게 그의 연구의 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중립이 존재할까요? 이건 이론적인 것이지 실재하는 않습니다. 현실 세계에선 완벽한 직선도 완벽한 원도 없으니까요.
저자는, 정치화는 왜 그것이 계층의 이해와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는 영역까지 확장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습니다.
사실 저도 늘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하고요. 물론 경제적 혜택(사회보장제도, 공공의료제도, 이전 소득 등)이 모든 정치적 선택의 최우선 기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현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므로 차순위로 넘어 가거나 아예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제가 너무 세속적인 건가요?). 그럼 왜일까요?
저자는 논쟁적인 이슈(부자&기업 감세, 무역 전쟁, 불평등 심화에 대한 부정, 극단적 보수주의, 보편적 의료보험 등 '좀비(zombies)'라고 칭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들(트럼프, 부시, 공화당 등)이 어떤 논리와 프레임을 가지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전환시키는지 설명합니다.
내용들을 보면 우리나라와 상당히 유사한 사회 이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언론의 중립 문제**에 대해서 잠시 얘기해보겠습니다.
(** 기계적 중립주의(bothsidesism)에 대해서 "한쪽이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음에도 논쟁을 벌이는 양쪽을 똑같이 대하는 거짓 등가성(false equivalence) 같은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 p. 282)
언론과 보수주의 정치세력의 밀착 구조는 언론의 기원, 자본주의 발전, 계급 권력과 관련이 깊습니다.
근대국가 형성과 함께 시작된 언론은, 시민혁명과 공화주의 확산과 함께 정치적 담론과 여론 형성의 장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하지만, 부르주아 계급의 입장을 반영하는 도구로 쓰였다는 점에서, 언론은 태생적으로 '중산층과 자본의 언어'로의 역할을 했던 겁니다. 언론은 자본과 광고에 종속된 위치로 전락하게 된 것도 이런 출생의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죠. 즉, 언론은 자본에 비판적일 수 없고, 자본의 정치적 파트너인 보수정당에도 우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Arguing with Zombies)>는 위에서 열거한 이슈 외에도 다양한 사회 제도과 정책에 대해서 경제적인 관점을 곁들여 설명합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이슈에 대해서 논쟁적이기에 이슈를 환기시키는 의미에서도 좋고, 중간중간 나오는 경제학적 이론과 지식을 배울 수 있어서 재밌습니다.
끝으로 우리나라와 흡사한 이 책의 내용을 몇 개 그대로 소개하며, 두서없은 글을 마치겠습니다.
- 공화당은 그저 사악한 이념만 쫓는 게 아니다. 현재로서는 사악한 존재 그 자체다. - p.221
- 트럼프는 일탈이 아니다. 그는 공화당이 지난 수년 동안 걸어온 길의 정점이다. - p.225
- 운동보수주의가 미국의 국민 대다수를 희생양 삼아, 부유한 특권층에 이로운 정책을 펴 나가면서도, 선거에 이기려 백인들의 적의에 기댈 때, 어떻게 백인 민족주의가 대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p.234
- 반대자들을 정당한 지위에서 물러나게 하고 자신들의 행동에 용기 있게 비판하는 사람들을 멸시할뿐더러 처벌까지 할 빌미를 제공하는 수단이 된다. - p.238
- 그(트럼프)는 공무원들이 미국 국민이 아니라 자기 개인에게 충성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선거가 끝나고 2년이나 흘렀지만 정적을 위협하고 응징하며 여전히 "힐러리를 구속하라"라고 앞장서 구호를 외친다.
- 노동자 측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어떠한 대표도 전혀 갖지 못했다. ; 고용노동부 장관 김문수 - p.245
- 브랫 캐버노의 연방대법관 지명, 그는 극명하게 극단적인 반노동을 표방하며 주류에서도 한참 오른쪽... ; 800원 판사 오석준 대법관 - p.246
이런 워딩만 보면, 폴 크루그먼이 자신을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라고 한 주장을 냉큼 인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