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어주는 코끼리
미즈노 케이야 지음, 김문정 옮김 / 나무한그루 / 2008년 4월
절판


'동기만 생긴다면' 나도 변할 수 있어. 아직 그럴만한 동기가 없었을 뿐이야. 스스로를 늘 그렇게 설득했다.
사실 찾으려고 들면 '동기'는 얼마든지 있었다. 창피한 일이나 짜증나는 일이 동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동기를 무시하고 지내왔다.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도 '동기'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동기'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인 것이다. -20쪽

성공하지 않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말이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태도'야. 당연하잖아? 성공하고 싶다면서 여태까지 자신을 바꾸지 못한 걸 보면 '자기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는 뜻이지.-32쪽

"'비결'을 알고 싶다는 건 '편하게' 뭔가를 이루고 싶다는 뜻이지."
나는 또 다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인생을 변화시키기나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공한 사람만이 알고 있는 숨겨진 비결이 있을 것이며, 그게 뭔지 알 수만 있다면 나도 성공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건, '편하게' 인생을 바꾸거나, '편하게' 성공하고 싶다는 '응석'의 뒷면을 보여주는거야."
-37쪽

"잘 들어. 돈이라는 건 말이야. 남들을 기쁘게 만들어서 행복하게 한 만큼 받는 거야. 고로 '부자가 되는 사람'은 남들을 많이 기쁘게 해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 이에 비해서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좋은 차를 몰고 싶어 한다든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든가 자신을 만족시킬 궁리만 생각하는 사람이지. 뭐, 그런 생각이 꼭 나쁘다는 건 아니야. 인간은 자기 욕구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처음엔 자신을 만족시켜줄 욕구를 에너지로 삼아도 좋아. 하지만 말이지..."
가네샤는 계속 말하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어. 그러니까 기부도 하는 거야. 어쨌든 넌 남을 기쁘게 해 주거나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야 해."-40쪽

큰일을 해내는 사람은 말이야, 정말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그러니까 그만큼 거금이 흘러들어오게 되는 거야. 돈뿐만이 아니야. 사랑이나 행복,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을 손에 쥐게 돼. -41쪽

웃게 만든다는 것은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뜻이야.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어도 웃음을 통해서 분위기를 전환시킬 수 있거든. 좋은 분위기 속에서 일하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되고 의욕도 생기게 돼. 사람을 대할 때도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의 강점을 끌어낼 수 있지. 그만큼 그 자리의 분위기와 웃음이라는 건 중요한 거야. -66쪽

화장실을 청소한다는 건 말이야. 가장 더러운 곳을 청소한다는 뜻이야. 누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싶어 하겠어? 남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을 맡아서 한다면 가장 많은 기쁨을 줄 수 있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군가가 대신해 줬으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만큼 가치가 생기는 거야. 알겠어?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거야. 물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건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도 솔선수범해서 하는 자세야.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은 다 이 사실을 알고 있어. -77쪽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반응' 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반응'이요?"
"그래.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주변에 '반응'하고 있을 뿐이야. 부모가 시키니까 공부하고, 모두들 시험을 치니까 시험을 보고, 다들 취직하니까 취직하고, 상사가 시키니까 일하고, 어쨌든 사람들은 계속 반응하면서 평생을 마감하게 되는 거지. 하지만 반응만 하면서 산다면 자신의 인생을 손에 넣을 수 없어.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말이야. 전부 스스로 생각해서 계획하고, 그 계획대로 될 수 있도록 먼저 주변 세상을 자극하고 있거든. 이해가 가?"
"네, ......대강 알 것 같아요."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볼까? 예를 들어서 그날 그날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치자. 꿈이나 목표를 중심으로 하루하루 계획을 세워 나가고 있었다면 한잔하자는 권유 따위는 거절했을지도 몰라. 그런데 넌 '권유받았기 때문에' 술을 마시러 간 거지. 요컨대, 권유라는 주변 환경의 자극에 반응해서 행동한 거야. 그렇지 않아?"-86쪽

"잘 들어.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절차야. 왠지 알아?"
"어째서요? 스스로를 북돋기 위해서요?"
"뭐, 그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어. 그건 '성공하거나 노력하는 일이 즐겁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야. '노력해야지, 노력해서 성공해쟈이'라고 몇 번씩 다짐해도 쉽게 실천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거든."
"맞아요. 분명히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했는데도 금방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왜 그렇게 된다고 생각해?"
"그건, ... 의지가 약해서?"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려 해도 쉽지 않은 진짜 이유는 말이야. '노력해야지'하는 생각 자체가 즐겁지 않기 때문이야. 인간은 즐거운 일, 하고 싶은 일만 하게 되어 있거든."-102쪽

앞으로는 말이야. 매일 잠들기 전에 자신이 그날 열심히 노력한 점들에 대해서 돌이켜보고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 주도록 해. 반드시 하루에 한 가지쯤은 칭찬할만한 점이 있을 거야. 그 점에 대해 스스로를 칭찬해 줘. 하루를 마칠 때는 말이야. 잘못한 부분을 지적하면서 자신을 추궁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칭찬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짓는 거야. 이런 방법을 통해서 열심히 노력하거나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일이 '즐겁다'는 사실을 자기 자신에게 가르쳐 주는 거지. -104쪽

"예를 들면 하루는 24시간이잖아. 이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그릇이라 할 수 있지. 그리고 지금 너의 그릇은 가득 채워진 상태야. 회사에 가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잠을 자거나 만화책을 읽으며 24시간을 가득 채워서 생활하고 있지. 그 그릇에 새로운 걸 넣으려고 하면 들어가지가 않아. 이미 그릇이 가득 채워진 상태니까 말이야. 그럼 여기서 한 가지 물어볼게. 시간이 가득 채워진 상태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언가를 그만둬서 시간을 만든다?"
"바로 그거야. '버린다'고도 할 수 있지. (시간이) 가득 찬 그릇에서 무언가를 빼내야 하는 거야. 그러면 빈 공간에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오게 되지. 그런데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들어오게 되거든. 주위에 보면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도 의외로 강하게 살고 있잖아. 그 이유는 회사를 그만두면서 빈 공간에 무언가 새로운 일이 들어왔기 때문이야. 어쨌든 인생은 이런 식으로 변하게 되는 거야. 알겠어?"-109쪽

"지금부터 중요한 말을 할 테니까 기억해 둬. 인간이 변하려고 생각해도 변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야. 알아? 사람은 의식을 변화시킬 수 없어."
"의식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요?"
"그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늘부터 열심히 노력해서 의식을 바꾸려 하지. 하지만 아무리 의식을 바꾸려 해도 바꿀 수 없어. 인간의 의지는 약하거든."
"그건 맞아요. 사람들은 자신이 정한 일을 잘 실천하지 못하죠."
"그런데도, 다들 '의식을 바꾸자'고 생각하잖아. 왜 그런 지 알아?"
"글쎄요. 왜 그런걸까요?"
"편하기 때문이지. 그 자리에서 '오늘부터 변할 거야.'라고 결심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미래의 자기 자신을 상상하는 건 편하거든. 왜냐하면 그건 상상만 할 뿐이지 실제로는 전혀 노력하는 게 아니니까. 요컨대 의식을 바꿀 거라고 말하는 것은 달리 표현하자면 '도망'치는 것과 같은 거야."-117쪽

정말 변하고자 한다면 의식을 바꾸려 해서는 안 돼. 의식이 아닌 '구체적인 무언가'를 바꿔야 해. 구체적인 무언가를 말이지. -118쪽

이 세상에 어둠 없이는 빛도 존재하지 않듯이, 단점과 장점도 인간이 갖고 있는 하나의 뒷면과 앞면이라고 생각하면 돼. -135쪽

꿈은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하잖아. 뭐,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의미를 잘못 파악하는 사람들이 많아. '간절히 꿈을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니까 '반드시 꿈을 가져야 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이건 뭐랄까, 부모나 주변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억지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해. 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습관이 붙어버린 사람은 오히려 꿈꾸는 행동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거든. 하지만 원래 꿈이라는 건 그런 게 아니야. 누군가가 말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두근거리는 것이 바로 꿈이야. 생각할수록 즐거워서 멈출 수 없는 것이 꿈이라고. 이런 상상력이 중요한 거야. -143~4쪽

자신에게 달갑지 않은 일이 생겨도 우선 억지라도 좋으니까 '운이 좋다'라고 생각해 봐. 소리내서 말해 보는 방법도 효과적이야. 그러면 뇌가 스스로 운이 좋은 점을 찾기 시작하게 되거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서 무언가 배울 점이 없는지 찾아내는 거지. -152쪽

사람들은 다들 자기 자신한테 서비스할 궁리만 하지. 자신의 이기심이나 욕구를 충족시킬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 하지만 남들한테 서비스를 제공해 주도록 더욱 노력하면서 이를 자신의 기쁨으로 삼을 줄 알아야 돼. 요컨대 '남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 성립되어야 하는 거지. 이 가네샤 방정식이 익숙해진다면 자연히 인생은 성공하게 되어 있어-206쪽

넌 말이야. 근본적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정말 성공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해 보게 되어 있어.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실천해 보지. 요컨대 '어처구니없다'든가 '의미가 없다'면서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노력하면서까지 성공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 실천을 외면함으로써 성공하고 싶지 않다고 표현하고 있는 거야. 그러면 우주는 '아아, 이놈은 성공하기 싫구나.'라고 생각하거든. 그런 사람은 가장 먼저 성공과 멀어지게 되는 거야.-227쪽

"너, 이 책을 처음에 읽었을 때도 지금처럼 흥분했었어. 변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었다고. 그 이유가 뭔지 알아?"
"... 뭔데요?"
"그 이유는 책에게 기대했기 때문이야. '이 책이라면 나를 변화시켜 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거지. 그러니까 흥분한 거야. 지금의 너도 별반 다르지 않아. 넌 지금 나한테 기대하고 있잖아. '이 신이라면 나를 변화시켜 줄 것이다. 지금까지 가보지 못했던 다른 곳으로 나를 데려다 줄 것이다.' 이렇게 말이야. 그렇지?" (중략)
"기대는 감정의 빚이야."
가네샤는 속삭이듯 말했다.
"아무런 고생도 경험하지 않은 채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고양감'을 미리 빌려 받아서 기분이 좋아졌을 뿐이지. 하지만 머지 않아 그리 간단하게 성공할 수 없다는 현실에 부딪히고 말지. 그 순간 '미리 기분을 좋게 해줬으니까 그만큼 돌려받을 게요.'함ㄴ서 상환을 요구 받게 되면 기가 꺾이게 되는 거야. 이 과정을 반복하게 되면 점점 하고자 하는 의욕이 사라지게 돼."-256쪽

넌 지금 앉아 있을 뿐이라고. 무슨 뜻인지 알겠어? 분명히 넌 내 얘기를 듣고 있지. 넌 지금 무언가를 배우고, 지식을 흡수해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은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지.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 것만으로는 인간은 절대 변할 수 없어. 인간이 변할 수 있는 건 '일어서서 뭔가를 실행에 옮겼을 때 뿐'이야.-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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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절판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13쪽

행복에 대한 추억은 별것 없다. 다만 나날들이 무사하기를 빌었다. 무사한 날들이 쌓여서 행복이 되든지 불행이 되든지, 그저 하루하루가 별 탈 없기를 바랐다. 순하게 세월이 흘러서 또 그렇게 순하게 세월이 끝나기를 바랐다.
죽을 생각 하면 아직은 두렵다. 죽으면 우리들의 사랑이나 열정도 모두 소멸하는 것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삶은 살아 있는 동안만의 삶일 뿐이다. 죽어서 소멸하는 사랑과 열정이 어째서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을 들볶아 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사랑과 열정으로 더불어 하루하루가 무사할 수 있다는 것은 복받은 일이다. -31~2쪽

그 아이는 아마 월급쟁이로서 평생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나는 이 무사한 하루하루의 순환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내 모든 행복으로 삼기로 했다. -33쪽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저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은 언어화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다. -38쪽

휘몰이 장단으로 글을 쓸 때, 내 사유는 급박하게 솟구치는 언어 위에 서려서, 연결되거나 또는 부러진다. 사유가 부러지고 다시 이어지는 대목마다 문장이 하나씩 들어선다. 이런 문장들은 대체로 짧고 다급하다. 문장은 조바심치면서, 앞선 문장을 들이박고 뒤따르는 문장을 끌어당긴다. 휘몰이로 몰고 나가는 문장은 거칠다. 나는 이런 문장을 한없이 쓰지는 못한다. 힘이 빠지면, 내 문장은 중모리쯤으로 내려앉는다. 중모리 문장은 편안하다. 사유는 문장 속에 편안하게 실린다. 휘몰이 문장을 쓸 때는 사유가 문장을 몰고 가지만, 중모리 문장을 쓸 때는 문장이 사유를 이끌고 나가는 것 같다. 그래서 중모리 문장을 쓸 때 내 몸은 아늑하다. 그 아늑함이 한가하고 또 부질없이 느껴질 때, 나는 다시 휘몰이 쪽을 넘보는데 휘몰이 문장을 불러오려면, 사유의 질감을 바꿔야 한다. 이 전환은 쉽지 않다.
한 개의 문장을 하나의 우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릴 때, 나는 진양조로 나아간다. -58쪽

나는 고향이라는 어휘가 물고 늘어지는 정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진화할 수 없는 비논리성이 그 정한의 바탕을 이루는 듯싶다. 나는 고향도 없고 타향도 없는 세상이 좋다. 고향이라든지 타향이라든지 하는 그런 어휘가 아예 없는 세상에서 나는 살고 싶다. -95쪽

설 연휴가 끝나고, 사람들은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도심은 교통체증에 막혀 헐떡거리고 있다. 사람들이 명절이면 기어이 돌아가는 그 고향이 아직도 그들의 고향일 것인가. 당신들의 고향은 아늑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품인가. 정말로 그러한가. 불타버린 남대문의 잿대미를 바라보면서 나는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고향의 영원한 허상을 향해 기를 쓰고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사람들아, 설에 고향에 다녀온 사람들아, 불타버린 내 고향의 남대문을 보아라. 그리고 내 고향 서울을 다시는 타향이라고 말하지 마라. 타향 위에 고향을 건설하지 못하는 한 당신들은 영원히 고아이며 실향민인 것이다. 내 고향 서울에 이제 남대문은 없다. -103~4쪽

우리는 인간이라는 이름에 값할 수가 없는 것이죠.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거기에 승복할 수가 없어요. 거기에 승복할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인간이기 때문에 거기에 끝없이 또 짓밟힐 수밖에 없습니다. 짓밟혀가면서 또 끝없이 저항하는 것이죠. 이런 모습들을 소설로 감당해내기에는 저의 역량은 부족합니다. 다만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입니다. 또 그것을 통해서, 그것과 더불어 인간의 아름다움을 증명한다는 것...,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140쪽

이 세상에 언어가 존재하는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언어는 소통을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시나 소설들도 다 소통을 꿈꾸면서 존재하는 예술입니다. 소통이 목적이 아니라면 언어는 이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지 않고 말을 해버리면, 이런 언어는 인간의 소통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인간 사이의 단절을 심화시킵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언어적 비극은 듣기(hearing)가 안 된다는 것이죠. 우리는 채팅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듣기가 안 되니까, 청각장애인들이 다 모여 있는 거죠. 인간의 언어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입니다. 말하기는 쓰기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나를 드러내 보이는 행위죠. 그리고 듣기는 읽기입니다. 이것은 내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언어는 말하기와 듣기 두 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148쪽

지금은 채팅만이 있고 듣기가 전혀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죠. 혼자서 담에 대고 떠들어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언어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 비극적 것은 의견과 사실을 뒤죽박죽해서 말한다는 것이죠.
신념의 언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주변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태도입니다. 젊은이들은 자기 주변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힘이 너무 부족해요. 우리 젊은이들은 자기 주변과 세계를 정서적으로 인식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세계를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던 아이들이 자라면 그 아이는 대개 그 세계를 이념적으로 이해하는 그런 인간이 되어버리더군요.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언어의 훈련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어떤 현상이나 사태를 보고 이것은 무엇이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제기하고 거기에 대답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이것은 왜 이런가, 이것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또 이것이 앞으로 변화함에 따라서 이것과 관련된 여타의 수많은 조건들은 또 어떻게 변하는 것이냐 같은 의문을 제기하고 대답을~-148~9쪽

모색하는 노력이 세상을 과학적으로 들여다보는 태도이겠지요. 소설을 쓰는 사람도 이 세계를 과학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걸 만들어낼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런데 세계를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혹은 이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런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이런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 사태는 내 마음에 드는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이 사태는 내가 보기에 아름다운가, 추한가. 사람을 볼 때는 저자는 내 편인가, 아닌가. 저자는 내 적의 편인가, 아닌가. 저자는 내 편인 것 같지는 않은데, 저자는 내 적의 적이기 때문에 저자는 아마도 나의 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난폭한 망상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계에 대해서 질문을 제기하는 방식의 차이인 것입니다. 나는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라는 것은 정서를 배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서로 배척된 것이 아니지요. -149~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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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4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양미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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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주근깨 빼빼마른 빨간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라는 노래를 기억할 정도로 어린 시절 퍽 좋아했던 만화 중에 하나였던 <빨간 머리 앤>. 하지만 정작 책으로는 앤을 만난 적이 없어서 '언제 시간나면 10권짜리로 나온 앤 시리즈를 읽어야지'라고 생각하며 미뤄왔었다. 그러던 차에 <빨간 머리 앤> 100주년을 기념해 여기저기서 <빨간 머리 앤>이 출판됐고, 그 중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만나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가기 시작했다. 약 15년쯤 전에 만화로 봤을 뿐이라 그런지 앤하면 다이애나와 개울가에서 손잡고 맹세하던 모습만 어렴풋이 떠올랐는데, 이 책을 읽으며 새록새록 앤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초록 지붕 집에서 살고 있는 마릴라와 매슈는 자신들을 도와 농장일을 할 남자아이를 한 명 입양하려 한다. 하지만 중간에 말이 잘못 전해져 온 것은 앤. 다시 고아원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어느새 앤의 매력에 빠져버린 마릴라와 매슈. 우여곡절 끝에 초록 지붕 집에서 앤의 생활을 시작되고 앤은 갖가지 사건들을 경험하며 성장하게 된다는 줄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터. 하지만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상상력이 풍부한 앤의 수다와 앤이 저지르는 갖가지 사건, 사고가 유쾌하게 그려져 이미 줄거리를 알고 있다 하여도 재밌게 볼 수 있었다. 

  빨간 머리라는 저주받은 운명(?)때문인지 앤은 가족애를 느끼지 못하고 성장한다. 하지만 초록 지붕 집에 온 뒤부터 앤은 가족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느끼게 되고, 거울 속의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친구를 만나 우정을 나누기도 하며 성장해간다. 초반에는 귀찮을 정도로 수다스럽고, 조금만 기쁜 일이 있으면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이 좋아하고, 조금만 슬픈 일이 생기면 내일 세상이 멸망할 것 같이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앤의 모습을 보며 너무 오버스럽지 않나라는 생각을 잠시 품기도 했는데 그런 점들이 앤을 앤답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이 아닐까 싶었다. 나 또한 마릴라처럼 어느새 앤이 할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으니까 말이다. 

  <빨간 머리 앤>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단순한 엉뚱소녀 앤의 일화만이 아니다. 공상을 하느라 갖가지 실수를 하는 앤은 자신이 저지르는 실수들에 대해 반성할 줄 알고, 똑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앤을 얌전한 아이로 키우려고 했던 마릴라의 소망은 불가능스러웠지만, 나이가 들면서 앤은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길버트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대놓고 드러내기보다는 성적을 두고 경쟁해 어느샌가는 선의의 경쟁을 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자신의 목표를 변경해 자신을 위해 희생한 마릴라를 위해 섬에 남고, 오랜 라이벌이었던 길버트와도 화해하는 모습을 보니 이 뒤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사뭇 궁금했다.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는 앤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새삼 예전에 봤던 만화도 다시 보고 싶어지고, 이 이야기의 후속편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예쁜 일러스트가 곁들여져 괜히 소녀가 된 기분으로 설레며 읽었던 책. 다음 기회에 또 앤과 즐거운 만남을 이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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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4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양미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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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상품 이미지로는 선뜻 크기가 짐작되지 않았는데, 핸드폰 사이즈와 비교해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아담한(?) 사이즈. 작긴 하지만 두께감이 있어서 잡히는 감은 나쁘지 않은 듯. 책 읽는데는 별 불편이 없었다.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일러스트가 이야기를 더 사랑스럽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라는 이름에 걸맞게 예쁜 책이라 내용과 외형 모두 만족. 예전에 TV로 본 빨간 머리 앤의 이미지와 비슷한 분위기라 아쉽기도 했지만 익숙한만큼 나쁘지 않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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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2-06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그림이 너무 이뻐요~ 나도 사고 싶어요.ㅜㅜ

이매지 2008-12-07 00:18   좋아요 0 | URL
풀샷으로 일러스트가 그려진 페이지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끔씩 등장하는 일러스트가 그렇게 예쁘더라구요 :)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봤지만 나중에 하나 사려구요 ~
 
굿바이, 게으름 - 게으름에서 벗어나 나를 찾는 10가지 열쇠, 개정판
문요한 지음 / 더난출판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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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의 대부분은 아마 자신이 게으르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게으른 생활을 타파하기 위한 방법을 전수받고자 이 책을 하나의 터닝포인트로 삼고 싶어하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밥먹듯이 엄마에게 '게을러 터졌다.'는 얘기를 듣는지라 어떻게 하면 게으름을 극복하고 부지런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이 책을 집어들게 됐다. 

  사실 자기계발 서적은 딱히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한 번 망설였고, 노골적인 제목에 또 한 번 망설였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가 저자라는 점에서 왠지 심리학적으로 게으름에 대해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게으름에 대한 정의를 하는 초반부터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책에서는 단순히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것만을 게으름이라고 보지 않는다. 별다른 삶의 방향성 없이 살아가는 것이나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또한 게으름이라고 이야기한다. 1부에서는 실제 사례를 통해 게으르다는 것의 의미, 유형, 원인 등을 파악하고 2부에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한 10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내게 문제가 있다는 점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단기적 목표의식의 강화가 아닌 삶의 목적 의식을 찾고, 비전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경험과 강점을 살리고, 부정적 에너지를 극복하고 긍정적인 마음잡이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게으름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결국엔 이 책의 내용을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고 목표를 세워 살아가자!'라는 단 한 줄로 요약될 뿐이지만 중간 중간에 들어있는 내용도 나름 알차서 꽤 오랜 시간을 두고 읽었다. 특히 나로써 살아가라는 저자의 말이 강하게 꽂혔다. 경기가 어려우니만큼 친구들이 하나씩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축하해줘야하겠지만, 한 편으로는 왜 이렇게 나는 안 풀릴까라는 부러움과 질투를 느끼며 안절부절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의 현실을 직면하고 타인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보다 멀리 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 또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부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냈었는지 또한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이런 류의 책들이 대개 그렇지만 읽으면서 아무리 밑줄을 긋고, 반성을 해도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말짱 도로묵이 되고 만다. 모쪼록 이 책을 읽고 반성을 한 뒤에 저자가 제시한 오감오문 일기라고 꾸준히 써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나도 오늘부터 오감오문 일기도 써보고, 마음의 거울을 보며 애써 긍정적 마음잡이가 되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어느정도 게으름에서 발을 뺄 수 있는 동기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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