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어제의 나 자신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하루하루 세계에 대해 배워나가면 나는 어제보다 조금씩 훌륭해진다.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는 아직 긴 시간이 남아 있다. 오늘 계산해보니 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3000하고도 888일이 남아 있다. 그러면 나는 3000하고도 888일을 나날이 훌륭해지는 거다. 그날이 왔을 때 내가 얼마나 훌륭해져 있을지는 짐작도 못 하겠다. 너무 훌륭해져서 큰일이 나는 건 아닐까. 모두들 깜짝 놀랄 거다. 결혼해달라는 여자도 많겠지. 하지만 나는 벌써 상대를 정해놓았기 때문에 결혼해줄 수 없다. 미안하긴 하지만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 -9~10쪽
내가 치과에 다니는 이유는 내 뇌가 무척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나의 뇌는 에너지를 많이 쓴다. 뇌의 에너지원은 당분이다. 집에서 먹는 간식만으로는 내 뇌가 필요로 하는 당분을 감당할 수 없어서 나는 내 예산에 간식비를 두고 독자적으로 에너지를 비축한다. 그러다 보니 그만 단 과자를 많이 먹게 된다. 그렇다면 자기 전에 이라도 제대로 닦으면 좋으련만, 낮 동안 뇌를 많이 쓰는 바람에 밤이 되면 칫솔을 들지도 못할 정도로 졸려서 뭐가 뭔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를 닦을 틈이 없다. 아침에 이를 닦는 것만으로는 충치를 예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나 자신을 통해 분명하게 증명했다. -21쪽
젖가슴은 수수께끼야, 하고 나는 요즘 끊임없이 생각한다. 내가 자주 떠올리는 건 누나의 가슴이다. 왜 누나의 가슴은 엄마의 가슴과 다르지? 물체로 치자면 같은 건데 내가 받는 인상은 왜 이렇게 다른 걸까. 엄마의 가슴을 문득 바라보는 일은 없는데 누나의 가슴은 나도 모르게 자꾸 바라보게 된다.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만져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 기분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게 나를 관찰한다는 걸까?-39~40쪽
아버지의 3원칙에 대하여. 아버지는 나에게 문제 푸는 법을 가르쳐줄 때 세 가지 도움이 되는 생각을 가르쳐줬다. 나는 그것들을 노트 표지 뒷면에 써서 언제라도 볼 수 있게 해놓았다. 그건 수학 같은 문제를 풀 때 도움이 된다. △ 문제를 작은 문제들로 쪼갠다. △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 닮은 문제를 찾는다. 나는 펭귄 하이웨이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나'와 '펭귄'이다. 나는 누나를 좋아해서 누나를 연구하는 것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막혀버린 거다. 관점을 바꾸면 이 수수께끼는 펭귄들의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펭귄에 대해 좀 더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닮은 문제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건 매우 보기 드문 문제다. 닮은 문제가 있기나 할까. -84~5쪽
낮에 자는 사람은 외로워 보인다. 누나가 밤에 잠들 수 없다니 참 안됐다. 나는 밤이 되면 견딜 수 없이 잠이 쏟아지는 게 종종 슬프다. 이 어찌할 수 없는 졸음을 다른 사람에게 수출하는 시스템을 미항공우주국이 개발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평소에 늘 한다. '졸음 이동 시스템'이 있으면 누나는 내 졸음을 써서 밤에 잠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밤늦게까지 연구를 해서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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