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얼음바람 속에서 윤곽을 잃어버린 네오싸인들이 싸늘한 빛이 발하고 있는 거리. 오리털 잠바를 입어 한껏 부풀어진 그림자는 잰 걸음으로 그 곳을 지나간다. 편의점 앞을 잠시 배회한 그림자는 소년을 만나 몇마디 말을 나누고 소년과 함께 사라진다.
아파트 상가에 자리잡은 그 곳.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얼마 후 문이 열리고 종전 근엄한 분위기는 공기 속으로 스며든다.
"전화하신 분이시죠?"
"예, 제가 문의 드렸던 OOO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1년 전 내모습, 이렇게 난 야학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원 진학에 반대하셨던 아버지께서는, 배움이 자만自慢이 되어서는 안된다, 항상 배우지 못 한 자에게 배풀 수 있는 사람이 되라, 고 말씀하셨고 난 그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한 채 야학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얼마 전, 야학에선 독서토론회가 열렸고 그 날 선정된 책이 '하이타니겐지로'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이다.

쓰레기 처리장 아이들과 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을 보면서 내 눈에 들어왔던 건 사건 그 자체보다는 소소한 행동과 시선이었다. 마치 90분간의 축구 경기에서 공보다는 선수들의 몸짓 그리고 표정을 보는 것처럼. 그들에게 중요한 건 육각형으로 둘러싸여진 둥근 공이라기 보다는 주변 사람과의 어울림, 내적 자아와의 약속 같은 것이리라. 공이 없는 경기장에서도 너무나 태연하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할 것이다. 어차피 공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과를 말해주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에.

배움과 가르침. '學' 그리고 '講'.
평가자의 평가가 다시 누군가의 평가를 받듯이,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두 행위는 언제나 동시에 일어난다. 스스로가 가르침의 능동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리다. 야학에선 이런 의미로 가르치는 쪽에 좀 더 비중이 있는 사람은 講學, 그 반대인 사람은 學講이라 부르고 있다.

대한 민국의 교육이 제자리를 못 찾아 방황하고, 교육계에 불미스런 사건들이 많은 작금의 사회에서, 우린 이런 깨달음을 통해 서두르지도 욕심내지도 말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끝 없는 여정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선생님뿐만 아니라 교육계에 종사하시는 모든 분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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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립간 > 2005년 가상뉴스

* 2005년을 마무리하면서 7대 뉴스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여느 해의 부정적인 뉴스가 대부분이었던 것과는 다르게 우리 국민을 비롯한 세계 모두를 즐겁게 했던 뉴스들이 선정되었다는 것에 대해 기자 또한 기쁨을 감추지 못하겠습니다.


 1. 남북통일 원년의 해 - 통일 헌법 기초에 합의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1985년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교환에도 불구하고 남북 정치의 이해에 따라 화합과 반목을 반복했던 남한 북한의 정부는 장차 다가올 통일 한국을 대비하여 국가 명칭, 영토의 범위 등을 포함한 몇 가지 항목에 관하여 헌법적 위상을 갖는 통일 헌법을 마련하는데 합의를 하였습니다. 통일 헌법은 다분히 명목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지만 그 상징성으로 볼 때,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가치를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적 성과로는 통일헌법을 마련을 계기로 남북간의 군축이 합의된 것과 자라나는 세대는 통일한국의 국민으로 살 수 있도록 초등학교 교과과목 중 이념이 비교적 적은 수학, 과학 과목은 남북 공동으로 교과서를 만들자는 제안이 나온 것도 통일 한국을 위한 진일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55년, 분단 52년 전쟁 1세대는 대부분 사망하고 살아계신 분들도 노령이라 언제 돌아가실지 모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 놓아 부르던 분들이 몇 분이 계신지 않은 이 때에 하루 빨리 남북의 자유로운 왕래와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와 더불어 중동지역, 내전이 10년 전에도 끝났음에도 불안했던 르완다, 시에라 리온 등 아프리카 국가, 그리고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의 카슈미르 고원에도 평화가 정착하기를 기대합니다.


 2. 더불어 사는 사회 - 기부 문화 정착


 우리나라에는 기부 문화가 뿌리 깊지 않아 서울 올림픽이 있던 1988에도 국제 원조를 받던 우리나라가 2000년대에 들어서도 세계 구호에는 인색함을 보여 왔습니다. 터키 지진 때, 작년 말에 있었던 인도네시아 지진 때에도 경제 규모 세계 11위라는 국가적 위상에 맞지 않는 원조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조차 빈축을 샀습니다. 이러한 정부와는 달리 국민 자발적 기부 운동이 이루지면서 월드비전 World Vision유니세프Unicef 등을 포함한 국제 구호 및 국내의 여러 단체를 통한 어려운 사람 돕기가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남을 돕는다는 운동이 확산되면서 장기 기증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높아져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도 장기 기증에 대한 문의와 등록이 많았습니다. 아직까지 문의를 하고 나서도 등록을 주저하는 사람이 많지만 국민 의식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뜻 깊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정부도 군비 축소로 남게 되는 국가 재정을 이용하여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국가 위상에 맞는 역할을 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3. 하나뿐인 지구 - 환경파괴 속도 감소


 전 지구적인 산업 개발과 화석연료의 사용 등으로 환경파괴가 가속도를 갖고 진행하던 것이 작년을 고비로 올해는 속도가 조금 줄었습니다.

 

 1982년 10월에 영국 남극조사팀은 성층권의 오존량이 1957년에 비해 20%나 감소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미국 항공 우주국(NASA)의 기상 위성 관측에 의하면, 특히 남극에서 오존의 감소가 급속도로 일어나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북반구에도 남극보다는 적지만, 노르웨이의 북쪽에 있는 스핏츠버그 섬 상공을 중심으로 매년 약 1.5∼2%씩 감소하는 엷은 오존지역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계의 사막화에 관해서는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지역으로 사하라 사막 남부의 사헬 지대를 꼽습니다. 아프리카 사헬 지방은 1960년대부터 사막화가 진행되고 가뭄이 겹쳐 생물이 살 수 없는 불모의 지대로 변하게 되었고, 1972년과 1973년 사이에는 수십만 명의 사람과 가축이 죽었습니다. 특히 1982년에서 1985년 사이에는 넓은 지역으로 확대되어 수백만 명이 사망하였습니다. 현재 지구 면적의 19%인 3천만 평방킬로미터가 사막화되어 가고 있으며 1억5천만 명이 사막화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해수면 상승의 경우, 1990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위원회(IPCC)의 '1차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100년 동안 지구표면 대기 평균온도가 섭씨 0.3∼0.6도 상승하였으며, 해수면 높이는 10∼25cm 상승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1995년 '2차 보고서'는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가 증가할 경우 2100년의 지구 평균기온이 섭씨 0.8∼3.5도 상승하고 해수면도 15∼95cm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 것이 보고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전 지구적이고 지속적인 환경파괴가 그나마 속도를 줄이고 있는 것은 작년 말에 있던 인도네시아 지진이 환경파괴의 결과라는 이야기로 인해 생긴 경각심과 교토의정서에 의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세계인들의 인식에 이와 같은 무한한 소비행태로는 지구가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절제하는 생활 습관의 유행이 가장 큰 이유라고 봅니다. 이제 3R 운동(reduce, reuse, recycle)은 운동이 아니라 생활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의 재판 발행을 하는 등 환경운동에 있어 한 획을 긋는 한 해였습니다.


 4. 가정의 회복 - 이혼율 감소, 출산율 증가


 사회 구조가 급격히 산업화, 개인화가 되어 가면서 가정파괴가 심각했던 지난 몇 년간과는 달리 이혼율의 감소, 미혼 인구의 감소 등의 수치를 보이며 출생 인구도 점차 늘어나 가정 파괴가 가정 회복을 돌아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유교적 사회문화, 가정에 반기를 든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남성들 역시 유교적인 책임감은 그대로 있으면서도 가정의 역할에 대한 기대는 증가되면서 결혼의 기피, 이혼율의 증가는 꾸준히 지속되었습니다. 올해 초에 있었던 호주제의 폐지나 직장 여성의 탁아시설의 확대 등의 제도적인 면이 가정의 회복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있으나, 양성 평등의 사회적 문화를 통한 가정 내의 모든 가족 구성원 존중 사상이 가장 중요했다고 봅니다. 또한 개인적인 생활이 여러 가지로 편리한 점도 있으나 가족이 주는 가치는 가족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도 한 요인일 것입니다. 개화기 때의 ‘동도서기東道西器’의 가치관이 아니더라도 우리 문화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 나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편 가정의 회복으로 버려지는 아이의 절대적 숫자도 줄었지만 사회적 편견의 해소로 더불어 국내 입양아 경우도 늘어 해외입양이 줄고 있습니다.


 5. 출판사, 서점, 도서관의 즐거운 비명 - 독서량의 증가


 국내 독서량은 1996년에 1인당 평균독서권수 16.1권 1999년에는 13.2권으로 해마다 감소하였고 2004년까지 꾸준히 감소하였습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교양서적」42.8%, 「잡지」33.4%, 「직업관련서적」17.1%, 「생활·취미·정보서적」14.6%,「만화 등 기타 서적」12.2% 순이었습니다. 이는 학생들의 학과목 참고서, 직장인들의 직업과 관련된 전문서적, 각종 월간지, 주간지가 포함된 숫자로 교양서의 독서를 추산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의 양식이라 할 수 있는 교양서적의 독서는 1달에 1권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2005년에는 60%에도 미치지 못했던 독서 인구 비율이 80%까지 상승하고 기존의 열독 인구의 독서량도 꾸준히 증가하여 교양서적만으로 계산하여도 12권으로 1달에 책 한권 읽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독서가 취미의 한 가지였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독서는 생활이 되었습니다.

 올해 11월 19일 프랑크 푸르트 국제도서박람회의 주빈국으로 초청된 우리나라는 국가적 준비가 소홀하다고 지적이 되었지만 짧은 준비기간에도 훌륭하게 치러 많은 나라로부터 격찬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출판문화가 발전하는 계기였습니다. 더불어 많은 서점들도 호황을 누렸습니다.


 6. 물리학의 새 지평 - 만물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의 발견


 모든 것의 이론이 아님에도 ‘만물의 이론’이라는 명칭이 오만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과학자들이 궁극의 이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고자 이름 지워진 만물의 이론이 증명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아직 검증의 단계를 거치려면 또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과학자들은 이번 이론의 증명을 옳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Kstone님에게 만물의 이론에 대하여 여쭈어 보았습니다.


 Kstone : ‘만물의 이론’이란 것은, 시간의 탄생 이래 우주 속의 모든 종류의 물질과 힘들의 움직임과 그 특성을 기술할 수 있는 단일한 수학 방정식임을 명확히 하고 이 수학적 표현들로부터 빛의 속도, 중력의 세기, 양성자의 질량, 전하의 크기 등 자연의 모든 상수들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하며, 그 많은 아원자 입자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암흑물질의 존재도 밝혀져야 할 것이다. '만물의 이론'은 이러한 엄청난 힘을 가졌다.


 우주의 생성 그리고 현재 상태와 미래에 대한 예측, 물질의 궁극에 대한 이론인 '만물의 이론'의 발견으로 과학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7. 새로운 삶을 열어 줌 - 희귀병 치료법


 유전자 검사에 대한 논란이 있었음에 불구하고 지속적인 연구 끝에 몇 가지 난치병에 대한 치료법이 밝혀졌습니다. 우선 근위축성측삭경amyotrophic lateral sclerosis(ALS)은 1930년대 이 질병을 앓았던 운동선수의 이름에 기원하여 루게릭병Lou Gehrig's disease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근위축, 근력약화, 섬유속성 연축 등을 특징으로 하는 퇴행성 신경계 병변이며 대뇌 및 척수의 운동신경원이 선택적으로 파괴되기 때문에 "운동신경원 질환"으로도 불립니다. 2001년 ALS-2 유전자 변이가 관여한다는 등 몇 가지 원인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원인도 모르고 병의 진행 과정도 몰라 그 치료법 역시 마땅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의 성과는 환자가 실감할 수 있는 치료법이 개발되리라고 기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난치병인 진행성 근이영양증progressive myodystrophy의 병태생리에 관해서도 획기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증상적 및 고식적 치료에 머물렀던 치료가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치료법이 곧 개발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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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 내내 아펐습니다.
팔 다리 할 것 없이 모두.
스키장에 다녀온 댓가라고 하기엔 너무 가혹했죠.
덕분에 주말을 집 안에서 보냈습니다. 그냥 조용히 책이나 읽을 심산이었기에, 몸에 오는 약간의 한기가 오히려 주말동안의 내 계획을 더욱 공고히 만들겠구나 싶었죠. 토요일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런데 토요일 오후가 되니 점점 몸에 열이 올랐습니다. 그리곤 순식간에 온 몸이 불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식은 땀은 쉴 새 없이 흐르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죠.
그리고 잠들어 버렸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제가 이번주에 읽으려 했던 책입니다. 오랫만에 리뷰도 쓸 계획이었죠.
이번 주 수요일에 야학에서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라는 책으로으로 독서 토론회가 예정되어 있어 일요일까지는 꼭 읽었어야 했는데 결국 읽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모처럼만에 진탕 잤습니다. 꿈과 현실이 뒤엉켜 인식과 상상의 세계가 무지개 떡처럼 층을 이룰 만큼.

장맛비가 그친 것처럼 몸이 가벼워지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싶었지만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슬픈 영화.
<A walk to remeber> ... 제가 선택한 영화입니다.
한 남자의 사랑이 잘 표현된 영화였습니다. 여주인공 맨디 무어도 아름답고, 가수라서 그런지 노래도 잘 하더군요. 저를 울게 한 장면도 있었는데, 남자 주인공이 이혼한 아버지를 찾아가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할 때 눈물이 흐르더군요.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리고도 눈물샘엔 눈물이 남아있었던 거죠.

그리고 또 잤습니다. 땀을 흘려서 낫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흘리고 싶었으니까요.

이제 많이 좋아졌습니다. 빨랫감이 좀 많아지긴 했지만 이젠 다시 책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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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잉크냄새 > 청춘, 삶의 여울이여!
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알지 못하는 그들을 멍하니 그리워했고 <스물 셋이 넘기전에 인생의 목표를 이루어야한다>는 랭보의 글귀를 신문 한 귀퉁이에서 읽고 스물 세살의 마지막 밤을 술로 지새웠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고백한 김광석의 노래속에서 내 사랑의 아픔을 가늠해보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는 유치환 시인의 싯구에서 잠시나마 자조섞인 행복을 맛보곤 했다. 청련거사 이백을 술대작 친구로 마주한 어느 산기슭의 남루한 술집에서 별들 사이로 잠적한 생 텍쥐베리를 떠올리다 괜시리 정지용의 <송인>의 마지막 싯구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를 나즈막하게 읊조리며 어두운 밤하늘에 눈물을 더하곤 했다. 내 푸르른 청춘의 나날에...

서른 중반에 접어든 작가가 그의 청춘을 사로잡은 한시와 하이쿠와 문장들을 그의 추억 한자락과 더불어 풀어내고 있다. 청춘,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이는, 젊음의 피를 끓게 만드는 그 시절의 아련한 이야기들을 때론 격하게 때론 유머섞인 웃음으로 때론 서글프게 들려주고 있다. 청춘이기에 품을 수 있는 커다란 이상과 뜨거운 정열, 눈시울이 젖은채로 죽고 싶었던 호사로운 취기와 허허로운 웃음으로 버릴 수 있었던 기억의 편린들이 나의 추억인양 그렇게 녹아들어 있다.

우리는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며 아쉬워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쉬워하는 것은 그 시절의 추억이 아니라 화살같이 우리를 이곳까지 흘러보낸 세월이 아닐까? 세월의 흐름속에 자리잡은 청춘의 추억은 잠시 머문 우리 삶의 나루터와도 같다.

1급수에 사는 열목어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기에 영원히 푸르른 곳에서 살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차피 앞으로 나아가도록 운명지어졌다. 고단한 행로에서 많은 것을 상실하며 나아간다. 그러한 삶속에서도 연어처럼 삶의 여울로 한번쯤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의 회귀본능이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찾아간 고향의 여울에 육신의 고단함을 씻어내듯이 청춘의 추억들은 우리 영혼이 발 담글 우리 삶의 여울인 것이다. 청춘, 삶의 여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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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퍼온글] '거짓말'의 작가 노희경과 표민수 PD의 대화

<표민수PD,노희경작가와의 대화 >


" 사랑은 있죠? " " 그럼요 , 사랑은 있어요 "

“세상 사람 모두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우리도 한번쯤은 행복해지고 싶었습니다. 그게 정말 바보 같은 사랑이라 해도….”(<바보 같은 사랑>中 상우의 마지막 내레이션)

분명히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허준>과 맞서기엔 그들은 너무나 바보같이 약했는지도 모르겠다. 젊은 아이들은 밀고당기는 사랑이야기도 아니고 공장구석에 피어난 질퍽한 30대의 불륜이야기가 뭐 그리 궁금할까? 잘나고 뻔쩍거리는 것 투성이 세상에 지지리도 못나 궁상맞은 사람들의 악다구니가 듣기 좋았으랴. 지난 4월24일 첫 방송된 <바보 같은 사랑>은 6월27일 그 마지막 사랑의 인사를 고했다. 첫날 애국가보다 낮은 시청률을 보고 원망하며 돌아설 수도 있었을 텐데 꾸준히 그들만의 사랑을 만들어갔던 두 사람. 첫사랑이 아님에도 언제나 첫사랑처럼 서로에게 ‘빛’ 같고 ‘소금’ 같은 존재. 그들이 만들어온 사랑이야기. 짝사랑 혹은 안쓰런 연민.

“넌 누굴 사랑하는 게 겁나지, 사랑이 널 바보로 만들까봐. 아서라. 세상은 바보같애. 바보같이 사는 게 옳아. 재호야.”(<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中)






표민수/ 정말 이번처럼 결말을 오래 고심했던 적이 없었을 거예요, 그죠? 다른 작품 할 때는 시놉시스 단계에서 이미 결론을 내고 갔었는데, 이번엔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어요. 시작할 때 노희경 작가는 옥희(배종옥), 나는 영숙이(방은진)에게 손을 들어줬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우리 둘 다 옥희에게 상우(이재룡)를 보내는 식으로 이야기가 되어 나갔어요. 누구도 상처받지 않기를, 모두 ‘무사하길’ 바랐는데 결국 상처를 주게 되네요.
노희경/ 사실 상우가 영숙이에게 갈 이유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영숙이가 임신을 한 상태에서 상우가 영숙일 택한다면 다른 만 가지 이유가 ‘임신’이라는 한 가지 사실에 묻혀 보이지도 않았을 거예요. 통속적 결말을 피하려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윤리·도덕적으로 그래야지 하는 것에 대한 반항도 아니였어요. 사실 우리 둘이 얼마나 ‘보수적’인 인간들인데요. (웃음) 그저 ‘사랑’에 손을 들어주고 싶었어요.


시작

표/ <아직은 사랑할 시간> <거짓말> <슬픈 유혹> 이번 <바보 같은 사랑>까지 4번이나 작품을 같이 했네요. <엄마는 치자꽃>에서 같이 일했던 나문희씨 소개로 처음 봤는데, 그게 언제지? 96년 6월쯤 일거예요. 우리 둘 다 술은 잘 못해서 처음 본 날 차만 마시면서 이야기 했는데 한 6시간 정도를 앉아서 줄곧 쉬지 않고 얘기만 했었죠?
노/ 처음 표 감독 볼 때 깔끔하고 왠지 반지르르한 게 별로 내 과는 아니다 싶었는데 저렇게 생긴 얼굴에 촌스런 경상도 사투리가 튀어나오니까 ‘푹’ 웃음이 나더라구요. 우린 생각하는 게 똑같지 않아요? 요모조모 따지는 말투도 똑같고 고집센 것도 같구요, 한번은 표 감독 부인이 ‘어쩜 둘이 그렇게 비슷하냐’라는 말을 하더라구요. 같이 사는 마누라가 그런 말을 한다면 그건 정말 닮은 걸 거예요. 서로 안주하지 않게 채찍이 되어주고… 표 감독이야 늘 감동이지, 뭐.
표/ 자라온 환경이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인간을 보는 눈이 비슷해요. <거짓말> 찍을 때쯤 이었나? KBS 건너편 공원에 앉아서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 작품 이야기 하다보니 어느새 동이 훤이 트더라구요. 이야기 하는 중에 다음 작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와요. ‘주인공을 누구누구로 가자’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은 뭘까, 사랑은 뭘까’ 같은 식의 이야기다보니 끝이 있나요. 평생해도 모자랄 이야기지.


거짓말 vs 바보같은 사랑

노/ <거짓말>이 ‘수채화’ 같았다면 <바보 같은 사랑>은 ‘화투짝’ 같아요. 그래서 <바보 같은 사랑>이 더 힘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수채화는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지만 빨강 파랑 조잡한 ‘화투짝’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수채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그래도 ‘화투짝’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타당성을 부여해야 하니까.
표/ 잘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라 어딘가 모자라고 덜렁대고 조금은 악랄한 사람들에게 애정을 갖게 만드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울까.
노/ 사실 <거짓말> 할 때는 사람들이 대사가 너무 어렵다는 그런 말을 하면 ‘알아 들을 사람만 알아 들으라 그래’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그게 안 되요. 가령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거야’라는 말을 하면 이 사람들은 ‘뭐? 사랑이란 사람이 교통사고를 냈데?’ 하고 물을지도 모르거든요. 순간순간 사랑의 정의니 멋진 말들을 쓰려는 충동에 사로잡히곤 하지만 ‘밥 먹었니’ 같은 말에도 가슴이 아플 만큼, 어떻게 일상용어를 가지고도 짠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제일 걱정이었어요.
표/ 그래서 <바보 같은 사랑>에서는 ‘사랑한다’라는 말도 얼마나 아꼈게요. 참 이상하죠? 상황은 더 편안할 수 있는데 말 한번 꺼내는 건 더 성스러워지는 거.
노/ 대사를 최대한 아끼면서 배우와 감독을 믿었어요. 대사의 힘보다는 플롯에, 상황에 의해 이끌어 나가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표/ <거짓말>은 그래도 여유있는 사람들이었잖아요. 하지만 <바보 같은 사랑>의 배경은 철저히 대치되죠. ‘빡빡한’ 시장과 공장에 어떤 ‘여백’을 줄 수 있을까, 그게 제일 고민이었어요. 결국 옥희네 넓은 마당이나 상우집 앞의 긴 계단 또 음악 같은 것에서 그런 여백을 살렸죠. <거짓말>에서는 고급스런 첼로나 현악기를 주로 썼는데 이번엔 단순하지만 건반과 건반 사이의 여백이 느껴지는 피아노를 주로 썼어요.
노/ <거짓말>의 주인공들은 정말 모두 똑똑했던 것 같아, ‘너 이렇게 생각하지? 난 그걸 알아’ 식으로. 은수(유호정)가 스스로에게 ‘은수야, 너는 강해’라고 읊조리는 등 끊임없이 자신을 객관화시켜야 할 만큼 우리는 너무나도 주관적이었죠. 극중 인물에 우리 스스로가 빠져 있었던 거죠. 표 감독에게서 준희(이성재)를 많이 따오기도 했고 나도 ‘내가 성우(배종옥)라면, 은수라면 어떡할까?’ 하며 끊임없이 자문하기도 했어요.
표/ 하지만 <바보 같은 사랑>은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했어요. 주변사람들조차 그들의 사랑에 개입하거나 편을 들지 않거든요. 그나마 우방인 미숙이(박원숙)조차 ‘정신 똑바로 차려’라는 말 이상의 개입이 없어요.
노/ ‘바보 같은 사랑’이란 마을에 이런 사람들이 산다고 생각하자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며 글을 썼어요. <거짓말>은 내가 다가가면서 썼는데 <바보 같은 사랑> 속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충돌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통에 그걸 쫓아가면서 쓰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불륜

표/ 그러고보니 우리가 만든 작품이 다 윤리적으로 벗어난 작품이긴 해요. <아직은 사랑할 시간>은 AIDS 환자 이야기였고, <거짓말>도 유부남과의 사랑이었고, <슬픈 유혹>은 동성애, <바보 같은 사랑>도 불륜, 사실 선정적이라는 말도, 불륜을 포장했다는 비난도 들어요. 하지만 그 윤리라는 것이 사회적인 잣대가 아닌가? 사회적 윤리는 중요하게 여기면서 개인의 마음속 윤리가 깨어지는 건, 마음의 불륜을 저지르는 건 왜 쉽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노/ 이제는 우리가 개인의 생각에 대해 읽어줘야 할 때가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루키가 ‘당신은 왜 멜로만 쓰느냐’는 질문에 ‘한 개인이 사회를 대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는데, 전 그 말에 동의하거든요. 과거가 노동자라는 ‘집단’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젠 옥희나 상우 같은 한 개인의 ‘노동자’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가 아닌가요?
표/ 이 세상을 멸망시킬 방법은 원자폭탄 몇개 떨어뜨리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더 쉽게 생각하면 내가 눈을 감으면 세상은 끝나는 게 아닐까? 개인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데올로기가 끝난 시대에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개인의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윤리를 조금 흔들더라도 사람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서 그들도 ‘행복 할’ 이유를 찾아주는 것이 좋아요.


연민과 동정

표/ <거짓말>에서 준희는 성우를 왜 사랑하게 됐는냐는 물음에 ‘선밸 보면 내마음이 참 아퍼요’라고 말하고 <바보 같은 사랑>에서 상우는 옥희의 사랑 한번 못 받고 주눅든 모습에서 감정이 싹 트죠. <슬픈 유혹>에서 준영(주진모)은 사회에서 이제 퇴물 취급 받아가는 40대 문기(김갑수)의 처진 어깨를 사랑하구요. 물론 모든 동정이 다 사랑은 아니지만 상대편을 염려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은 사랑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노/ ‘밥 먹었는지’ ‘아프진 않는지’가 걱정되는 마음, 영숙이가 리어카를 맡기고 터벅터벅 걷는 뒷모습에서 느끼는 감정만큼 절실한 게 있을까? 그냥 바라는 것없이 해주고 싶은 마음 그게 사랑 같아요. 예전에 사귀었던 사람이 헤어지면서 ‘너한테 할 만큼 다했다’라고 하더라구요, 그순간 나는 그 사람이 너무 싫어졌어요. 아, 이 사람은 자신이 해준 것만 기억하는구나. 사랑에서 해준 것만 기억하면 함정에 빠지게 되거든요. 받은 것만 기억하면 사랑이 얼마나 행복할까.


나이

표/ 난 나이든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거짓말>에서 영희(윤여정)가 이런 말을 해요. ‘사람이 늙는다는 거 참 불쾌하고 서글픈 일이다…, 얼굴에 진 주름이 서글픈 게 아니라, 이왕 늙을 거면 몸따라 마음도 늙지… 마음은 청춘인데 몸만 늙는 게 서글퍼. 엄마 나이, 쉰둘이다. 그런데 오늘 그 오빨 보는 순간 내가 꼭 열몇살 같더라. 그때 그 나이에 가졌던 꿈들, 그 생기발랄했던 모습들 호기심, 설렘 작지만 내깐엔 아팠던 기억들… 왜 그리 또렸한지….’ 사실 우리 나이 들어도 똑같이 무모하고 질투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할까봐서, 사랑이 또 찾아올까봐서 두려워하는 거 같아요, 우리가 만드는 드라마에서는 그게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어요.
노/ 요즘 <당신 때문에>라는 드라마 보면서 정말 느끼는 게 많아요. 부모에게 자식만으로 위로가 안 되는 부분이 있구나, 내 어머니가 사랑 때문에 나처럼 흔들리고 나처럼 아파할 수 있구나. 하는 것들 말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드라마들이 10대, 20대의 사랑이야기만 하고 있어서 그 나이가 아니면 사랑이란 건 못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게 참 안타까워요.


공짜 글 , 공짜 TV

노/ 책 내자 하는 제안을 많이 받았었는데 시간이 없어요. 세상엔 소리내서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외치는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그 사람들 이야기를 쓰기도 이렇게 빠듯한데 말이죠. 그리고 텔레비전은 공짜잖아요, 전 ‘공짜글’이 좋아요.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까. 사실 아직까진 돈 생각해서 딴 작업하는 건 못하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바보 같다는 소릴 듣나?
표/ 아니, 사실 무슨 일이든 사사로운 욕심이란 게 생기면 바라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노/ 글을 쓰리라 생각한 순간부터, 드라마란 걸 쓰겠다 생각한 순간부터 이런 생각을 했어요. 끊임없이 사람을 대변해야되는구나, 우리의 관점으로 누군가를 이야기에 다룰 수 있고 없고를 선택할 권리가 없구나, 누구를 손가락질하는 입장이 아니라,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설 수 밖에 없구나. 영원한 대변자가 이 직업이 가지는 멍에인 것 같아요.
표/ 참 ‘대변자’란 말이 좋은 것 같아요. 감독이란 직업은 ‘군림’하는 것이라는 오해가 있는데 사실 끝없이 귀 기울여 줘야 하고 대신 말해줘야 하는 직업이죠.


사랑은 있다

표/ 인물과 상황에 따른 많은 변주가 있지만 결국 우리가 그려내고 싶은 건 ‘사랑’인 것 같아요. 모든 문학작품에서, 모든 인간관계에서 결국 ‘사랑’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노/ 김정수 선생님이 얼마 전에 ‘사랑은 상대를 위해 죽어 줄 수 있는 힘이다’라는 말을 하셨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사랑’이야말로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에요. 그걸 믿어요. 그런데 표 감독님, 사랑은 있죠?
표/ 그럼요, 사랑은 있어요. 이들이 구상하고 있는 다음 작품은 인간이기 때문에 저지를 수 있는 실수, 폭력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함에도 안쓰럽게 아름다운 인간의 이야기라고 한다. <슬픈 유혹> 때 였던가, 두 사람한테 함께 공부해나가는, 사이좋은 ‘학우’ 같다는 말을 했더니 그 말이 듣기 좋다고 했다. 부디 한 작품 한 작품 인간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는 이들의 노력이 ‘짝사랑’으로 남지 않기를, 이들의 바보 같은 사랑이 기다림으로 그치지 않고 만남으로 이어지기를.

“어차피 짝사랑이란 없는 거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어떻게든 그 마음이 전해지기 마련이지.”(<내가 사는 이유>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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