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 같은 책들은...

마음 먹기에 따라서 부자도 되고 날씬해지고 하루 48시간으로 효율적으로 살면서 많은 것을 성취하고 보람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거짓말 조금 보태 못할 일이 없을거라고..

얼마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다.

일도 무쟈게 열심히 하고...

먹는 것도 줄이고...

돈도 스쿠루지가 울고 갈 정도로 이것저것 사고픈 유혹을 잘 견뎌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일까?

지독한 몸살이다. 

몸살의 전주곡으로 컨디션과 기분이 너무너무 나빠져서 토욜날 애들델꼬 나가서 지갑 열어놓고 지름신을 온몸으로 영접했다. 모처럼 간만에 비싼 외식도 시켜주고...(하지만 맛이 더럽게 없더라...이미 입맛이 달아났으니) 옷도 내꺼 가족꺼 지르고...그동안 애들도 제대로 안먹이며 돈 아낀걸 보상하고자 식품 매장에서도 카트가 미어져라 장보고 카드를 벅벅 긋고 돌아왔다.

그리고나서 일요일날은 몸이 너무 아파서 애들과 남편만 내보내고 집에서 끙끙 앓았다.

그리고 주말 내내 엄청 먹어댔다. 그동안 안먹어서 허해서 병이난게야...먹고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데...머 그런 심정으로...

지금도 점심 잔뜩 먹고 허쉬 아몬드 초콜렛 커다란거 하나를 혼자서 다 처먹으며 이걸 쓰고 있다.

차.라.리. 아무런 결심을 하지 말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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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1-14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절기마다 기침을 하면 시어머님이 그러시더군요.
"아가 뭐 먹고싶냐? 못 먹어서 기침난다." 어서 맛 난것 사 먹으라던...
고향이 이북이라 피난살이 할때 못 드셔서 한 이 맺혔다며 하시던 말씀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이네파벨 2005-11-14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따뜻하신 시어머님이시네요...

그나저나 아플때마다 첫째로 중요한건 건강, 둘째로 중요한 것도 건강, 셋째로 중요한 것도 건강...(나와 가족...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의 건강...건강..건강...)이라는걸 깨달아요.

정말 건강이 없으면 모든게 물거품이 되죠.

그동안 잠줄여 일하고 먹는거 줄여 다요트하고 운동도 안하고 그러느라...몸에 과부하가 걸렸었나봐요....아픈 동안 잠시 pamper myself하고...(먹고픈거나 마구 먹고..) 다시 일어나면 매일 운동도 하고 먹는 것도 신경쓰고 그러려구요.

따개비님도 건강하세요!

2005-11-14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네파벨 2005-11-15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분, 따뜻하신 말씀 감사드립니다.
저도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그리운 시간들이 되겠죠...
말씀에 힘을 얻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이리스 2005-11-23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결심따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외쳤던 기억이 있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댓글 한자락 올리고 가요~
힘내세요! *^^*

이네파벨 2005-11-24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낡은구두님 감사합니다!
감기 떨쳐냈어요. 이제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뎅....게름피고 있네요.
시지프스처럼...다시 바위를 밀어올려야겠죠. 또 굴러 떨어지더라도 말예요.
추운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바닷가의 별장, 펜션 비슷한 분위기의 집이었다.
아마도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놀러갔던 것 같은 분위기이다.
발코니에서 보면 마치 바다에 홀로 떠있는 섬처럼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또 반대쪽 현관을 나서면 푸르스름한 안개가 자욱한 나무가 우거진 깊은 숲을 마주하게 되는 자못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아름다운 집이었다.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데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더니....
바닷물이 거대한 파도로 변해서 솟구치더니 어느 쪽으론가 빨려가듯 이동해버렸다. 일종의 용오름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물기둥을 형성하면서 쭉 빨려올라간 것은 아니고 바다의 거대한 한 구획의 물이 철~썩 하고 일어나 다른 구획으로 옮겨가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 광경은 용오름 이상으로 신비스럽고 멋진 장관이었다.

엄청난 덩어리의 물이 사라지고 난 구획에는 여기저기 작은 물웅덩이만 남아있었다.
물웅덩이에 검은 잉어같이 보이는 커다란 물고기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그 물고기 중 일부가 물 밖으로 튀어나와 모래에서 딩굴더니 그만 거대한 바다사자 비슷한 동물로 변신했다. 곧 물이 빠진 모래사장에는 바다사자 같은 동물들이 잔뜩 뛰어 놀게 되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몇 명의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바다사자들을 잡기 시작했다. 내 눈앞에서 어떤 사람이 식칼같은 걸로 바다사자의 뒷통수를 재빨리 찔러서 죽이더니 끌고 갔다. 나는 육중하고 천진난만한 동물들의 행복한 놀이터가 피튀기는 살육의 현장으로 급변하는 광경에 경악해서 벌벌 떨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남편에게 뭐라뭐라 말을 한 것 같기도 한데 이 부분의 기억은 벌써 흐릿해졌다.) 환경보호기관같은데 전화를 해서 저 불법적 도살을 신고해야 하는데...고립된 섬 같은 집에서 내가 신고하면 뻔히 누가 했는지 알 것이고 그럼 저 식칼 든 살육자들이 나에게 해꼬지를 할 것 같아서 겁이 났다.

그 집은 꿈의 앞부분에서는 작은 별장같은 분위기였는데 어느덧 제법 커다란 호텔 내지는 콘도 같은걸로 뒤바뀌어 있었다. 건물 안을 이리저리 헤매는데 조금 아까 바닷가에서 잡았던 바다사자의 고기를 매대같은데 놓고 무게를 달아 팔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더 이상 끔찍하거나 비도덕적이라거나 바다사자가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그저.....고기 덩어리같이 느껴졌다. (먹고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 * *


구성 자체는 단순하고 별 얘기거리랄 것도 없는 꿈이다. 달콤한 사랑 얘기도 아니고 그리운 사람이 등장하거나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가 펼쳐지는 드라마도 아니고....

하지만 이 꿈이 마음에 남은 것은 꿈속의 감각적(특히 시각적) 경험이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이다. 잔잔하던 바닷물이 거대한 파도로 돌변해 순식간에 이동해버리던 그 광경....
꿈틀거리던 물고기가 점점 커져서 바다사자로 변신하던 광경....
눈앞에서 벌어지던 살육의 공포...

그리고 뭣보다 중요한건 꿈이 한참 진행되던 순간에 모기 한 마리가 귓가에서 윙윙대서 잠에서 깬 바람에 꿈의 한 토막이나마 온전히 기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요즘은 통 꿈을 꾸지 않는다. 꿈을 안 꾸는게 아니라....꿈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아마 수면 습관이 너무나 규칙적이어서...잠이라는 검고 어두운 포장지에 완벽하게 밀봉되어 꿈이 조금도 새나올 여지가 없는 듯 하다. 좀 더 어릴 때....학창시절 시험 때라든가 새벽에 억지로 깨곤 했을 때 유난히 꿈을 잘 기억하곤 했다. 한 동안 일기장에 꿈 일지를 적기도 했다. 남루하고 지루한 현실보다 꿈의 잡힐 듯 말 듯한 기억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다. 꿈을 꾸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꿈은 나의 삶에서 만나온 수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독특하게 나를 매료시키는 대상이다. 이 나이를 먹어서 뭐가 되고 싶다는 꿈 같은건(음..잘 때 꾸는 꿈 말고 장래희망의 그 꿈..ㅡ,.ㅡ) 더 이상 꾸지 않지만 뭐가 못되어서 안타깝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생각들도 차례로 다 접어버리고 휘발되어 버려 없지만...
유일하게 지금도 뼈저리게 부럽고 한이 남을 정도로 해보고픈게 있다면....꿈을 연구하는 일이다. 대리만족으로 일평생 꿈을 연구하고 그 분야에 일가를 쌓은 과학자의 책을 하나 번역할 귀중한 기회를 얻기는 했지만...그 책은 여전히 나에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갈증과 동경만 부풀려주었다.

왜???? 그토록 꿈이 나를 매료하는지에 대해서는 기회가 있으면 나름대로 분석하고 해명해보겠다...하지만 나중에.....

꿈에 천착했던 사람들... 화가든(달리! 이 글의 제목도 물론 그의 작품에서 따온 것이다...), 작가든, 과학자든...에게 특별한 애정과 관심과 공감을 느끼곤 하지만 프로이트는 예외이다. 그의 꿈 해석은 너무나 사변적이고 근거없음에도 너무나 독단적이고 심한 영향력을 행사해서....거의 적대감마저 느끼게 된다. 그라면 나의 꿈에 나오는 한 줌도 안되는 대상 속에서도 뭔가 망측한 상징들을 찾아내겠지만 (이 경우 너무나 obvious해서 세살 먹은 꼬마도 프로이트가 뭔 해석을 할 지 눈치챌 수 있으리라...-세살은 뻥이고 열세살이면 충분 -)

꿈의 소재는 아마 최근 기억에서 빌어온 듯 하다. 일요일날 남당리에 대하 먹으러 갔었다.  그곳은 바닷물이 빠져나가 거무튀튀한 갯벌이 드러나 있었다. 사실 그 갯벌이 멋지다거나 별다른 감흥을 준 것은 아닌데........오히려 집에 올 때 차에서 아이들 보라고 틀어준 <리틀베어> DVD에 father bear가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기억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만화영화는 정말 아름답다. 서정적인 이야기와 차분한 그림-사실 그림은 모리스 샌닥의 펜으로 그린 흑백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조금 어색하게 컬러로 살려낸 느낌이 들지만 보다보면 점점 정이 든다. 너무 장점이 많아서 단점이 눈에 안들어오게 되는 케이스....그리고 배경 음악이 쥑인다.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되는 아름다운 곡........) 그리고...바다사자의 살육은...얼마전 번역한 책에서...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해 바다사자인지 그 비슷한 동물을 몽둥이로 때려죽인다는 대목을 읽고 충격을 받았는데...그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 아닐지....

그리고...바다사자를 죽이는 장면을 보고서는 충격과 경악을 느끼고는.......돌아서서 죽인 짐승의 고기를 파는 장면을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우리 삶의 한 단면을 마주한 느낌이 드는 그 아이러니...너무나 현실적인 인간조건의 상징이 아닌지....

내가 번역한 책 중에서 각별히 애정을 느끼는 앨런 홉슨의 <꿈>에 대해서도 기회가 있으면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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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ticket 2005-11-08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의미가 있을지도..

nemuko 2005-11-08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을 거 같아요. 전 꿈과 기억을 자주 혼동하는 편이거든요.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도 그게 꿈속에서 들었던 말인지, 혹은 어제 저녁 누군가가 내게 건넨 말인지 구분이 잘 안되요. 한때는 제가 꾸는 꿈을 매일 기록하던 꿈 노트도 썼었답니다^^
조만간 꼭 구해볼께요..

이네파벨 2005-11-09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님, 전 해몽을 안 믿지만...왜 그런 꿈을 꾸게 되었을까...생각하는건 언제나 재미있어요. 꿈의 실용적 측면(해몽, 예시 등등)보다...그냥 꿈을 꾸는 그 경험 자체가 놀랍고 신비스러워요...아...할 얘기가 많지만 정리가 잘...

네무코님, 꿈 일지를 적으셨다니! 동질감이 느껴지네요...
언제 기회 닿으면 도서관 같은데서 함 빌려 보세요. 사실 건조하고 학술적인 책이어서 꿈의 신비감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책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네무코님이라면...(과학책 즐겨 읽으신다는걸 눈치챘지용~) 아마 재밌게 읽으시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stella.K 2005-11-10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일지를 쓰시는군요. 저도 이걸 한번해 볼까 생각 중이었다는...전 요즘 잘 생긴 남자들이 저를 쫓아다니는 꿈 꿔요. 특히 다니엘 헤니가 꿈에 나타났다는...그런 꿈은 뭘까요? <죽은 자는 말이없다>를 쓴 작가는 30년 간을 계속 꿈일기를 썼다는데요.^^
 

지난주 곰국 끓여먹고 작은 냄비로 하나 정도 남은거...
아침에 애들이 안먹겠다고 해서...(질릴만도 하쥐 ㅡ,.ㅡ)
생각나면 끓여두었다가 낼 신김치 우려낸거라도 넣고 사골우거지국 끓여야쥐...생각했다가..

암튼간에 오전 내내 꿈지럭거리다가
12시 다 되어갈 무렵 전광석화처럼 밀린일(이불개기, 아침설겆이, 청소 등등) 해치우고 애들이랑 햄버거 사먹으러 나갔다.

설겆이 할 무렵에 곰국 냄비에 불을 올려 놓았다.

그리고 나서 길건너 Freshness Burger에서 햄버거랑 샌드위치랑 감자 튀김이랑 사이다를 셋이서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널려있는 잡지도 들춰보며 세월아 네월아 하다가...

애들 남긴거까지 마지막 한 조각을 입에 넣는 순간!

곰국 냄비가 떠오른거시였다......

나: "얘들아, 어떡하지? 엄마가 까스불 안끄고 나온거 같아.."
아이들: (합창) 어떻게~ 어떻게~
소민: "119에 신고해요."
수형: "우리집 다 타버리면 새 집을 사야겠네요? 어쩌죠? 돈이 많이 들텐데?"

그 때부터 집까지 1km 남짓 거리를...애들 끌고 전속력으로 뛰었다.
(아...뱃속에서 햄버거가 곤두선 느낌...ㅡ,.ㅡ)

소민이는 따라오기 힘들어 울먹울먹하다가...엘리베이터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얘들아, 너희는 집 안에 들어가지 말고 기다려. 유독가스가 있을지 모르니까."

하고서....

집 앞에서는 핸드백을 아무리 뒤져도 집 열쇠가 안보여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결국 청바지 주머니에 있었다. ㅡ,.ㅡ)

문을 연 순간!!!!

갑자기 드라마같은데에서 기억상실증 걸렸던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해내듯!!!
불현듯 기억의 한 조각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이런 기억이었다.

수형 "엄마, 이 냄새 뭐예요? 지독해~"
나 "어엉 곰국이야. 점심으로 곰국에 밥말아먹자." (-> 놀려주려고 한 말. 이미 햄버거 사준다는 미끼로 집 청소 다 부려먹어놓고...)
수형 "시러시러...난 곰국이 정말 싫어요. 햄버거 먹을래~"
나 "엄마가 뭐라그랬지? 아프리카엔 먹을게 없어 굶어죽는 아이들도 많다고 뭐든 감사히 먹으랬지?"

대충 이런 대화를 나누며 까스렌지 불을 끄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굳이 부엌으로 가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까.스.불.을.껐.던.것.이.었.다.

아...........어떻게 그걸 까.....맣.....게.....잊어버릴 수 있지?

허탈....

허탈....

집이 홀랑 타버린거보다야 낫지만....

슬프다...

너....... 왜 이렇게 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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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0-29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문 안 잠근 것 같아서 2시간 거리를 돌아왔던 기억이... ㅠㅠ
물론 잘 잠겨 있더군용.

부리 2005-10-2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의 행동 중 패턴화가 되어버린 건 잘 기억나지 않는 법이지요. 현관을 나설 때 열쇠를 잠군 일도 비슷한 예입니다. 나가다가 현관문 잠궜나를 생각하면 불안해지는 건 그때문이구요, 그냥 잊어버리고 가던 길을 가는 게 현명한 길이지요^^ 물론 거리가 가깝다면 한번쯤 확인하는 것도 괜찮지만요. 근데 이 곰국은 현관문과는 또 다른 차원인 것 같습니다. 암튼 해피엔딩이라 다행이어요^^

이네파벨 2005-10-29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전 문 정도면...걍 무시해버릴수 있을만큼 대범한 성품인데...(쿨럭) 이번 건은 집을 태워먹을 초유의 사태인지라...정말 심장이 벌렁벌렁하더군요.
BTW, 제 서재를 찾아주셔서 감사드려요. ^_____^
부리님, 해피엔딩이어서 정말 다행이고 말고요~근데 엉덩이 춤이 너무너무 귀여워요.

딸기 2007-10-02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녁때 먹은 국 남은 것 냉장고에 넣어둔다고 해놓고 절대로 -_- 안 넣는 버릇이 있어요. 어제도 집에 가보니깐 아까운 오뎅국이 쉬어서... ㅠ.ㅠ
근데 저는 대개 늘 그렇기 때문에(비서를 두고 살아야 하는 체질 ㅋㅋ) 그냥 제가 절 이해하고 수용하며 살아요. 푸하하

이네파벨 2007-10-02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딸기님 저도 그건 전문이었죠~
그런데 애들 좀 크니까...
국이고 뭐고 남아나지가 않더군요.
육개장도 한 솥 끓여도 두끼면 다 없어지구요..
저번에는 카레(한번 끓여 며칠씩 두고먹는 대표식품) 5~6인분을 만들었는데 남편도 없이 애들 둘이랑 저랑 한 끼에 다 먹어버리고 퍽 당황스럽던 기억도...
큰 놈이 대식가인데다가
저 역시.....ㅡ,.ㅡ
 

그저께 오래오래 끌던 원고를 넘기고....

이 일이 늘어진 바람에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쉼표를 하나 찍어주었다. 나의 소박한 쉼표는 오래 전부터 노려왔던 DVD를 하나 빌려다보는 거였다.

 

그런데 소박하기는커녕 뜻밖에 멋진 파티에 초대되어 성대한 만찬을 맛본 기분이다.


케빈 클라인과 애슐리 주드 주연의 콜 포터의 전기 영화이자 뮤지컬 영화, “De-lovely".....


콜 포터는 20세기 전반 뮤지컬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전설적인 송 라이터로 그가 만든 주옥같은 노래들은 재즈 뮤지션들이 끊임없이 연주하고 재해석하고, 영화나 광고에 사용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영화는 이 위대한 예술가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가 남긴 노래들을 가지고 그의 삶을 한편의 멋진 “쇼”로 빚어냈다.


콜 포터는 부유한 출생에 좋은 교육을 받고 그의 문학적, 음악적 재능이 활짝 꽃 피울 수 있는 시대와 환경을 만나서 평생 나름대로 화려하고 성공적인 삶을 산 인물이다. 여러 남자들과 연애를 즐기면서 동시에 아름답고 부유하고 착하기까지 한 아내를 곁에 두었다. 영화에서 뉴욕, 베니스, 파리, 헐리우드를 배경으로 펼쳐진 주인공들의 삶이 그림같이 아름다운 화면에 펼쳐진다. 화려한 파티와 극장, 기품 있고 럭셔리한 의상과 그레잇 갯츠비에 나올법한 20년대 특유의 여성들의 공들인 헤어스타일, 멋진 대저택과 정원들....은 그 시절의 상류층의 삶에 대한 눈요기를 제공한다. 주인공들의 사랑도 나름대로 감동적이고 남편의 남성편력(콜은 동성애자였다.)까지 참아낸 린다의 헌신적 애정은 여러 생각 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생각 거리 중 가장 시시껄렁한거 하나. 남편이 여성편력을 벌였어도 그만큼 참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그의 노래들이다. 뭐니뭐니해도 De-lovely는 콜 포터의 노래에 대한, 노래를 위한, 노래에 의한 영화이다. 어쩌면 비디오판 콜 포터 songbook, 콜 포터 히트곡 메들리 뮤직비디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맨 처음....연출자로 분한 조나단 프라이스가 노인이 된 콜 포터에게 나타나 그의 삶과 사랑을 무대에 올리겠노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브로드웨이 극장처럼 꾸며진 무대에 콜의 인생의 주요 인물들...친구들과 그들의 가족과 아이들, 브로드웨이 제작자, 헐리웃 제작자 등 사업 동반자 등등이 차례로 등장해 흥겨운 <Anything goes>를 부른다. 그 다음 파티에서 콜과 린다가 처음 만나는 장면. 콜은 친구인 제럴드와 피아노로 반주를 넣으면서 일종의 운율 맞춘 즉흥시(?) 짓기 경연을 벌이는데 기발함과 순발력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 다음 콜과 린다의 결혼식 장면, 여기서 로비 윌리엄스가 <De-lovely>를 부른다. 커플은 베니스로 떠나 그 곳에서 한 동안 생활하는데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What is this thing called love>가 깔린다. 어빙 벌린의 소개로 뉴욕에서 뮤지컬 송라이터로 자리를 잡아가며 성공 가도를 달리는 콜 포터. <Let's fall in love>가 앨리너스 모리세티의 목소리로 연주된다. 그 다음 뮤지컬 공연 연습 장면에서 남자 배우가 <Night and Day>가 너무 부르기 어렵다고 투덜대나 콜은 배우를 설득시켜 성공적인 공연으로 이끈다. 그리고.....이 과정에서 그 남자배우와 사랑에 빠진다. 상처받는 린다....이때부터 둘의 결혼에 조금씩 균열과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Begin the Beguine>의 연주....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불행하기 때문이라고...쿤데라가 말했지.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스위스로 떠나자고 토머스를 종용하는 테레사처럼 뉴욕을 떠나자고 재촉하는 린다의 소원대로 둘은 헐리웃으로 건너간다. 쉽고, 대중적이고, 말랑말랑한 노래를 원하는 헐리웃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예술세계를 compromise하는 콜의 심정을 <Be a clown>으로 유쾌하게 드러낸다. 헐리웃에서 성공을 거두지만(여기서 <I love you>) 그는 더욱 방탕해지고 동성애 스캔들에 휩싸이고 린다는 점점 불행해진다. 갈등의 시절에 깔린 <One of those things>, <Love for sale>. 린다는 결국 그를 떠나 파리로 가지만 얼마 후 콜이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못쓰게 되자 다시 돌아와 헌신적으로 콜을 보살핀다. 린다의 노력에 힘입어 콜은 자신의 불행을 극복해내고 새로운 작품을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리지만 한편 린다는 폐암으로 죽어간다. 그 때 깔리는 <So in love>......무대에서 배우들이 부르는 듀엣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아내를 곁에 앉히고 피아노를 치며 콜이 불러주는 이 노래는 가슴을 파고들만큼 아름답고 절절하다. 린다가 죽고.....그 후 이런저런 장면에서 <I love Paris>, <Everytime we say goodbye>이 깔리고 마지막으로 그를 찾아온 친구들, 늘그막에 그를 보살펴준 남자 등을 모두 보내면서 <Get out of the town>을 부른다. 조나단 프라이스가 다시 등장해 마지막으로 등장인물들을 모두 불러모아 흥겨운 노래와 춤을 선보인후....마지막으로 <In the still of the night>이 깔리며 젊은 시절의 콜과 린다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진다.....


물론! 한번 본 영화를 이렇게 세세히 기억하는 건 메모를 했기 때문이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꿈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적어놓듯, 이 영화도 그 장면 장면, 인상과 감동들을 오래 간직하려면....적어두어야할 듯 해서...곡과 장면을 짤막짤막하게 받아적었다. 극적 반전 따위는 전혀 없는 잘 알려진 인물의 실화를 그린 이야기이니만큼 스포일러라고 욕할 사람은 없겠쥐....


그의 노래들은 멜로디와 가사를 모두 음미해야 한다. 그의 가사는 풍부하고, 열정적이고, 기발하고, 독창적이고, 대담하고,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고, 신랄하고, 퇴폐적이고, 개성적이고, 굉장히 지적이다(내용이나 운율이나 그 풍부한 어휘나......누가 예일출신 아니랠까봐.....)! 그리고 물론........아름답다.


<Let's do it(Let's fall in love)>라든가 <Love for sale> 같은 노래의 가사는 정말이지 아슬아슬한 느낌마저도 든다. 기회가 된다면 번역해서 올려볼 생각...... 하지만 시가 그렇듯 아무리 애써도 허접한 번역이 될게 뻔하다.


따.라.서. 이 영화를 감상하는 요령은 고난도 리스닝이 가능한 분이 아니라면 영어자막을 켜놓고 보기를 권한다. (한글자막 절때 비추!)


DVD도 오리지널 사운드트랙도 모두 소장하고 싶다. 전기 영화이지만 (사실 콜 포터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인물이니만큼 노인인 콜에게 보여주는 뮤지컬 역 시 50년은 더 된 시대배경이어야 맞지만.) 곡의 해석은 다분히 현대적이다. 참여한 가수들도 수준급이다.


오늘 가져다주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싶건만...애들 땜에 가능할지 모르겠다. 특별히 야한 장면은 없지만...남자들끼리 부둥켜안고 뽀뽀하는 장면들이 나오면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 뻔한데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난감하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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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29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뮤지컬 영화중에 "오페라의유령"보고서 너무 좋았는데, 이것도 한번 빌려봐야 겠네요.
추천 꾸~욱

이네파벨 2005-10-29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개비님, 전 뮤지컬을 무지무지 좋아해서...
웬만한 뮤지컬 영화는 무조건 다 좋아해요.
(대사가 노래로 바뀌는 순간 짜증이 나면서 몰입이 안된다는 사람도 있지만...바로 제 엽지기...ㅡ,.ㅡ)
오페라의 유령도 너무 좋았죠?
아침에 얼핏 보니까 이번주말에 TV에서 해준다는거 같던데...

soyo12 2005-12-05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구입할까 말까 많이 망설이던 영화입니다.
조나단 프라이스가 나온다는 이유로 기다렸는대,
정말 우리 나라에서는 소리 소문 없더군요.
음 리스닝이 좋아야하는데. 걱정입니다.^.~

이네파벨 2005-12-05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요님~
찾아주셔서 반가와요.
음악....괜찮아요. 전 엘라 핏제럴드가 부른 콜 포터 songbook 앨범을 가지고 있는데 노래들은 대개 겹치지만...엘라의 연주는 좀 늘어지고 고리타분한 면이 없지 않아요. (엘라의 노래가 다 그런건 결코 아닌데...왜그런지 모르겠어요. 초창기의 레코딩인가???) 콜 포터의 노래들은 해석하기에 따라서...편곡하고 연주하기에 따라서...그 맛이 엄청 엄청 달라지더라구요.
이 영화의 레코딩은 괜찮아요. 말씀드렸듯 배경은 20세기 전반이지만 곡의 분위기와 연주는 상당히 현대적이고 세련되거든요. 전 언제 사운드트랙을 살까 생각하고 있어요....
 
 전출처 : 로쟈 > '세계의 지성' 톱10

어제 TV 등 언론에서는 노언 촘스키가 영미의 시사지들이 인터넷 투표를 통해서 선정한 '세계의 지성' 중 '최고의 지성인'으로 뽑혔다고 보도했다. 약 2만명이 참가한 투표에서 약 5000표를 획득, 2500표를 얻은 움베르토 에코를 더블 스코어로 따돌렸다고. 주로 영어권 네티즌이 참여한 것이므로 영미쪽 지식인들이 대거 선정된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프랑스쪽 지식인들은 톱10 안에 한 명도 들지 못했다). 어제 귀가길에 문화일보에서 이 '톱10'에 대한 기사를 읽었는데, '대중문화'의 산물이기도 한 이런 투표 자체에 별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동시대 지식인들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를 가늠하는 데는 유익한 지표인 듯싶어서 소개하고 몇 자 덧붙인다(내가 흥미를 느낀 건 생물학자들의 부상이었다).

1위 노엄 촘스키(미국). 직업은 언어학자로 돼 있지만, 정치비평가, 문명비평가 정도로 더 잘 알려져야 마땅한 사람이고, 주로 하는 일은 '미국 비판'이다. 네오콘 잡지의 한 편집장은 촘스키와 하워드 진을 가리켜 '정신나간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대중이 보기엔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물론 비판의 테마와 강도와 타이밍도 중요하지만, 촘스키의 인지도가 높은 것은, 내가 보기에, 가장 쉽게 글을 쓰기 때문이다(그의 언어학 책이 쉽다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그가 프랑스의 현학적인 지식인들에 대해서 못마땅해 한 것은 당연한다(푸코 등을 읽다가 좌절한 사람들에게 촘스키는 희망이다). 대중들이 읽을 글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 쓰라는 것. 그가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으로 꼽힌 만큼 그의 '전략'은 유효해 보인다.   

 

 

 

 

촘스키의 책들은 국내에 '너무 많이' 소개돼 있다(국내엔 촘스키의 제자들도 여럿 된다). 수준 이하의 번역들도 많다고 하지만, '어렵지 않은' 책들이기 때문인 듯. 그의 전기로는 <촘스키, 끝없는 도전>(그린비, 1999)와 <촘스키>(시공사, 1999)가 같은 해에 나왔다(나는 전자를 읽고 후자를 사두었다). 바쁘신 분들은 <30분에 읽는 촘스키>(랜덤하우스중앙, 2004) 정도를 읽어주시면 되겠다. 책의 역자이자 전문번역가인 강주헌씨는 요즘 부쩍 촘스키에 빠져 있는 듯한데, 가장 최근에 나온 촘스키 책도 그가 번역한 <지식인의 책무>(황소걸음, 2005)이다. 물론 책은 제목에서부터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한마당, 1999)를 떠올리게 한다. 대중적 인지도에다 사회적 책무에 대한 강조에 있어서 촘스키는 우리 시대의, 미패권주의 시대의 '사르트르'이다(사르트르적 의미의 지식인이란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을 뜻한다).

2위 움베르토 에코(이탈리아). 직업은 문학비평가로 돼 있지만, 기본적으론 기호학자이고 게다가 소설가이다. 아마 러시아에서 이런 류의 투표를 했다면, 촘스키를 거뜬히 따돌렸을지도 모른다. 정치비평서들이 일부 '전문서'로 소개돼 있는 촘스키와는 달리 에코의 경우는 소설과 문학비평서, 중세미학연구서 등이 시리즈로 번역/소개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러시아보다 국내에 더 많은 '에코'가 나와 있다(그의 '조이스'론이 소개되지 않은 게 아쉽지만). 거의 '에코 천국'이라고 할 만큼.

 

 

 

 

국내의 에코 전문출판사로는 열린책들과 새물결을 들 수 있는데, <움베르토 에코 평전>(2004)는 열린책들에서 나왔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에코 붐'을 만들어낸 건 물론 그의 첫 소설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초판은 1986)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에코 자신이 쓴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열린책들)와 이윤기 선생의 번역을 교정해준 것으로 잘 알려진 강유원의 <장미의 이름 읽기>(미토, 2004)가 부수적인 참고문헌이 된다. 개정판도 갖고 있지만 내가 읽은 건 <장미의 이름> 초판이며, 작년에 러시아어본도 구해왔기 때문에 나중에 개정판으로 한번 더 읽어볼 생각인다(<푸코의 진자> <전날밤> <바우돌리노> 등의 다른 소설들은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언급만 하도록 한다). 모두가 알 만한 사실은 <장미의 이름>이 장 자크 아노에 의해서 영화화됐다는 것(숀 코너리와 크리스천 슬레이터 주연). 그리고 대부분이 모를 만한 사실은 <장미의 이름>이 다른 역자에 의해서도 번역됐었다는 것. <장미의 이름으로>(우신사, 1986). 프랑코 모레티의 표현을 빌면 번역 또한 '도살장'이어서 살아남는 번역은 몇 안된다. 

 

 

 

 

자신의 최초 전공이기도 했던 중세미학에 관한 책으론 <중세의 미와 예술>(열린책들, 1998), 기호학자로서 명망을 얻은 책으로 <기호학과 현대예술>(열린책들, 1998)이 국내엔 소개돼 있다(<기호학과 현대예술>은 불어본의 번역이고, 영어본 번역은 <기호학이론>(문학과지성사)이다. 이 국역본보다는 영어본이 훨씬 읽기 쉽다). 기호학자로서의 출세작 <기호학 이론>의 속편에 해당하는 <칸트와 오리너구리>(열린책들, 2005)에 대해서는 한번 소개한바 있으므로 생략하고, 대신에 추천할 만한 것은 에코가 공저한 <논리와 추리의 기호학>(인간사랑, 1994). 역자가 에코의 제자이다. 에코 기호학에 관한 국내 연구서로는 박상진 교수의 <에코 기호학 비판>(열린책들, 2003)이 유일하지 않나 싶고,  김성도 교수의 <하이퍼미디어 시대의 인문학>(생각의나무, 2003)에는 에코와의 대담이 실려 있다. 좀 특이한 책으론 에코의 축구광적인 면모를 기호학과 엮은 <움베르토 에코와 축구>(이제이북스, 2003)가 있다.

 

 

 

 

에코는 잡지에 기고하는 짤막한 에세이로도 유명한데, 국내엔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열린책들, 1995)으로 또 흥행몰이를 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열린책들, 1999)은 그 책의 개정증보판이다. 이후에도 물론 열린책들에서는 그의 에세이집들을 꾸준히 내고 있으나 내가 사거나 읽지 않았으므로 언급을 자제하겠다. 에코의 에세이들에 비교적 일찍부터 눈길을 준 출판사가 새물결이고, <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1993)을 시작으로 댓 권을 연이어 출간했었다. 얼마전에 그 책들이 재출간됐다(일부는 독일어판의 번역이다). 이 정도면 에코는 촘스키 뺨치는 지성인이다.  

3위는 리처드 도킨스(영국). 아마도 우리 시대의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일 듯하지만, 도킨스가 그래도 3위에 오를 줄은 미처 몰랐다. 영국에서의 대중적 인기를 짐작하게 한다. 도킨스에 관해서는 여러 번 소개한 바 있지만, 이 자리에서 다시 간단하게 훑어보기로 한다.

 

 

 

 

국내에 제일 처음 소개된 도킨스의 책은 <이기적인 유전자>(두산동아, 1992)이고, 그의 책으로 내가 제일 처음 읽은 책이다. 물론 그때 도킨스란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막연하게 '이타적 행위'라는 게 모종의 심리적/도착적 만족감을 주는 '이기적 행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더랬는데, 늘 그렇듯이 서점을 두리번 거리던 차에 <이기적인 유전자>란 책이 눈에 띄었고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그리고는 '유레카!'(우리식 버전으론 '심봤다!') 이후에 원서의 개정판을 옮긴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1993)이 출간됐고, 절친한 친구는 나의 권유에 따라 그 책을 읽고서 '유레카!'를 복창했다(그는 한동안 나만큼 도킨스를 욹어먹고 다녔다). 지금의 <이기적 유전자>(2002)는 보다 세련된 장정을 하고 있는바(표지의 진화과정을 보여준다), 이름하여 '고전100선'이요, 대학생/청소년 필독서이다.    

 

 

 

 

이후 도킨스의 주저라고 할 만한 책으론 <눈먼시계공>(민음사, 1994)과 10년만에 재간된 <눈먼 시계공>(사이언스북스, 2004)이 있다. 작년에 나온 <확장된 표현형>(을유문화사)은 내가 원서까지 사둔 책이지만 아직 읽지 않았으므로 감동을 적기는 어렵지만, 하여간에 다른 책들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최신간인 <악마의 사도>는 이전에 소개한바 있듯이 주로 칼럼모음집인데, '인간' 도킨스의 체취를 가장 강하게 내뿜는다. 도킨스 다이제스트를 원하는 독자라면 <도킨스와 이기적 유전자>(이제이북스, 2002)를 보셔도 좋겠다(다이제스트라 감질이 나겠지만).

 

 

 

 

세계석학 30인과의 대담집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가야넷, 2000)에는 촘스키와 에코는 물론 도킨스와의 대담도 실려 있다(지젝도 들어가 있다!). 내가 감히 사두지 못한 <사이언스북>(사이언스북스, 2002)에도 도킨스는 (당연히)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내 기억에 존 브로크맨이 편집한 <제3의 문화>(대영사, 1996)에서도 도킨스를 읽을 수 있다. 그의 호적수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와의 비교는 <유전자와 생명의 역사>(몸과마음, 2002)를 참조할 수 있다.

4위 바츨라프 하벨(체코). 이 리스트에 들어 있는 유일한 동유럽 지식인. 직업은 극작가이자 정치인으로 돼 있는데, 대통령을 역임한바 있으니 저명한 인사이지만 국내에는 별로 연고가 없는 듯하다.

 

 

 

 

뒤져보면 하벨의 책으론 <대통령의 꿈>(들꽃세상, 1992)이 처음 소개됐었고, '하벨 대통령의 자유를 위한 투쟁과 사상'이란 부제의 <프라하의 여름>(고려원, 1994)과 드라마 <청중>(예니, 2000)이 소개돼 있는 정도. 동구권 희곡모음집인 <탱고 外>(현대미학사, 1994)에도 <도시 재개발 계획>이라는 하벨의 작품이 들어가 있긴 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지역적 편향성 때문에 러시아/동구권 지식인들에 대한 소개/이해는 턱없이 부족한 편. 멋쩍은 김에 하벨의 나라 체코에 대한 안내서 두 권 정도만을 적어두기로 하자. 체코 문학 전공자인 김규진 교수의 <체코 문화>(한국외대출판부, 2000), 그리고 체코 여행 가이드북 <체코>(휘슬러, 2005).

5위 크리스토퍼 히친스(영국). 직업은 정치평론가라고 돼 있는데, 톱10의 지식인들 중에서 유일하게 생소한 인물이다. 나의 견문이 짧은 것인가 하고 검색해 보았더니, 국내에 소개된 건 <키신저재판>(아침이슬, 2001) 달랑 한 권이다. 하면, 나의 '무식'을 탓할 수는 없는 것. 도서관에서 다른 책들을 검색해 보니까 <선교사의 입장: 마더 테레사의 이데올로기>(1995)란 책이 있고, 에드워드 사이드와 공저한 <희생자를 탓하기: 사이비 학문과 팔레스타인문제>(1988), 아담 바르토스란 이와 공저한 <국제 영토: UN, 1945-95>(1994) 등의 저작을 갖고 있다. 아마도 영국의 영향력 있는 정치평론가인 모양(우리의 경우라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  

 

 

 

 

6위 폴 크루그먼(미국). 내가 이름을 아는 몇 안되는 현역 경제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최근엔 反부시 진영의 대표적인 논객이며(뉴욕타임즈에 칼럼을 쓴다) 해마다 노벨경제학상 후보에 오르고 있다고. 촘스키와 함께 MIT에 몸담고 있고, 1953년생이니까 나이도 비교적 젊다.

 

 

 

 

그의 책으론 <경제학의 향연>(부키, 1997)이 유일하게 내가 갖고 있는 책이다. 그가 공저처럼 돼 있는 <복잡계 경제학2>(평범사, 1998)도 갖고 있었지만 지난번에 책정리를 하면서 <복잡계 경제학1>과 함께 쓰레기장으로 갔다. 아마도 그 책의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이 <자기 조직의 경제(Self-organizing Economy)>(부키, 2002)일 것이다. 제목만으로도 대충 내용을 짐작하게 하는데, '복잡계 경제학 개척자'로도 평가된다는 크루그먼은 이 책에서 "복잡계 경제학의 사고방식과 모델을 다"룬다고. "그는 '불안정으로부터의 질서(order from instability)'와 '불규칙한 성장으로부터의 질서(order from random growth)'라는 자기 조직화의 두 원리가 어떻게 도시의 형성과 기술 집중 및 경기 순환 등 제반의 경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자기조직계'에 대한 책들이 한동안 붐을 탄 적이 있는데,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카오스: 현대 과학의 대혁명>(동문사, 1993)이 발단이었다(물론 얀치의 <자기조직하는 우주> 같은 신과학 천문학서도 있었다). 이어서 <복잡성 과학이란 무엇인가>(까치, 1997) 등이 나왔고, <복잡계란 무엇인가>, <왜 복잡계 경제학인가> 같은 일본서들이 번역/소개됐다. '복잡계 경제학'에서 크루그먼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이름은 '수확체증의 법칙'을 주창했던 브라이언 아서인데, 크루그먼은 이를 더 발전시킨 공로가 있는 듯. 이 '자기조직화'는 문학/예술에서도 많이 나오는 테마이며, 들뢰즈를 읽다가도 종종 마주치는 용어이다. 그러니 나중에 좀더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하는 크루그먼의 나머지 책들이다. 

 

 

 

 

7위는 위르겐 하버마스(독일). 작년 10월에 데리다가 타계하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하버마스와 함께 이 명단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연로한 세계철학계의 원로이지만 하버마스는 언제나 '막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막내였으며(물론 그의 제자들이 2세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1세대 학자들의 파워와 명망에 미치지 못한다) 20세기 독일철학의 막내이다.

 

 

 

 

독일 관념론의 적자를 자처하는 독일의 '괴물' 철학자 비토리오 회슬레(<객관적 관념론과 그 근거짓기>(에코리브르)가 지난 여름에 출간됐었다. 회슬레는 방한강연을 가진바 있으며 그때의 인연으로 한국여성과 결혼했다)가 꼽은바, (거명 당시에 생존하고 있던) 20세기 최고의 독일 철학자는 바이스체커, 가다머, 칼-오토 아펠, 하버마스 4인이었다(거기서도 하버마스는 가장 '젊은' 철학자였다).

 

 

 

 

하버마스의 책들은 국내에 '충분히' 번역/소개돼 있다. 물론 질과는 무관하게. 예컨대, 그의 명성을 널리 알린 <인식과 관심>(고려원, 1996)은 오역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책이며, 따라서 '대중들'은 읽을 수 없는 책이다. 프랑스의 난다긴다하는 철학자들을 '신보수주의' 철학자로 몰아세우며 그의 '거장적' 면모를 부각시킨 책이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문예출판사, 1994)이다(이 또한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들이 있다). 기억에 그의 교수자격취득논문인 <공론장의 구조변동>(나남, 2001)부터 <소통행위이론1>(의암, 1995, 이건 2권이 아직 번역되지 않은 대표적인 '부실'번역 사례이다)를 거쳐서 <사실성과 타당성>(나남, 2000)에 이르는 주저들은 대부분 국역본을 갖고 있다. 작년만 하더라도 <의사소통의 철학>(민음사)와 대담 <테러시대의 철학>(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하버마스에 대한 국내 연구만 해도 (상대적으로) 차고 넘친다. 그래서?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8위 아마티아 센(인도). 경제학자. 인도 출신으로 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센의 책들은 수상에 힘입어 바로 출간된 바 있다. <불평등의 재검토>(한울, 1999), <윤리학과 경제학>(한울, 1999)이 그것이다. '경제학의 테레사 수녀'라고도 불린다니까 그걸로도 그의 학문적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그런데도 케임브리지대의 교수이다!).

 


 

 

 

센의 신간은 <자유로서의 발전>(세종연구원, 2001)이며, 소개에 따르면 "아마티아 센은 이 책에서 개인을 단순히 분배된 혜택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하는 능동적인 행위자로 보고 논의를 진행한다. 그리고 국가, 시장, 법 체계, 정당, 언론, 이익단체 등을 포함하는 일련의 사회적 장치들이 개인의 실질적인 자유를 충족시키고 보장하는 데 얼마나 공헌하는가 하는 일관된 관점으로 중국과 인도, 유럽과 미국 등 세계의 다양한 나라들을 검토한다. 이 책은 개인의 자유 속에 정치 참여와 경제 발전 그리고 사회진보의 능력이 어떻게 놓여 있는가라는 물음에 지표를 제시하며, 발전에 대한 보다 넓은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알려진 바이지만, <국부론>의 저자이자 동시에 <도덕감정론>의 저자인 아담 스미스는 도덕철학 교수였으며, 경제학의 두 축은 윤리학과 경제(공)학이다. 센은 거기서 잊혀지거나 간과되고 있는 윤리학의 전통을 경제학에서 다시 되살리고자 애쓰고 있는 것. 이를 테면 '아담 스미스 구하기'이다. 그리고 그게 '나라 구하기'이다, 경제기술자들아! 

9위는 역시나 도킨스의 경우처럼 나를 놀라게 했는데, 미국의 생물/지리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이다. 사실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지만 다이아몬드가 대중적인 인기만큼이나 지식인으로서 대우받는다는 사실 자체는 흥미롭다. 다이아몬드에 대해서는 여러 번 언급한 바 있기 때문에 군말을 덧붙이지 않겠다. 요컨대, '다이아몬드의 모든 책'이며, 그의 최신간 <붕괴: 어떻게 한 나라가 망하는가>가 빠른 시일 안에 번역되기를 기대한다.

 

 

 

 

10위는 인도 출신의 소설가 살만 루시디. 문제작 <악마의 시>로 1989년 이란정부(호메이니)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더욱 유명해진 작가. 그런 연유로 노벨상을 타기는 힘들겠지만(이번에 터기 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는 파묵이 논란 끝에 수상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전해지지만), 아마도 루시디는 노벨상 수상작가보다 더 유명한 작가일 것이다(루시디의 문학에 대해서는 언젠가 박노자가 한 칼럼에서 비판적인 의견을 제기한바 있다). 그의 작품으론 <악마의 시>(문학세계사, 2001), <무어의 마지막 한숨>(문학세계사, 1996)가 번역돼 있고 <하룬과 이야기바다>(달리, 2005)도 올해 나왔다. 좀 오래된 번역으론 <한밤의 아이들>(하서출판사, 1989)과 <악마의 수치>(청림출판, 1989) 등이 있다.

 

 

 

 

05. 10. 18.

P.S. 이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7위,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가 19위에 올라 있다고. 울포위츠를 선정 리스트에 올린 시사'잡지'들의 양식이 좀 의심스럽긴 하다(하긴 '은행' 눈치도 봐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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