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3 - 인도차이나 남부아시아
한비야 지음 / 금토 / 1998년 7월
평점 :
품절


베낭 여행을 꿈꾸던 적이 있었다. 대학교 시절 머릿속에 수없이 그려보던 낯선 곳으로의 여행. 그곳에는 시베리아 대륙 횡단 열차가 있었고, 체코의 프라하 궁정과 봄이 있었고, 지중해의 에머랄드빛 하늘이 있었고, 선인장 하나 우뚝 솟은 미국의 낯선 도로가 있었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인도의 갠지스강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생활이라는 거인속으로 하나둘 그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언젠가는... 이라는 막연한 단어속으로 꿈은 그렇게 사라지고 있다.

여기 한 여성이 있다. 그녀의 어린시절속에는 세계지도를 펼치고 지구본을 돌리며 먼 미래의 여행을 꿈꾸던 소녀가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어느날, 현재의 생활을 벗어버리고 베낭 하나 달랑 메고 불쑥 세상의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시작한 중년의 여성이 있다. 한비야, 열혈여성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것 같다. 책속의 사진 곳곳에 드러나는 덩치 작은 그녀의 당당한 웃음 하나만으로도 이 어려운 여행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즐거워한 그녀를 느낄수가 있다.

이 글은 그녀의 기행문중 인도차이나 남부 아시아 지방의 오지를 여행한 기록이다. 내전의 아픔과 경제적 후진국의 외형적인 면이 먼저 떠오르는 그곳에서도 그녀는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아직 문명의 때를 겪지 않은 가장 인간적인 오지의 삶이라지만 그녀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없었다면 단순히 활자화된 인쇄로는 그런 오지의 인간적이고 따뜻한 삶을 표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연만큼만 사랑하고 인연따라 헤어진다" 는 말이 그녀의 여행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인것 같다. 오지의 삶속으로 아무 꺼리낌없이 스며들었다 어느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떠나는 그녀를 본다. 헤어짐에 대한 서글픔을 내재하는 강한 의지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나에게는 그런 만남과 헤어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나의 여행이 시작된다면 나의 여행은 그들의 곁을 스쳐지나가는 한줄기 바람으로 끝날 것이다. 결코 그들의 삶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할것이다.

이 책의 끝은 "설렌다"로 끝난다. 역시 그녀답다. 새로운 세계로의 발길. "여행은 떠남이 아니고 만남이다." 라는 그녀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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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03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떠나고 싶은 곳들, 손으로 하나둘씩 꼽았던 것이 세월따라 점점 그 마음이 잊혀지면서 '언젠가'로 미루며 조금 슬펐더랬죠. 잉크냄새님도 그러셨군요~ ^^ 인연만큼만 사랑하고 인연따라 헤어진다는 말, 조금 아쉬운 기분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녀의 발자취는 너무 부럽고 멋지네요~

waho 2004-05-03 0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비야씨 넘 멋지죠? 용기있고!
여행가고 싶다...!

icaru 2004-05-03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코 그들의 삶 속으로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참...여운이 있네요...
왠지...저는요... 낯선 여행지가 아닌...제가 몸담고 있는 이 곳에서도...삶 속에 들어오지 않은 것 같은...이방인의 심정이..들 때가...자주 있어서리...

잉크냄새 2004-05-03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둘 잊혀지더라도 다시 꿈꾸어야죠. 어차피 인생은 꿈꾸는 자들의 것일테니까요.
이방인의 심정. 어쩌면 저도 그런 이유로 여행이 낯선곳에 내리는 눈이나 부는 바람이어서 시간이 지나면 아무일 없다는 듯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것 같군요.

비로그인 2004-05-0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단순히 여행이라 보이지 않는, 아니 여행이라 지칭할 수밖엔 없지만 그것을 대신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쉼없는 발걸음, 발자취가 있어요.
이런 발걸음과 발자취를 여행으로 부르기엔, 그 말 속에 항상 붙어 다니는 센티멘탈리즘의 흔적이 맘에 걸리는가봐요.
여행이란 말보단 차라리, 남이 보기엔 고행같지만, 자신에게는 만행이었음을 보여주는 그런 여행도 많겠죠.
"인연만큼만 사랑하고 인연따라 헤어진다' ......
언젠가 님이 "어깨 한 번 툭~"이란 제 페이퍼에 남겨 주신 코멘트의 의미를 이제야 좀더 확실히 알 것 같네요. 그러기에 " 여행은 떠남이 아니고 만남이다." 라 했겠죠? ^^

프레이야 2004-05-1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비야의 세계여행기 4권 중 이 책 3권이 가장 감동적이었어요. 그녀는 모든 게 어쩜 그리 자연스럽고 허물없는지요. 오지 할머니의 딸이 기꺼이 되는 그녀에게선 모종의 바람이 느껴지지요. 시원하고 비릿한 들판의 냄새같은 걸까요. 잉크냄새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호밀밭 2004-05-12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좋은 글 잘 읽었어요. 마이리뷰 되신 것도 축하 드리고요.
이 책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언젠가는 읽어야지 계획만 세우고 있네요.
설렌다는 말이 마음에 울림이 있네요.

치유 2004-05-13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어쩌면 그렇게 어딜 가도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지..
참 부러운 사람입니다.."바람의 딸 우리당에 서다"를 보곤 홀딱 반해 버렸답니다..
여행은 참 좋은것 같아요..
마음털고 싶을때도.. 마음 쉬고 싶을때도... 배울게 많은 여행...나도 떠나고 싶어라....

잉크냄새 2004-05-15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비야의 여행은 자연스러움, 있는 그대로를 보는 시각으로 인해 그 진솔함이 더욱 배가되고 있는것 같아요.
또 다른 기행문인 신영복 교수의 <더불어 숲>은 어떤 감동으로 다가올까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