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이미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속에 준비해 둔 다섯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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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나이를 먹고 철이 들수록
아버지란 단어는 이 세상 가장 외로운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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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7-1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읽은 장영희 교수님의 책에서... 아버지의 고독과 죽음을 말하는 문학 작품으로... ..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을 이야기했었거든요... 어제까지 붙잡고 있었던 책이어선지...기억이 나요 ^^

stella.K 2005-07-18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네요. 잉크님도, 이카루님도.^^

진주 2005-07-1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분들이 다 모였네요^^(주제랑 상관없는 얘기)

잉크냄새 2005-07-19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님의 서재에서 장영희 교수님 책 리뷰를 보고 왔어요. 좋은 책 읽고 계시네요.
스텔라님 / 반겨주시니 감사합니다.
진주님 / 저도 반가워요.

비로그인 2005-07-1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참..아릿하네요. 돌아가신 아부지 휜 등도 생각나고.. 글고 저두 '반가운 분'들 속에 낑궈 주세요. 같이 놀아요!

파란여우 2005-07-19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늙은 아부지의 꾸부정한 뒷모습이 잊혀지지 않아요..
아, 이거 반갑다는 인사 모드인가요? 그럼, 방가방가...^^

Laika 2005-07-19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아부지!!
아부지한테 문자 한번 날려야겠네요...

내가없는 이 안 2005-07-20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님 뵈어요. ^^ 휴가 잘 보내시라고 제 서재에 답글 달았지만... 덕담은 여러 번 해도 입 닳지 않으니깐... 좋은 휴가시간 보내시라구요... ^^
그런데 이 시를 적으실 때 뭔가 쓸쓸한 일이 있으셨던 건 아닌지...

잉크냄새 2005-07-20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 그런 기억이 떠올랐군요. 글고 님도 반가운 분에 낑궈드렸으니 판 벌리고 놉시다.
여우님 / 님 서재의 아버지에 관한 페이퍼 내용이 잠시 생각납니다.
라이카님 / 아, 그러고보니 님 아버님의 문자 메세지 페이퍼 본지가 꽤나 된것 같네요.
이안님 / 오랫만이죠. 덕담은 아무리 들어도 귀도 닳지 않는답니다. ^^ 뭔가 쓸쓸한 일은 아니고... 일요일날 통화한 아버님의 목소리가 한동안 가슴에 남아있었던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