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 하이웨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1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8월
구판절판


다른 사람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어제의 나 자신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하루하루 세계에 대해 배워나가면 나는 어제보다 조금씩 훌륭해진다.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는 아직 긴 시간이 남아 있다. 오늘 계산해보니 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3000하고도 888일이 남아 있다. 그러면 나는 3000하고도 888일을 나날이 훌륭해지는 거다. 그날이 왔을 때 내가 얼마나 훌륭해져 있을지는 짐작도 못 하겠다. 너무 훌륭해져서 큰일이 나는 건 아닐까. 모두들 깜짝 놀랄 거다. 결혼해달라는 여자도 많겠지. 하지만 나는 벌써 상대를 정해놓았기 때문에 결혼해줄 수 없다.
미안하긴 하지만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 -9~10쪽

내가 치과에 다니는 이유는 내 뇌가 무척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나의 뇌는 에너지를 많이 쓴다. 뇌의 에너지원은 당분이다. 집에서 먹는 간식만으로는 내 뇌가 필요로 하는 당분을 감당할 수 없어서 나는 내 예산에 간식비를 두고 독자적으로 에너지를 비축한다. 그러다 보니 그만 단 과자를 많이 먹게 된다. 그렇다면 자기 전에 이라도 제대로 닦으면 좋으련만, 낮 동안 뇌를 많이 쓰는 바람에 밤이 되면 칫솔을 들지도 못할 정도로 졸려서 뭐가 뭔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를 닦을 틈이 없다. 아침에 이를 닦는 것만으로는 충치를 예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나 자신을 통해 분명하게 증명했다. -21쪽

젖가슴은 수수께끼야, 하고 나는 요즘 끊임없이 생각한다. 내가 자주 떠올리는 건 누나의 가슴이다. 왜 누나의 가슴은 엄마의 가슴과 다르지? 물체로 치자면 같은 건데 내가 받는 인상은 왜 이렇게 다른 걸까. 엄마의 가슴을 문득 바라보는 일은 없는데 누나의 가슴은 나도 모르게 자꾸 바라보게 된다.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만져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 기분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게 나를 관찰한다는 걸까?-39~40쪽

아버지의 3원칙에 대하여.
아버지는 나에게 문제 푸는 법을 가르쳐줄 때 세 가지 도움이 되는 생각을 가르쳐줬다. 나는 그것들을 노트 표지 뒷면에 써서 언제라도 볼 수 있게 해놓았다. 그건 수학 같은 문제를 풀 때 도움이 된다.
△ 문제를 작은 문제들로 쪼갠다.
△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 닮은 문제를 찾는다.
나는 펭귄 하이웨이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나'와 '펭귄'이다. 나는 누나를 좋아해서 누나를 연구하는 것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막혀버린 거다. 관점을 바꾸면 이 수수께끼는 펭귄들의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펭귄에 대해 좀 더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닮은 문제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건 매우 보기 드문 문제다. 닮은 문제가 있기나 할까. -84~5쪽

낮에 자는 사람은 외로워 보인다. 누나가 밤에 잠들 수 없다니 참 안됐다. 나는 밤이 되면 견딜 수 없이 잠이 쏟아지는 게 종종 슬프다. 이 어찌할 수 없는 졸음을 다른 사람에게 수출하는 시스템을 미항공우주국이 개발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평소에 늘 한다. '졸음 이동 시스템'이 있으면 누나는 내 졸음을 써서 밤에 잠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밤늦게까지 연구를 해서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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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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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인간세계에 눈을 돌리면 인재가 마치 분수처럼 한 시대에 한꺼번에 배출되는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역시 분수처럼 많은 물을 기세 좋게 뿜어올리고는 소리 없이 떨어지며 인재 고갈의 시대로 접어든다.
이런 현상이 끼치는 영향이 국내에만 한정된다면 문제해결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전 시대에 축적해놓은 것을 갉아먹으며 차분히 앉아 다음 분수가 뿜어져오르기를 기다리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세계에서는 한 나라의 인재 배출과 인재 고갈의 순환이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시기에 일어나지는 않는다. 한쪽은 인재 고갈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다른 한쪽은 인재 배출의 시대를 맞이하는 일이 상당한 비율로 일어나는 것이 인간셰계이다. -46쪽

중근동의 십자군 국가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에데사 백작령, 안티오키아 공작령, 트리폴리 백작령, 예루살렘 왕령 네 국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를 적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을 맞닥뜨린 그리스도교도들은 신앙심이 깊은 사람일수록 더 강하게, 이제 신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 것인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이런 공포는 한 나라의 왕이든 일개 서민이든 다르지 않았다. -77쪽

종교인의 일반적인 설교 방식은 현세의 타락을 단죄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세상을 견뎌야 하는 것은 신이 우리의 불신에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속죄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설파한다.
그런 후에 비로소 에데사를 이교도 이슬람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리고, 에데사 함란 당시의 참상과 성지에 사는 그리스도교도의 불안과 공포를 이야기한다. 그러고 나서 최대한 목소리를 쥐어짜내어 외친다.
"이교도를 몰아내고 성스러운 땅을 그들의 손에서 해방하는 일이야말로 너희가 하려는 속죄에 대한 신의 보상이다."-89쪽

이슬람교도는 모든 악이 담긴 항아리다. 악마의 손으로 만들어진, 우리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악의 표본이다.
이자들에 대한 대책은 하나밖에 없다. 근절이 바로 그것이다.
죽여라! 죽여라! 그리고 혹시 필요할 때는 그들의 칼에 맞아 죽는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116쪽

그리스도교 일색인 유럽에서야 성 베르나르두스처럼, 이슬람교도는 적이니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니 죽여라, 고 절규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중근동에서는 성 베르나르두스의 칭찬을 받은 템플 기사단의 기사들조차 이렇게 중얼거렸는지도 모른다.
"죽여라, 죽여라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몸값을 내면 포로가 된 그리스도교도를 돌려보내주겠다는데야 돈으로 교섭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일용할 식량을 생산하는 경작지의 소유주가 우리라 해도 경작은 그 땅에 예전부터 살고 있는 이슬람교도 농민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으며, 소작료로 가져다주는 농작물을 받기 위해서라도 이교도와 일상다반사로 접촉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죽여라, 죽여라 한들……"-127쪽

가톨릭교회의 교황 이하 고위 성직자들도 이러한 변화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유럽의 유력자들은 자신들은 오리엔트 물산에 젖어 있으면서 오리엔트로 십자군을 파견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129쪽

21세기인 지금도 유럽에서 '비잔틴식'이라는 표현이 있다. 사소한 것에 집착한 나머지 대국(大局)을 잃는, 그때는 득을 본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비잔틴 제국의 황제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았다.-138쪽

인간의 야심이란 곧 무슨 일이든 하고 싶어하는 의욕이다. 한편 허영심은 타인에게 좋게 보이고 싶다는 바람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아마 세상을 버린 은둔자일 테니 여기서는 제외하고, 인간성이 풍부한 인가능로 이야기를 좁히기로 한다.

문제는 한 인간의 내부에서 야심과 허영심 중 어느 쪽이 더 큰가 하는 것인데,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인간이 좋은 기회를 얻었을 때 야심으로 움직이는가, 아니면 허영심으로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다.-145쪽

인간은 흥미를 가지고 하는 일은 잘되고, 관심이 별로 없는 일을 하면 잘 안 되는 경향이 있다. 잘되니까 관심이 더 많아지고, 잘되지 않으면 그에 비례해 관심도 희박해지는 식이다.-149쪽

네가 유복한 출신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네가 지력을 갖고 태어났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또한 네가 미모를 갖고 태어났다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그중 하나라도 원인이 되어 네가 오만하고 건방져진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왜냐하면 오만과, 오만의 표현인 건방짐은 너 한 사람만이 아니라 네가 관계하는 모든 사람을 해치고 더럽히며 비속화하기 때문이다. -172쪽

세상에는 다른 사람에게 권해야 할지 권하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일이 세 가지 있다. 첫째가 결혼, 둘째가 전쟁, 그리고 셋째는 성지순례다. -217쪽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성공한 지도자에게 필요한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역량(virtu), 행운(fortuna),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자질(necessita).

눈엣가시이던 인물이 적절한 시기에, 이쪽에서 손도 쓰지 않았는데 알아서 사라져주는 것만한 행운도 없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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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 대한민국 최초 법의학자 문국진이 들려주는 사건 현장과 진실 규명
문국진 지음, 강창래 인터뷰어 / 알마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한때 대학 도서관에서 000번부터 900번대까지 한 서가에서 책 한 권 이상씩, 좀 다양한 책을 읽어보겠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택도 안 되는 목표를 세운 적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서가에서 <명화로 보는 사건>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명화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법의학을 더 가깝게 소개하는 책이었는데, 아무래도 저자가 미술학자가 아니라 각각의 작품에 대한 전문가의 소개가 아니라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법의학자의 자부심이랄까 열정이 느껴져 꽤 인상적이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그 문국진 선생을 우연히 다시 만났으니,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라는 다소 익살스런 제목의 인터뷰집이 바로 그것. 국과수 최초의 법의관 문국진에 인터뷰어 강창래의 전작인 <빗물과 당신>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두 사람이 이야기가 궁금해 기대를 안고 책을 펼쳐들었다. 

  <CSI>를 비롯한 미드 수사물과 최근 방영한 한드 <싸인> 등 일반 대중에게도 법의학은 이제 낯설지 않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 가미되어 있다고는 해도 허구는 허구. '사건' 뒤에 숨겨진 '법의학자'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 임상의학이라면, 사람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은 법의학이다"라는 문국진의 말로 시작하는 이 책에는 50년 간 현장에서 뛴 그의 삶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고문과 자백으로 '만들어진' 범인이 비일비재했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로서의 파란만장했던 삶, 그리고 은퇴 후 북 오톱시를 하며 법의학을 대중에게 알리는데 열정을 다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가 마치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도 못한 채,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치른(혹을 치를 뻔한) 사람들. 수사관의 심증, 그리고 그것에 따른 강요(고문)에 의해 범인을 '만들어낸' 시대 속에서 문국진은 묵묵히 법의학을 알리고 후진을 양성함으로써 고문이라는 야만적인 관행을 깨는 숨은 공로자가 된다. 은사에게 "법의학은 학문도 아니야, 그런 거 하면 못 써"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택한 길이었고, 보수도 동료 의사와 비교할 때 턱없이 적었고, 부검에 대한 인식의 부재로 도끼에 맞아 죽을 뻔도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일에서 보람과 사명을 느꼈기에 법의학자의 길을 걸었노라며 지난날을 회상한다. 

  정액을 통해 아내를 페니실린 쇼크로 죽였다는 이야기나 윤 노파 사건 등 그가 직접 겪은 사건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가 시반이나 시랍 등 법의학적 증거에 대한 설명을 할 때는 마치 수업을 듣는 듯이 진지하게 읽었다. 단순히 교과서를 읽어내려가는 수업이 아니라 경험과 지식이 어우러진 좋은 강의를 듣고 나온 듯했다. 강의가 끝나고 나니 법의학, 특히 한국의 법의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는 "이번에 대한법의학회 모임에 가면 그런 이야기를 좀 할 작정이오. 법의학문화상을 하나 만들어보자고. 그래서 <싸인>과 같은 드라마를 만든 사람들에게 상을 주자고. 그렇게 격려해줘야 더 좋은 법의학 드라마를 만들 거 아니오. 그러면 자연히 일반인들도 법의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게 될 거고, 그래야 제도도 만들어지는 거디요. 언제나 제도가 먼저 만들어지는 게 아니야. 세상이, 세상 사람들 인식이 바뀌어야 제도가 만들어지는 거요. 내가 왜 <새튼이>나 <지상아>를 썼겠어요.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디요"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에게 아직 법의학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 인식이 바뀌고는 있다 해도 제도가 바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금도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뛰고 있을 그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나니 <지상아>와 <새튼이>가 궁금해졌다. 거의 30년이 다된 지금까지도 출간되고 있는 <지상아>야 비교적 쉽게 구해서 읽을 수 있겠지만 중고로도 구하기 힘든 <새튼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탐이 났다. 내년이면 50번째 저서를 출간한다는 문국진. 한길을 우직하게 걸어온 그의 길. 그 길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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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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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뢰를 받아 조금씩 일을 시작했을 무렵, 어느 편집자에게서 "무라카미 씨, 처음에는 어느 정도 대충 써나가는 느낌으로 일하는 편이 좋아요. 작가란 원고료를 받으면서 성장해가는 존재니까"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과연 그럴까'라며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 옛날 원고들을 다시 읽어보니 '정말이지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하고 납득이 갔습니다. 수업료를 내는 게 아니라 원고료를 받으면서 조금씩 더 나은 글을 쓰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왠지 좀 뻔뻔한 것 같습니다만. -13쪽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나의 정신은 온갖 잡다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음이란 정합적이고 계통적이면서 설명 가능한 성분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러한 내 정신 안에 있는 세세한, 때로는 통제되지 않는 것들을 긁어모으고, 그것들을 쏟아부어 픽션=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다시 보강해갑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처럼 날것인 형태로 그것들을 아웃풋하는 일도 가끔은 필요합니다. 픽션이라는 형식으로는 다 주워담을 수 없는 자잘한 세상사도 조금씩 찌꺼기로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소재를 에세이(잡문) 형식으로 조금씩 주워담게 됩니다. 혹은 또한 현실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어느 정도 날것인 형태로 스스로를 표현할 필요가 생길 때도 있습니다(인사말 같은 것이 전형적인 예입니다).
설날 '복주머니'를 열어보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주셨으면 하는 것이 저자의 바람입니다. 복주머니 안에는 온갖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거야 뭐 어쩔 도리가 없겠죠. 복주머니니까요.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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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 우연히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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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눈이란 참으로 오묘해서 다른 어떤 부위보다도 긴장과 모순 같은 것들을 가득 품고 있다. 말없는 고요한 눈동자에도 때로는 냉혹함이 서려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쫓아다닌 살인범들의 얼굴에서 그가 읽어내곤 했던 냉혹함이었다. -14쪽

운명을 믿나? 난 믿어. 다시는 널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널 봤거든. 한순간 모든 기억이 되살아나더군. 네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알아. 숫자를 하나 생각하라고 말하면 네가 무슨 숫자를 생각할지도. 못 믿겠다고? 내가 증명해볼까? 1000 미만의 숫자를 하나 생각해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숫자를 머릿속에 그려봐. 이제 내가 너의 비밀들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한번 확인해볼까? 작은 봉투를 열어봐. -33~4쪽

"당신은 벌써 이 일에 연루되었어.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지. 당신은 경찰이 아니고 그 사람도 아직 범죄 희생자라고 말할 순 없어. 하지만 맞춰야 할 퍼즐이 있고 당신은 조만간 그 퍼즐을 맞춰낼 거야. 중요한 건 바로 그거잖아. 안 그래?"-63쪽

죄책감을 느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그러한 주장의 절대성이 문제였다. 정확히 말하면 최근 들어서 죄책감을 느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리라. 구체적이고 곧바로 떠오르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 말을 15년 정도 뒤로 거슬러 올라가서 적용해보면 그러한 결백의 주장은 철저하게 거짓임이 드러나리라. -116쪽

매들린은 데이브가 한번 잠이 들면 아침까지 눈을 뜨지 않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고 했다. 그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란 생각이 든다고. 그는 도무지 맘 편히 쉴 줄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좋은 남자이고 착한 사람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죄책감이 너무 심하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실수와 불완전함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고. 눈부신 직업적 성공조차도 몇 가지 사소한 실수로 그의 마음속에서 빛을 잃는다고. 항상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고 항상 무자비할 정도로 문제를 파헤친다고. 한 가지가 끝나면 또 한 가지를 파헤친다고. 마치 언덕 위로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그는 인생을 맞추어야 할 퍼즐로 바라보는 것 같다고, 그러나 인생의 모든 것이 퍼즐일 수는 없다고. 마침내 매들린은 상담 치료사가 아닌 그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다른 방식으로 포용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 거라고. 이 세상은 퍼즐이 아닌 신비로 보여야 한다고. 해독하는 대신 그저 사랑해야 하는 게 있다고. -1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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