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피천득의 <인연>의 마지막 구절중 하나이다. 중학교때 배운 글중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그 당시 가슴에 남은 교과목에 실린 글로는 황순원의 <소나기> , 알퐁스 도데의 < 별> 과 함께  피천득의 <인연>이다. 그 당시 무슨 의미로 이 구절을 받아들였을까? 시의 한구절마냥 외워버렸던 구절, 시보다 더 시적이었고 구절,  그냥 가슴의 울림에 귀기울여 좋아했던것 같다. 목련꽃과도 같은 아사코의 이미지와 동일시하여 얼굴 붉히며 읽어내려갔겠지. 그 당시는 이 구절을 이리도 절실히 느끼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리라.

[아사코와 나는 세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을....이 말은 참 많이 써먹었던것 같다. 짝사랑한 사람을 만난 친구에게도, 실낱같은 희망으로 누군가를 다시 만난 사람에게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미네르바 2004-06-15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 며칠 전 피천득의 <인연>책 중에서 '인연' 이 부분만 다시 읽었어요. 아니 만나는 것이 더 좋은 인연...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냥, 가슴 속에 그리움과 추억만 남기고 마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 인연... 그런데 사람인지라 그리워 했던 사람은 다시 보고 싶은 게지요. 그리움과 추억만 갖고 살기엔 인간은 늘 허기져 있는 게지요.

잉크냄새 2004-06-15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움과 추억만 갖고 살기엔 인간은 늘 허기져 있는게지요]
그래서 늘 배가 고팠나 봅니다.^^

갈대 2004-06-16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야 하는 사람은 그리운 사람이다"
그리운 사람들은 왜 이리도 만나기 힘든 건지... 혼자만의 그리움이기 때문일지도...

호밀밭 2004-06-16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워하는데 한 번도 못보는 게 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좋은 듯 싶어요. 그냥 삶의 여운 같은 게 느껴지잖아요. <인연> 요즘도 교과서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전에 국어 시간에 빨리 <인연>을 배웠으면 싶었었거든요.
 
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알지 못하는 그들을 멍하니 그리워했고 <스물 셋이 넘기전에 인생의 목표를 이루어야한다>는 랭보의 글귀를 신문 한 귀퉁이에서 읽고 스물 세살의 마지막 밤을 술로 지새웠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고백한 김광석의 노래속에서 내 사랑의 아픔을 가늠해보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는 유치환 시인의 싯구에서 잠시나마 자조섞인 행복을 맛보곤 했다. 청련거사 이백을 술대작 친구로 마주한 어느 산기슭의 남루한 술집에서 별들 사이로 잠적한 생 텍쥐베리를 떠올리다 괜시리 정지상의 <송인>의 마지막 싯구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를 나즈막하게 읊조리며 어두운 밤하늘에 눈물을 더하곤 했다. 내 푸르른 청춘의 나날에...

서른 중반에 접어든 작가가 그의 청춘을 사로잡은 한시와 하이쿠와 문장들을 그의 추억 한자락과 더불어 풀어내고 있다. 청춘,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이는, 젊음의 피를 끓게 만드는 그 시절의 아련한 이야기들을 때론 격하게 때론 유머섞인 웃음으로 때론 서글프게 들려주고 있다. 청춘이기에 품을 수 있는 커다란 이상과 뜨거운 정열, 눈시울이 젖은채로 죽고 싶었던 호사로운 취기와 허허로운 웃음으로 버릴 수 있었던 기억의 편린들이 나의 추억인양 그렇게 녹아들어 있다.

우리는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며 아쉬워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쉬워하는 것은 그 시절의 추억이 아니라 화살같이 우리를 이곳까지 흘러보낸 세월이 아닐까? 세월의 흐름속에 자리잡은 청춘의 추억은 잠시 머문 우리 삶의 나루터와도 같다.

1급수에 사는 열목어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기에 영원히 푸르른 곳에서 살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차피 앞으로 나아가도록 운명지어졌다. 고단한 행로에서 많은 것을 상실하며 나아간다. 그러한 삶속에서도 연어처럼 삶의 여울로 한번쯤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의 회귀본능이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찾아간 고향의 여울에 육신의 고단함을 씻어내듯이 청춘의 추억들은 우리 영혼이 발 담글 우리 삶의 여울인 것이다. 청춘, 삶의 여울이여!

 


댓글(8)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마요정 2004-06-15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청춘의 저는 그런 깊이는 없지만, 현실이 어렵다보니 계속 옛날만 생각하게 된답니다. 메말라버린 가슴에 이제는 간직하고 있는 싯구도 없고.. 갑자기 우울해집니다...ㅠ.ㅠ

갈대 2004-06-15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물 셋... 이 리뷰 왠지 저 보라고 쓰신 것 같아요
곁다리 - 보통 스물 셋이면 대한민국 남아라면 군대에 있을...-_-;;

잉크냄새 2004-06-15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안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 같아요. 청춘도 그와 같아 그 당시에는 우리 삶의 얼마나 큰 특권이었는지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것 같아요.

호밀밭 2004-06-18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일 때도 그 좋은 시기를 느끼지 못한 것 같고, 지금은 청춘이라는 시기가 지난 게 분명한 듯해서 안타깝네요. 김연수가 쓴 거라는데 어느 정도 신뢰가 가는 책이에요. 표지도 마음에 들고요. 저 표지 색을 파란색으로 하거나 흰 색으로 했다면 왠지 느낌이 달랐을 것 같아요. 청춘의 색이 연두색, 초록색이 아닐까 싶네요.

icaru 2004-06-18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도입 부분...절절하네요^^

책에 대한 평가도 별 다섯이구요~!! 아음~~!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잉크냄새 2004-06-20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과 초록은 동색이 아닐까요?
초록이 금방 묻어날것 같듯이 청춘 또한 그러한 느낌이 드는 색일것 같아요.

햇살가득 2005-08-24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근데 <송인>은 정지용이 아니라, 정지상이 지은 한시인데..
죄송합니다.. 잠깐 사이에 일어난 님의 착각임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잉크냄새 2005-09-01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이라니 당치도 않지요 지적 감사합니다.
 


 

인연 잎사귀

- 이 해인 -



나는 하늘을 향해 미소지으며

당신 생각에 행복합니다

그대 이름만은 내 가슴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

언젠가 내가 바람 편에라도 그대를

만나보고 싶은 까닭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고 두고두고 떠 올리며

소식 알고 픈 단 하나의 사람

내 삶에 흔들리는 잎사귀

하나 남겨준 사람.

슬픔에서 벗어나야 슬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듯 처음부터 많이도 달랐지만

많이도 같았던 차마 잊지 못할

내 소중한 인연이여....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호밀밭 2004-06-14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너무 근사해요. 창으로 저런 잎사귀가 보인다면 창밖 풍경이 안 보여도 좋을 것 같아요. 시도 제가 좋아하는 이해인님의 시네요. 소식 알고픈 단 하나의 사람,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거나 그런 사람을 갖는 것, 인생에서 중요한 일인 것 같네요.

잉크냄새 2004-06-14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대 이름만은 내 가슴에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은 ....>
어느날 풀잎같은 입술로 그대 이름을 부르면
햇살에 반짝이는 녹음짙은 잎사귀처럼
그렇게 내 창으로 들어오길 바람입니다.

icaru 2004-06-14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님이 찍으신 건가요?? 오홋...멋지네요...!!

stella.K 2004-06-14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하 동문. 퍼가요.^^

잉크냄새 2004-06-14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진짜 그렇게 생각하시는건 아니겠죠? 인터넷에서 건져올린 사진입니다.^^

비로그인 2004-06-16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네요...뭐가 그리 바쁜지 밀린 숙제 이제서야 하느라 코멘트도 지금에서야 올립니다. ^^
 
바람과 모래와 별들 청목 스테디북스 63
생 텍쥐페리 지음, 김채영 옮김 / 청목(청목사) / 199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한번쯤은 사막을 동경의 대상으로 가슴속에 품었을 것이다.사막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샘물, 머리 위에서 작렬하는 태양, 눈을 뜰 수 없는 모래바람, 지평선으로 그려지는 신기루, 사막의 밤. 불완전하고 절망적인 사막이 인간의 가슴속에 그토록 자리잡는 것은 그 불완전과 절망이 불행의 소산이었다고 할지라도 그 불행마저 사랑스러운 기억으로 만들만큼 커다란 삶의 진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막을 동경하는 것도 가장 불완전하고 절망적인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만나 진정한 자신을 대면하기 위해 설정하는 신기루와도 같은 것이다.


비행기 우편배달부의 삶을 살던 생 텍쥐베리가 비행사로서의 자신의 삶과 사막에 불시착한 이후 느끼게 되는 인간의 나약함과 그 속에서 찾게 되는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19시간, 인간이 물 없이 사막에서 살아날수 있는 시간이다. 머리만을 내어놓고 모래에 몸을 묻고 갈증으로 서서히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는 무렵에도 그는 19시간의 시간보다는 오히려 완전히 벌거벗은 자신과 맞닥뜨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간은 사물과 직접 맞닥뜨려야 자신의 참 능력과 진실을 측정할수 있는 것이다.


갈증으로 죽음의 문턱을 바라보는 그가 바라보게 되는 것은 사막의 신기루이다. 황혼이 접어들면 신기루는 사라진다. 그러나 그는 자연현상의 신기루가 사라진 자리에 그 모습을 나타내는 자기 내면의 신기루를 따라 다시 걷는다. 자포자기의 영혼이 그의 몸을 가득 메울때 비로소 그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의 친구가 된다.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역설적인가? 그러나 허황된 허상에 불과한 신기루가 그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진리였던 것이다.


삶의 진리란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진리를 자기옆에 두고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작은 흙 한 무더기 속에서 오렌지 나무가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오렌지 나무에게는 흙 한 무더기가 진리인 것이다. 종교, 문화, 가치, 행동양식이 한 인간에게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것 또한 그러할 것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네르바 2004-06-13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떽쥐베리를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의 작품은 거의 다 읽어 보았지요.(그러나 이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네요.) 아마, 어린 왕자 때문이기도 하고, 사막에 대한 동경과 어린왕자처럼 사라져 버린 그의 생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사막... 결코 환상을 품을 만한 곳이 아니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 곳을 동경하지요. 아마, 당장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오아시스 때문은 아닐는지요. (물론 진짜 오아시스를 찾을 수도 있겠지요). 비록 사라져버릴 신기루일지라도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이 사막 같은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으니까요.

'삶의 진리란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종교, 문화, 가치 행동양식이 한 인간에게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것 또한 그러할 것이다.' 이 말 저도 동감합니다. 이 책도 읽어보아야겠네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호밀밭 2004-06-13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생 텍쥐페리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 같아요. 어른이지만 소년 같은 어른일 거라는. 가끔 사막에 갇혀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그것도 환상이겠지만요. 이런 환상은 사막을 고난을 주는 장소가 아니라 낭만적인 공간으로 생각해서인 것 같아요. 삶의 진리란 증명될 수 없다는 말 좋은데요. 요즘은 명확한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뭐든 좀 둥글게 다가오는 게 좋더라고요. 리뷰 잘 읽고 가요.

잉크냄새 2004-06-1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 텍쥐베리에 대한 환상과 동경은 누구나 한번쯤은 품었을것 같아요. 그를 어린왕자와 동일시하기에 그는 항상 소년으로 남아있는것 같군요. 얼마전 지중해에서 그의 비행기 잔해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때 속으로 아니기를 바란것은 아마도 그가 영원히 별들사이로 잠적했을 것이라는 믿음이 깨어지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것 같아요.
세상은 진리를 논리와 혼동하는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삶마저도 논리적으로 풀어헤쳐야 속이 시원한 모양입니다. 가끔은 내 안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 의미있는 것임을 생각해볼 필요도 있는것 같아요.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보다가 다음 구절을 보다.

<그때의 교복이란, 그들이 이제 다시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와는 오징어잡기나 강 건너기를 하진 않는다는 뜻이었다. "어텐션 플리이즈, 바우!"의 세계로 그들이 넘어갔다는 뜻이었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6학년들이 그들의 놀이문화에서 벗어나 중학교 교복세대로 넘어간다는 표현이다.

"어텐션 플리이즈, 바우!" 아마도 중학교 들어가자마자 알파벳보다 먼저 배운 최초의 영어이리라. 영어수업 첫교시에 들어오신 영어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칠판에 영어로 크게 쓰신후 인사말로 가르친 것이 이 단어들이다. 처음으로 까까머리를 한 중학교 1학년들은 영어교과서 첫 페이지에 영어선생님의 이름과 "어텐션 플리이즈, 바우!"라고 크게 쓰고 있었으리라! 선생님의 지도아래 반장이나 영어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몇번을 반복했을 것이고 "바우"를 "바위"로 바꿔 읽으면서 꽤나 큭큭~ 되며 웃었으리라!

얼마정도의 시간이 지난후에는 작은 라디오 앞에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서쳐 필링 커밍 오버 미~"로 시작하는 카펜터즈의 노래를 몇번을 지웠다 고치며 연습장에 쓰고 있었으리라! 그것이 최초의 팝송이었고 의미도 모르는 노래를 콩글리쉬 발음으로 참 열심히도 따라 불렀으리라!

작가의 나이가 궁금하여 소개를 뒤져보니 형뻘이지만 비슷한 년배이다. 역시 비슷한 세대의 문화코드는 어디에나 존재하는가 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미네르바 2004-06-12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랬지요. '어텐션, 플리이즈, 바우'...
이 단어를 접하니 중학교 시절이 그리워지네요 ^^

Laika 2004-06-12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쳐 필링 커밍 오버 미~" 이런식으로 팝송 따라 부르던 기억이 ~~ 팝송은 중학교때 제일 많이 들은거 같아요..^^

잉크냄새 2004-06-12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히려 팝송보다는 "백마강 달밤에~ "로 시작하는 뽕짝으로 중학교 한시절을 풍미했습니다. ^^

stella.K 2004-06-1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저 인사 7월 5일부로 공식적으론 없어지고 학교 재량으로 맡긴다는 거 아시나요? 물론 "차렷. 경례"도 없어지구요. 그게 일본 제국주의식 교육 방식이라네요.
학교 때 그 인사 주도하던 반장이 저의 적수였다면 믿으시겠습니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