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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아이들 1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9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위대한 탄생
이야기에 풍덩 빠질 수가 없다. 1부 260쪽까지 읽는데 굉장한 인내가 필요하다. 주인공 살림 시나이 어머니 아미나만큼의 성실성과 인내가 지금 꼭 필요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파드마가 도망갈 때까지 앞으로 계속해서 읽을지 말지,아마도 읽게는 되겠지만 이야기가 좀 정리되었으면 좋겠다. 맥락은 나의 탄생을 향해 나아가는데 그의 위대한 탄생을 듣기 위해 자주 샛길로 빠지고 인물들이 두서없이 등장하며 소개되고 인도의 모든 시간 역시 그의 탄생을 향해 흘러간다. 그런데 맥이 빠지는 것은 이 위대한 탄생조차 기대와 달리 삐긋대어 혈연의 유유한 흐름을 한순간에 멈추게 하면서 진짜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작가의 의도가 의심스러워진다.
작가 김연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든 모르든 상관없다. 그저 좋아서 내일이란 없다는 듯이 게걸스럽게 문장들을 읽어가다가는 결국 , 아아 제발 이 이야기가 끝없이 계속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게 된다' 는 말로 책을 추천하였다. 그의 추천평이 소설을 읽으면서 멈출까를 망설이는 내게 계속 읽을 수 있도록 추진력이 되어 준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아리달송한 것과 수다스럽다 싶을 만큼의 산만함을 작가가 언급해 주었으니 소설이란 것이 끝없이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것과 그렇게 마지막까지 가 보면 소설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노란색과 흰색,초록색으로 이루어진 인도의 국기를 그려보면서 영국의 식민지 시절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종교적 정치적 갈등 상황들을 통해 인도를 이해하는 기회가 되는 소설이기는 하다. 인도는 우리에게 사쟈한의 '타지마할' 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강 '갠지즈' 정도로만 알려진 나라다. 새로운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는 즐거움은 있지만 어쩌면 기억하지 못할 길고긴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독자로서 듣는이로서 무력감에 젖어드는 지점이 있다. 이걸 이겨내 볼 일이다.
2. 살림의 성장과 인도의 역사
제1부의 고비를 넘기면 이야기의 형태와 살림의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살림은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어한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고 그래서 굉장히 말이 많아진다. 끝을 앞둔 자는 바쁘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샛강들이 서로 만나 큰강의 물결이 되듯 하나로 모여 출렁이며 흘러간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간간이 질문하며 추임새를 넣는 파드마라는 여인과 독자는 하나가 된다. 외할아버지의 길다란 코와 자신의 코를 연관시키는 노력이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나 이효석의 '메밀꽃필 무렵'처럼 핏줄의 연관성을 찾아 가족의 역사가 이어지듯 인도의 역사가 흘러나온다. '한밤의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물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존재하는 사랑과 자부심 가득한 살림의 성장과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이후 내분으로 인한 갈등과 전쟁, 인구 증가와 빈부갈등으로 인해 질곡에 빠진 인도의 역사가 맞물린다. 아담 아지즈가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돌아온 1915년부터 자신의 생이 다하는 1978년까지를 다룬다고 하는데 이 시기는 인도 역사상 가장 큰 격동기였다는 옮긴이의 해설도 도움이 된다.
아홉살 살림은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 생각을 읽고 그 사람이 되어 인도 곳곳을 관광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마치 선지자 마호메트가 천사로부터 성령을 받듯이 살림 역시 대천사의 부름을 받는다. 그의 마술적 능력이 실현되는 단계이다. 살림은 부모로부터 인정은 받지 못하지만 자신에게로 쏟아져 들어오는 세상의 모든 일들에 창조자가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출생의 비밀과 오이코로 나타난 자신의 능력이 사라지고 섬세한 후각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수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들은 역사를 관통하며 살아간다. 같은 시대에서 서로 다른 운명과 역할로 분열하고 살림은 역사의 주인을 자청한다. 인도 아대륙을 사랑하는 작가로서 분열로 치닫는 시대를 안타까워 하며 그것을 기록할 살림이라는 화자를 등장시켰다. 그는 과거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도록 피클로 만들어 저장한다. 기억해야만 새로운 약속을 할 수 있을 테니까. 한밤의 아이들. 시대의 주인이지만 시대의 제물이 되었던 한밤의 아이들은 또 태어나고 또 이어진다. 천 세대 그리고 또 한 세대 . 인도의 현대사는 우리의 현대사만큼이나 아픈 역사다. 너무 많은 희생과 갈등으로 살림의 뼈처럼 조각조각 균열되어 있다. 살림의 아들 아담 시나이의 귀~~ 아버지의 특이한 코보다 더 특이한 코끼리 귀~~ 그래도 다음 세대로의 희망은 듣는 귀, 신중한 입은 침착하게 때를 기다린다. 행동하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막는다. 아버지 세대보다 더욱 강하고 단호하게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기를.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통째로 삼켜야만 한다. 나는 나보다 앞서 일어났던 모든 일, 내가 겪고 보고 행한 모든 일, 그리고 내가 당한 모든 일의 총합이다.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써 나에게 영향을 주거나 나의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이고 사건이다. 나는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일어난 모든 일이며 내가 죽은 뒤에도 나 때문에 일어날 모든 일이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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