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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연우주 > [펌]뛰는 놈 나는 놈

절대주의자: 뛰는 놈 위에는 반드시 나는 놈 있다.

상대주의자: 뛰는 놈이 있기 때문에 나는 놈이 있다.

신비주의자: 뛰는 놈이 곧 나는 놈이다.

낙관주의자: 뛰는 놈도 언젠가는 날수 있을 때가 온다.

비관주의자: 나는놈도 뛸수 밖에 없는 때가 온다

공자: 뛰는 놈은 나는 놈한테 공손해야 한다.

괴테: 뛰는 놈과 나는 놈 사이에 다른놈이 없다고 해도 모순이다.

다윈: 뛰는 놈이 진화 하면 나는 놈이다.

갈릴레이: 뛰는 놈이나 나는 놈이나 똑같이 도착한다

아인슈타인: 뛰는 놈보다 나는 놈의 시계가 느리게 가더라.

스티븐호킹: 뛰는 놈이 블랙홀에 빨려들때 나는 놈은 이미 사라졌다.

생물학자: 뛰는 놈은 다리가 있고 나는 놈은 날개가 있다.

아담스미스: 뛰는 놈과 나는 놈이 서로 분업 한게 틀림없다.

칼융: 뛰는 놈은 주행 콤플렉스, 나는놈은 비행콤플렉스에 사로잡혀있다

라이트형제: 나는 놈은 우리가 처음이더라.

소비자: 뛰는것보다 나는 게 더 비싸더라.

약장사: 이 약 한 병만 먹어바. 뛰는 놈이 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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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양반집: 뛰는 놈이나 나는 놈이나 다 쌍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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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연우주 > 진보논객 진중권씨가 유시민 의원에게 보내는 질의서..

(펌)진보논객 진중권씨가 유시민 의원에게 보내는 질의서..

<친애하는 유시민 의원님께>

 

먼저 분명히 밝혀두지만 제 입장은 야당의 탄핵 시도는 강하게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대 야당의 횡포이자, 이 나라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거기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지극히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그 부분에 관해서는 우리 사이에 아무런 이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미리 밝혀 둡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남는 의문이 몇 가지 있어, 이렇게 용기를 내어 묻게 되었습니다.

1. 탄핵사태를 피할 수는 없었는가?

대통령의 3월 11일자 회견은, 제가 보기에도 임계치를 넘어서는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로 인해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탄핵반대파들마저 찬성으로 돌아서게 되었지요. 굳이 대통령이 국정을 담당한 책임자로서, 그 임계치 위에서 위험한 정치적 장난을 하여 결과적으로 탄핵을 초래한 것이 과연 온당했는지요?

아울러 탄핵에 들어가기 앞서 국회의장이 파국을 피하기 위해 4당 대표와의 회담을 제안했는데, 그것을 거부하여 극단적 사태를 초래한 것이 과연 국정을 책임진 분의 태도로서 온당했는지요.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대통령이 외려 탄핵 사태를 방조 내지 유도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박을 하실 생각이신지요?

2. 총선과 재신임의 연계가 온당한가?

<시사저널>에 따르면 3월 8일 현재 여권에서는 탄핵이 실제로 의결되기 힘들고, 설사 의결이 된다고 해도 헌재에서 통과가 될 가능성이 없는 데다가 여론이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보고, 이미 그 경우 총선과 재신임을 연계시키는 카드를 준비해 놓았다고 합니다. 이 기사는 실제 상황으로 실현이 되었습니다.

 <시사저널>에서 지적한 것처럼 '탄핵이 가결되 될 가능성도 적고, 설사 탄핵이 되어도 아직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남아 있으며, 나아가 여론의 향배도 우리에게 해로울 것 없다'는 식의 태도를 대통령이 손수 실천하는 것이 과연 책임있는 태도라고 할 수 있는지요?

3.대통령의 사과거부가 과연 민주화 투쟁인가?

열린우리당에서는 탄핵으로 초래한 정국을 6.10 항쟁과 같은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여권의 탄핵을 초래한 대통령의 행동이 과연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야권에서 문제 삼은 대통령의 언행이 과연 정치개혁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대통령은 지난 번 '리멤버 1219' 행사장에서 노골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지지를 호소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기자와의 회견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했습니다. 3월 11일에는 아예 총선과 재신임을 연계시키겠다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했습니다. 대체 그 발언이 국정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개혁과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탄핵을 초래한 사안이 기껏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안이었다는 데에서 오는 국민의 허탈감을 어떻게 달래주실 생각이신가요?

일각에서는 대통령도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관위가 분명히 했듯이, 우리 나라에서는 공직자의 정치개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소위 '관건선거'가 판을 치던 과거의 악습을 막기 위한 지극히 정당한 조치라고 봅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이런 중립의 의무를 져버리고, 대국민 사과까지 거부하다가 초래된 이 어처구니 없는 사태도, 일종의 민주화 운동이라고 규정해야 하는지요?

 4. 민주공화국이 정말로 위험에 처했는가?

열린우리당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이 나라 공화국의 정체가 위험해졌다고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유시민 의원께서는 정말로 국회의 탄핵안이 헌재에서 통과될 것이라 예상하시는지요? 참고로 <시사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여권에서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강공 드라이브를 펼 생각이 있음을 내비쳤다고 합니다.

만약 유시민 의원과 열린우리당에서 정말로 헌재에서 국회의 탄핵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믿으신다면, 야권의 반복되는 탄핵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나서서 공화국의 정체성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위험한 도박을 하신 것이, 과연 국정을 책임진 분으로서 감히 저지를 수 있는 일이었다고 보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5. 국민들의 분노가 대통령에 대한 지지인가?

야권의 망동에 수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나섰습니다. 탄핵에 반대하는 70%와 20%를 갓넘는 대통령 지지율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존재합니다. 지금 거리에 나선 시민들이 과연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러 나선 것입니까? 아니면 야권의 어처구니 없는 망동을 성토하러 나선 것입니까? 열린우리당에서는 그 분노의 성격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10% 가량 상승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지율을 올라간 것이 과연 열린우리당이 내놓은 정책의 덕분입니까? 아니면 야권의 행동에 대한 실망에서 얻어지는 반사효과입니까? 상승한 지지율은 포지티브한 지지율입니까? 네거티브한 지지율입니까?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지지율을 높이는 것이 정치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이라고 보시는지요?

6. 시위를 확산시켜야 하나? 자제해야 하나?

듣자 하니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의장이 시위를 자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고 합니다. 신문에서는 이를 "표정관리" 혹은 "지지율 관리"라 부르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항의시위마저 총선용으로 바라보는 정동영 의장의 시각과, 그 시위가 민주화 운동이라며 우리에게 참여하라고 강권하는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의 시각 사이의 괴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우리는 어떤 주장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까? 정동영씨의 말에 따라 시위를 자제해야 합니까? 아니면 그 당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의 호소에 따라, 당파의 차이를 잊고 전국적으로 시위를 확산시키는 데에 떨쳐 일어나야 합니까? 도대체 우리는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합니까?

도대체 그 시위의 성격은 무엇입니까? 6.10 항쟁과 같은 민주화 운동, 국민 저항권의 표출입니까? 아니면 정동영 의장의 말 한 마디에 제지될 수도 있는 열린우리당의 득표를 위한 선거운동입니까? 열린우리당에서 보는 이 시위의 성격은 무엇입니까?

7. 깃발 들고 참가해도 되나요?

탄핵 사태가 벌어지자 소위 '노빠' 부대가 이번에도 잊지 않고 민주노동당 게시판을 찾아와 읍소를 했습니다. 지난 대선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유시민 의원은 민주노동당의 표가 노무현을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가, 선거가 끝난 다음에는 그런 부채의식 가질 필요 없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번에도 말을 바꾸실 건가요? 아니면 이번은 바꾸지 않으실 건가요?

아울러 광화문에 민주노동당 깃발 들고 나오라고 요구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그 분들에게 묻습니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 났을 때, 민주노동당 깃발 들고 광화문 시위에 참가했더니, "깃발 내리라"고 외치시더군요. 이번에 여러분의 말 듣고 민주노동당의 깃발을 들고 나가면, 다시 "내리라"고 외치실 건가요?

8. 탄핵사태의 바탕에 깔린 정치적 욕망은 무엇입니까?

이번 탄핵사태에는, 그 파국을 막기 위한 두 개의 단추가 있었습니다. 하나의 단추는 대통령이 쥐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국회가 지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으 그 단추를 누르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국회도 그것을 누르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탄핵이 가결되었습니다. 과연 이 사태의 바탕에 깔린 정치적 욕망은 무엇입니까?

몇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1) 양쪽 다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랬다. (2) 대통령은 오직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랬고, 민주당-한나라당은 당리당략에서 그랬다. (3) 대통령만 당리당략에서 그랬고, 민주당-한나라당은 조국을 위해서 그랬다. (4) 둘 다 당리당략에서 그랬다. 유시민 의원은 이중 어느 것이 옳은 대답이라고 보십니까?

9. 이번 민주항쟁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아울러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위에 열우당 의원들이 적극 결합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요? 6.10 항쟁에는 직선제 쟁취와 같은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습니다. 이번 시위가 6.10항쟁과 같은 것이라면, 이 항쟁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시위를 한다고 헌재의 판결이 달라지지는 않고, 또 달라져서도 안 된다고 본다면, 이 항쟁은 뭘 따내기 위한 것인지요?

열우당 의원들이 시위에 결합할 경우 당연히 야당의 폭거에 대한 시민들의 정당한 분노를 슬쩍 별로 잘한 것도 없는 여당에 대한 지지로 바꾸어 놓으려는 선거운동이라는 비난이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시위가 순수한 국민들의 분노의 표현을 넘어 열린우리당에 대한 사실상의 선거운동이 되는 것을 막을 의지를 갖고 계신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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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넘게 하고 있는 운동이 있다. 마라톤...

2002년 9월 1일 본격적 시작을 했으니... 일년 반이 지났다...

처음엔 단순하고 무식한 운동이라 생각했었다. 단순히 뛰는 행위를 세네시간씩 하는 무식한 운동. physical activity의 생명은 재미라는 생득적(?) 지론을 가지고 있던 내가 마라톤을 단순, 무식한 운동이라 평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마라토너(좀 거창하다... 그냥 마라톤에 사람을 의미하는 어미 "er"  붙인거다. 너무 신경쓰지 말자)인 룸메이트는 틈만 나면 마라톤 얘기 하느라 정신 없다... 정상적인 사람이 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해서 말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는 좀 달랐다. 매일매일 주기도문 외우듯 같은 말을 줄줄 늘어놓는다. 난 생각했다... "역시 마라톤 하면 인내력은 커지는 구나."

낙숫물에 바위가 뚫리듯 룸메이트의 끊질긴 권유와 무한 궤도처럼 반복되는 고문 앞에서 서서히 내 지론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2년 9월 1일... 난 룸메이트와 나란히 출발선에 서게 된다. 룸메이트의 끈질김보다 몇 배 더 강한 마라톤의 중독성을 전혀 예상치 못한 채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난 서울국제마라톤을 준비하고 하고 있다. 정신적, 육체적 강인함으로 무장한 채 이제 곧 다가올 42.195km의 길고 긴 여정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심장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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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연애가 마지막 희망이다
무라카미 류 지음, 김자경 옮김 / 제이북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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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래, 연애가 마지막 희망이다.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책을 다 읽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다시 겉장의 제목을 확인해야만 할 정도로 이 책을 읽어도 '그래, 연애가 마지막 희망이야!'라고 손벽 치며 깨닫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좀더 자세히 들어가서 이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연애가 마지막 희망이다' 여기서 앞의 '그래'는 이런 분위기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이곳 저곳 탈출구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선택하게 되는, 비록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중간에 이런 말이 생략되었다고 봐도 무난하다.
'그래, (그래도) 연애가 마지막 희망이다' 결국 이 제목에서 독자는 이 책이 어떻게 전개될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책을 다 읽으면 이런 생각을 한다. '도대체, 왜? 연애가 희망이지?' '연애'와 '희망'의 연결고리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연애는 희망과 무관하다.' 난 이렇게 깨달았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에서 이런 제목이 붙여졌을까? 비교적 책 구매가 왕성하다고 판단되는 20,30대 미혼들을 겨냥한 마케팅이었을까? 아님, 여느 단편집이 그러하듯 여러개의 내용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것일까? 아니 원제도 이럴까? (왠지 국산 파리약 냄새가 난다.)

아무튼 이 책의 제목을 '연애에 대한 잡다한 생각' 쯤으로 바꾸고 책의 분량도 2/3로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뭔가를 기대하게 되는 제목 그리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내용 중 하나를 바꾸라면 전자를 택하는 게 이성적이고 효율적인 판단일 거다. 제목과 내용의 非일관성을 제외한다면 내용 그 자체는 신선한 것도, 공감할 수 있는 것도 간간이 눈에 띄였다.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문명의 동질성이라고 하긴 너무 범위가 넓고 아시아의 동질성이라고 하기엔 좀 답답한 느낌이다.

사람의 사고(思考)를 의식 속 사고와 의식 밖 사고로 나눈 것과 매슬로의 욕구 위계처럼 연애의 조건도 단계를 밟는다는 의견, 남성과 여성의 대표적 역할 모델의 붕괴는 비교적 신선했고 프리타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사람들의 증가, 자립에 대한 생각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별은 두개만 주기로 하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내게 잠시나마 '연애가 과연 희망이 될 수 있을까?'하는 일말의 기대를 갖게 했다는 것에서 별 하나... 그리고 지천명의 나이로 이런 말랑말랑한 글을 쓴 류에게 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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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즐거움 (양장)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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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런 종류의 책-독서에 관한 책이나 배움에 관한 책-에 남 다른 흥미를 보이는 내 독특한(?) 취향이 선택한 또 하나의 결과다.저자가 필드상을 받으며 수학에서 대단한 업적을 세울 때까지의 과정이 주된 이야기지만 그 사이사이에 배움과 연결된 삶의 철학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이 책을 읽으면서 ‘평범’이란 단어의 개념이 모호해졌다.평범...
과연 ‘평범(平凡)’이란 무엇일까?평범과 비범(非凡)의 차이는 단순히 천부적인 자질의 유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자신은 평범했고 끈질긴 노력으로 성공(일단 성공이라 하자. 별로 맘에 드는 단어는 아니지만)했다고 말한다.그런데 과연...10년간 한 가지 문제에 몰두할 수 있는 끈기가, 높은 벽에 부딪치고도 유지할 수 있는 초연한 시각이, 주변 모든 사람에게 배울 점을 찾는 삶의 자세가 평범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저자는 우리에게 “평범은 시작에서 말할 수 없다. 오직 그 끝에서만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라는 사실을 말하려는 듯 하다. 그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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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학계의 노벨상 수상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9-11 22:11 
    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김영사 전반적인 리뷰 知之者不如好之者요, 好之者不如樂之者니라.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2005년 9월 13일에 읽고 나서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論語의 옹야편에 나오는 문구로 모르는 이가 없을 구절이다. 사실 배움의 끝은 없기 때문에 앎 자체에 집중을 하면 그것은 집착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물 흐르듯이 배움 그 자체를 즐기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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