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브라이슨의 아프리카 다이어리 - 케냐에서 발견한 아프리카의 맨얼굴, 그리고 몹쓸 웃음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김소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나를 부르는 숲>을 읽으며 제법 낄낄거렸던 기억이 있어 <빌브라이슨의 아프리카 다이어리>를 제법 기대하며 읽었다. 양장본에 121페이지밖에 안되면서 만원이나 하는 가격이 괘씸했지만, 그래도 빌 브라이슨이니까라면서 읽었는데 단순히 여행기라고 생각하면 실망스러웠지만, 케냐의 실상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괜찮은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빌 브라이슨의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은 TV에서 본 B급 영화인 '정글짐'의 인상이 전부. 때문에 국제적 구호단체인 CARE에서 자신들의 활동지인 케냐를 둘러보고 글을 써달라고 했을 때도 선뜻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다. 하지만 정글짐과 아프리카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본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모습과는 달리 진짜 아프리카는 온갖 질병을 걱정해야하고, 가끔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고장나는 기차나 강도 등 사소한(?) 위험들이 잠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빼도박도 못하게 케냐행이 결정된 빌 브라이슨. 그는 CARE에서 일하는 이들과 함께 케냐로 떠나 온갖 고비를 넘긴 뒤에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두운 현실과 그들을 돕고 있는 CARE의 활동을 접하게 된다. 

  고고학자가 꿈이지만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청년을 비롯해 20명당 한 권의 교과서를 보는 난민 수용소의 아이들, 4만명이 달랑 10개의 화장실로 생활하는 빈민촌의 사람들 등 빌 브라이슨은 케냐의 속살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뭐 하나 충분하지 않은 배경 속에서 희망마저 잃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할지 특유의 어투로 보여준다. 이 책의 부제에 쓰여진 '몹쓸 웃음'일 수도 있었지만, 빌 브라이슨의 그런 유머감각이 이 책을, 그리고 케냐 사람들을 비참하게만 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책 속에 나온 말처럼 그들은 모든 것을 지원해주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다. 재정적인 지원, 기술적인 지원 등을 통해 스스로 자립하는 케냐인들의 모습과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며 그들에게 그래도 약간의 희망은 남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배부르게 음식을 먹고,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마냥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다는 것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했다. 

  가격대비 책의 장정은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기부하고 책 한 권 얻었다 생각하면 마음 편히 읽을 수 있을 듯 싶었다. 달랑 열흘 남짓동안 방문이 케냐의 실상을 모두 파악할 수 없다는 것도 아쉽고, 빌 브라이슨 특유의 유머도 적어서 아쉬웠지만 기획 의도만큼은 와닿았던 책이었다. 기부와 접목한 이벤트라도 했더라면 더 많은 독자의 손에 이 책이 들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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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행정법총론 강의노트 (스프링) - 2009년 전면개정판
김종석 엮음 / 베리타스엠 / 2008년 11월
절판


일단 표지. 스프링 제본으로 되어 있어서 보기 편하네요.
사이즈는 일반 문제집 사이즈입니다.

왼쪽에는 판서하는 내용이 적혀있구요,
오른쪽에는 빈칸이나 판서 내용이 적혀 있거나
여백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추가로 필기하기 좋네요.

김종석 선생님만의 강점인 두문자도 잘 정리되어 있어요.
08년도 강의에 비해 몇 개 두문자가 늘어난게 보이더군요 :)

글로 보면 복잡한 판례도 도형으로 정리해주셔서 좋아요.

강의노트는 원래 구입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일일이 판서할 시간이 없어서 구입했는데
가독성도 괜찮은 편이고,
수업 들으면서도 내용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괜찮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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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란 어떤 일인가 - 기획의 발상부터 인간관계까지
와시오 켄야 지음, 김성민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5년 2월
품절


우선 편집자는 플래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발안자다. 플랜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아이디어에 따라 베스트셀러도 나올 수 있고 스테디셀러나 명저도 나올 수 있다. 편집자는 그 탄생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특권이 있다. 출판계에는 감나무 밑에 세 명은 누워 있다는 말이 있다. 뒤에서 상세히 설명하겠지만 오해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편집자는 모방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물론 표절은 안 된다. 아이디어란 모방의 변형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18~9쪽

대형 서점에는 POS 시스템이 도입됐다.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읽어 하루의 매출을 금방 알 수 있다. 그 때문에 서점에서는 빨리 팔리지 않는 책을 꺼리게 됐고 서점의 서가는 잡지 중심, 코믹 편중의 상품 구성으로 흘러가고 있다. 모름지기 책의 생명은 다양성인데 독자들은 다양한 책을 만날 기회가 줄고 있는 셈이다.
뒤에 가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책은 한 종 한 종의 내용이 제각기 다른 상품이다. 한 권의 책이 어떤 사람에게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지만,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무거운 물건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후자는 읽고 싶지도 않은 책을 선물로 받아본들 기쁠 리 없다. -48쪽

알다시피 서점의 서가에는 질릴 정도로 별의별 책이 진열되어 있다. 고시점은 더더욱 놀라게 한다. 이 이상 무슨 책이 더 필요하냐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욕구는 무한한다. 세상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고 풀어 밝히고 싶어 한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말밖에 없다.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문자와 언어를 능가하는 것을 여태껏 보지 못했다. 언어의 동물인 인간에게 활자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없었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64쪽

기획에는 제한이 없다.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없다. 책이라는 형태를 띠고 독자들이 사서 읽어주기만 하면 뭐든 괜찮다. 나는 늘 기획을 삼각형이라 생각한다. 각 꼭지점은 가치(임팩트), 판매 부수(채산성), 실현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73쪽

거듭 말하지만 책에는 범용성이란 없다. 처음부터 한정되어 있다. 누구든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한정하기는 책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제나 대상 독자 등을 좁힘으로써 읽는 이의 욕망을 책으로 직격할 수 있다. (중략)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기획하는 사람이 독자의 처지에 설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나란 존재를 잊고 독자가 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제도로 만들지 못하면 '한정'이란 어렵다. 바꿔 말하면 다수를 노리는 게 아니라 확실한 대상에게 미끼를 던지라는 뜻이다. -85~6쪽

편집자에게 헛된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이 단련하고 있다는 증거다. 흔히 경주마를 평할 때 피부가 얇다는 표현을 쓴다. 예민하여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것 같다는 뜻이다. 편집자도 피부가 얇아야 한다. 늘 감성을 갈고닦아야 한다. 예민한 촉각을 지니려면 공부하는 자세는 필수다. 확인하는 의미에서 덧붙이자면 여기에서 말하는 공부란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공부가 아니다. 정삼각형이 큰 책을 편집하기 위한 공부다. -99쪽

그런데 가끔 한 권의 책으로는 훌륭한 장정이라도 서점 매장에 진열되면 다른 책에 묻히는 책이 있다. 반대로 단독으로 보면 특별할 게 없는데 매장에서 독자의 눈을 끄는 장정도 있다. 무엇보다 책은 손에 들고 읽게 만들어야 의미가 있다. 장식품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정은 실용품이다. 일부 예술성에 너무 치우치거나 장식만 지나친 장정을 본다. 내용은 별것 아니면서 외양만 멋들어지게 꾸민 책도 있다. 낯뜨거운 일이다. 편집자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시간이 갈수록 창피해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장정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내용이 나쁘면 책은 가치를 잃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157~8쪽

선전 문구에는 편집자만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원칙 같은 것이 있다. 우선 집필자인 저자의 의도에서 벗어나선 안 된다. 띠지만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본문과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어디까지나 광고문구이므로 독자의 눈길을 끌어야 한다. 그 중에는 독선적이고 잘난 척하는 자기만족형 띠지도 있다. 띠지 문구로 문학을 할 셈인지. 어디까지나 책을 부각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띠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요컨대 공간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짧은 문장이 바람직하다. 간결하면서 이해하기 쉽고 강하게. 요점을 명료하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 띠지는 책상 위에서 뜻을 음미하며 읽는 것이 아니므로 서점 매장에서만 제 구실을 하면 된다. 게다가 감각 있는 띠지 문구라는 인상을 주면 더할 나위 없다. -167~8쪽

거의 모든 신문에 서평란이 있다. 다른 미디어의 소개란에 비하면 상당한 공간이 할애되고 있다. 책의 사회적 역할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겠다. 광고가 충분하지 못하다 싶으면 어느 편집자든 신문 서평란에 실리기를 바란다. 특히 책은 안목 있는 서평자의 의견이 큰 구실을 한다. 범용성이 없는 대신 특정 영역에 절대적인 후각을 지닌 사람이 있는 법이다. 그런 신뢰할 만한 서평자의 안내로 독서의 재미에 눈을 뜨는 사람도 많다. -184쪽

편집자는 하드디스크 같은 존재다. 외부에 얼마나 풍부하고 우수한 소프트를 갖고 있느냐가 편집자의 가치를 결정한다. 개인의 능력이란 뻔하기 때문이다. 저자라는 탁월한 소프트와 관계를 한 번의일로 끝내는 것이 얼마나 아까운 일인지 알았을 것이다. (중략)
내가 젊은 편집자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점點'이 아니라 '면面'의 교제를 하라는 것이다. 저자와 편집자는 원고를 쓰고 받는 '점'의 교제에서 출판한다. 그런데 5장에서도 설명했다시피 집핀을 고통이 따르는 작업이다. '점'의 교제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인간의 다양한 '면'에 바탕을 둔 관계가 생겨나고 나아가서 진정한 인간관계가 싹튼다. -191쪽

편집자를 촉매라고도 한다. 편집자가 저자의 재능을 꽃피운다는 의미로 편집자의 사명이요 기쁨이다. 그리고 촉매에는 다른 의미도 있다. 편집자가 자신의 존재를 통해 다양한 인간을 관계 짓는다는 의미다. 이 또한 중요한 구실이 아닐 수 없다. -199쪽

책의 용도도 다양하며 모호하다. 필요 없는 부분도 많다. 속도경쟁 시대인 현대에 다른 미디어에 비해 뒤처져 보이는 것은 정보량이라는 관점에서 봐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책은 언뜻 보기에 필요 없어 보이는 부분, 쓸모없는 부분에 존재가치가 있다.
그것은 인간의 오감과 비슷하다. 우리는 외계의 일체를 보고 감응한다. 이건 좋은 표현이 아니다. 우리는 그런 외계에 둘러싸여 있다. 처음부터 필요 없는 소리, 필요 없는 풍경, 필요 없는 냄새라고 없애버리면 인간으로서의 의미가 사라지고 만다. 당장은 필요 없을지라도 어쩌면 나중에 가서 큰 의미를 가질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꺾는 수가 있다. 단기적인 목적에 맞춰 만들어진 소리, 풍경, 냄새가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허무한지 우리는 잘 안다. 그러면서도 사회는 그런 공리적, 효율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201쪽

지금 일본의 출판문화가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기능이 분화되고 개별화될지언정 편집이라는 기능 자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출판사를 중심으로 하는 출판 구조는 분명히 바뀔 것이라는 점은 예상해두는 편이 좋다. 그로 인해 오히려 의외의 기회를 낳을지도 모른다. 이 책 첫 머리에도 썼지만 창업한 지 60년 이상 된 출판사는 10퍼센트에도 못 미친다. 출판계는 변동이 심하다. 상황에 적응할 줄 아는 합리성을 지닌 출판사만 살아남는다. 코믹의 매출 저조로 시작된 이 변화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할지도 모른다. -213쪽

인터넷이라는 한정되면서 폐쇄적인 도구가 오히려 살아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책은 불특정 다수와 불특정 다수를 잇는 역할을 한다. 책을 매개로 화제가 전개되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도구로서의 책의 특성을 다시 인식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편집자도 출판사도 서점도 그동안 너무 무관심하였다. 좋은 책은 독자들이 알아서 읽게 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냥 놔두어도 서점을 또 찾는 사람이 있다고 낙관했다. 그러나 다른 미디어의 발전과 새로운 자극 때문에 사실은 서점을 찾는 발길이 줄어드는 실정이다. 독서는 습관성 요소도 강하다. 한번 발길이 뜸해지면 귀찮아진다. 그 결과 출판사와 편집자는 독자의 읽는 힘이 저하하였다고 탄식한다. 자업자득이라 아니할 수 없다. -215쪽

편집자마저 자신의 껍질에 틀어박혀서는 안 된다. 저자에게 정열을 다하듯 독자에게도 정열을 쏟아야 한다. 독자에 대한 참견이야말로 편집자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세라 생각한다. 물론 출판사 전체에 요청되는 자세이기도 하다. 그만큼 출판계는 절박한 상황에 놓였다.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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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제왕의 생애 (반양장)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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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국 소설은 왠지 딱딱한 이미지라 꺼렸었는데 <허삼관 매혈기>나 <사람아 아, 사람아!>, <닭털 같은 나날> 등의 현대 중국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이런 편견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최근 국내에 많이 소개되고 있는 쑤퉁을 알게 되었고 여러 작품 중에 줄타기 광대가 되는 왕의 이야기를 그린 <나, 제왕의 생애>가 끌려 읽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여러 면에서 제왕의 면모를 가졌던 장자인 단문을 제치고 막내 단백은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섭국의 제왕이 된다. 왜 단문이 아니고 자신이 왕위에 앉은 것인지 열등감에 시달리며, 단백은 자신을 대신에 섭정을 하는 황보부인과 맹부인이 국정을 도맡아 처리하자 자신은 결국 허울뿐인 왕임을 느끼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과 혼인을 하지 못하고, 성 안에 갇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누군가를 죽이라고 명령을 하는 것 뿐. 때문에 단백은 새를 보며 자유를 꿈꾸고, 내시 연랑과 함께 몰래 빠져나가 본 줄타기를 꿈꾼다. 궁 안에서 보이지 않는 줄을 위태롭게 걷고 있었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섭왕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 현실에서의 줄타기를 갈망한다. 단순히 최고 권력자에서 줄타기 재주꾼이 된 단백의 이야기를 그리는데에서 그치지 않고, 권력에 자신의 목숨을 거는 이, 상황이 변하자 성품마저 변해버린 이, 돈 몇 푼에 자식을 파는 이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줬다. 

  이 책의 장르를 딱 하나만 정하라면 역사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나, 제왕의 생애>에는 온갖 장르가 들어 있다. 궁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질 수 있을만한 모든 요소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무협지가 됐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한 남자를 두고 벌어지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애정 소설이 됐다가 하는 식으로 소재에 따라 장르적 특성을 바꾸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저자는 이런 방식을 통해 독자가 지루하지 않게 완급을 조절해서 자칫하면 산만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줄타기를 하듯이 아슬아슬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며 풀어간다. 

  주인공 단백은 궁 안에 갇혀 지극히 타성에 의한 삶을 살아간다. '내가 무슨 빌어먹을 개 방귀만도 못한 왕이란 말이냐? 나는 하늘 아래 가장 유약하고 무능하며, 또한 가장 가련한 제왕이로구나. 어릴 때는 유모와 환관, 궁녀 들이 하라는 대로 했고, 글을 깨우칠 무렵에는 승려 각공이 하라는 대로 했으며, 왕이 되어서는 황보부인과 맹부인이 하라는 대로 했다. 이제 나라의 정세가 크게 변하여 민심이 흉흉하고 여기저기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으니 모두 다 늦었구나. 한 자루 칼이 내 목을 노리고 달려드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그저 여기서 한숨만 내쉬고 있을 뿐이다.'(p.217)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그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지만 섭왕이라는 굴레에 갇혀 그저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결국 단문에 의해 섭왕의 자리를 뺏기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채 평민으로 살아가게 되며 그는 차츰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궁 안에서의 생활의 마지막 끈이었던 연랑과 헤어져 평범한 사람으로 겪는 이야기들은 안타깝고, 애처로웠지만 오히려 그렇게라도 그렇게 꿈꾸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 행운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한 때 섭왕의 지위에 있다가 평민이 되었다가 미친 놈 취급을 받다가 줄타기 왕이 된 단백. 줄을 타고, <논어>를 읽으며 지내는 그의 남은 나날들이 부디 행복하기를 책을 놓으며 바랐다.  

  다소 아쉬움도 있었지만 쑤퉁이 앞으로 어떤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호기심을 불어넣기에는 충분했던 작품이었다. 앞으로 이어질 쑤퉁의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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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1-11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했는데~ 덕분에 대충은 알게 됐군요.
새해에도 여전히 공부와 독서를 병해하는 건가요?
복만이랑 친하시길... ^^

이매지 2009-01-11 01:00   좋아요 0 | URL
독서는 끊어야할텐데 말이죠^^;
이 책 생각보다 괜찮더라구요 :)
순오기님도 한 번 읽어보세요 ㅎㅎ

순오기님도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흔히 수사물에서 기대하는 묵직함과는 거리가 먼 코믹한 수사물. 오다기리죠의 뽀글머리도, 시효관리과의 다른 경찰들도 모두 사랑스러워서 한 편 한 편 정말 재미있게 봤다. 딱히 어떤 에피소드를 베스트로 꼽기 힘들만큼 모든 에피소드가 고르게 재미있었다. 



  별다른 취미가 없는 시효 관리과의 키리야마. 마땅한 취미가 없다는 사실에 번듯한 취미가 생기길 바라며 학 천 마리를 접는 등 나름 진지하게 취미생활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취미로 시효가 지난 사건을 수사해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제안을 듣게 되고, 정말 취미로 시효가 지난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1편은 돈이 없어서 취미생활을 접는 것으로 끝나고, 2편은 경마에서 큰 돈을 따서 다시 취미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약간은 어벙하지만 의외로 예리한 구석이 있는 키리야마. 그리고 그를 남몰래(?) 짝사랑하는 미카즈키. 둘은 시효가 지난 사건 중 재미있어 보이는 사건을 엄별해서 취미로 수사를 진행한다. 기껏 사건을 수사해서 진범의 정체를 알게 되더라도, 어디까지나 자신의 취미 활동임을 밝히고 모처럼 진상을 알려준 범인분들을 불안해하지 않겠다는 목적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여진 카드를 제시하는 등 나름 열심히 취미활동을 하는 키리야마군. 사실 미궁에 빠져 결국 시효를 경과한 사건들도 호기심을 유발했지만, 그보다는 키리야마와 시효관리과 사람들, 그리고 곳곳에 있는 유머코드가 이 드라마에 더 빠져들게 했다. 더 호기심을 유발했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면 비가 내린다던지 안경이 뿌옇게 흐려진다던지라는 얼토당토하지 않는 설정에서부터 말랑말랑한 지장보살상이나 만두냄새가 나는 우물, 무엇이든 푸짐하게 혹은 무엇이든 빨리 주는 식당 등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금요 나이트 드라마였음에도 불구하고 10%가 넘는 꽤 높은 시청률 때문인지 <시효경찰>에 이어 다음 해 <돌아온 시효경찰>로 만들어졌는데, 1편이나 2편이나 사실 전체적인 컨셉은 크게 다르지 않아 만족스러웠다. <트릭>의 경우에는 시즌이 더해갈수록 사실 은근 근성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시효경찰>은 각 에피소드도 9회로 짧은 편이라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정통 수사물이나 추리물을 기대하고 본다면 분명 실망할 수 있을 정도로 빈약한 트릭이 등장하지만 이런 빈약함 속에서도 나름 캐릭터들이 강세를 보여 제법 안정감있는 드라마가 된 것 같다. 한 편으로는 이런 간단한 사건이 어째서 15년이라는 시효를 넘긴 것인가!라는 안타까움도 들었지만, (어쩌면 이는 시효에 대한 풍자?) 엽기적이고 황당하지만 그렇기때문에 사랑스러운 4차원 개그 드라마 <시효경찰>. 일상이 지루하고 따분한 이들에게 신선함을 불어넣어줄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정말 간만에 드라마를 보면서 낄낄거린듯. 언젠가 시효경찰 3기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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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9-01-07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아직 보진 못한 드라마네요. <트릭>은 정말 처음엔 재미있었는데 갈수록;;

이매지 2009-01-07 14:03   좋아요 0 | URL
<트릭>은 뒤로갈수록 근성이죠 ㅎㅎ
<시효경찰> 꼭 한 번 보세요 :)
4차원 수사물의 진수를 맛보실 수 있으실꺼예요 ㅎㅎ

비연 2009-01-07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다기리 죠 특유의 코믹 컨셉이 재밌었다는.

이매지 2009-01-07 14:03   좋아요 0 | URL
오다기리 죠는 진지한 역할도 제법 어울리지만 코믹 연기도 잘해요 ㅎ

다소 2009-01-12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이조쿠의 짝퉁이라는 인식과 캐릭터도 묘하게 중첩돼서 처음엔 상당히 불만이었는데, 갈수록 독자적인 캐릭터 형성, 이야기 형성에 아주 즐거워하며 본 드라마였지요. 여주인공 못 생겨서 싫어했는데, 갈수록 귀엽. >_< 소설화된 원서를 사려고까지 생각중이니까요.(아, 환율. 죽일놈의 환율) 처음엔 조연들 발음 때문에 듣기가 참 힘들더니 그것도 익숙해지니까 잘들려요. 요런 드라마야말로 일드의 매력인 것 같아요.

이매지 2009-01-12 11:40   좋아요 0 | URL
전 케이조쿠보다는 시효경찰이 더 마음에 들더라구요 :)
여주인공 정말 갈수록 귀엽 ㅎㅎㅎ
원서라니! 다소님은 역시 능력자 ㅎㅎ
저도 원서로 읽어보고 싶어요 -_ㅜ