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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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인간세계에 눈을 돌리면 인재가 마치 분수처럼 한 시대에 한꺼번에 배출되는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역시 분수처럼 많은 물을 기세 좋게 뿜어올리고는 소리 없이 떨어지며 인재 고갈의 시대로 접어든다.
이런 현상이 끼치는 영향이 국내에만 한정된다면 문제해결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전 시대에 축적해놓은 것을 갉아먹으며 차분히 앉아 다음 분수가 뿜어져오르기를 기다리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세계에서는 한 나라의 인재 배출과 인재 고갈의 순환이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시기에 일어나지는 않는다. 한쪽은 인재 고갈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다른 한쪽은 인재 배출의 시대를 맞이하는 일이 상당한 비율로 일어나는 것이 인간셰계이다. -46쪽

중근동의 십자군 국가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에데사 백작령, 안티오키아 공작령, 트리폴리 백작령, 예루살렘 왕령 네 국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를 적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을 맞닥뜨린 그리스도교도들은 신앙심이 깊은 사람일수록 더 강하게, 이제 신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 것인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이런 공포는 한 나라의 왕이든 일개 서민이든 다르지 않았다. -77쪽

종교인의 일반적인 설교 방식은 현세의 타락을 단죄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세상을 견뎌야 하는 것은 신이 우리의 불신에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속죄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설파한다.
그런 후에 비로소 에데사를 이교도 이슬람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리고, 에데사 함란 당시의 참상과 성지에 사는 그리스도교도의 불안과 공포를 이야기한다. 그러고 나서 최대한 목소리를 쥐어짜내어 외친다.
"이교도를 몰아내고 성스러운 땅을 그들의 손에서 해방하는 일이야말로 너희가 하려는 속죄에 대한 신의 보상이다."-89쪽

이슬람교도는 모든 악이 담긴 항아리다. 악마의 손으로 만들어진, 우리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악의 표본이다.
이자들에 대한 대책은 하나밖에 없다. 근절이 바로 그것이다.
죽여라! 죽여라! 그리고 혹시 필요할 때는 그들의 칼에 맞아 죽는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116쪽

그리스도교 일색인 유럽에서야 성 베르나르두스처럼, 이슬람교도는 적이니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니 죽여라, 고 절규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중근동에서는 성 베르나르두스의 칭찬을 받은 템플 기사단의 기사들조차 이렇게 중얼거렸는지도 모른다.
"죽여라, 죽여라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몸값을 내면 포로가 된 그리스도교도를 돌려보내주겠다는데야 돈으로 교섭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일용할 식량을 생산하는 경작지의 소유주가 우리라 해도 경작은 그 땅에 예전부터 살고 있는 이슬람교도 농민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으며, 소작료로 가져다주는 농작물을 받기 위해서라도 이교도와 일상다반사로 접촉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죽여라, 죽여라 한들……"-127쪽

가톨릭교회의 교황 이하 고위 성직자들도 이러한 변화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유럽의 유력자들은 자신들은 오리엔트 물산에 젖어 있으면서 오리엔트로 십자군을 파견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129쪽

21세기인 지금도 유럽에서 '비잔틴식'이라는 표현이 있다. 사소한 것에 집착한 나머지 대국(大局)을 잃는, 그때는 득을 본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비잔틴 제국의 황제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았다.-138쪽

인간의 야심이란 곧 무슨 일이든 하고 싶어하는 의욕이다. 한편 허영심은 타인에게 좋게 보이고 싶다는 바람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아마 세상을 버린 은둔자일 테니 여기서는 제외하고, 인간성이 풍부한 인가능로 이야기를 좁히기로 한다.

문제는 한 인간의 내부에서 야심과 허영심 중 어느 쪽이 더 큰가 하는 것인데,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인간이 좋은 기회를 얻었을 때 야심으로 움직이는가, 아니면 허영심으로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다.-145쪽

인간은 흥미를 가지고 하는 일은 잘되고, 관심이 별로 없는 일을 하면 잘 안 되는 경향이 있다. 잘되니까 관심이 더 많아지고, 잘되지 않으면 그에 비례해 관심도 희박해지는 식이다.-149쪽

네가 유복한 출신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네가 지력을 갖고 태어났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또한 네가 미모를 갖고 태어났다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그중 하나라도 원인이 되어 네가 오만하고 건방져진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왜냐하면 오만과, 오만의 표현인 건방짐은 너 한 사람만이 아니라 네가 관계하는 모든 사람을 해치고 더럽히며 비속화하기 때문이다. -172쪽

세상에는 다른 사람에게 권해야 할지 권하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일이 세 가지 있다. 첫째가 결혼, 둘째가 전쟁, 그리고 셋째는 성지순례다. -217쪽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성공한 지도자에게 필요한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역량(virtu), 행운(fortuna),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자질(necessita).

눈엣가시이던 인물이 적절한 시기에, 이쪽에서 손도 쓰지 않았는데 알아서 사라져주는 것만한 행운도 없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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