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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평점 :
지난 학기 '국문학의 이해' 시간에 교수가 몇 번이나 언급해서 한번 읽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동안 번번이 대출중이라서 못 읽고 있었는데, 이제야 서가에 꽂혀있길래 잽싸게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지은이는 이미 몇 권의 책으로 접해본 정민 선생님(교수님이라고 해야되나?)이시다. 책의 제목처럼 이 책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미쳐서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국문학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연암 박지원을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생각하고 있던 차였는데, 이 책에서도 연암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나왔다. 연암을 비롯하여 다산 정약용, 홍대용, 허균, 박제가 등 이름을 들어봄직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노긍, 김영 등 그동안 알지 못하였던 사람들도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크게 벽에 들린 사람들, 맛난 만남, 일상 속의 깨달음 이렇게 세개의 주제로 나뉜다. 벽에 들린 사람들에서는 그야말로 미쳐야 미친다라는 제목에 걸맞는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다. 능력은 뛰어났지만, 그로 인해 주위의 시샘을 받아 제대로 벼슬을 할 수 없었고 결국 빈곤 속에서 죽었던 김영이라던지, 머리는 좋지 않으나 꾸준히 노력하여(만번 이하로 읽은 책은 아예 꼽지도 않고, 만 번 이상 읽은 문장이 36편이었다고 한다.) 결국 뛰어난 시를 지을 수 있었던 김득신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놀랍기 그지없다. 그동안 어떤 일을 해나갈 때 나 자신의 능력이 모자란다고 포기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같은 문장을 만번 이상 익힌 김득신은 그런 나에게 노력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학문적으로 뛰어났으나 신분의 제한때문에 남의 답을 대필해주고 결국 귀양을 갔던 노긍의 모습에서는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능력은 뛰어나나 결국 벼슬에 오르지 못하고 귀양을 갔던 그. 얼마나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웠을까. 두번째 주제인 맛난 만남에서는 조선시대의 지식인들 사이의 우정과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 그리고 가족애 등이 나온다. 그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연암 박지원에 관한 일화였다. 연암이 박제가에게 돈을 꿔달라는 편지는 그야말로 이 책의 백미였다. 연암이 보내는 편지나 박제가가 보내는 답장. 그 둘의 내용 속에는 절대 '돈'이라는 단어는 언급되지 않는다. 가장 덜 우회적인 단어가 '공방'쯤 되니 뭐. 얼핏 봐서는 돈을 꿔달라는 말로 절대 안보이는 그 편지가 몇 번 곱씹어보면 돈을 빌려달라는 식이다. 짧은 편지(척독이라 일컫는다)속에 함축된 이야기들은 절제되어 있고, 옛 고사를 인용하여 생각의 여지를 남겨 놓는다. 돈을 빌려달라는 편지도 하나의 작품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마지막 주제인 일상 속의 깨달음에서도 연암, 다산 등의 인물들의 사상이 잘 나타난다.
책을 읽고 나서 몇 백년 전의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현재의 삶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의 능력, 신분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학문을 계속했던 사람들의 모습이나 다양한 형태의 인간관계속에 피어난 정이나 일상 속에의 깨달음은 몇 백년 전의 것이 아닌. 현재에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옛 것을 안다는 것은 현재를 아는데 큰 도움을 주는 것 같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더불어 사족을 붙이자면, 연암은 갈수록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생긴건 영 무섭게 생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